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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26_송창수와 공범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블랙맨이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렇게 어둠 속에 숨어있는 형사 앞을 지나갈 때


“야아!”


바로 그 순간!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박훈정 형사가 번개처럼 블랙맨을 향해 달려들었다. 묵직한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휙! 하며 바람 소리가 크게 들렸다.



퍽!



둔탁한 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악!”


관자놀이를 세게 얻어맞은 블랙맨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형사가 위에서 덮쳤다.


“이놈!”


박훈정 형사가 위에서 블랙맨을 제압하고 품에서 수갑을 꺼냈다.


“아, 안돼!”


밑에 깔린 블랙맨이 발버둥 쳤다. 온몸을 흔들며 저항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훈정 형사는 거구였다. 반면 블랙맨은 작은 체구였다. 박형사의 몸무게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쳤다. 여기에서 잡힐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온몸으로 표했다.


그 모습에 박훈정 형사의 두 눈에 분노가 치솟았다. 수갑을 채우는 대신 강력한 헤드락을 걸어버렸다. 가차 없는 응징이었다.


“악!”


비명이 들렸다. 목을 조르는 굳센 팔에서 벗어나려고 블랙맨이 안간힘을 썼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자, 블랙맨이 살려달라는 듯 헤드락을 건 팔을 꽉 잡았다. 두 손이 벌벌 떨렸다. 숨이 막혀 죽을 거 같다고 사정하는 거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박형사 크게 외쳤다.


“이제 알겠냐? 숨 막혀 죽는 고통을! 너는 더 당해야 해!”


박훈정 형사가 피해자들을 대신해 블랙맨에게 고통을 선사했다. 똑같이 목을 꽉 졸라서 모든 게 끊어지는 아픔을 고스란히 돌려줬다.


잠시 후


블랙맨이 완전히 무력화됐다. 바닥에 널브러졌다.


“휴우~!”


박형사가 안도하고 헤드락을 풀었다. 블랙맨 손목에 수갑을 탁 채우고 바닥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그러다 블랙맨에게 말했다.


“네가 면도날이야?”


“…….”


블랙맨이 답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박형사가 몸을 일으켰다. 블랙맨에게 다가가 얼굴을 가리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겼다. 그러자 얼굴이 드러났다.


짧은 머리에 마른 얼굴이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작은 눈에 매부리코였다. 근육질 몸이었고 키가 작았다.


그때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마달식 형사가 벅찬 숨을 참으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서 일어나!”


박훈정 형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블랙맨을 일으켜 세웠다.


마형사가 두 남자를 보고 급히 외쳤다.


“박형사, 잡은 거야?”


동료의 목소리를 들은 박훈정 형사가 씩 웃으며 답했다.


“응!”


“다행이다! 놈이 어찌나 빠른지 놓치나 했는데 ….”


마형사가 거친 숨을 내쉬고 걸음을 멈췄다. 수갑에 묶인 남자를 잠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블랙맨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마달식 형사가 탄성을 질렀다. 블랙맨의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면도날 상자였다. 상자 안에 날카로운 면도날이 잔뜩 들어있었다.


마형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 이놈이 바로 면도날이구나! 연쇄 살인마를 이렇게 대면하네. 야! 반갑다. 난 마달식 형사라고 해. 넌 대체 누구냐? 이름이 뭐야?”


“…….”


블랙맨이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마달식 형사가 대어를 낚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참치를 잡은 거 같았다.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서 반장님께 알리자. 이 기쁜 소식을 어서 알려야 해.”


박훈정 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면도날은 내가 잡은 거다. 네가 잡았다고 뻥치지 마.”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나 마달식은 의리의 사나이다. 친구의 실적을 가로채지 않아.

내 둘둘 법칙이 틀리지 않았으니 그거면 됐어. 내 말대로 면도날 저 자식이 고수동에 두 번 등장했잖아.”


“그래, 그래. 둘둘 법칙이 정확히 맞았어. 마형사는 범죄분석 전문가야.”


“흐흐흐!”


마달식 형사가 씩 웃고 품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강력반 반장에게 연락했다.


“반장님, 마형사입니다. 박형사가 용의자를 잡았습니다.”


“박형사가 잡았다고? … 정말 면도날이야?”


“한 괴한이 고수동 다세대 주택 옆문에서 뛰어나왔는데 뒤따라서 나온 사람이 살인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괴한을 뒤쫓아 생포했는데 품에서 면도날이 다량으로 나왔습니다.”


“우와! 정말이야? 그런데 밧줄은?”


“밧줄은 그게 ….”


마형사가 답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박훈정 형사가 블랙맨의 몸을 뒤졌다. 혁대에 묶인 밧줄을 발견하고 말했다.


“마형사, 밧줄은 혁대에 묶여 있어. 커다란 매듭이 두 개 있군.”


마달식 형사가 급히 반장에게 말했다.


“밧줄은 혁대에 묶여 있습니다. 커다란 매듭이 두 개 있는 밧줄입니다.”


“하하하! 밧줄과 면도날이라! 드디어 면도날을 잡았군! 역시 우리 박형사가 최고야. 마형사도 마찬가지고.”


반장이 기쁜 나머지 크게 소리 질렀다. 핸드폰 너머로 그 소리가 들렸다.


반장의 환호성을 들은 박형사가 활짝 웃었다. 형사로서 뿌듯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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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을 마친 박훈정이 입을 열었다.


“그때 … 면도날 송창수를 잡고 포상받았어. 그래서 기분이 최고였지.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이상했어. 면도날 송창수는 세 번째 사건까지는 완벽한 범행을 저질렀어.

그런데 마지막 범행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했어.”


유강인이 스승의 말에 집중했다.


“세 번째 범행을 저지르고 쉬지 않고 바로 다음 날 움직였어. 그전까지는 일주일 정도 텀이 있었어. 송창수가 이전과 다르게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동의했다.


박훈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CCTV 확인 결과, 범행 전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태우고 버리는 등 치밀하지 못했어.

그래서 이전과 달리 독단적으로 행동해서 실수한 거 같았어. 혹 공범이 있나 하고 조사했는데 어떤 단서도 잡지 못했어.

송창수에게 공범이 있냐고 물어봐도 그놈이 딱 잡아뗐어. 공범 같은 건 없다고, 단독 범행이라고 딱 잘라서 말했어.

그래서 놈의 통화 기록, 메일, 편지, 지인, 거주지 CCTV를 다 살폈는데 어떤 증거도 잡지 못했어. 결국, 의심 가는 사람은 없었어.”


“그렇군요.”


박훈정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30년 전 수사가 미진했고 그게 부메랑이 돼서 새로운 사건이 생긴 거 같아 마음이 무거운 거 같았다.


유강인이 한 손으로 턱을 만졌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황상 공범이 있었던 거 같군. 치밀한 범죄자가 갑자기 어리숙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머리를 다쳤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 범행을 도와줬던 공범이 있었던 게 분명해.

송창수는 공범을 부인했어. 공범을 지키려고 입을 다문 거야.

공범이라!

그래, 공범이 다시 움직인 거야. 그게 가장 그럴듯해. 공범이 다시 사냥개를 찾은 거야. 송창수가 감옥에 들어가자, 다른 사냥개를 찾은 거야.

단박에 목 졸라 죽이는 기술도 그 공범이 개발한 걸 거야.

어서 공범을 찾아야 해. 그게 사건의 열쇠가 될 수 있어.’


유강인이 생각을 마쳤다. 그가 박훈정에게 말했다.


“반장님, 말씀이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 사건을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박훈정이 씩 웃었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탐정,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면도날 송창수를 만나겠습니다. 그래서 그자가 숨기는 게 있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겠습니다.”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유탐정의 눈썰미는 면도날보다 훨씬 날카로우니 송창수가 숨기는 걸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거야.”


“맞는 말이야. 우리 유탐정이 움직이는데 그걸 누가 막겠어. 유탐정이 사건을 잘 해결할 거야.”


마달식이 환하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반장님, 30년 전 송창수 사건과 현재 벌어진 사건은 분명 연관성이 있습니다. 두 사건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모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습니다.”


“좋아. 우리 유탐정이 사건을 맡으니 마음이 탁 놓이는군. 30년 전 수사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는데 이제야 풀릴 거 같군.

드디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겠어. 우리 유탐정만 믿겠어. 열심히 수사해서 내 수사의 미진함을 풀어줘.”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강인이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다시 산행이 시작됐다.


탐정단과 박훈정, 마달식이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을 탔다.


한참 후 정상에 올라 광활한 전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박훈정이 유강인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저 길을 타고 다른 산으로 갈 거야. 유탐정은 산에서 내려가. 수사에 전념해야지. 우리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등산을 즐길게.

이젠 산 타는 게 낙이야. 형사 박훈정이 아니라 등산인 박훈정이야.”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범인을 꼭 잡아서 좋은 소식을 보내겠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우리 유탐정이라면 반드시 해낼 거야. 내 의심치 않아.”


“그럼, 유강인을 믿어야지. 그 누구를 믿겠어. 유강인이 풀지 못하면 아무도 풀지 못하는 거야.”


마달식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하하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강인과 조수 둘이 크게 웃었다. 그렇게 긴장감을 풀고 전열을 다듬었다.



**



탐정단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 초입으로 내려오자,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 수분을 보충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힘들기 마련이었다. 황정수와 황수지가 다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


반면 유강인은 멀쩡했다. 평상시 동네 산행으로 단련된 몸이었다. 그가 물을 다 마시고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서 좀 쉬자고. 점심 먹고 송창수를 만나러 가야 해.”


물 한 통을 허겁지겁 다 비운 황정수가 서둘러 말했다.


“네, 벌써 약속을 잡으셨어요?”


“응, 집에서 나오기 전에 보호관찰관과 통화했어. 오후 5시, 송창수 집 근처 커피숍에서 보호관찰관을 만나기로 했어.”


“아, 그렇군요. 그럼, 우리 여기에서 맛있는 점심 먹고 서울로 가요.”


“좋아. 산을 탔으니 맛있는 거 먹자. 수분이 많은 거로.”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제 이곳 일대 맛집을 싹 다 조사했습니다. 여기 근처에 닭백숙과 오리 백숙집이 있어요. 거기로 가요.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 몸보신해야죠.”


“좋아! 어서 가자고. 닭 다리와 오리 다리를 북 뜯고 면도날 송창수를 만나러 가자고.

서울로 가서 그자가 어떤 사람인지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정말로 중병에 걸렸는지 분명하게 확인하겠어.

꾀병이라면 이건 심각한 비리야.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유강인과 조수 둘이 맛있는 점심을 즐기고 서울로 향했을 때


서울의 한 원룸에서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있었다.


“콜록! 콜록!”


연이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씩씩! 거리는 거친 숨소리도 들렸다.


매우 초췌한 모습의 노인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두꺼운 이불로 몸을 덮었지만, 한기를 느끼는 거 같았다.


바닥 전기장판에 불이 들어왔다. 빨간 불이었다.


병색이 완연한 노인이었다. 눈이 휑했고 검은자가 무척 컸다. 눈에서 흰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푹 들어간 눈덩이에서 이제 끝이라는 절망이 보였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 삐쩍 말랐다.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팔다리가 젓가락처럼 가늘었다. 근육이 다 빠져나가서 볼품이 없었다.


노인 옆에 한 사람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40대 초반 남자였다. 중간 키에 평범한 체격이었다. 딱 보기에 사무직 직원 같았다.


하얀 얼굴에 금테 안경을 썼고 손도 얼굴처럼 새하얬다. 흐릿한 이목구비라 인상이 강하지 않았다.


그가 측은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다가 노인에게 말했다.


“온도를 더 올려드릴까요?”


노인이 힘들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다시 기침을 시작했다.


“콜록! 콜록!”


기침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선혈 방울이 허공을 날다가, 깨끗한 이불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물감처럼 번졌다.


흰 도화지에 붉은 물감을 뿌린 듯했다.


“아이고! 이런 ….”


40대 남자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물티슈 각을 찾았다. 물티슈 여러 장을 꺼내더니 이불에 묻은 핏자국을 꼼꼼히 지웠다.


노인이 힘들게 침을 꿀컥 삼키고 말했다.


“… 지워서 뭐해요? 또 묻을 텐데 … 이불도 갈 필요 없어요. 어차피 난 곧 죽을 사람입니다. 보호관찰관님이 수고할 필요 없어요.”


“그래도 … 송창수씨.”


40대 남자가 말을 흐렸다.


아담한 원룸에 괴로운 침묵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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