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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탐정 유강인 19_25_면도날 송창수를 잡아라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유강인이 말했다.


“그런데 부검의 소견에 따르면 목 졸라 죽이는 기술이 송창수 사건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송창수처럼 피해자를 단박에 목 졸라 죽였습니다. 이건 힘만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고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기술이라? … 두 사건 다 기술이 같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기술이 같다는 말에 박훈정과 마달식이 다시 한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달식이 말했다.


“그럼, 카피캣보다는 기술을 배운 건가?”


유강인이 급히 물었다.


“기술을 배웠다고요?”


“응, 감옥은 범죄자들한테 배움의 장이잖아. 사회에서 써먹는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범죄 기술도 서로 전수해.

고수가 하수에게 기술을 전수하며 그 끈끈한 유대를 유지하지. 주로 도박, 사기, 절도 기술 같은 걸 공유해.

좋은 건 공유 안 해도 나쁜 건 잘 공유하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송창수는 독방에 갇혔던 사형수입니다. 감옥에서 그 수법을 동료에게 전수할 수 없습니다.”


“송창수가 독방에 갇혔어? 그러면 감옥에서 전수는 아니군.”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데?”


박훈정과 마달식이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송창수가 최근에 지병으로 악화해서 가석방됐습니다.”


박훈정과 마달식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박훈정과 마달식이 급히 말했다.


“뭐? 가석방이라고?”


“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가석방까지 돼? 네 명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마인데 …”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현재 송창수는 서울 진양구 원룸에 살고 있습니다. 보호관찰관이 그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아주 병약한 상태고 시한부라 곧 죽을 거 같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마달식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가석방됐지만, 아주 병약한 상태고 보호관찰관이 그를 감시하고 있으니 … 다른 사람한테 기술을 전수하기는 쉽지 않아.”


박훈정이 말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송창수는 사회에 있어. 보호관찰관이 감옥처럼 감시할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을 몰래 만나서 기술을 전수할 수 있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그럴 수도 있겠네.”


마달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반면 박훈정은 계속 생각에 잠겼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소리가 산에서도 들렸다.


유강인이 스승과 은인에게 말했다.


“과거와 현재에 벌어진 두 사건이 우연한 일치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한 일치라 하기에는 공교롭게도 일치하는 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먼저 긴 밧줄을 이용해서 단박에 목 졸라 죽이는 기술이 같고, 그 밧줄에 커다란 매듭 두 개가 있었습니다.

피해자 목덜미에 두 개의 매듭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는데 모두 목덜미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범인이 주도면밀하게 움직여 증거가 없고 목격자도 없습니다. CCTV를 교묘하게 피하며 정체를 감췄습니다.

차이점이라면 과거 사건은 묻지마 살인 사건이고 현재 사건은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 같습니다.”


“음!”


박훈정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두 눈을 실처럼 가늘게 떴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사건 다 사용한 기술이 같고 매듭 자국 두 개가 같은 위치에 있다는 말이지? 무척 용의주도한 범인이고 ….”


“그렇습니다.”


마달식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시신 사진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어 … 우연한 일치치고는 너무나도 공교로워.”


박훈정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면 … 범행 수법을 공유한 거야. 송창수가 가석방된 후 누군가를 만났을 수 있어. 그게 아니라면 ….”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급히 말했다.


“반장님, 다른 가능성도 있나요?”


“… 면도날의 공범이 30년이 지난 후 움직였을 수 있어.”


“공범이라고요? 공범은 보고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 증거가 없어서 적을 수 없었어.”


박훈정이 말을 마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남은 커피를 남김없이 다 마시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30년 전 면도날 손창수를 내 손으로 잡았지만, 그때 좀 이상했어. 어딘지 모르게 목에 걸리는 게 있었어.

마치 라면을 먹다가 면만 먹고 아까운 국물을 남긴 느낌이었어.

라면은 국물이 진수야. 면은 보조일 뿐이야. 중요한 걸 놓쳤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


“네에?”


그 말을 듣고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사건의 이면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30년 전 면도날 손창수 사건에서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박훈정이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농촌 풍경을 바라보다가 회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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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1995년 4월 2일


서울 광동 경찰서에 비상이 걸렸다. 시신 세 구가 발견됐다. 모두 목이 졸려 죽었고 몸에는 무수한 면도날 상처가 있었다.


사건 담당 형사 박훈정은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증거를 찾았지만,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범인의 지문이나 소지품을 찾을 수 없었고 CCTV도 별 소용이 없었다. 동네에 CCTV가 많지 않아 범인의 행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범인을 봤다는 목격자도 없었다. 이에 광동 경찰서는 혹시 모를 목격자를 찾기 위해 대형 현수막을 곳곳에 설치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밤 8시 20분


박훈정이 사건이 발생한 장일동, 고수동 일대를 수소문하다가 동네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동료 형사 마달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


박형사가 편의점으로 들어가 마형사를 향해 걸어갔다. 마형사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박형사! 라면 불어, 어서 와.”


마달식 형사가 박훈정 형사를 불렀다.


박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마형사 옆자리에 앉았다. 범인을 잡지 못한 형사라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테이블에 컵라면 두 개가 있었다.


“박형사. 라면 먹자. 다 불겠어.”


“…….”


동료의 말에 박형사가 대꾸하지 않았다.


“왜 그래? 단서를 잡지 못했어?”


박훈정 형사가 말없이 고개만 끄떡였다.


“그래도 힘내. 컵라면 먹고 힘내자. 형사는 컵라면 먹고 힘내는 거야. 김밥, 컵라면, 초코파이가 우리 에너지잖아.

아무리 꼬인 면발이라고 위장에 들어가면 다 소화되기 마련이야. 사건은 곧 풀릴 거야. 어서 들자고.”


마형사가 컵라면 한 개를 박형사 쪽으로 쭉 밀었다. 박형사가 컵라면 뚜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흐흐흐! 맛있겠다.”


마달식 형사가 입맛을 다시더니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허연 김이 용기에서 확 올라왔다.


라면이 먹음직스럽게 잘 익었다. 마형사가 젓가락을 들더니 라면을 듬뿍 떠서 먹기 시작했다.


동료가 맛있게 식사하자, 박훈정 형사도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그가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빈약한 식사였지만, 허기져서 그런지 꿀맛이었다. 한 그릇을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잠시 후 휴지로 입을 닦던 박형사가 마형사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라면이지?”


“육개장 라면이잖아. 맨날 먹는 라면인데 이 맛을 몰라?”


“요즘 혓바닥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거 같아.”


“아이고. 이를 어쩌나.”


두 형사가 라면을 다 먹고 콜라와 사이다로 목을 축였다. 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편의점 밖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전봇대에서 말을 나눴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바람은 찼다.


4월은 날씨가 요동치는 날이었다. 따뜻하다가도 추워졌다. 그래서 얇게 입으면 큰코다칠 수 있었다. 점퍼나 재킷이 항상 필요한 계절이었다.


찬 바람이 불어오자, 박훈정 형사가 옷깃을 세웠다. 그렇게 추위를 이겨냈다.


마달식 형사가 어두운 동네를 쭉 둘러보며 말했다.


“사건이 장일동에서 두 건, 고수동에서 한 건이 일어났어. 둘둘 법칙 따르면 고수동에서 한 건 더 일어나야 해.”


박형사가 그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놈이 둘둘 법칙을 따를까? 그건 마형사가 만든 법칙이잖아? 한번 일을 저지르면 같은 곳에서 또 일을 저지른다는 ….”


“내 경험상, 둘둘 법칙은 틀리지 않았어. 혹 모르지. 짝수를 좋아하면 고수동에서 또 일을 저지르겠지. 조만간에 ….”


“조만간이라고?”


“놈은 사람을 셋이나 죽인 놈이야. 사람을 또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걸. 난 단서를 잡는 것보다 범행 분석을 잘하잖아. 내 말을 믿어. 둘둘 법칙은 틀리지 않아.”


“그렇긴 하지. 이것도 중독이니까. 피 맛을 봤으니 좀이 쑤시겠지. 고수동에 다시 나타날 수 있어. 그런데 고수동 어디에서 나타날지 알 수 없잖아.”


박훈정 형사가 말을 마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담당 형사로서 사건의 실마리를 전혀 잡지 못했다.


마달식 형사도 답답한지 크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반장님이 무척 조급해하시던데 … 이런 식으로 나가면 범인을 잡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셨어.

완전범죄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어.”


“그렇지.”


박훈정 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면도날을 꼭 잡고 싶었다. 놈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서 그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범인은 힘없는 자들만 골라서 죽였다. 피해자들은 가진 것 없는 빈곤층과 서민들이었다. 훔친 물건도 없었다.


결국, 범인은 사람을 죽이고 쾌감을 느끼는 인간 사냥꾼, 헌터였다.


“면도날, 이 자식! 내가 반드시 잡고 만다.”


박형사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외치고 콜라를 쭉 들이켰다. 콜라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쑥 넣었다. 껌 한 통을 꺼내서 껌 세 개를 꺼냈다.


껌 포장지를 까더니 껌 세 개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노심을 잠재웠다.


1분 후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 형사 세 번째 사건이 벌어졌던 고수동 일대를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세 번째 사건이 벌어졌던 상가 주택 1층 비디오 가게를 지나 주택가 큰길을 따라갔을 때


어둠을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악!”



갑자기 터진 비명이었다. 여성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두 형사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다세대 주택이 있었다.


“이 소리는?”


두 형사가 멈칫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윽고 거친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저기다!”


마달식 형사가 한 손을 들고 크게 외쳤다.


블랙맨이 한 다세대 주택 옆문에서 튀어나왔다. 그가 큰길을 따라서 마구 뛰기 시작했다.


쿵쿵! 발소리가 어둠 속에서 크게 울렸다.


그 모습을 보고 두 형사가 누구라 할 거 없이 뛰기 시작했다. 형사의 본능이었다.


그때 다른 사람이 보였다.


블랙맨이 나왔던 옆문에서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나왔다. 20대 초반 여성이었다. 긴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녀가 몸을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


“저놈이 … 사람을 죽였어요!”


“뭐라고?”


그 소리를 듣고 두 형사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목격자였다.


둘이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둠 속을 갈랐다. 저 앞에 블랙맨이 있었다.


정황상 연쇄 살인마 면도날이었다.


마달식 형사의 둘둘 법칙이 딱 들어맞았다. 장일동에서 두 번 범행을 저질렀던 범인이 고수동에서도 두 번째 범행을 저질렀다.


야밤에 예상치 못했던 추격전이 벌어졌다.


주택가 대로에서 거친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형사 둘이 블랙맨을 뒤쫓았다.


대로가 저 앞에서 끝났다. 블랙맨이 거침없이 내달렸다. 마치 육상 선수인 듯 숨 가쁘게 달렸다.


두 형사의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박훈정 형사가 급히 생각했다.


‘이거 놈이 너무 빨라. 무작정 뛰다간 놓치고 말겠어.’


블랙맨이 대로 끝에 다다랐다. 그가 우측으로 돌았다. 이를 본 박형사가 마형사에게 외쳤다.


“마형사는 놈을 계속 쫓아가, 난 옆으로 빠질게.”


“알았어!”


박훈정 형사가 옆으로 빠지는 골목을 찾았다. 저 앞에 우측으로 빠지는 골목이 있었다.


그는 이곳 지리에 익숙했다. 낮부터 돌아다닌 고수동이었다. 단서를 잡기 위해 고수동 일대를 계속 돌아다녔다.


마달식 형사가 대로 끝을 향해 내달렸다.


우측 골목으로 들어간 박형사도 정신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골목 끝은 상가 거리로 이어졌다. 인도와 4차선 도로가 있는 곳이었다.


블랙맨은 주택가대로 끝에서 우측으로 돌았다. 그도 상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상가 거리에 다다르면 길은 하나였다. 옆 동네인 장일동 방향으로 가거나 아니면 고수동 방향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블랙맨이 고수동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면 그 방향으로 달리는 박훈정 형사가 딱 마주칠 수 있었다.


이건 요행이었지만, 확률은 50퍼센트였다. 놈은 육상 선수 같았다. 무작정 쫓아가면 놓칠 게 뻔했다.


“헉! 헉!”


박훈정 형사가 어두운 골목에서 벗어나 상가 거리로 나왔다. 상가 거리에서 장일동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때 거친 발소리가 맞은 편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어!”


박형사가 급히 걸음을 멈췄다. 상가 건물 벽에 딱 달라붙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거친 숨소리도 들렸다. 숨소리도 점점 커졌다.


점점 뭔가가 어둠 속에서 보였다. 그건 검은 실루엣이었다. 남자였다.


드디어 블랙맨이 나타났다.


“저놈이구나! 면도날.”


박훈정 형사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밀림 속 호랑이처럼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긴장감에 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손바닥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이 기회였다. 반드시 면도날을 잡아야 했다. 그래야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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