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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탐정 유강인 19_24_유강인, 박훈정을 만나다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피해자 상체에 무수한 상처가 있었다. 다 작은 상처였다. 칼로 마구 그은 듯했다. 작은 난도질이었다.


“이, 이게 대체!”


마형사도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참담함에 온몸의 기가 빨리는 듯했다.


“으으으! 좋다!”


두 형사가 누구라 할 거 없이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정신 차리고 시신을 살폈다.


수많은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그 피가 시신의 등을 적셨다. 바닥에 고인 피가 웅덩이가 돼서 흥건했다.


“사인은 … 과다 출혈인가?”


수많은 상처를 살피던 박훈정 형사가 말했다. 그때 목을 살피던 마달식 형사가 크게 외쳤다.


“박형사, 목에 졸린 자국이 있어.”


“졸린 자국이라고?”


박형사가 급히 시신의 목을 살폈다. 마형사 말대로 목에 졸린 자국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한 자국이었다.


“그렇군. 자국이 아주 선명해. 방금 누른 거 같군.”


박훈정 형사가 말에 마달식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이 정도로 목을 압박하면 … 질식사할 거 같아. 아주 강한 힘으로 목을 졸랐어.

뭐로 졸랐을까? 손으로 조른 흔적이 아니야. 자국이 길게 나 있어.”


“줄이겠지. 밧줄 같은 거 같아.”


“… 밧줄이라고? 아! 그런 거 같다. 경찰학교에서 본 사진과 같아.”


마형사가 말을 마치고 경찰학교 시절, 실무 수업을 떠올렸다. 질식사 사진 중 밧줄에 목이 졸려 죽은 시신이 있었다. 그 자국이 다시 보였다.


“그러면 과다 출혈보다는 목이 졸려서 죽은 거 같은데 ….”


“그런 거 같아, 박형사.”


박훈정 형사가 타오르는 긴장감을 달래려는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양 입술에 침을 잔뜩 묻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시신 주변을 살폈다. 그때 눈에 뭔가가 반짝거렸다. 그가 급히 말했다.


“저건!”


“왜 그래?”


박형사가 한 손을 들어서 방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 반짝거리는 물체가 잔뜩 있었다.


“저게 대체 뭐지?”


마달식 형사가 방구석으로 걸어가 물체를 확인했다. 물체를 확인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이, 이건 면도날이야! 바닥에 수십 개가 떨어져 있어. 모두 뻘건 게 묻었어. 피 같아.”


“뭐, 뭐라고?”


박훈정 형사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 그러면 몸에 난 상처는 면도날로 그은 건가?”


“그런 거 같아. 어쩐지 상처가 얇다 했어.”


박형사가 급히 고개를 내렸다. 그가 시신의 상처를 다시 살폈다.


시신의 상처는 아주 작은 칼로 그은 게 분명했다. 두께가 아주 얇았다. 면도날은 아주 작은 칼이었다.


“그렇군.”


박형사가 사태를 파악하고 동료에게 말했다.


“범인은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시신을 훼손했어. 수십 개의 면도날로 무수한 상처를 냈어.

여기에 … 미친놈이 나타났어.”


“제기랄!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 돌아버리겠네.”


마달식 형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용했던 주택가에 커다란 변고가 생겼다.


사람을 목 졸라 죽이고 그 시신을 면도날로 훼손하는 자가 등장했다. 바닥에 떨어진 수십 개의 면도날이 이를 증명했다.


수십 개의 면도날에 피해자 피가 다 묻은 거로 보아, 면도날 하나당 상처를 하나씩 낸 거로 보였다.


한마디로 냉혈, 엽기 살인마의 등장이었다.


시신 훼손 수법이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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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이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뭔가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듯,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차 소리가 들렸다. 하얀색 밴이 집 앞에 멈췄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유강인이었다. 유강인이 스승을 찾아왔다. 그가 크게 외쳤다.


“반장님!”


유강인이 스승을 보고 크게 웃었다. 그러다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그는 북산 파출소 소장이었던 마달식이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소장님도 계셨네, 어제 말한 친구분이 … 소장님이군요.”


“그렇지.”


박훈정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마달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셋이 다시 만났다.


“유탐정!”


박훈정이 큰 소리로 유강인을 불렀다. 마달식도 유강인을 불렀다.


“유순경! 아니지. 지금은 유강인 탐정님이지.”


참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조수 둘도 차에서 내렸다. 둘이 박훈정과 마달식에게 허리 굽혀 공손히 인사했다.


“아이고 우리 조수님들도 오셨네. 반갑습니다.”


박훈정이 조수들을 환대했다. 한 손으로 저 앞에 있는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탐정, 저기에 있는 산을 탈 거야. 이름이 복산(福山)이야. 복이 넘치는 산이지. 해발 500m야. 처음 올라갈 때만 가파르고 그다음에는 평탄해. 아주 수월한 등산길이지.

어서 가자고! 시원한 산바람 맞으며 얘기를 나누자고. 등산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야.”


“네, 어서 가시죠.”


유강인이 화답했다.


그렇게 박훈정, 마달식, 유강인, 조수 둘이 복산을 향해 걸어갔다.


화창한 날이라 걷기에 참 좋았다. 길옆에 논과 밭이 있었다. 초겨울이라 모두 황량했다.


하늘에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까악까악!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전봇대 위에 커다란 까마귀가 앉았다. 이를 보고 황정수가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와, 까마귀가 엄청 크네요.”


박훈정 반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수님, 까마귀는 원래 큰 새랍니다. 참새나 비둘기를 생각하면 안 돼요.”


“아, 그렇군요, 반장님.”


“이제는 반장님이 아닙니다. 박씨 아저씨입니다. 하하하!”


박훈정의 말에 마달식이 답했다.


“그럼, 나는 마씨 아저씨인가?”


“그렇지. 마씨 아저씨, 어서 갑시다.”


“네, 그럽시다. 박씨 아저씨.”


박훈정, 마달식 둘이 흥겹게 걸었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은 거 같았다.


요즘 농촌은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잠시 후 일행이 산 초입에 들어섰다. 무척 가파른 계단이 처음부터 펼쳐졌다. 45도 각도였다. 계단이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유강인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계단 끝은 저 멀리에 있었다. 그가 조수들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다리가 꽤 아플 거 같은데 천천히 올라가자고.”


“네, 탐정님.”


“유강인 탐정님, 어서 갑시다.”


박훈정이 말을 마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마달식이 따랐다. 둘이 능숙하게 계단을 올랐다.


유강인과 조수 둘도 계단을 올랐다.


황정수가 계단 10개를 오르고 힘이 드는지 인상을 팍 쓰고 말했다.


“아이고, 어르신들이 산을 잘 타시네요. 저는 벌써 힘드네요. 10분 1도 못 오른 거 같은데 ….”


황수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끊임없이 펼쳐진 계단을 힘겨워했다.


잠시 후 황정수가 더위에 지친 개처럼 혀를 쭉 내밀며 헥헥! 거렸다.


황수지는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녀는 산 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힘들어 보였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뻘게지기 시작했다.


“조수님들, 천천히 가면 돼. 무리하지 말고 ….”


유강인이 가쁜 숨을 내쉬고 조수 둘에게 말했다. 산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 조절이었다.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심장에 무리가 없었다.


유강인과 조수 둘이 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예상보다 무척 힘든 길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고 다리가 내 다리 같지 않았다. 마치 10kg 모래주머니를 종아리에 매단 듯 두 다리가 무거웠다.


“우와! 죽겠다.”


황정수가 지친 나머지 혀를 10cm 정도 쭉 내밀었다.


황수지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다. 뻘겠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유강인도 무척 힘들었지만, 평상시 동네 산행으로 다져진 몸이라 이 정도는 견딜만 했다.


반면 박훈정과 마달식은 멀쩡해 보였다. 둘이 가뿐한 얼굴로 계단을 다 올랐다.


계단 위는 여러 운동 시설이 있는 평탄한 곳이었다.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탐정단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5분 후 탐정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진맥진한 얼굴로 계단을 다 올랐다.


박훈정이 한 손으로 저 앞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그가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탐정, 이제 어려운 길은 다 끝났어. 저기 가서 쉬면서 얘기를 나누자고. 아침에 먹는 커피는 그 어떤 음식보다 달콤하고 고소하지.

간식으로 토스트도 있어. 내가 직접 만든 거야.”


“휴우~!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거친 숨을 고르고 답했다.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지친 조수 둘이 휘청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



마달식이 배낭에서 보온통과 컵을 꺼냈다. 컵에다 뜨거운 커피를 따르고 일행에다 컵을 권했다.


“여기 커피 마셔요.”


“감사합니다. 소장님.”


유강인이 컵을 받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커피였다. 커피숍 커피가 아니었다. 옛날 맛, 다방 커피였다.


“아주 달달하네요.”


황정수가 커피를 마시고 만족한 듯 활짝 웃었다.


황수지는 갈증이 심한 듯 커피를 계속 훌쩍거렸다.


유강인이 커피를 반쯤 마시자, 박훈정이 배낭에서 토스트를 꺼냈다. 잘 구운 토스트를 일행에게 권하고 한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버터 향이 물씬 나는 토스트였다. 무수히 많은 계단을 오르고 먹는 토스트라 그 맛이 꿀맛이었다. 커피와 같이 먹자, 천상의 궁합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간식 타임이 시작됐다.


박훈정이 토스트를 다 먹고 손을 털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어제 면도날 손창수 사건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반장님.”


유강인이 토스트를 꿀컥 삼키고 답했다.


토스트를 맛있게 먹던 마달식이 박훈정에게 말했다.


“박씨 아저씨, 그 사건은 우리 둘이 맡은 사건이지?”


“그렇지.”


박훈정의 답에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그럼, 두 분이 그 사건을 맡으신 건가요?”


마달식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나도 강력반 형사 출신이야. 그러다 북산 파출소로 간 거야.”


“아, 그렇군요. 두 분이 같이 근무하셨군요.”


“그렇지.”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30년 전 서울 광동구에서 연쇄 살인마, 면도날 송창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송창수는 피해자 넷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밧줄로 목을 졸라 죽인 다음 수십 개의 면도날로 몸에 상처를 냈습니다.”


“그렇지.”


“손창수가 사용한 밧줄에는 커다란 매듭 두 개가 있었습니다. 피해자 목을 조를 때, 목 졸림 자국뿐만 아니라 매듭 자국도 목덜미에 선명하게 찍혔습니다.”


“맞아.”


“최근에 연쇄 살인이 벌어졌는데 모두 밧줄로 인한 질식사였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목덜미에 송창수 사건처럼 매듭 자국 두 개가 있었습니다.”


박훈정이 그 말을 듣고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달식도 마찬가지였다. 마달식이 급히 말했다.


“유탐정, 피해자 몸에 면도날로 그은 상처가 있어?”


“그건 아닙니다. 최근에 벌어진 사건은 면도날 상처는 없습니다. 대신 주먹이나 몽둥이 폭행 흔적만 있습니다.”


유강인의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자, 박훈정과 마달식이 서로 쳐다봤다. 그리고 얘기를 나눴다.


“훈정아, 우린 사건하고는 양상이 다른데 ….”


“맞아, 카피캣은 오리지널의 범죄 수법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네. 면도날 상처 정도는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데 말이야.”


백전노장 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그러면 카피캣은 아니라는 말인가요?”


박훈정이 답했다.


“그렇지. 카피캣은 독창성이 없어. 오리지널을 최대한 따라 해야 카피캣이야.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이고 밧줄에 매듭 두 개가 있다고 해서 카피캣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

무엇보다 중요한 면도날 상처가 없잖아. 면도날 상처는 송창수의 트레이드마크야.”


“맞아, 맞는 말이야. 카피캣은 아닌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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