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_탐정 유강인 19_23_박훈정 형사와 살인마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형수가 가석방되다니 … 이건 죽을병에 걸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지병이 악화해서 풀려났다고?

현재 면도날 송창수가 사회에 있다는 말인데 … 그자가 혹 다시 움직인 건가?

죽을병에 걸린 자라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텐데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유강인이 커다란 당혹감에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사건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최근에 벌어진 연쇄 살인 수법은 30년 전 연쇄 살인마, 면도날 송창수의 수법과 유사했다. 그 송창수가 지병이 악화해 가석방되어 사회에 나왔다.


따라서 송창수가 30년 전, 피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보호관찰관이 있었다. 보호관찰관의 눈을 피해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말이 쉽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보호관찰관이 송창수와 한 패거리가 아니라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범행 수법을 따라 하는 카피캣이 등장했거나 아니면 우연한 일치였다.


하지만, 카피캣도 딱 들어맞지 않았다. 범행 수법 중 매듭이 있는 밧줄만 같은 뿔 송창수처럼 예리한 면도날을 사용하지 않았다. 폭행의 흔적만 있었을 뿐이었다.


남은 가능성은 우연한 일치였다.


‘결국, 우연한 일치인가?’


유강인이 고민하고 있을 때



삐리릭!



전화벨이 급하게 울렸다.


유강인이 급히 전화 받았다. 우동식 형사의 전화였다. 우형사가 말했다.


“대장, 부검의한테 연락이 왔어. 밧줄 자국이 다른 범죄들하고 확연히 다르대.”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가해자가 피해자 목을 조르면 여러 줄이 불규칙적으로 생기면서 그 자국이 일정하지 않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대.

밧줄 자국이 한 줄은 아니지만, 꽤 일정한 편이래. 강력한 힘을 단박에 줘서 숨을 끊은 거 같다는 소견이야.

범인이 힘뿐만 아니라 대단한 기술을 가진 거 같다고 말했어.”


“목 조르는 기술이 좋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30년 전 사건을 다시 살폈다. 피해자 목 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목에 난 자국이 일정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범행 수법이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같은 기술을 사용했다는 말이잖아. 이를 우연한 일치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범인의 정체가 오리무중이었다. 송창수의 카피캣 같았지만, 이를 단언할 수 없었다.


‘같은 기술을 사용했다는 말인데? 범인이 어떻게 송창수의 기술을 익혔지? 송창수는 오랜 세월 동안 감옥에 있다가 가석방됐는데 ….’


유강인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두 사건에서 살해 동기는 완전히 달라. 최근에 죽은 송상하 부회장과 최인식 교수는 커다란 원한을 산 사람들이야.

30년 전 살인은 묻지 마 살인이었어. 송창수는 피해자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어.’


“확연히 다르면서도 같은 점이 있어. 분명 무슨 연결이 있기는 있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잠시 후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두 사건 사이에 … 뭔가가 있어. 사건을 관통하는 뭔가가 있어. 비슷하다는 점이 매우 중요해. 그걸 놓치면 안 돼!

이란성 쌍둥이는 다른 얼굴, 다른 몸, 성별도 다를 수 있지만, 같은 부모 아래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야.

쌍둥이는 쌍둥이야!

이란성 쌍둥이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거의 같지는 않지만, 겉과 달리 속에 고유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어.

두 사건을 관통하는 열쇠를 찾아야 해. 그걸 찾아야 사건을 제대로 풀 수 있어.”


유강인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반훈정 반장의 말씀을 되새겼다. 그건 수사의 철칙이었다. 어려운 사건일수록 반드시 명심해야 했다.



-------------------------

사건의 진실은 껍데기에 있지 않고

항상 그 속에 있다.

속에 있는 단단한 알맹이에 집중하라!

두려운 진실일수록 알맹이가 단단하다.

그 정곡을 찔러 알맹이를 깨라!

-------------------------



유강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강렬한 의지가 어두운 밤을 밝혔다.



다음날

12월 09일 아침 8시 40분


화창한 날이었다. 초겨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쌀쌀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날이었다.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바짝 들었고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날이었다.


작은 집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퇴 경찰 박훈정이 푸른색 등산복 차림으로 집에서 나왔다. 키가 컸고 풍채가 참 좋았다.


집은 단층이었다. 마당이 있는 시골집이었다.


이곳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충청도 농촌이었다.


이곳에 박훈정이 홀로 살았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 경찰로서 범죄자를 잡기 위해 한평생을 헌신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흉악한 범죄자들을 잡을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찰 생활을 충실히 마치고 은퇴했다. 이후 시골로 내려가 적적하지만 여유롭게 살았다.



컹컹!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시골 마을답게 개 짖는 소리가 자못 컸다.


“휴우~!”


박훈정이 심호흡했다. 시골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만끽하고 배낭에서 등산스틱을 꺼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박훈정이 빙그레 웃었다. 정겨운 소리였다. 그는 발소리만 들어도 걸어오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촉이 좋았다.


“어이, 친구.”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박훈정 앞에서 나는 소리였다.


박훈정이 발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가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달식아. 빨리 왔네.”


“그럼, 우리 친구가 기다릴까 봐 아침 빨리 먹고 달려왔지.”


“그래, 커피 한 잔 마시며 유탐정을 기다리자.”


“좋았어. … 유탐정이 오늘 온다고 했지?”


“응!”


“이거, 아주 오랜만에 유탐정을 만나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어.”


“그렇지. 그동안 유탐정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잖아. 범죄자들이 끊임없이 창궐해서 유탐정이 쉴 수가 없었어.”


박훈정의 친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유탐정이 파출소 순경이었을 때 … 그때 참 남다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대단한 탐정이 될 줄을 몰랐어.”


“나도 마찬가지야. 남다르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대단한 줄을 몰랐어. 역시 이광호 청장님이 사람 보는 눈이 참 좋아.

이청장님이 유탐정을 면담하고, 그때 유탐정은 파출소 순경이었지. … 강력반 형사로 적극 추천하셨어. 그 말을 반신반의했지만, 그 말이 진실이었어.”


“하하하! 추천은 내가 제일 먼저 했어. 파출소 소장으로서 유탐정을 제일 먼저 알아본 거 바로 나야.

내가 형사로서 촉은 부족했지만, 사람 보는 눈은 탁월한 편이잖아.”


박훈정의 친구가 즐거워했다. 그는 마달식이었다. 60대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이었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과 눈 사이가 멀어서 졸려 보였다.


마달식은 유강인과 인연이 깊었다. 유강인이 순경 계급장을 달고 북산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 그의 상관인 파출소장이었다. 박훈정과 경찰 동기였고 같이 은퇴했다.


박훈정이 유강인에게 수사 기법과 수사 철학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면 마달식은 유강인의 재능을 알아보고 서울청 강력반에 추천한 은인이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백전노장인 된 박훈정, 마달식이 집 앞에서 커피를 나눠 마셨다.


인스턴트 커피가 참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향이 고급 커피처럼 좋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기운을 복 돋는데 이만한 게 없었다.


마달식이 커피를 마시며 친구에게 말했다.


“유탐정이 사건 때문에 물어볼 게 있다고 했지?”


박훈정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응, 30년 전 사건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거야.”


“그게 무슨 사건이야? 혹 내가 아는 사건이야? 30년 전이라면 내가 훈정이랑 같이 근무할 땐데 ….”


“그렇지. 우리 형사 시절 사건이야. 의욕이 넘쳤던 시절이었지.”


박훈정이 말을 마치고 과거를 회상했다. 머릿속에 30년 전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바로 희대의 엽기 살인마, 면도날 송창수 사건이었다.



--------------------------

30년 전

1995년 3월 8일 오전 10시


두 사람이 허겁지겁 주택가를 달렸다. 여기는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서울 광동구 장일동이다.


출근 시간이 지난 시각이라, 마을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다녔다.


“박형사, 어디지?”


“조금만 더 가면 돼!”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둘 다 키가 컸다. 키는 엇비슷했지만, 체격은 달랐다. 한 명은 체격이 좋았고 다른 한 명은 꽤 말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 경찰차 한 대가 다세대 주택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둘은 서울 광동 경찰서 강력반 형사, 박훈정과 마달식이었다. 박형사와 마형사가 집 앞에서 숨을 골랐다.


“휴우~!”


다세대 주택은 사건이 벌어진 범행 장소였다. 1987년에 준공한 건물이었다. 주택 사방으로 야트막한 벽돌담이 둘러싸여 있었다.


담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큰 정문과 왼쪽에 있는 작은 문, 옆문이었다. 옆문은 반지하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마형사가 박형사에게 말했다.


“박형사, 반지하 첫 번째 집이야.”


“알았어. 저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지?.”


“그렇지.”


두 형사가 담을 따라 걸어갔다. 옆문을 열고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건물 옆 좁은 길을 따라서 반지하 집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총 세 가구가 살았다.


반지하 첫 번째 집, 현관문 앞에 경찰 하나가 서 있었다. 그가 형사들을 보고 경례를 붙였다.


“저기군.”


박훈정 형사가 답례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끼이익! 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형사가 첫 번째 반지하 집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곰팡냄새가 바로 풍겼다. 역겨운 냄새였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헛구역질할 수도 있었다.


뒤이어 더 역한 냄새도 풍기기 시작했다. 그건 비린내였다. 참을 수 없는 피비린내가 심하게 진동했다.


“젠장!”


마달식 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말을 내뱉었다.


“이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적응이 안 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파리나 좋아할 만한 냄새지.”


박훈정 형사가 집 안을 살폈다. 집에는 거실 겸 부엌, 방 하나 화장실이 있었다. 방문은 꼭 닫혀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젊은 경찰이 서 있었다. 그새 못 볼 걸 봤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가 턱을 달달 떨다가 한 손을 들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키며 형사들에게 말했다.


“혀, 형사님들 … 피해자가 방 안에 있습니다. 아주 처참한 몰골입니다. 끄, 끔찍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박형사가 말을 마치고 서둘러 방문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마형사가 따랐다.


박형사가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방문이 스르륵 열리자, 더욱더 심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윽!”


박훈정 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오른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대신 두 눈을 어느 때보다 크게 떴다.


피비린내가 심할수록 더욱더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설령 구토하더라고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게 형사였다.


박형사는 초보 형사 시절 처음으로 처참한 시신을 봤을 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 처참함 몰골에 두 눈이 저절로 감겼지만, 그런 자신을 질책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야밤에 광채를 발하는 올빼미 눈처럼 두 눈을 부릅떴다.


담당 형사가 두 눈을 감으면 사건을 회피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면 중요한 단서나 증거를 놓칠 수 있었다.


“아이고! 냄새!!”


심한 피비린내를 맡은 마달식 형사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가 코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도 사명감이 투철한 형사였다. 두 눈을 감지 않고 오히려 크게 떴다.


방안에서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상의가 벗겨진 중년 남자였다.


“세상에!”


박훈정 형사가 깜짝 놀랐다. 그가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음이 되었다. 턱도 아래로 떨어져 올라오지 못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2화소설_탐정 유강인 19_22_30년 전 연쇄 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