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사토가 급히 소리쳤다.
“이봐! 야마모토! 나에게는 각서가 있어. 이것만 있으면 … 다나카를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순간, 야마모토가 정색했다. 그는 사토와 결이 달랐다. 그에게 있어 다나카는 전장을 같이 누비며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이자 믿고 따라야 하는 신(神)과 같았다. 그가 호통쳤다.
“사토! 헛소리하지 마라! 총사령관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어떤 소리를 하든지, 그건 다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밤 너를 반드시 끝장내라고 명령하셨다.”
“야마모토! 잘 들어. 다나카를 끝장낼 수 있는 각서가 내 손에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야마모토가 씩 웃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물론 각서도 언급하셨다. 네놈이 각서를 꺼내며 나를 회유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 그 각서는 조선총독부 헌병대 총사령관이신 다나카 테츠야 중장님 앞에서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사토가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과연 그럴까? 잘 생각해라, 야마모토. 다나카 그놈이 직접 쓴 각서야.”
“흐흐흐!”
야마모토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전부터 너를 죽이고 싶었다. 이번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다.”
“뭐, 뭐라고? 나를 죽이고 싶었다고?”
“그래, 네놈이 갑자기 벼락출세하더니 나를 감히 우습게 봤지. 총사령관님 마저 네 놈 편을 들어서 의아했는데 … 그게 다 협박이었어.
어쩐지 너를 처음 볼 때부터 기분이 나빴는데 … 그게 틀리지 않았어.”
“야마모토, 난 너에게 유감이 없다. 나를 풀어줘라! 같이 다나카를 치자!”
“사토! 총사령관님을 우습게 보지 마라. 총사령관님은 앞으로 본토에 가셔서 천황폐하의 명령을 받드는 내각총리대신이 되실 분이다.
천황폐하를 대신해 일본제국을 통치하실 분이란 말이다! 난 그분의 측근이 되어 국무대신이 될 사람이다.
넌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오늘 너를 처단해서 탄탄대로를 열겠다.”
야마모토가 말을 마치고 권총을 꺼내서 사토의 이마를 겨누었다.
“뭐, 뭐라고?”
사토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새까만 총구에서 살벌한 냉기가 뿜어 나왔다.
그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권총의 한기를 느끼고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양팔을 꽉 잡은 괴한들이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야마모토는 다나카의 충신이었다. 그를 회유하는 걸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늘 물고기 밥이 될 테니. 이만 잘 가라. 그동안 이날만 학수고대했다. 하하하!”
야마모토가 말을 마치고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죽든 살든 결판을 내야 했다.
“야아!!!”
순간, 사토가 있는 힘을 다했다. 죽을 위기에 처하자 초인적인 힘이 발휘됐다. 두 팔을 붙잡은 괴한들을 삽시간에 뿌리쳤다.
“이놈이!”
야마모토가 깜짝 놀랐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 할 때!
사토가 몸을 날려 야마모토의 가슴에 박치기했다.
“억!”
야마모토가 비명을 질렀다. 사토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권총이 땅에 떨어지면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큰 총소리와 함께 사토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총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탕! 탕! 탕!
야마모토 부하들이 권총을 꺼내서 사토를 향해 총을 쐈다.
총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
물안개가 핀 한강에서 생사를 건 추격전이 벌어졌다. 강가로 갈수록 물안개가 짙었다.
사토가 죽을힘을 다해 강가로 뛰었다.
탕! 탕! 탕!
총알이 계속 사토를 향해 날아왔다. 한낮이라면 총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캄캄한 밤이었다.
달빛과 별빛마저 거대한 구름에 가렸다.
총알이 계속 빗나갔다.
사토가 자세를 낮추고 계속 달렸다. 날이 어두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구름이 달을 지나갔다. 밝은 달빛이 세상을 비췄다. 사토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명한 실루엣이었다.
탕!
한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야마모토가 쏜 총알이었다. 저 멀리 달아나는 사토를 정확히 겨냥하고 총을 쐈다. 그는 명사수였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번개처럼 날아가 사토의 등판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악!”
사토가 외비명을 지르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꼬꾸라지고 말았다.
“으으으!”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듯, 처절한 비명을 계속 질러댔다. 하지만 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이를 악물고 상처를 한 손으로 감싸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
그때 환호성이 들렸다.
야마모토와 부하들이 사냥에 성공한 듯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마치 사냥감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오는 사냥개 같았다.
“젠장!”
사토가 걸음을 멈췄다. 더 달릴 수 없었다.
이제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앞은 뚝 이었다. 뚝 밑으로 세찬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5m 아래였다. 이 강물에 뛰어드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야마모토가 쏜 총에 맞아 죽을 거 같았다.
시간이 없었다. 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야마모토가 거친 숨을 고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저 앞에 보이는 사토를 향해 총을 다시 겨누었다.
“좋다! 이판사판이다!!”
사토가 당장 살기 위해 뚝 아래로 뛰어내렸다.
탕! 탕! 탕!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사토는 총에 맞는 대신 거센 물결에 휩싸였다. 마치 협곡의 급류 같았다.
30초 후
야마모토 무리가 뚝 앞에 걸음을 멈췄다. 뚝 아래 세찬 강물을 자세히 살폈다. 지금은 한 밤이었다. 강물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야마모토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놈은 총을 정통으로 맞았다. 곧 죽을 놈이다. 이미 피를 많이 흘렸어. 강 속에서 죽을 게 뻔해.”
“그래도 시신을 찾아야 합니다. 총사령관님 명령입니다.”
“그럼, 동이 트면 확인하자.”
“알겠습니다.”
야마모토가 걸음을 옮겼다. 내일 해가 뜨면 사토를 찾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한편 사토는 물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물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다행히 손에 커다란 나무통이 잡혔다. 나무통을 잡고 한강을 따라서 흘러가다 뭍으로 기어올랐다.
앞에 누가 버린 커다란 천 조각이 있었다.
사토가 천 조각을 주워들고 상처를 감쌌다. 최대한 잡아당겨 지혈했다. 하지만 그새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력이 떨어져 갔다.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몸도 점점 차가워졌다.
“이, 이렇게 죽을 수 없다. 다나카! 다나카!!”
사토가 백사장에서 울부짖었다. 그때 밝은 달을 보면서 깨달았다. 죽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으으으!”
사토가 몸을 일으켰다. 다나카한테 복수하기 위해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깨문 입술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그가 걷기 시작했다. 오직 복수 하나만을 생각하며 억지로 걸었다.
밤이 점점 깊어만 갔다.
사토가 북극성을 찾았다. 밤하늘에 보이는 북극성을 보면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헌병대 총사령관 관저로 향했다.
**
동이 트기 시작했다.
헌병대 총사령관 관저에도 아침을 알리는 햇살이 들어왔다.
보초들이 졸린 듯 연신 하품을 해 댔다. 멍한 눈빛으로 앞을 보면서 졸린 눈을 비볐다.
그때! 차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차 한 대가 관저로 달려왔다. 차가 갑자기 나타나자, 보초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경찰차였다.
경찰차가 관저 앞 초소 근처에 멈췄다.
경찰 하나가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었다. 차 문이 열리자,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기어 나왔다.
차에서 간신히 내린 사람은 사토였다.
그는 총사령관 관저로 힘들게 걸어가다 순찰 중인 경찰차를 발견하고 급히 세웠다. 경찰한테 헌병대 총사령관 관저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은 사토의 제복을 보고 그가 헌병대 고위 장교인 걸 알아챘다. 상태가 위급한 걸 보고 병원으로 가려 했지만, 사토는 반드시 관저로 가야 한다며 고집했다.
아주 급한 일이라 했다.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다며 재촉했다.
경찰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헌병대 고위 장교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에 그를 관저로 데려왔다.
사토가 중상을 입은 채 차 밖으로 나오자, 보초 둘이 달려왔다. 둘이 곧 사토를 알아봤다. 총사령관의 수행 부관이었다.
병사들이 깜짝 놀랐다. 사토를 부축하고 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그때 사토가 병사들을 말리고 말했다.
“에리카! 에리카 아가씨를 빨리 불러줘. 긴히 할 말이 있어. 빨리! 에리카 아가씨를 만나야 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사토가 에리카만을 연신 외쳤다.
병사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상부에 전화 걸어 사토가 다쳤다고 알렸고 아울러 에리카를 부르러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
병사 하나가 요시코를 깨웠다. 자초지종을 들은 요시코가 에리카의 방으로 향했다. 에리카를 깨우며 말했다.
“언니! 무슨 일이 있나 봐요.”
“무슨 일이야?”
단잠을 자다가 깬 에리카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사토님이 총상을 입었대요. 중상이래요. 곧 죽을 거 같대요. 그런데 언니한테 급히 할 말이 있대요. 죽기 전에 언니를 꼭 만나야 한다며 언니를 불렀어요.”
요시코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사토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곧 죽는다는 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뭐라고? 총상이라고? 사토님이 죽는다고!”
에리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토가 곧 죽는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이 들었다.
그런데 사토가 죽기 전에 자기에게 할 말이 있다니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이에 옷을 급히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5분 후
에리카와 요시코가 정문 밖으로 나갔다. 사토가 저 앞에 쓰러져 있었다. 병사 둘이 사토의 상처를 지혈하고 있었다.
“사토님!”
에리카가 사토를 불렀다. 그러자 사토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에리카가 보였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부축하는 병사들을 뿌리치고 에리카를 향해 걸어갔다.
“윽!”
그러다 격렬한 통증을 느낀 듯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에리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토가 굴하지 않고 몸을 다시 일으켰다. 에리카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가는 길에 여러 번 쓰러졌지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그녀에게 걸어갔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피범벅이 된 사토를 보고 에리카가 몸을 떨며 외쳤다. 마치 죽기 일보 직전 같았다.
사토가 마지막 힘을 내어 말했다.
“아가씨! … 내 말을 잘 들으세요. 다나카가 아버님과 어머님을 해쳤어요!”
사토가 숨이 넘어가면서도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그녀에게 오랜 시간 숨겨왔던 진실을 고하기 시작했다.
“지,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사토의 말에 에리카가 깜짝 놀랐다.
죽어가는 사토가 그날의 진실을 말했다. 바로 아버지 친구이자, 후견인인 다나카가 부모님을 죽였다는 말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에리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옆에 있던 요시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음이 되고 말았다.
“그날, 사모님을 다나카, 그놈이 목 졸라 죽이고, 뒤에 오신 오오하라 중좌님을 총으로 쏴 죽였어요. 으으으~!”
사토가 숨통을 조여오는 고통을 참으며 모든 진실을 말했다.
“아, 아저씨가 우리 부모님을 죽였다고요?”
에리카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녀가 크게 외쳤다.
“아니! 왜? … 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머리 위에 불벼락이 떨어진 거 같았다. 그녀는 사토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듯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고개도 세차게 흔들었다.
앞에 진실이 있었다. 차마 볼 수 없는 진실이었다.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 드러났다. 바로 아버지의 친한 친구이자, 자기를 성심껏 돌봐준 후견인이었다.
“진실이에요. 에리카! 난 항상 당신에게 진심이었어요. 요시코한테 증거가 있어요.”
사토가 마지막 힘을 다해 요시코를 가리켰다.
“그, 그게!”
요시코가 당황했다. 사토가 자기를 가리키자 커다란 두려움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