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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탐정 유강인 19_22_30년 전 연쇄 살인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서울 광동구 연쇄 살인마, 면도날 송창수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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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1995년 3월 7일,


잔인하고 괴이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먼저 서울 광동구 소재 다세대 주택 반지하 집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전기비를 받으려던 집주인이 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자는 홀로 살던 50대 남성이었다. 무참하게 죽고 말았다.


시신을 확인한 결과, 몸에 무수한 상처가 있었다. 모두 면도날로 그어서 만든 상처였다. 방구석에 많은 면도날이 흩어져 있었다.


면도날을 감식한 결과, 피해자 피만 묻어 있었다. 범인의 지문은 없었다.


부검을 통해 사인을 조사할 결과, 면도날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다. 겉보기에 수많은 상처가 몸에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다음에 흘린 피였다.


사인은 과다 출혈이 아니라 질식사였다. 긴 밧줄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결론이 나왔다.


피해자 목에 목을 조른 밧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런데 목덜미에 조른 자국뿐만 아니라 동그란 자국 두 개도 있었다.


국과수 조사 결과, 목덜미에 남은 동그란 자국 두 개는 밧줄 매듭이 눌린 흔적이었다.


결국, 범인은 매듭이 두 개 있는 밧줄로 사람을 목 졸라 죽이고 면도날로 사용해 시신을 훼손했다.


서울 광동 경찰서 강력반 형사 박훈정은 사건을 맡고 범인을 뒤쫓았다. 경찰에서는 범인을 면도날 살인마로 불렀다.


이후 추가 범행이 벌어졌다. 세 명이 죽은 채 발견됐다. 모두 첫 번째 시신처럼 목이 졸려서 죽었고 몸에 무수한 면도날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추가로 벌어진 세 사건도 면도날 살인마의 소행이라고 단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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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사건을 파악한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한마디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30년 전에 괴이하면서도 끔찍한 일이 있었다.


“음!”


유강인이 고개를 숙이고 한 손으로 턱을 잡았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파일을 덮고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에 우동식 형사가 보낸 사건 파일이 있었다.


“있군. 역시 우리 우선배님은 일을 참 잘해.”


유강인이 사건 파일을 열었다. 박훈정 반장이 맡았던 사건들이 쭉 나열됐다. 그중에서 면도날 살인마, 송창수를 찾았다.


“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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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구 연쇄 살인마, 면도날 손창수 사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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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두 손을 들고 손바닥을 비볐다. 그렇게 긴장감을 달래고 사건 파일을 열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송창수가 벌인 4차례의 범행 기록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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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7일

광동구 장일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

김일호(54세, 남) 질식사 사망

사망 시각 새벽 1~3시


1995년 3월 15일

광동구 장일동 동네 골목

이숙자(80세, 여) 질식사 사망

사망 시각 새벽 3~5시


1995년 4월 01일

광동구 고수동 상가 주택 1층 비디오 가게

이지수(45세, 남) 질식사 사망

사망 시각 새벽 4~6시


1995년 4월 02일

광동구 고수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

최진연(35세, 여) 질식사 사망

사망 시각 밤 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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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네 명이 광동구에서 차례대로 죽었군. 동네는 두 군데, 장일동, 고수동이야. 모두 질식사로 죽었고 밤에 범행을 저질렀어.’


유강인이 사망자 나이와 성별, 범행 시간, 사망 장소 등을 면밀하게 확인했다. 그가 인터넷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서울 광동구는 강북에 있었다. 종로구와 가까운 곳이었다. 광동구 한가운데에 장일동이 있었고 장일동 옆이 고수동이었다.


30년 전, 두 동네는 많은 사람이 사는 주거지였다. 다세대 주택과 상가 주택이 즐비했다. 그때는 과거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비디오 대여점도 있던 시절이었다.


유강인이 수사 기록을 면밀하게 살폈다. 특히 피해자 목덜미에 남은 목졸림 자국과 매듭 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아주 유사해! 지금 벌어진 사건하고 자국이 거의 같아.”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마치 30년 전 살인마가 다시 등장해 사람을 막 죽이는 거 같았다. 그것도 같은 수법을 사용하면서 경찰을 조롱하는 거 같았다.


“이 정도 유사성이라면 ….”


유강인이 범죄 수법의 동일성을 생각했다.


범행 수법은 범죄자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다. 이는 독특한 개성이었다.


면도날 송창수는 30년 전에 잡혔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었다. 따라서 그가 다시 활개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송창수가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송창수의 범행을 따라 하는 거였다.


범행을 따라 하는 건 일명 카피캣이었다. 카피캣은 새끼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의 행동을 따라 하는 걸 일컫는 말이었다.


“카피캣인가? 송창수의 카피캣이 등장한 건가?”


유강인이 카피캣을 떠올렸다. 카피캣은 범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좋거나 대단한 걸 보면 따라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었다.


유강인이 사건 보고서의 끝을 살폈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생각했다.


‘모든 범행 장소에 증거가 없었어. 그렇게 완벽한 범행을 저질렀는데 마지막 사건에서 어이없게도 실수를 저질렀어.

반지하 집에서 나오다가 여성과 마주쳤어. 여성이 소리를 지르자, 서둘러 도망쳤고 당시 근처에 있던 박훈정 반장님이 뒤를 쫓아가서 잡았어.

게다가 근처 CCTV에 그 얼굴이 잡혔어. 복면을 벗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고스란히 잡혔어. 이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 일이야.

담배까지 바닥에 떨어트렸군. 담배도 증거로 채택됐어.

이건 결정적인 실수야. 그전까지는 완벽했는데 ….’


“거 참 이상하네!”


유강인이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 많이 이상한데. 이 사건은 기이하고 이상한 사건이야.

범행 수법이 무척 잔인할 뿐만 아니라 완벽했어. 범인의 흔적을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어.

그런데 마지막 살인에서 어이없게도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어.

범인이 천재였다가 바보가 된 거 같아.

범행 전 CCTV에 잡혔고, 범행 후에는 옆문으로 들어온 여성에게 들키기까지 했어.

방심한 건가? … 그럴 수도 있지. 지나친 성공은 항상 방심을 부르기 마련이니까.

정신 분석 결과, 사이코패스로 나왔군.’


“음!”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노트를 들었다. 볼펜으로 사건을 정리했다.


이 사건은 담당 형사인 박훈정 반장이 범인을 잡아서 크게 포상받은 사건이었다.


당시 범행 수법이 잔혹해서 언론에서도 크게 다뤘던 사건이기도 했다.


“지금 시각이?


유강인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밤 9시 10분이었다. 그가 다행이라고 표정을 짓고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번호부에서 누군가를 찾더니 전화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자, 목소리가 들렸다. 근엄한 목소리였다.


“어, 유탐정.”


유강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반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괜찮아. 그거야 우리 유탐정님이 바빠서 그런 거니까. 이제 시간이 좀 난 거야?”


“그건 아닙니다. 지금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미스터김이라는 해결사 집단을 일망타진하자마자, 새로운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에서 특이점이 있어서 반장님께 전화 드렸습니다. 조언을 듣고자 합니다. 밤늦게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내 조언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대체 무슨 사건인데?”


“30년 전에 반장님이 해결하셨던 광동구 연쇄 살인마, 면도날 손창수를 기억하시죠?”


박훈정이 잠시 생각했다. 그가 탄성을 지르며 답했다.


“아! 면도날 손창수! 당연히 기억하지. 내가 그놈을 잡아서 칭찬을 많이 받았어. 그래서 그 실적으로 강력반 반장도 된 거야.”


“바로 그 사건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그래? 손창수는 … 아직도 감옥에 있을 텐데, 사형을 선고받았어. 뭐 30년이나 흘렀으니 감옥에서 죽었을 수도 있겠네.

손창수 사건에서 궁금한 게 있는 거야? 그게 뭐지?”


“반장님, 현재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강원도 나진시 바닷가에서 두 명이 연쇄적으로 죽었습니다.

피해자는 대기업 부회장과 의사입니다. 범인의 범행 수법이 면도날 손창수와 아주 유사합니다.”


“뭐, 아주 유사하다고?”


“네, 그렇습니다. 밧줄로 목을 졸라서 두 명을 살해했는데 목덜미에 동그란 자국 두 개가 남았습니다. 그 자국을 확인한 결과, 매듭에 눌린 자국 같습니다.”


“매듭이라고! … 아! 이제 기억이 나네. 면도날도 밧줄을 사용했었어. 밧줄에 매듭이 있었어. 매듭이 두 개였어. 듣고 보니 지금 사건하고 범행 수법이 같군.”


“네, 그렇습니다.”


“그때라면 벌써 30년도 지난 사건인데 … 그러면 카피캣이 등장한 건가?”


“현재로서는 그런 거 같습니다. 아니면 우연한 일치일 수 있습니다.”


박훈정이 정색하고 답했다.


“유탐정, 내 경험상 우연한 일치는 힘들어. 범행 수법은 범죄자의 트레이드마크야. 해커의 이스터 에그지.

모든 범죄자는 범죄 현장에 그 흔적을 남겨. 그게 범죄자의 심리야. 자신의 존재를 알게 모르게 드러내고 싶어 하지.

그걸 잡는 게 바로 수사관 임무야. … 이번에도 면도날로 시신을 훼손했어?”


“그건 아닙니다. 시신에 면도날 상처는 전혀 없습니다. 대신 모진 구타 흔적만 있었습니다.”


“그래? 구타 흔적만 있었다고? … 면도날은 피해자를 구타하지 않았어. 사람을 다짜고짜 목 졸라 죽였지.

그러면 카피캣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카피캣이라면 면도날도 사용해야지.

카피캣은 복사라고 생각해야 해. 범죄를 복사하는 무개성 범인이지.”


“그렇군요. 카피캣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우연한 일치도 배제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 반장님, 내일 반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시간이 되시나요?”


“나야, 뭐 은퇴했으니 남는 게 시간이지. 우리 유탐정이 오시면 버선발로 마중 나가야지.

유명하신 분이 직접 오시는데 환영 현수막이라도 걸까? 경축! 탐정 유강인 방문이라고 동네에 소문내야지.”


“하하하! 유머 감각은 여전하시네요.”


“내일 등산하기로 했으니 … 같이 산을 타자고. 등산 좋아하잖아?”


“산이요? 좋습니다. 같이 등산하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내일 친구랑 같이 가기로 했어. 그 친구는 … 유탐정도 잘 아는 사람이야.”


“제가 잘 아는 분이라고요? 그분이 누구죠?”


“내일 확인해봐. 아주 반가운 사람일 거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집으로 언제쯤 가면 되죠?”


“집 앞으로 9시까지 와.”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반장님.”


“그래, 내일 보자고.”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서울청 강력반으로 연락했다. 정찬우 형사가 전화 받았다.


“네, 선배님.”


“정형사, 교도소 수감자 중에서 확인할 사람이 있어.”


“누구를 확인해야죠?”


“1995년 서울 광동구 연쇄 살인마, 손창수가 아직도 살아있는지 알아봐. 사형을 선고받았어.”


“1995년 광동구 연쇄 살인마 손창수라고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정찬우 형사의 전화를 기다리며 잠시 쉬었다.



삐리릭!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유강인이 전화 받았다.


“선배님.”


정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확인한 결과, 사형수 손창수는 지병이 악화해 가석방됐습니다.”


“뭐, 가, 가석방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현재 어디에 있지?”


“보호관찰관이 옆에 있습니다. 주소는 서울 진양구 은일 1길 XXX XX입니다.”


“진양구 은일 1길 XXX XX이라고 … 알았어, 고마워.”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명을 잔혹하게 죽인 사형수가 가석방됐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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