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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47_재발한 고통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그럼,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겠네요.”


신우가 화제를 돌렸다. 원수인 다나카를 그만 언급하고 싶었다.


에리카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무척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 부모님 참 사이가 참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사이가 틀어지셨어요. 그러다 결국, … 같은 날에 모두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13년 전에요.”


에리카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음껏 울고 싶었다. 신우한테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다 신우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부모가 없다고 멀리할 거 같아 내심 불안했다.


신우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도 같은 처지였다. 그가 말했다.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랑 같네요. 저도 부모님이 같은 날에 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15살 때 ….”


“정말이에요?”


에리카가 깜짝 놀랐다. 신우도 같은 처지라는 말에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에게 느꼈던 외로움이 22년간 맹인으로 살아왔던 슬픔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도 자기와 같은 고아였다. 그것도 같은 날에 부모를 모두 잃은 ….


“흑!”


에리카가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신우의 품에 바로 안겼다.


“신우씨!”


“아? 이, 이러시면 ….”


신우가 당황했다. 갑작스럽게 안겨 서럽게 울어대는 에리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 생각했다. 자기와 같은 처지인 에리카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놀란 나머지 손이 굳어버렸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어떻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에리카가 신우의 품속에서 작게 속삭였다.


“전쟁 통에 돌아가셨습니다.”


신우는 사실대로 말하려 했지만, 에리카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인 에리카에게 부모님이 일본군한테 죽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리뭉실하게 답했다.


“흐흑! 전 생각하기도 싫어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했대요. 그럴 리가 없는데. 절대로!”


에리카가 흐느꼈다. 죽어도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하지만 그날, 증거와 목격자가 그 사실을 말했고 세상은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네에?”


신우가 몸을 떨었다. 에리카의 끔찍한 사연을 듣고 그녀가 너무나 불쌍했다. 갑작스러운 부모의 죽음은 어린 에리카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요! 무슨 오해가 있겠죠. 아버님이 절대 그런 일을 할 리 없습니다. 분명 다른 진상이 있을 겁니다.”


신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에리카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위로에 에리카가 더욱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13년 동안 맺힌 한을 신우의 품에서 마음껏 풀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계속 떨어지자, 신우의 옷이 금방 젖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에리카와 요시코가 돌아갈 때가 되었다.


오늘, 신우와 에리카는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터놓은 사이가 되었다.


그동안은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이성의 매력에 반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신우와 에리카가 뜨거운 눈빛을 나누었다.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에리카가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요시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생각했다. 신우와 자기는 서로 꼭 필요한 사이라고 … 한 쌍의 원앙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밝은 낯으로 집으로 향했다.



*



신우는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에리카와 다나카는 양아버지와 양딸 같은 사이였다. 자신은 다나카를 해치워야 했다.


에리카가 은인으로 여기는 다나카를 처단한다면, 그녀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난감했다. 이에 심란한 마음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기 시작했다.


“휴우~!”


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


“억!”


가슴에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신우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가슴에서 다시 검은색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검은색 빛이었다.


“신우야!”


옆에 있던 명호가 이를 보고 급히 수건에 물을 적셨다. 신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며 정성껏 간호했다.


한차례의 폭풍 같은 고통이 사라지자, 신우가 힘겨운 숨을 내쉬었다.


“휴우~!”


아직도 숨이 막히고 가슴을 칼로 찌르는 통증이 남았지만, 이제는 참을 만했다.


신우가 거친 숨을 내쉬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신우야 괜찮아?”


명호가 상심한 표정으로 신우의 얼굴을 쳐다봤다.


신우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명호야, 3일 만에 통증이 재발했어.”


신우가 말을 마치고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점점 통증이 생기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


신우의 말에 명호도 마음이 아픈 듯 고개를 떨구었다.


신우가 몸을 떨며 말했다.


“이러다 … 미쳐버리는 거 아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통증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눈을 뜬 후 사라졌던 통증이 촌장이 죽은 후 재발했다. 어떻게든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통증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하하하!”


신우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저주받은 신세를 한탄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명호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말했다.


“신우야, 희망을 품자! 눈을 뜬 그 날처럼 남은 복수를 마치면 마음에 짐을 덜어서 통증이 사라질 거야!”


“과연 그럴까?”


“그럴 거야.”


명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신우가 한을 풀 수만 있다면 끈질기게 괴롭히는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겠지! 그날 이후 내 가슴에 맺힌 이 커다란 응어리를 … 이 응어리를 풀어야 내가 살 것 같아!”


신우가 말을 마치고 힘을 냈다. 이제 통증이 사라졌다. 아까는 죽을 거 같았지만,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멀쩡했다. 그것도 아주!


그가 숨을 천천히 내쉬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에리카였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다나카에게 복수한다면 … 에리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은인을 죽이는 거잖아.’


그는 해결할 수 없는 번민에 사로잡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신우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사토는 밤늦게까지 술집에서 청주를 들이켰다. 2시간째 안주도 없이 연거푸 술을 먹었다.


술 한잔 그리고 술 한잔


결국, 사토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로도 만취됐다. 1시간 후 점원의 부축을 받으며 술집에서 나왔다.


찬바람에 정신이 든 그가 터벅터벅 숙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토가 걸으며 생각했다.


다나카를 협박해서 에리카와 같이 본토로 돌아가는 걸 허락받았지만, 문제는 에리카였다.


그는 에리카와 어떠한 정도 나누지 못했다. 하루빨리 그녀의 마음을 얻어서 같이 본토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에리카는 사토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존재였다.


다나카는 각서라는 강력한 물증으로 굴복시켰지만, 그녀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었다.


자기에게 차갑기만 한 에리카!


보석으로 그녀의 마음을 살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 보석을 사고 싶었다.


사토는 술기운에 고개를 숙이고 휘청거렸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점점 그 소리가 커졌다.


멀리서 사토의 뒤를 몰래 쫓는 한 무리가 있었다.


사토가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가자, 정체불명의 무리가 행동을 개시했다. 한 명이 몽둥이를 들고 사토에게 달려갔다.


퍽!


타격음이 크게 들렸다. 기습이었다.


“악!”


사토가 뒤에서 날아오는 몽둥이를 머리에 맞고 그 자리에 쓰러져 기절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사토가 눈을 떴다. 뒤통수에서 엄습하는 고통을 참으며 겨우 눈을 떴다. 가까이에 한강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강 백사장이었다. 저 앞에 나룻배가 보였다.


“제, 젠장!”


사토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뒤통수가 축축함을 느꼈다. 손을 뒤통수로 가져가자, 손에 붉은 피가 낭자했다.


“피!”


소스라치게 놀란 사토가 벌떡 일어났다. 그때 괴한들이 다가왔다. 그중에 한 명이 북극 한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 사토 중좌! 이제 정신이 드나?”


말을 한 자의 얼굴은 여전히 어둠에 가려있었다.


“넌 누구냐? 여기는 대체 어디야?”


사토가 고통을 참으며 외쳤다. 뒤통수가 계속 시큰거렸다.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둘러싼 자들을 확인하려 했지만, 날이 너무 어두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흐흐흐!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싶나?”


그 말과 끝나자, 달을 가렸던 구름이 사라졌다. 달빛이 백사장으로 쏟아지자, 사토 앞에 있는 괴한의 얼굴을 서서히 드러났다.


“헉!”


괴한의 얼굴을 확인한 사토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크게 벌렸다. 그가 입을 덜덜 떨며 외쳤다.


“너, 너는 야마모토 대좌!”


사토 앞에 다나카의 최측근인 야마모토가 서 있었다. 그자가 차디찬 살기를 내뿜었다.


사토가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가 크게 외쳤다.


“당신이 감히 나한테 이런 짓을 하다니 … 지금 제정신이야?”


“하하하!”


야마모토가 마치 조롱을 하듯이 크게 웃어댔다. 그러자 사토가 두 팔을 쭉 뻗었다. 야마모토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때 야마모토 부하들이 움직였다. 두 명이 순식간에 사토의 양팔을 잡고 제압했다.


야마모토가 웃음을 멈추고 정색했다. 그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내 뜻이 아니다. 총사령관님 뜻이다.”


“그, 그럴 리가? 총사령관님은 나한테 이럴 수 없다!”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듯 사토가 몸을 부르르 떨며 반박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야마모토, … 거짓말하지 마라! 총사령관님은 나한테 영전을 약속했다. 그런 분이 이런 짓을 시킬 리 없다. 결코!”


“순진하고 어리석은 놈.”


야마모토가 사토를 비웃었다.


사토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양팔을 붙잡은 괴한한테서 벗어나려고 용을 섰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셨다. 넌 너무 지나쳤다고. 멈춰야 할 때를 몰랐다고. 건방지게도 ….”


야마모토가 말을 마치고 차갑게 웃었다. 오른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손이 권총집으로 향했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지금 사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다나카가 사토를 죽여 그 입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사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든 사지에서 벗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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