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27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27화_명호의 봉변과 신우의 분노


신우와 명호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신우가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나들이해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가뿐했다.


희망을 꿈꾸는 신우의 마음과 달리 가슴에 박힌 돌덩어리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또 시작이다, 윽!”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두려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신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만 낙담하고 두문불출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해서 기분이 참 좋았지만, 그건 그때뿐이었다. 여전히 변함없는 처지에 온몸의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기철의 한 맺힌 고통과 자기의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자신감을 점점 잃어갔다.


22년간 피맺힌 원한을 갚기 위해 원수인 촌장과 일본군에게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촌장과 일본군이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었고 보이지도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울 수도 없었다.


결국, 신우는 자포자기한 듯 힘없이 누워만 있었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 신우야! 기운을 내!”


명호가 신우의 모습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고 자포자기하는 친구를 보면서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어떻게든 그에게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고칠 방도가 없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의술로 고칠 수 없는 병은 결국, 하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매일 아침 정갈한 물을 천지신명께 바치고 신우의 눈을 고쳐달라고 정성스럽게 빌었다.



명호는 장춘(長春)에서 콩, 수수 등 잡곡을 다루는 도매상이었다. 주거래 상대는 소작농이었다.


소작농은 한국인과 중국인이었다. 대부분 좋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에 최대한 후한 값으로 곡물을 매수했다.


소작농은 땅을 빌려 농사짓는 불리한 처지였다. 그래서 수확물의 절반 이상을 지주에게 바쳤다. 대략 6.5할이었다. 나머지 3.5할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생계를 꾸리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지주들은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들 중 탐욕스러운 자는 만주국 관료의 비호를 받으며 소작농들을 가혹하게 수탈했다.


명호는 지주와 만주국 관료를 잘 달래서 소작농의 처지를 개선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간혹 선량한 지주를 만나면 소작농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었지만, 소작농을 아랫것으로 간주하는 무도한 자를 만나면 자신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만주국에서 한국인은 한족이나 만주족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았지만 역시 일본인에게 차별받는 2등 시민에 불과했다.


명호는 일본인 지주와 만주국 관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자기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그는 당장이라도 이런 비굴한 삶을 청산하고 싶었다. 신우와 함께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서 편안히 쉬고 싶었다.


다른 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면 신우의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몸도 좋아질 거 같았다.



아침이 밝았다. 명호가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이른 아침이라 신우는 자고 있었다.


“오늘은 할 일이 많네. 서둘러야겠다.”


명호가 아침을 빨리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우가 먹을 밥상을 차렸다. 신우가 일어나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정성껏 상을 준비했다. 잘 구운 생선구이에서 가시를 발랐다.


“다됐다.”


명호가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면 바로 가게였다. 방문 앞에 의자와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 매출 매입 장부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한동안 장부를 살피다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소작농의 수확물을 확인하고 값을 흥정했다.


“10전에 매수하겠습니다.”


명호의 말에 소작농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이고 정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올해는 농사가 잘돼서 수확물이 많았고 질도 좋았다. 그래서 좋은 값을 매겨서 매입할 수 있었다.


명호가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로 돌아왔다. 신우가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신우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입맛이 없는지 아침밥에 손도 대지도 않았다.


“신우야! 아침밥을 먹어야지, 벌써 해가 높이 떴어!”


명호가 짜증이 나서 크게 소리쳤다.


“……,”


신우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명호의 큰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눈을 꼭 감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신우야, 밥을 먹어야 힘을 내서 뭐라도 하지. 자! 한술 뜨자!”


명호가 숟가락에 밥을 푹 떠서 제발 밥을 먹으라고 사정했다.


친구의 간절한 호소에 신우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이따가 배가 고프면 먹을게.”


신우가 말을 마치고 한 손으로 이불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이거 참!”


명호가 이를 악물었다. 신우의 무기력한 모습에 울화통이 터졌다. 그러나 눈이 멀고 낙담한 친구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래, 그러면 이따가 배가 고프면 꼭 먹어야 해!”


명호가 신우에게 신신당부했다. 숟가락을 다시 밥상에 내려놓고 방에서 나갔다.


수매한 곡식들을 확인한 다음 점원들과 함께 배달처로 곡물을 나르기 시작했다.



해가 점점 떠올라 한낮이 되었다.


국밥으로 점심을 때운 명호가 장부를 정리하려 가게로 돌아왔다.


바쁜 걸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신우가 밥을 먹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밥그릇에 밥이 조금 남아있지만, 요기한 수준은 되었다.


“다행이네!”


명호가 안도하고 상을 치웠다.


신우는 여전히 방에서 누워만 있었다. 그래도 아침보다는 생기가 있어 보였다.


명호가 생각에 빠졌다. 신우가 먹을 점심을 생각했다.


‘그래 국수가 좋겠다. 밥맛이 없을 때는 가벼운 국수가 최고야. 비빔 국수가 좋지. 맵고 달콤한 국수를 사 와야겠다.’


명호가 비빔 국수를 사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사, 사장님!”


밖에 있는 점원이 명호를 다급히 부르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 있나?’


명호가 궁금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었다.


짝!


“아이고!”


점원이 일본인 상인에게 따귀를 얻어맞고 있었다.


“아니, 다카하시 선생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명호가 급히 밖으로 나가서 고초를 당하는 점원을 감쌌다. 일본인 상인을 가로막았다.


일본인 상인은 다카하시였다. 키가 아주 작고 삐쩍 마른 40대 남자였다. 한국인과 중국인을 업신여기는 무례한 자로 이 일대에서 유명한 작자였다.


명호는 이자와 악연이 있었다. 예전에 곡물가로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경찰서로 불려갔었다. 그곳에서 모진 고초를 겪고 어쩔 수 없이 값을 대폭 깎아서 곡물을 팔았었다.


“정 선생! 곡물가가 너무 비싸구먼. 이거 점원이 바가지 씌우는 것 아니오?”


다카하시가 명호의 얼굴을 쏘아보며 강하게 따졌다.


“콩은 한 석에 15전이고, 수수는 한 석에 13전입니다.”


명호가 단호하게 곡물가를 말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수모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헐값에 팔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이거 생 바가지구먼! 나보고 이런 저급한 곡물은 그 가격에 사란 말이오?”


다카하시가 격분해서 큰소리를 쳤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안 됩니다. 가격을 더 내리면 제가 손해를 봅니다. 그러면 소작농에게 비싼 값으로 곡물을 매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엔 경찰에 불려가도 값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려면 하세요!”


명호가 더는 당하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다카하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우와, 이런 파렴치한 날강도가 다 있네. 좋다,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기다려!”


다카하시가 불같이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명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가 구제 불능이라는 듯 혀까지 찼다. 좋은 곡물을 저급한 곡물로 매도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다카하시가 사라지자, 명호가 고개를 돌려 점원을 찾았다. 뺨을 맞은 점원이 안쓰러운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철아, 좀 쉬어라. 보리차도 마시고.”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점원은 소년이었다. 16살에 불과했다. 눈물을 훌쩍거리고 아픈 뺨을 어루만지더니 구석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도 명호처럼 고아였다.


명호는 자기처럼 부모 없는 소년을 점원으로 고용해 돌봐줬다.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넉넉한 월급도 지급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삶의 수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곳은 법과 정의가 사라진 곳이었다.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짓밟는 곳이었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한 이후로 그 양상이 더 심해졌다.


현재 만주국은 국경도 불안했다. 언제 소련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치안이 불안했고 위기감이 항상 팽배했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만주국을 지배하는 일본인의 히스테리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지만,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무도한 짓을 거침없이 자행했다. 한국과 일본 본토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질적으로 달랐다. 훨씬 무서운 존재였다.


명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언제까지 이런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하지? … 그래, 돈은 벌 만큼 벌었어. 돈 욕심은 그만 부리자.’


명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심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 장사를 파할 때가 되었다.


“가게 문을 닫자. 저기 짐도 창고로 옮겨.”


“알겠습니다, 사장님.”


명호의 말에 점원이 재빨리 움직였다. 문을 닫고 커다란 짐을 어깨에 짊어졌다.


명호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았다.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계산에 집중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장정들이 가게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무도한 일이 벌어졌다.


쾅! 쿵!


장정들이 가게 물건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점원이 장정들에게 달려갔다.


“왜 이러세요? 왜 남의 물건을 던져요?”


“이건 또 뭐야? 꺼져 이 새끼야! XX!”


장정들이 점원을 향해 거침없이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야! 사람 살려!”


점원이 쓰라린 고통을 못 이기고 크게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당신들 뭐 하는 거야!”


명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몽둥이를 들고 그들에게 맞섰다.


그러자 무리의 두목이 앞으로 나오더니 크게 소리쳤다.


“야! 당신이 정명호지. 감히 다카하시 선생에게 대들었다며 … 그래서 본때를 보여주러 왔다.”


두목의 손에 커다란 몽둥이가 있었다. 부하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깡패였다. 다카하시가 명호에게 앙심을 품고 보낸 폭력배였다. 시장을 주름잡는 놈들이었다.


“어? 무슨 일이지?”


깡패들의 큰소리에 신우가 잠에서 깼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저놈을 패 버려!”


두목이 명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에 깡패 넷이 명호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이놈들!”


명호가 몽둥이를 들고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뒤에서 날아오는 몽둥이를 등판에 세게 얻어맞고 고꾸라지고 말았다.


발길질과 몽둥이찜질이 쏟아졌다. 명호가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비명을 질러댔다.


“아이고! 그만!!”


“며, 명호가 누구한테 맞나?”


명호의 비명에 신우가 깜짝 놀랐다. 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휘저으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다급하게 문고리를 찾았지만, 급한 마음에 엄한 곳을 찾고 말았다. 그러다 간신히 문고리를 찾아서 방문을 활짝 열었다.


“아악!”


“선생님들, 제발 그만 때리세요! 제발!!”


방문을 열자, 두들겨 맞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명호의 처절한 비명과 이를 말리는 점원의 떨리는 목소리가 신우의 고막을 울렸다. 신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제발 그만 하세요. 주인님을 때리지 마세요!”


점원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깡패 중 한 명이 한 손을 들었다. 방문 앞에 서 있는 신우를 가리키고 말했다.


“저건 또 뭐야? 한 놈이 더 있다.”


“저놈도 같이 패 버려!”


신우를 확인한 두목이 크게 소리 질렀다. 그러자 두 명이 신우에게 달려들었다. 양팔을 붙잡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아이고!”


신우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얼굴을 찧고 말았다


명호를 때리던 깡패들이 이젠 신우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내리치는 몽둥이에 신우의 등판이 뻘겋게 물들었다. 그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안 돼! 제발! 이 사람은 앞 못 보는 불쌍한 사람이에요. 다카하시 선생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명호가 신우에게 달려왔다.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깡패들을 막아섰다.


“이놈이 아직 덜 맞았구나!”


두목이 명호에게 일갈하고 달려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악!”


비명과 함께 명호가 쓰러졌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핏물이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안돼! 신우를 때리면 안 돼! 앞 못 보는 사람이야. 제발!!”


명호가 기를 쓰고 다시 일어났다. 깡패에게 얻어맞는 신우에게 달려갔다.


과거 일본군에게 달려들었던 덕대 같았다. 그렇게 신우를 대신해 매를 맞았다.


명호의 선혈이 사방에 뿌려졌다. 신우의 눈에 명호의 피가 들어왔다.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그의 눈 안으로 스며들었다.


명호의 비릿한 피 냄새에 신우가 움찔했다.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윽!”


명호의 처절한 비명이 계속 들렸다. 그러자 신우 안에 있는 뭔가가 터져 버렸다. 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젠 어떤 경우라도 용서가 없었다.


가슴에서 새파란 빛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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