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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50_진실이 드러나다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종이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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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켄타! 어서 빨리 와주세요. 제가 당신한테 여자가 있다고 오해한 건 모두 다나카의 음모였어요. 그자가 지금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이러다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너무 불안해요. 이 편지를 받는 즉시 빨리 저에게 달려와 주세요.


그동안 당신을 믿지 못하고 오해했던 점 정말 미안해요. 당신을 사랑한 만큼 당신을 괴롭혔던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야코

1929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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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에리카의 어머니, 아야코의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엄마!”


에리카가 엄마를 불렀다. 단번에 필적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편지를 잡은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당시 학생이었다. 싸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자, 부모님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졌다는 걸 알아챘다.


싸움이 시작될 때마다 아버지인 오오하라는 에리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어머니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평상시 조용했지만, 급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화를 참지 못했다.


에리카는 나날이 악화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친구이자 동생인 요시코에게 불안한 마음을 하소연만 할 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음모라고!”


편지에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모든 불화가 다나카의 음모라고 어머니가 적었다.


“아! 맞아!”


그때 에리카의 머릿속에 하나가 떠올랐다. 부모님 사이가 틀어지기 전, 다나카가 집에 방문했었다. 그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자가 어머니를 급히 찾았다.


에리카가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나카가 그자가 부모님 사이를 이간질할 건가? 편지 내용도 그렇고 그게 맞는 거 같아.’


에리카가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나카! 그자는 아주 음흉하고 무서운 자였다. 그런 자를 믿고 10년 이상을 의지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


“아, 날짜.”


편지 끝에 날짜가 적혀있었다. 에리카가 급히 편지에 적힌 날짜를 살폈다. 1929년 6월 3일이었다. 그날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이었다.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헉! 그, 그렇다면 ….”


에리카가 급히 생각했다. 편지 내용을 바탕으로 그날의 일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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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머니의 다급한 서신을 받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 다나카 사이에서 충돌이 생겼고 참담한 비극이 생기고 말았다.


당시 유일한 목격자는 사토였다.


그런데 사토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나카와 짜고 사실을 감췄다.


그런 사토가 오늘 다나카한테 죽고 말았다. 증거인 봉투만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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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에리카가 그날의 진실을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떡였다. 부모님을 죽인 범인은 바로 다나카였다. 사토는 이를 감춘 공범이었다.


봉투에 종이 한 장이 더 있었다. 마지막 종이를 살펴야 했다.


에리카가 떨리는 손으로 남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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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나카 테츠야는 1929년 6월 3일 오오하라 부부를 살해했다.


먼저 부인인 오오하라 아야코를 목 졸라 죽였다. 비명을 듣고 2층으로 올라온 오오하라 켄타를 총으로 살해했다.

이후 범죄를 조작했다.


오오하라 켄타가 부인을 죽이고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다.


내 살해 동기는 다음과 같다.


난 오래전부터 오오하라 아야코를 사모했다. 그녀를 켄타에게 빼긴 후, 이를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부부 사이를 이간질해서 그녀를 빼앗으려 했으나 이에 실패하고 그들을 살해했다.


이 모든 사실은 하늘에 맹세코 사실이다. 내 필적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내 지장이 이를 증명한다.


이 모든 일은 사토가 증인이다.


1929년 6월 3일 다나카 테츠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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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각서는 사토의 작품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2층으로 올라온 사토는 다나카의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신고하기는커녕, 권총을 들고 다나카를 협박했다. 사실대로 각서를 쓰게 했다.


사토는 오오하라가 죽자, 새로운 뒷배로 다나카를 선택했다. 이를 출세할 기회라 여겼다.


다나카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각서를 쓰지 않으면 사토의 총에 죽을 뿐만 아니라 파렴치한 범죄 행각도 세상에 알려질 게 뻔했다.


각서를 받은 사토는 아주 의기양양했다. 이후 각서를 이용해 다나카를 수시로 협박했다. 그렇게 해서 꿈도 꿀 수 없었던 중좌 자리까지 진급할 수 있었다.



결국, 사토의 명예는 비열한 거래를 통해 완성됐다.



“세, 세상에!!!”


에리카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확 벌어지기 시작했다. 턱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거 같았다.


“아아~!”


결국, 그녀는 졸도하고 말았다. 편지를 다 읽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실신했다.


“어머! 언니!!”


요시코가 깜짝 놀랐다. 언니가 마지막 편지를 잃자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언니! 정신 차려요! 괜찮아요?”


요시코가 에리카의 몸을 흔들며 깨웠다.


1분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에리카가 몸을 일으켰다. 몸이 축 젖어 있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폭발했다.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땀이 샘솟았다.


“아이고, 이를 어째!”


요시코가 수건을 찾았다. 급히 수건에 물을 적시고 언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휴우~!”


에리카가 다시 용기를 내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다 읽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유리창이 깨지듯이 하늘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에리카가 분을 참을 수 없는지 몸을 마구 떨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 감당할 수 없는 심적 고통에 다시 실신하고 말았다. 입에서 하얀 거품이 흘러나왔다.


“아! 큰일이다.”


요시코가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즉각 깨달았다. 문으로 달려가 방문을 활짝 열고 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여기요! 아가씨가 쓰러졌어요. 빨리 의사를 불러주세요!

급해요!!”


요시코의 외침에 병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요시코의 말대로 에리카가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에 이 사실을 다나카에게 급히 보고했다.


“뭐라고? 에리카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고? 혼절했다는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수화기를 든 다나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빨리 의사를 불러! 가장 가까운 의원에 연락해!!”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에리카를 침대에 눕혔다. 에리카는 여전히 의식불명이었다.


“의사가 올 때까지 아가씨를 부탁합니다.”


병사의 말에 요시코가 고개를 끄떡였다. 자라처럼 놀란 가슴을 달래며 몸을 떨었다.


병사들이 밖으로 나가자, 요시코가 사방을 둘러봤다. 바닥에 봉투 한 장과 종이 두 장이 떨어져 있었다.


사토가 말한 증거였다.


요시코가 떨리는 손으로 봉투와 종이를 들었다. 종이 두 장을 살폈지만,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는 한자와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종이에 적힌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이 물건은 사토가 맡긴 증거였고 증거를 확인한 에리카가 두 번이나 실신했다. 크게 통곡도 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 분명했다.


이에 서둘러 사방을 살폈다. 방과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의사를 부르러 자리를 비웠다.


“휴우~!”


요시코가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종이 두 장을 잘 접어서 봉투에 다시 집어넣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숨길 곳을 찾았다. 그러다 자기 옷을 내려다봤다.


“그렇지.”


그녀가 아! 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봉투를 든 손을 들더니 품속에다 봉투를 쓱 집어넣었다.



*



헌병대 총사령관 관저에서 인근 병원에 전화한 지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보초들이 초조한 표정을 병원차를 기다렸다. 그때 저 멀리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이 보였다. 기다리던 병원차가 드디어 도착했다.


차 문이 열리고 의사 한 명이 내렸다. 그는 마석이었다. 비참하게 죽은 촌장의 아들이자, 신우를 고발한 장본인이었다.


“여기군.”


헌병대 총사령관 관저를 확인한 마석이 긴장한 듯 몸을 떨었다. 이곳은 평범한 집이 아니었다.


헌병대는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 헌병대 중에서도 권력의 정점인 총사령관의 집이었다.


“휴우”


마석이 크게 숨을 내쉬며 긴장감을 달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 엄청난 실의에 빠져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신우의 괴력을 보고 졸도했다가 깨어났지만, 40년 가까이 살아온 남편이 죽고 가게도 불탄 걸 알고 오열하다가 졸도했고 결국, 풍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다.


그녀는 전신불수가 되어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


마석은 허탈했다. 부모 모두 해를 입고, 그동안 악착같이 모았던 재산이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본군과 손을 잡고 20년 동안 힘겹게 버텼던 세월이 단 몇 시간에 만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그는 술에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밖에 의지할 게 없었다.


밤마다 술집을 찾았고, 근무 시간에도 몰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괴로움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음이 계속되면서 몸에서 술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이에 환자와 동료 의사들이 병원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원장은 마석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지만, 그는 술에서 손에서 뗄 수 없었다. 결국, 과도한 음주 탓에 손을 떨게 되었고, 외과의로서 자격을 잃기 시작했다.


며칠 전 마석은 큰 실수를 여러 번 했다. 떨리는 손으로 수술을 감행하다가 가위와 메스를 놓쳐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설상가상으로 급한 수술에도 실패하는 바람에 그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했다.


그는 다급하게 실려 온 정무 총감 부인의 응급 수술에 성공해 장래가 유망한 의사였지만, 지금은 바닥 신세였다.


술주정뱅이라고 손가락질받는 놀림감이었다. 이에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던 자존심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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