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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49_에리카 감금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뭐라고? 사토가 왔다고?”


다나카가 수화기를 들고 크게 외쳤다.


“네, 총에 맞아서 중상입니다. 위독한 상태입니다.”


보초의 말에 다나카가 화들짝 놀랐다. 사토는 물고기 밥이 돼야 했다. 그런데 총에 맞은 몸으로 관저로 돌아왔다.


“젠장!”


다나카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정문으로 달려갔다. 한 손에 권총이 있었다. 장전된 상태였다. 바위처럼 굳은 얼굴로 사토를 찾았다.


“아, 사토!”


그런데 사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토 옆에 에리카와 요시코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눈동자가 마구 요동쳤다.


사토가 다 죽어가면서도 에리카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안돼!!”


다나카가 사토를 향해 달려갔다. 마치 굶주린 사자 같았다. 사토 앞에 다다르자, 우악스러운 두 손으로 사토의 멱살을 꽉 잡았다.


“아저씨! 사토님은 총에 맞았어요. 이러지 마세요!”


에리카가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


다나카가 이에 개의치 않았다. 사토의 멱살을 붙잡고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사토가 질질 끌려갔다. 그는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바닥에 피가 계속 떨어져 흥건했다.


“너희 둘! 아가씨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가! 어서!!”


다나카가 보초 둘에게 크게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보초 둘이 서둘러 움직였다. 총사령관의 명이었다. 에리카와 요시코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에리카는 사토의 말을 더 듣고 싶었지만, 병사들의 완력에 밀려 집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놈 X자식! 에리카에게 무슨 헛소리를 한 거냐?”


다나카가 사토에게 호통쳤다.


“흐흐흐.”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사토가 비웃음만 흘렸다. 그는 정신이 혼미했다.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어갔다.


“이 X자식!”


다나카가 사토를 냅다 팽개쳤다. 권총의 총구를 사토의 머리에 겨누고 일갈했다. 그동안 당했던 분노를 일순간에 표출했다.


“사토 중좌, 너는 반역자다! 대일본제국의 작전 비밀을 적에게 넘겼다. 이에 반역죄로 오늘 너를 이 자리에서 처형하겠다.”


다나카가 말을 마치고 쓱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당했던 설움을 이 자리에서 속 시원히 털고 싶었다.


재판으로 갈 필요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와의 악연을 끝내고 싶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사토가 정신 차렸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나카! 네가 이러고도 ….”


사토가 마지막 힘을 다해 입을 열었지만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



탕!



동틀 녘 적막을 깨우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악!”


사토가 급소에 총을 맞았다.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커다란 한이 맺힌 듯 두 눈을 감지도 못했다.


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나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사토의 눈망울을 쳐다볼 수 없었다. 자기를 원망하는 눈동자였다.


총소리가 들리자, 부하 십여 명이 달려왔다.


다나카가 자세를 고쳐잡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자는 반역자다. 그래서 즉결 심판했다. 어서 시체를 치워라.”


“반역자고요?”


“세상에!”


부하들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상관의 명에 따라야 했다. 그들은 사토의 시체를 보면서 그 참담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후 다나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참 서성이다가 양주 진열장에서 독한 위스키를 꺼내서 한잔 쭉 들이켰다.


독한 알코올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식도가 타들어 가는 거 같았다.


“좋다.”


다나카가 연신 미소를 지었다. 술기운으로 마음을 달랬다. 사토를 죽인 건 분명 부당한 처사였지만, 사토 그자는 죽어 마땅한 자라며 자기 합리화했다.


그렇게 한 줌도 남지 않은 마지막 양심을 알코올로 만취시켰다.


한편 에리카는 밖에서 들리는 총성에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름이 돋았다. 사토한테 큰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병사들이 출입문을 지키고 막았다.


상황이 정리됐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다나카가 방에서 나왔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이 매우 꺼림칙 했다. 그건 사토가 죽기 전 만난 사람이었다, 바로 에리카였다.


“에리카가 혹 ….”


다나카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사토가 에리카한테 진실을 말했을 거 같았다. 진실을 말했다면 큰일이었다.


과거 자신이 한 일을 에리카가 알며 이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 같았다.


일단 에리카를 잡아둬야 했다. 그녀를 감금하고 그 입을 막아야 했다. 비밀을 철저히 유지해야 했다.


그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현재 에리카 아가씨가 위험한 상태다. 지금부터 에리카 아가씨를 24시간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



다나카의 명령이 떨어진 후, 그 소식이 집 하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에리카는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며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오직 요시코만이 에리카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요시코가 급히 에리카의 방으로 향했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길을 비켜줬다.


방에 들어간 요시코가 문을 꼭 닫고 에리카에게 말했다.


“언니!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주인님 명령이 떨어졌대요!”


“뭐라고? 난 학교에 가야 하고 … 신우씨도 만나야 하는데, 왜 나를 가두는 거지? 사토님 말 때문에 그런 거라면 ….”


순간, 에리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느닷없이 자기를 가두는 다나카가 이상했다. 그 이유가 사토의 말 때문이라면 … 사토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이 난 듯 요시코를 쳐다보았다. 사토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났다. 요시코한테 증거가 있다고 했다.


에리카가 빤히 쳐다보자, 요시코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언니,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단지, 사토님한테 부탁을 받았을 뿐이에요.”


“부탁이라고?”


“네!”


“그게 뭔데?”


“사토님이 죽었으니 … 이제 사실대로 말할게요.”


“사실이라고?”


“네, 그동안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요시코가 말을 마치고 잠시 몸을 떨었다. 그러다 말을 이었다.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였다.


“13년 전 그날, 밖에 놀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어요. 사토님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때 총소리가 들렸어요. 비명도 들렸고요. 사토님이 급히 계단을 올랐어요.

저는 너무 놀란 나머지 탁자 밑에 한동안 숨어 있었어요. 잠잠해지자, 용기를 내서 총소리가 난 사모님 방으로 올라갔어요.

방안에 사토님이 서 있었어요. 쓰러진 부모님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저는 너무 놀란 나머지 꼼짝도 못 했어요. 사토님이 제가 온걸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을 때 뒷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어요.

정신 차리고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는데 군복 입은 사람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어요.”


요시코가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에리카의 두 눈이 갑자기 두 배로 커졌다. 사건 현장에서 도망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말했다.


“그때 누가 나갔다고? 그 사람이 누구야? 혹 다나카 아저씨야?”


“그때,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전 그때 겨우 13살이었어요. 너무 무서웠고, 그냥 체격이 큰 군인이라는 것만 기억해요.”


요시코가 어렵게 그날을 일을 증언했다.


에리카가 곧 생각에 잠겼다. 다나카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 다나카는 현장에 없었고 사건 목격자는 사토라고 말했다. 현장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자가 바로 범인이었다. 요시코의 말에 따르면 사토는 총소리를 듣고 2층으로 황급히 올라갔다.


베일에 가려던 사건의 진상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리카가 급히 말했다.


“다나카 아저씨가 그날 사토님이 목격자라고 했어. 사토님은 총소리를 듣고 2층으로 올라갔으니 목격자가 맞아. 몰래 뒷문으로 빠져나간 군인이 범인이야!”


진범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에리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확신한 찬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일 리가 없어. 절대로!”


에리카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진범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계속 질문이 이어졌다.


“요시코! 사건 현장에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요시코가 울먹이며 답했다.


“언니! 정말 죄송해요. 그때 사토님이 말했어요. 부모님은 치료를 받으며 괜찮을 거라고 말했어요.

병원에 연락했다고 했어요. 저는 그게 진짜인 줄 알았어요.

이후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알았지만, 사토님이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어요. 지금 언니도 위험하다고 했어요.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며, 그자가 언니까지 해치려 한다고 했어요. 그걸 막을 수 없다고 했어요.

그자가 언제든지 언니를 해치러 또 올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린 맘에 말할 수 없었어요. 언니를 지키려면 입을 꾹 다물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때 그 말을 철썩 믿었어요. 언니마저 잃을 수 없었어요.”


요시코가 어리석음을 탓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요시코, 네 잘못이 아니야, 울지 마.”


동생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자, 에리카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이 안쓰러워 다독여주었다.


요시코가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


“그 이후에 사토님이 절 도와줬어요. 엄마가 아픈 걸 알고 약값을 대줬어요. 엄마와 저는 그동안 사토님한테 큰 신세를 지고 있었어요.

사실을 말하면 엄마 약값을 끊어버린다고 저를 협박했어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어요. 말할 기회를 놓쳤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한테 말하지. 내가 약값을 대 줄 수 있는데 ….”


“그때 언니는 학생이었어요. 다나카 주인님이 부모님 유산을 모두 관리했고요.”


“아, 그렇지. 그때 그랬지. 난 학생이었지.”


요시코가 침을 꿀컥 삼켰다. 중요한 말을 하려는 거 같았다.


“한 달 전쯤에 사토님이 어떤 물건을 제게 맡겼어요.”


“물건이라고?”


사토가 맡긴 물건이라는 말에 에리카가 귀를 쫑끗했다. 바로 사토가 말한 증거 같았다.


“그 물건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언니한테 전해주라고 하면 바로 보여주라고 했어요.

사토님은 말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라고!”


에리카가 심호흡했다. 드디어 증거가 등장했다. 그걸 요시코가 갖고 있었다. 바로 부모님 살해와 관련된 거였다.


그녀가 사방을 둘러봤다. 방 안에는 둘만 있었다. 창문에도 엿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물건을 지금 보여줄 수 있니?”


요시코가 고개를 끄떡였다.



*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시코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병사들이 의심쩍은 눈초리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저 아가씨께서 목이 마르시다고 해서.”


요시코가 대충 말하고 자기 방으로 냅다 뛰었다. 방으로 들어가 가위를 찾았다. 가위를 들고 베개를 자르기 시작했다.


베개를 반쯤 잘랐을 때, 봉투 하나가 떨어졌다.


바로 사토가 맡긴 물건이었다.


“휴우~!”


요시코가 크게 숨을 내쉬고 봉투를 가슴 속 깊이 간직했다. 부엌으로 가서 물병을 들고 태연한 척을 하며 에리카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물병 갖고 왔어요. 어서 비키세요.”


물병을 확인한 병사들이 길을 비켜줬다.


요시코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물병을 책상에 놓고 재빠르게 문을 닫았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에리카가 떨리는 눈망울로 요시코를 쳐다봤다. 요시코가 오른손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봉투 한 장을 꺼냈다.


“봉투!”


봉투를 확인한 에리카가 몸을 떨었다. 요시코가 봉투를 에리카에게 건넸다. 봉투 안에는 종이 두 장이 있었다.


에리카가 먼저 한 장의 종이를 잡았다. 그리고 쫙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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