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오후 6시 10분
시간이 흘러 저녁이 다 되었다.
복부에 큰 상처를 입었던 임창규 형사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안정을 취했다. 이에 구나정 형사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화정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녀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동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바닥만 보며 걷다가 강력반 사무실 앞에 다다랐다. 잠시 망설이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건조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공기가 어느 때보다도 건조한 거 같았다.
“구형사!”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력반 책임자인 한민국 반장이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반장은 중간 키에 깡말랐다. 40대 중반 남자로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광대뼈와 눈두덩이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도드라졌다.
한민국 반장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무척 놀란 얼굴이었다.
“구형사, …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외근 나갔다가 좀 전에 소식을 들었어.”
“그, 그게 …….”
구나정 형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울러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자신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파트너인 임창규 형사가 다친 것만 같아 양 입술에 강력 본드를 바른 듯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강력반 책임자인 한민국 반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다. 이에 힘들게 입을 열어 그때 상황을 전했다.
잠시 후, 자초지종을 들은 한민국 반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항상 조심했어야 했는데 … 방심하다가 당한 거군, 으이고! … 임형사는 베테랑인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한민국 반장이 이를 악다물었다. 강력반은 흉악범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검거 과정에서 형사들이 다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무척 아팠고 그래서 항상 조심하라고 주의 줬지만, 일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타박상 정도는 멘소래담을 듬뿍 바르라고 웃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칼에 찔렸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응급조치를 잘해서 별 탈이 없다는 소식에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한민국 반장이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앞에 있는 구나정 형사의 얼굴과 옷을 살폈다. 그가 말했다.
“구형사는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
“저는 괜찮습니다. 다친 데는 없어요.”
“반장님, 특급 용사 구형사가 다쳤겠습니까? 살쾡이 박은달이 다쳤답니다.”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력반 김기중 형사였다. 김형사가 한민국 반장을 향해 걸어왔다. 김형사는 40대 초반 베테랑 형사였다. 165cm 키에 단단한 체격이었다.
“김형사, 살쾡이는 어떻게 다친 거야?”
한민국 반장이 김기중 형사에게 물었다. 이에 김형사가 구나정 형사를 힐긋 보고 답했다.
“그야, 우리 특급 용사 구형사가 두들겨 패서 그렇게 됐죠. 살쾡이도 응급조치 받았답니다. 현재 별 탈이 없답니다. 한동안 기절했었답니다.”
한민국 반장이 이게 뭔 일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구나정 형사에게 물었다.
“구형사, 제압하는 과정에서 살쾡이도 다친 거야? 그런 거야?”
구나정 형사가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 칼로 임형사님을 해치고 저도 해치려 했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손을 썼습니다.”
“그렇군, 알았어. 칼은 든 놈이니 당연히 무력을 써서라도 제압해야지. … 갑자기 덤벼서 총을 꺼낼 시간도 없었던 거지?”
“네, 맞습니다. 현관문이 반쯤 열려있었는데 살쾡이가 갑자기 문을 열고 튀어나와서 칼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알았어. 일단 살쾡이한테 별 탈이 없으니 이건 문제가 안 돼. 일단 오늘 일을 보고서로 작성해. 보고서를 내 책상에 올려놓고 퇴근해. 난 과장님과 함께 병원에 가야겠어.”
한민국 반장의 말에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반장님. 지금 자리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하겠습니다.”
구나정 형사가 서둘러 자기 자리에 앉았다. 한민국 반장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김기중 형사가 그녀에게 다가와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실실 웃으며 얄미운 표정으로 말했다.
“구형사, 구형사는 범죄자를 함부로 때리면 안 돼. 특전사에서도 알아주던 특급 용사였잖아. 리썰 웨폰(Lethal Weapon, 인간병기)이잖아. 항상 조심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다 사고 칠라.”
“네에?”
구나정 형사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럼, 수고해.”
김기중 형사가 여전히 실실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구형사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구형사님, 신경 쓰지 마세요.”
젊은 남자 형사가 구나정 형사에게 말했다. 구형사 옆자리에 앉은 신민재 형사였다.
신형사는 20대 후반 나이로 구나정 형사와 동갑이었다. 하지만 경찰 2년 후배였다. 180cm 키에 듬직한 체격이었고 곰 인형 푸(pooh) 같은 푸근한 인상이었다. 8자 눈썹에 눈이 작았고 코와 입이 컸다.
“김선배님이 괜히 심심해서 저러는 겁니다.”
“신형사! … 지금 뭐라고 했냐?”
큰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던 김기중 형사가 고개를 획 돌리고 말했다. 그리고 신민재 형사를 매섭게 쏘아봤다. 그러자 신형사가 서둘러 답했다.
“서, 선배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구형사님이 어떻게 살쾡이를 제압했는지 물어본 거뿐입니다. 저도 한 수 배우려고요.”
“그래? … 내 욕을 한 게 아니고?”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늘 같은 선배님을 욕합니까? 오해입니다!”
“구형사, 신형사 말이 맞아?”
“…….”
김기중 형사의 말에 구나정 형사가 입을 다물었다. 김형사가 다시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젊은 형사끼리 열심히 해. 신형사는 구형사한테 많이 배우고 …. 구형사는 누가 뭐래도 한국 최고의 형사니까.
난 휴게실 가서 커피 마시고 올게. 반장님이 찾으면 지능범죄수사대에서 불렀다고 둘러대 …. 흐흐흐!”
“알겠습니다, 선배님.”
신민재 형사가 꾸벅 절하며 답했다.
김기중 형사가 사라지자, 구나정 형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저 선배는 동료가 다쳤는데도 걱정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네.”
“원래 항상 태평하시잖아요.”
신민재 형사의 말에 구나정 형사가 무척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후, 구형사가 마음을 가다듬고 노트북 전원을 켰다.
밤 8시 40분
구나정 형사가 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신민재 형사와 함께 퇴근했다.
둘이 경찰서 근처 동태탕 집에 들어가 얼큰한 동태탕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입가심하러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숍 분위기가 편안해서 그런지 신민재 형사가 이런저런 얘기를 잔뜩 늘어놨다.
“선배님도 항상 조심하세요. 자칫하면 선배님도 다칠 뻔했어요. 특공 무술을 익혀도 칼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그야 그렇지, 알겠어.”
구나정 형사가 잘 알겠다는 표정으로 커피잔을 들었다. 단숨에 커피를 다 마시고 말했다.
“신형사, 임선배님 문병하러 간다고 했잖아. 갈려면 지금 가, 너무 늦지 않게.”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신민재 형사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제 가야겠네요. 정일 병원이라고요?”
“응, 맞아.”
“알겠습니다. 이제 일어나시죠.”
“그래, 이제 집에 가야겠어. 오늘 좀 피곤해.”
구나정 형사가 말을 마치고 검은색 배낭을 어깨에 멨다. 수첩과 화장품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이었다.
둘이 커피숍 밖으로 나왔다. 신형사가 말했다.
“선배님, 집 근처까지 모셔드릴까요?”
“아니야, 됐어. 신형사는 어서 병원에 가야지. 나는 버스 타고 집에 갈게.”
“네, 알겠습니다. 내일 봐요, 선배님. 충~성!”
“그놈의 충성 소리! … 이젠 지겹다. 전역한 지가 언제인데 … 맨날 충성이야.”
“그래도 중사님이잖아요. 부소대장님 대우를 해드려야죠.”
신민재 형사가 예비역 병장처럼 껄렁하게 경례를 붙이자, 중사 출신인 구나정 형사가 몹시 귀찮다는 표정으로 경례를 받았다.
신형사가 차에 올라타자 바로 시동이 걸렸다. 시동 소리가 들리자, 구형사가 걸음을 옮겼다. 저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60번 버스 정류장이었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했지만, 좀 걷고 싶었다.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정처 없이 걸으면서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밤 9시 40분
한 시간 정도 구나정 형사가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시간이 지나자, 발걸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몸이 가벼워지자, 마음도 가벼워지는 거 같았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가야 했다. 100m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구형사가 내일을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내일은 기쁜 날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조카를 만나는 날이었다.
구형사는 어릴 적부터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의지하며 살았다. 부모님 둘 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녀에겐 오빠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고생일 때 커다란 불행이 또 닥치고 말았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열 살 터울 오빠 구민수가 명을 달리했다.
오빠는 동해안 경찰서 경찰이었다. 잠입 경찰로 강원도 동해안을 주름잡았던 조폭 쌍용파에 침투했다가 그 정체가 발각돼 순직하고 말았다.
이후 엄마의 동생인 이모가 그녀를 보살펴주었지만, 이모마저 몇 년 전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구형사는 참 서글픈 인생이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했고 갈수록 말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외롭게 살아가다가 한 은인을 만났다. 바로 유명한 탐정 유강인이었다. 그가 조카를 찾아줬다.
바로 오빠의 아들이었다. 구형사는 오빠가 혼인 신고도 결혼식도 하지 않는 바람에 그가 결혼한 지도 자식이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외롭게 살던 구형사는 유일한 혈육인 조카가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고 조카를 자기 아들처럼 생각했다.
그렇게 소중한 조카가 내일 엄마와 함께 구형사 집에 오기로 했다. 두 달 만에 만나는 조카였다.
‘영수야!’
열 살 조카 구영수의 얼굴을 떠올리며 구나정 형사가 힘을 냈다. 고된 형사 일이지만, 오빠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됐고 누구보다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순직한 구민수 경사의 떳떳한 동생이 되고 싶었다.
“이런! 버스 올 시간이 다 됐네.”
구나정 형사가 핸드폰으로 배차 시간을 확인하고 뛰기 시작했다. 저 멀리 버스 한 대가 코너를 돌더니 정류장을 향해 달려왔다.
밤 10시 20분
구름이 많이 낀 날이라 그런지 밤하늘이 더욱 어두웠다. 거리를 밝히는 인공조명이 없다면 칠흑처럼 어두울 거 같았다.
여기는 서울시 변두리 경흥동이다. 4차선 도로를 따라서 오래된 5층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맞은 편에는 상가 건물들이 쭉 늘어섰다.
거리는 인적이 드물어 무척이나 한산했다. 곳곳에 있는 가로등 불빛만이 그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경흥동은 수십 년 전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유명했다. 바로 미래 경흥아파트였다. 총 6단지가 있었다.
근처에 대학 진학률이 좋은 고등학교가 여러 개 있어 자녀를 둔 많은 사람이 이 아파트를 선호했다.
1982년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졌지만, 이제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건축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가며 그 수명을 다해갔다.
40년이 넘은 아파트라 수돗물에서 시퍼런 녹물이 나오고 벽에 금이 가면서 허물어져 안전진단에서 C등급이 나오고 말았다.
결국, 많은 주민이 재건축을 원했고 그들의 소원대로 2018년부터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었다.
1단지부터 스타트를 끊었고 이후 순서대로 재건축이 이어져 이제 4단지 차례가 되었다.
4단지는 재건축이 결정되고 조합이 결성된 후 관리처분계획을 인가받고 이주와 철거가 진행 중이었다. 현재 이주는 100퍼센트 완료된 상태고 철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거 전,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3m 높이 하얀 펜스가 4단지 전체를 둘러쌌다.
이주가 완료된 4단지는 사람들의 손길이 사라지자 점점 흉물스럽게 변해갔다.
날이 갈수록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벽을 칠했던 하얀 페인트도 뚝뚝 떨어져 나갔다. 결국, 음침한 회색 세상이 되어 폐가처럼 음산해졌고 불안한 정적에 휩싸였다.
4단지 건너편 상가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주 고객인 아파트 주민이 사라지자, 장사가 될 턱이 없었다. 셔터를 내린 가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낮에는 문을 연 곳이 간혹 있었지만, 밤에는 모두 문을 닫고 퇴근해서 4단지 거리 전체가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4단지와 주변 상가가 유령 도시처럼 변하자, 인근 주민도 이곳에 오기를 꺼렸다.
환한 낮에도 한두 명만 거리를 오갈 뿐이었고 밤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재건축이 끝날 때까지 통행금지 구역이 된 거 같았다.
쓸쓸한 가을바람 소리만 들리는 거리에 버스 한 대가 4차선 도로를 달렸다. 60번 버스였다. 화정동, 경흥동을 지나 정수동으로 향하는 버스였다.
버스가 경흥동 아파트 단지를 누볐다. 1단지와 2단지는 재건축이 끝나 주민이 입주한 상태였고 3단지는 건물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버스가 1, 2, 3단지에서 손님 여섯 명을 태우고 4단지로 향했다. 버스 안에는 운전기사와 손님을 포함해 총 열한 명이 타고 있었다.
그 손님 중에 구나정 형사도 있었다. 내리는 문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구형사의 집은 경흥동 옆에 있는 정수동 10층 건물 원룸이었다.
“음~!”
구나정 형사가 좀 피곤한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서 씻고 푹 자고 싶었다.
버스가 4단지를 지나 5단지로 향했다. 유령 도시가 된 4단지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4단지와 5단지 사이에는 고급 빌라 단지가 있었다. 모두 2층 빌라였다. 여기도 오래전에 만든 곳이었다.
‘사탕이나 먹을까?’
구나정 형사가 입이 심심한지 무릎에 올려놓은 검은색 배낭을 열었다. 손을 쑥 집어넣어 자두 맛 사탕 하나를 꺼냈다.
포장을 까고 달콤한 사탕 하나를 입에 쑥 넣었을 때 차가 천천히 멈췄다. 다음 정류장까지 200m가 남았고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현재 병목현상으로 차량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다. 차가 섰다가 갔다가를 반복했다.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여러 도로가 차단된 상태였다.
“응!”
그때! 구나정 형사의 두 눈이 커졌다. 어두운 골목에서 한 남자가 정신없이 뛰어나왔다.
이곳은 빌라 단지가 있는 곳이었다. 3m 높이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고급 빌라 단지였다. 빌라 단지 사이에 있는 어두운 골목에서 한 남자가 숨 가쁘게 뛰어나왔다. 온몸이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
순간! 범죄자 느낌이 들었다. 무척 예사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