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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52_만년필과 메모지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Feb 17. 2025

요시코의 헌신적인 간호로 에리카가 기운을 차렸다.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언니 괜찮아요?”


“응. 이젠, 괜찮아.”


에리카가 힘을 내어 말했다. 그녀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부모님 죽음의 진상을 밝혀야 했다.


죽은 사토의 증언과 봉투 속 어머니가 남긴 편지 한 장과 다나카의 각서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다나카의 필적과 지문을 실제로 대조해야 했다. 언론에 진실을 알려도 다나카는 발뺌할 게 뻔했다. 조작된 각서라고 우길 게 뻔했다.


에리카가 요시코에게 말했다. 먼저 배를 든든히 해야 했다.


“허기가 져.”


“그럴 줄 알고 죽을 준비했어요. 잠시만요.”


요시코가 부엌에서 정성스럽게 쑤어 온 죽을 꺼냈다. 쟁반에 죽 그릇을 담아서 에리카에게 권했다. 소고기 죽이었다.


10분 후 에리카가 죽을 다 먹고 숟가락을 쟁반에 탁 내려놓았다. 그녀가 요시코에게 말했다.


“요시코, 봉투를 나에게 줘.”


“네! 언니.”


요시코가 가슴팍에서 봉투를 꺼내서 에리카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에리카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요시코에게 귓속말로 몇 가지를 부탁했다.


“네? 그게 필요하다고요?”


“응! 요시코, 그게 반드시 필요해.”


에리카의 말을 듣고 요시코가 깜짝 놀란 듯 멈칫했다. 그러다 언니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 잘 알겠다는 듯 끄떡였다. 그리고 쟁반을 들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요시코가 문 앞에서 말했다.


“아가씨가 식사를 마쳤습니다. 문 열어 주세요.”


끼익! 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출입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문을 열었다. 문을 지키는 병사는 두 명이었다. 그들이 요시코가 들고 있는 빈 접시를 보고 길을 비켜줬다.


“감사합니다.”


요시코가 감사 인사를 하고 에리카의 방에서 나와서 주방으로 향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태연한 척 천천히 걸었다.


1층 주방과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인들이 일을 마치고 쉬는 중이었다.


“다행이네. 아무도 없어.”


요시코가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주방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고 숨을 죽였다. 혹시나 다른 사람이 있을까 사방을 쭉 둘러봤다.


인기척은 없었다. 이에 발소리를 죽이며 2층에 있는 다나카의 집무실로 향했다.


2층 다나카 집무실은 요시코가 담당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몰래 움직여야 했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고양이처럼 2층에 올라간 후 다나카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이에 조심스럽게 문 손잡이를 잡고 잡아당겼다. 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자물쇠가 잠겨 있어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이런! 어떡하지?”


요시코가 낙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때, 괘종시계가 오전 11시를 알렸다.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아! 11시구나 … 그러면!”


요시코가 뭔가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나카의 집무실은 하녀 수장인 나나코가 담당했다.


그녀는 다나카의 심복이었다. 집무실 청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많은 하인 중에서 다나카가 지목한 자만 할 수 있었다.


집무실 청소를 담당하는 하인은 극비 서류를 보관하는 집무실 방 열쇠를 소지했다.


집무실 청소는 보통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해서 30분 뒤에 청소가 끝났다.


“그래, 그걸 이용하자.”


요시코가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나코가 집무실 청소하러 갈 때 같이 따라가기로 작정했다.


이에 1층으로 다시 내려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나나코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30분 후 현관문이 열렸다.


나나코가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왔다. 그녀는 언제나 시간을 칼처럼 잘 지켰다.


발소리가 들리자, 요시코가 부엌에서 나왔다. 나나코에게 달려가 장바구니를 받았다.


“네가 웬일이냐? 짐도 다 받아주고.”


나나코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요시코를 바라보며 말했다.


“헤헤헤!”


요시코가 혀를 살짝 내밀며 웃었다.


“음!”


나나코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1층 청소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 걸레를 꺼내 양동이에 담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언니! 같이 가요.”


요시코가 나나코를 급히 불렀다.


나나코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요시코! 왜 날 불러? 넌 아가씨 옆에 꼭 붙어있어야지. 어서 아가씨 방으로 가.”


“아가씨께서 식사를 마치고 지금 잠에 드셨어요. 그래서 지금 마땅히 할 일이 없어요.”


요시코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할 일이 없으면 쉬든지 아니면 주방이나 닦든지 해. 난 지금 바빠.”


“언니가 … 힘드실까 봐 그렇죠. 저번에 보니 물걸레와 양동이를 힘들게 들고 올라가신 던대. 보기에 좀 안쓰러웠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요시코가 상냥하게 웃으며 나나코의 비위를 맞췄다.


“별일도 다 보겠네? 그동안 아가씨 믿고 베짱이처럼 게으름 피우더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뭐를 잘 못 먹었냐?”


나나코가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요시코에게 맺힌 게 많은 듯 꽤 가칠하게 받아쳤다.


“아이고 언니, 죄송해요. 어제 아가씨가 쓰러지셔서 가슴이 철렁했어요. 제가 그동안 아가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거 같아 반성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오늘부터는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요.”


“어머, 별일이네! 네가 일을 열심히 하겠다니?”


나나코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다행이구나. 그럼 날 따라와.”


나나코가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요시코가 그 뒤를 따랐다. 속으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열쇠가 철컥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다나카 집무실 문이 열렸다.


집무실에 들어간 나나코가 책상을 바라보며 공손히 인사했다.


집무실에 아무도 없었지만, 나나코는 마치 다나카가 있는 것처럼 인사했다.


인사가 끝나자, 이제 청소를 시작해야 했다.


먼저 지저분한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나코가 책상을 청소하자, 요시코는 깨끗한 걸레를 양동이에 넣고 꺼낸 다음 물을 쭉 짰다.


벽을 닦으면서 나나코 몰래 집무실 책상을 주시했다.


책상 모퉁이에 작은 액자 하나가 있었다. 액자에는 사진 두 장이 겹쳐 있었다. 뒤에 있는 사진이 앞에 있는 사진보다 두 배정도 컸다.


앞에 있는 사진은 에리카의 미국 대학 졸업 사진이었다. 뒤에 있는 사진은 에리카 엄마 아야코의 사진이었다.


두 여성은 모녀 사이임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판박이었다.


에리카의 아름다움은 엄마가 물려 준 유산이었다.


나나코가 책상 청소를 마치고 창문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요시코는 더러워진 걸레를 양동이에서 열심히 빨았다. 그러다 나나코가 정신없이 일하는 걸 보고 회심이 미소를 지었다. 살금살금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때! 나나코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고 요시코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시코! 책상은 청소 다 했어. 넌 옆에 있는 책장이나 닦아라.”


“아, 알겠습니다. 언니.”


요시코는 나나코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당황했지만 명랑한 목소리로 태연하게 답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나나코가 창문으로 향했다.


슬쩍 곁눈으로 나나코의 눈치를 살피던 요시코가 책상 옆 책장을 향해 걷다가 잽싸게 책상 옆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메모지 한 장을 꺼내서 손으로 꼭 쥐었다.


“휴~!”


요시코가 숨을 내쉬고 콩콩 뛰는 가슴을 달랬다. 그리고 접힌 메모지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메모지에 글자가 별로 없었다. 숫자 여러 개만 있을 뿐이었다.


“이런!”


요시코가 실망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왜 그래?”


나나코가 창문에 착 달라붙은 때를 걸레로 빡빡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책장에 거미가 있어서요.”


요시코가 급히 둘러댔다.


“다 큰 여자애가 아직도 곤충을 겁내냐? 그냥 잡아서 밖에다 버려.”


나나코가 말을 마치고 창문을 박박 닦았다. 창문 청소에 여념이 없었다.


요시코가 침을 꿀컥 삼키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에서 메모지를 한 움큼 주워서 재빠르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제 흙비가 내렸나? 왜 이리 창문이 더러운 거야!”


나나코가 더러워진 창문을 보며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요시코는 은근슬쩍 책장으로 걸어가 열심히 닦는 척했다.


“요시코, 이 걸레는 빨고 새 걸로 가져와”


나나코가 요시코에게 걸레를 던지며 말했다. 더러워진 걸레가 책상 앞에 툭 하며 떨어졌다.


“네, 언니!”


요시코가 명랑하게 외치고 바닥에 떨어진 걸레를 주우러 갔다.


순간, 요시코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오른손이 재빨리 움직이더니 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으로 옆에 있는 책상을 닦는 척 하다가 순간, 필통에 있는 만년필을 손수건으로 꼭 잡아서 앞치마 주머니에 털어 넣었다.


‘됐다!’


요시코가 임무를 완수한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30초 후


요시코가 깨끗한 걸레를 꺼내서 나나코에게 걸어갔다. 그녀가 말했다.


“자, 여기 깨끗한 걸레요.”


“그래, 넌 걸레나 빨아. 오늘 따라 집무실이 참 더럽다. 주인님이 더러운 공기를 마시면 안 돼지!”


“물론이죠.”


요시코가 더러운 걸레를 주워서 깨끗이 빨기 시작했다.


30여 분이 지나자, 청소가 다 끝났다. 나나코가 마지막으로 청소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책상, 책장, 창문, 바닥 등을 꼼꼼하기 살펴봤다.


“좋아! 역시 두 명이 청소하니까 아주 깨끗하군.

어? 좀 이상한데. 책상에 만년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네. 바닥에 떨어졌나?”


나나코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이! 주인님이 갖고 가셨겠죠. 만년필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헤헤헤!”


요시코가 일부러 크게 웃으며 능청을 떨기 시작했다.


“그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잘 못 본 건가? 주인님이 만년필이 자주 갖고 다니시긴 하지.

뭐, 청소는 잘 됐으니까 이제 나가자.”


잠시 후, 나나코가 청소 도구를 챙겨 요시코와 같이 집무실을 나섰다.


“언니, 수고하셨어요.”


요시코가 애써 웃으며 나나코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래, 넌 오늘처럼 하면 돼. 아가씨한테도 잘해라. 안 그러면 주인님한테 또 혼나.”


나나코가 요시코에게 단단히 훈계하고, 쉬러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요시코는 나나코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찬장에서 밀가루 병을 꺼냈다. 부침개용 밀가루 병이었다.


밀가루 병을 가슴에 꼭 품더니 에리카의 방으로 뛰어갔다.


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심심한 듯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이 요시코를 보고 길을 비켜줬다.


“감사합니다.”


요시코가 꾸벅 인사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단단히 잠갔다.


“아가씨가 옷 갈아입으시니까 행여 문 열어보지 마세요.”


요시코가 문밖 병사들을 향해 크게 외치고 에리카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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