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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54_마에다의 결심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Feb 19. 2025

“그럼, 다음에 보자. 쿠시로”


“마에다, 몸조심해야 해. 다나카의 말을 꼭 들어야 해.”


“알았어.”


마에다가 말을 마치고 관저로 향했다. 아쉬운 작별이었다.



*



삼엄한 경계 속에서 관저 철문이 덜컹하며 열렸다.


“마에다 쇼타, 안으로 들어가라, 가는 동안 입을 열지 마라!”


헌병의 말에 마에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헌병의 감시를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큰 마당을 지나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1층 로비에 다나카와 야마모토가 그를 마중 나와 있었다.


다나카가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마에다를 환영했다.


“아이고! 우리 마에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어서 수갑을 풀어드리고, 차도 내와. 그동안 고초를 많이 겪으셨죠? 그건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다나카가 마에다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마에다가 차를 마시자, 그를 부른 이유를 소상히 설명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에리카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잘 설득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무죄 방면이었다.


야마모토도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에다 선생님, 총사령관님의 큰 은혜니 이를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습니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20년 동안 햇빛을 몰 볼 수도 있습니다.”


마에다가 잠시 생각했다.


‘다행이야. 내 신념과 어긋나는 일이 아니야. 그런데 에리카가 왜 단식투쟁 중이지? 그 이유가 뭐지?’


마에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애제자가 단식투쟁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다나카의 요구는 억지가 아니었다. 수양 아버지가 수양딸을 위하는 건 당연한 도리였다.


아울러 오랜만에 애제자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들떴다.


잠시 후, 마에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사들과 함께 에리카가 갇혀 있는 별채로 향했다.


별채에 들어가자, 요시코의 안내를 받으며 에리카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침대에 누워있던 에리카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에리카가 마에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은사였다.


“에리카!”


그건 마에다도 마찬가지였다. 선생과 제자가 실로 오랜만에 해후했다.


병사들이 마에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에리카와 요시코, 마에다만 남았다.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에 오셨어요?”


에리카가 갑자기 등장한 마에다를 보고 말을 걸었다. 그러다 죄수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에리카양. 오랜만이군.”


마에다가 무안한 표정으로 에리카에게 인사했다. 이제는 교수 신분이 아니라 죄수 신분이었다.


선생과 제자가 서로를 위로하며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에리카양, 밥을 먹어야지. 그래야 힘을 내지.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힘이 있어야 어떤 일이든 해결할 수 있어. 단식투쟁은 능사가 아니야.”


마에다가 제자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마에다의 말에 에리카는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침대 이불을 푹 적셨다.


그러다 에리카가 눈물을 닦았다. 뭔가를 단단히 결심한 듯 옆에 있던 요시코를 쳐다보며 말했다.


“요시코, 선생님께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려. 이분이라면 우리의 한을 풀어주실 거야. 내가 가장 믿고 존경하는 은사님이야.”


“저, 괜찮을까요?”


요시코가 죄수복을 입은 마에다를 보고 꺼림칙해서 망설였다.


“괜찮아. 이분은 절대 우리를 배신할 분이 아니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신 분이야. 지금, 우리에겐 이분밖에 희망이 없어. 다나카가 이분을 보낸 건 우리에게 참 잘된 일이야.”


요시코가 고개를 끄떡였다. 언니의 은사님이라면 믿을 만했다. 이에 사방을 살폈다.


아무런 이상이 없자 마에다의 귀에 대고 그간의 사정을 속삭였다. 그리고 품에서 에리카 어머니의 편지, 다나카의 각서, 메모지, 만년필 등을 꺼냈다.


자초지종을 들은 마에다가 깜짝 놀랐다. 요시코한테서 놀라운 사실을 듣고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이 멍해졌다. 그가 생각했다.


‘어찌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극악무도한 다나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나카는 간도에서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아들을 살리려는 어머니를 죽이고 절벽을 타고 도망치던 소년도 기어코 쏴 죽였다.


마에다가 고개를 끄떡이고 증거를 자세히 살폈다. 두 필적을 비교한 결과, 같은 사람이 쓴 게 맞았다. 아울러 지문은 누가 봐도 같은 사람이었다.


‘다 사실이구나!’


마에다의 가슴이 마구 떨렸다. 지금 애제자가 엄청난 난관에 봉착했다. 부모의 원수한테 잡혀 있었다.


아주 슬픈 눈망울로 에리카를 바라보던 마에다가 자기 처지를 생각했다.


그는 지금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수사관이 말한 게 있었다. ‘가중처벌 받으며 20년 이상의 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판국에 위험한 일을 하다가 잡히면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했다.


3년이라는 수감 세월을 양심과 신념으로 버텼지만,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계속되는 고된 심문과 먹는 거, 자는 거 등 모든 게 최악이었다.


그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목표를 위해 살아왔지만. 모진 고문과 열악한 감옥 생활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


마에다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에리카의 청을 수락할 수 없었다. 뒤통수에서 다나카의 차디찬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은사가 주저하자, 에리카가 피맺힌 절규를 소리죽여 털어놨다.


“전, 선생님의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어요. 인간은 한명 한명 다 소중하다는 말씀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저를 일깨워 주셨어요.

전, 굶어 죽을지언정 다나카와 끝까지 싸울 겁니다. 저 무도한 자를 처단하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에리카의 단호한 말에 마에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생각했다.



‘내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답이 바로 내려졌다. 어차피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년을 감옥에 사나, 40년을 감옥에 사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결심했다. 에리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에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고 에리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렇게 셋이 의기투합했다.


마에다는 사건의 진상과 신우의 주소를 암기했다. 비범한 머리를 가진 그는 모든 사실을 금방 이해하고 숙지했다. 요시코가 증거를 주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말했다.


“요시코양, 여기서 나가면 또 몸수색을 당할 거야. 증거를 갖고 나갈 수는 없어.

대신 이신우와 정명호라는 사람한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할 테니. 걱정하지 마. 어떤 수를 쓰더라고 구하러 올 테니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해.

에리카양, 밥을 꼭 먹어야 해. 어느 때보다 강해져야 해. 강해야 적과 싸울 수 있어.

이 사실을 언론에 공론화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게.”


마에다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가볼게.”


그러자 에리카와 요시코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나란히 마에다에게 절했다. 허리를 90도 굽히며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이 모습을 보고 마에다가 씩 웃었다.


마에다가 방에서 나오자, 예상대로 병사들이 철저하게 몸수색했다. 몸과 옷, 입안, 신발 속을 다 뒤지는 등 철저하게 수색했다.


다나카에게 다시 불려간 마에다가 아주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총사령관님, 에리카가 식사하겠다고 약조했습니다.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이에 다나카가 크게 기뻐했다. 그가 말했다.


“아이고! 역시 마에다 선생님이 대단하군요. 약속대로 무죄 방면입니다. 다시는 헌병대에 오지 마세요. 제가 참 곤란합니다. 에리카 은사님을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마에다가 공손히 절하며 말했다.


잠시 후, 나나코가 음식을 들고 별채로 향했다.


“잘 가시오. 마에다 선생님.”


“네, 감사합니다.”


마에다가 다나카와 야마모토의 배웅을 받으며 관저 현관문을 나섰다. 그는 이제 자유의 몸이었다. 옷도 죄수복이 아니었다. 주변을 늘 감시하던 병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젠 자유군. 아주 좋았어, 한번 일을 벌여볼까!”


마에다가 주저 없이 신우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창문으로 마에다를 주시하던 야마모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사령관님, 저놈은 주의할 놈입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아가씨가 뭔 말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 저놈은 보통 놈이 아니지. 나한테 대든 놈이 둘이 있는데 사토와 바로 저놈이지. 사토는 출세가 목적이었지만, 저놈은 그놈의 신념이 목적이었지.

간 크게도 내 앞에서 조선인 소년을 죽이려는 걸 방해한 놈이야. … 그리고 아주 괘씸하게도 에리카를 물들인 놈이지, 사람을 붙여 감시해.”


“알겠습니다.”


다나카의 명이 떨어지자, 야마모토가 병사들을 불러 마에다를 미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



마에다가 전차를 타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전차에서 내려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며 신우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뒤에서 미행하는 거 같아 고개를 자주 뒤로 돌렸다. 그는 오랜 세월 지하 운동을 하면서 숱한 미행을 당했었다. 그래서 항상 주변을 살피는 습관이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뒤따라 오고 있었다.


신우의 집은 인적이 드문 언덕 위에 있었다. 명호의 선택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언덕 위에 홀로 있는 집을 골랐다.


마에다가 언덕 밑에 다다랐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저 멀리 남자 세 명이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집이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신우 집으로 들어가면 신우의 정체가 탄로 날 위험이 있었다. 에리카가 말했었다. 신우의 정체를 비밀로 해야 한다고 ….


마에다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러자 미행하던 셋도 걸음을 멈추고 딴청을 부렸다.


“내 생각이 맞았군!”


마에다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숨을 고르더니 갑자기 언덕 반대편 길로 뛰기 시작했다. 그가 뛰자 미행하던 셋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길옆으로 울창한 수풀이 있었다. 그곳은 따로 길이 없었고, 사방에 나무와 풀이 빽빽했고 가시덤불이 곳곳이 있었다.


마에다가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애제자의 한을 풀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감수하고 숲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뭐야?”


“어디로 간 거야?”


마에다를 미행하던 셋이 수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울창한 수풀에 막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가시덤불이 앞을 가로막았다.


마에다는 가시덤불 속에 숨어서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미행하던 자들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 숨죽이며 웅크렸다.


한 시간 이상이 흘렀다.


사지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마에다는 더는 참을 수 없는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수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방에 아무도 없었다. 이에 쾌재를 부르고 밖으로 나왔다. 곧장 신우의 집으로 향했다. 팔뚝과 다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미행을 따돌렸다는 생각에 고통도 잊었다.


잠시 후, 언덕을 올라 집 앞에 도착했다.


“누구 계세요?”


마에다가 크게 소리쳤다.


주인을 찾자, 명호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누구시죠? 사람을 찾으세요?”


명호가 의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 보는 중년 남자였다. 행색이 남루했다. 팔뚝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뭐에 찔린 듯했다.


“여기가 이신우, 정명호씨 댁입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명호가 서둘러 말했다. 자기 이름과 신우의 이름을 아는 낯선 자가 등장하자, 사뭇 긴장했다.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에리카와 요시코의 부탁으로 찾아왔습니다.”


에리카와 요시코라는 말에 명호의 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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