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 1편 <백색 궁전>
“이정길씨.”
과거 이순경, 이정길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 여유 넘치는 목소리였다.
“누구지?”
그 목소리를 듣고 이정길이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들리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둘은 임무혁과 이민우였다. 둘이 이정길을 보고 씩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골목에서 울렸다.
“하하하!”
“응?”
이정길이 둘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둘 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리고 말했다.
“… 누구시죠? 저는 아시나요?”
“하하하!”
이민우가 크게 웃었다. 그가 입맛을 다셨다. 한 손으로 골목 바깥을 가리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정길씨, 저기 비서님이 오네요.”
“네에?”
이정길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때! 이민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정길이 방심한 틈을 타 품에서 검은 두건을 꺼냈다. 그 두건을 높이 쳐들었다.
그 모습을 임무혁이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가 묵묵히 서 있었다.
이정길은 22년 전 매향 북도 참사 현장에 있었다. 그는 32명 죽은 참사의 범인, 백궁 조직원 중 하나였다.
이제 응징의 시간이었다. 22년 동안 기다린 일이었다.
이정길이 속절없이 검은 두건을 뒤집어썼다.
이민우가 한 손을 들었다. 이정길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아이고! 윽!”
이정길이 도망치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민우가 억센 팔로 이정길의 입을 꽉 틀어막고 강제로 끌고 갔다.
이정길은 보기에 풍채가 좋았다. 힘이 무지 셀 거 같았지만, 그 반대였다. 힘이 무척 약했다. 편안하게 살면서 근육이 종이처럼 약해졌다.
“어서 가자.”
임무혁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이민우가 답했다.
“그래, 우리 존경하는 이정길 사장님이 아저씨를 만나야지. 22년 만에 만나서 아주 따뜻한 대화를 나눠야지. 어서 가자고!”
둘이 한 사람을 끌고 갔다. 그렇게 이정길, 이순경이 사로잡혔다.
*
어두운 창고였다. 10평 크기였다. 안에 이렇다 할 물건이 없었다. 한 마디로 텅 비어 있었다.
그 창고 안에 이정길이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양팔은 등 뒤에 뒷짐을 지었다. 두꺼운 줄이 양 손목을 꽉 묶었다.
그 앞에 임무혁과 이민우가 서 있었다. 둘이 이정길을 내려다봤다. 차가운 시선이었다.
이정길이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 대체 왜 이러세요? 저는 선량한 시민입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를 풀어주세요.”
“뭐? 선량한 시민이라고?”
이민우가 그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백궁 조직원이 할 말이 아니었다. 아니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백궁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기까지 했다.
백궁은 양심이 사막처럼 말라버린 조직이었다. 뻔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임무혁이 그 말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정길에게 말했다.
“이사장, 좀 기다려. 좀 있으면 당신 친구가 올 테니 ….”
“치, 친구라고? 친구가 누군데? 누가 나를 배신한 거야?”
이정길이 어리둥절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친구를 찾았다.
그때! 끼익하며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최운성이었다.
최운성이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창고 안을 걸었다. 그는 창고 문을 열면서 이정길의 말을 들었다. 자기를 누가 배신했냐는 말을 듣고 기가 찼다.
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운성이 창고 안으로 들어오자, 임무혁과 이민우가 옆으로 비켰다. 이제 최운성이 옛 친구를 만나야 했다. 아주 따뜻한 만남이 기대됐다.
최운성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팔팔 끓어오르는 분을 참을 수 없는 거 같았다. 한쪽 다리를 절자, 엇박자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옛 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엇박자 발소리를 듣고 이정길이 움찔했다. 그가 급히 말했다.
“누가 들어왔어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저는 납치당했어요! 경찰을 불러주세요! 여기에 나쁜 놈들이 있어요!”
그 소리를 듣고 최운성이 걸음을 멈추고 이를 악물었다. 그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이민우를 찾았다.
“여기 있습니다.”
이민우가 한 손에 든 야구 배트를 최운성에게 건넸다. 최운성이 야구 배트를 받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최운성이 이정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분노가 가득 차서 끓어 넘치는 소리였다. 팔팔 끓는 냄비에서 국물이 넘쳐서 가스레인지를 가득 적시는 거 같았다.
“이정길, …이순경! 내 목소리를 모르겠어?”
“뭐, 뭐? 이순경이라고?”
이순경이라는 말에 이정길이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목소리의 주인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경찰을 그만뒀다. 이후 사업가로 변모해 명성 물산을 세우고 잘 나가는 사업가가 되었다.
이정길은 사업을 시작한 후, 백궁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막대한 돈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매일 같이 음주와 연애를 즐겼다. 그렇게 돈을 탕진했다. 애인을 수시로 바꾸면 인생을 즐겼다.
그의 몸은 방탕한 생활을 거듭한 끝에 점점 약해져 갔다.
“너, 넌 누구야?”
이정길이 크게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 최운성이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넌, 내 목소리를 듣고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구나. 이거 정말 섭섭한데, 난 네 목소리를 듣고 네가 누구인지 금방 알았어.
하긴 당한 자는 원수의 목소리를 잊지 못하지. 가해자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금방 잊어버리지. 마치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뭐? 가해자? 피해자라고?”
이정길이 급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여전히 목소리의 주인공을 모르는 거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이민우가 말했다. 실실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아저씨, 그만 뜸 들이고 저 두건을 확 벗겨버리세요. 아저씨 얼굴을 보면 기억이 나겠죠.
자신이 22년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하게 기억할 겁니다.
그래도 기억하지 못하면 야구 배트가 제 역할을 해야죠. 강제로 기억을 떠오르게 하세요.
저놈은 죽도록 맞아도 쌉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최운성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아주 옳은 말이야. 악마한테는 몽둥이가 약이지.”
최운성이 말을 마치고 한 손을 들었다. 이정길이 뒤집어쓰고 있는 두건을 꽉 잡았다. 그 두건을 확 벗겨 버렸다.
“아야!”
이정길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가 오만상을 찡그렸다. 두건이 확 벗기자, 얼굴이 아픈 거 같았다
이정길이 두 눈을 찡그렸다가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의 두 눈에 한 남자가 보였다. 그처럼 중년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며 서 있었다. 한 손에 야구 배트를 꽉 쥐고 있었다.
이정길이 중년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두 눈을 10kg 수박처럼 크게 떴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이정길이 옛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구의 얼굴을 알아본 거 같았다.
최운성이 씩 웃었다. 그가 말했다.
“어이, 이순경! 나 최순경이야. 22년 전 매향 북도 최운성 순경이야.”
“최순경! 헉!!”
최순경이라는 말에 이정길의 몸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그의 앞에 22년 전 옛 동료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는 저승사자 같았다. 그럴 만했다.
이정길은 동료이자 친구인 최운성을 죽이려 했다. 마을 사람들처럼 독을 먹여 감쪽같이 죽이려 했다.
최운성이 이를 눈치채고 독을 먹지 않자. 칼로 찔러 죽이려 했다.
그 최순경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순간이었고 앙갚음의 시간이었다.
“헉!”
이정길이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했다. 과거 그가 했던 참담한 짓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매향 북도 32명을 죽이는 데 참여했다. 그리고 동료인 최운성 순경도 죽이려 했다.
이정길은 인간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살인 계획에 참여했었다.
“이놈!”
창고 안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운성이 오른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순간! 바람 소리가 들렸다.
분노의 주먹의 이정길의 턱을 향해 날아들었다.
퍽!
“악!”
이정길이 비명을 질렀다. 최운성의 주먹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그가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몸을 파르르 떨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최운성이 크게 외쳤다.
“살인마! 너는 매향 북도 주민 32명을 죽이는 데 동참했다. 그리고 친구인 나까지 죽이려 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냐? 대체 왜!!”
“으으으! 그, 그건 … .”
이정길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임무혁이 이정길을 향해 걸어갔다. 한 손에 핸드폰이 있었다. 이정길의 핸드폰이었다. 임무혁이 이정길에게 말했다.
“이정길, 어서 비서한테 전화해. 일이 갑자기 생겨서 멀리 갔다고 말해.”
“뭐, 뭐?”
이정길이 그 말을 듣고 몸을 벌벌 떨었다. 임무혁이 말을 이었다.
“네 가족한테도 연락해. 일이 갑자기 생겨서 급히 할 일이 있다고 말해.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라. 아저씨는 너한테 배신당한 22년 전 최운성 순경이다.
나는 22년 전 매향 북도 주민이다. 콜라에 든 독을 먹고 죽을 뻔했다가 병원에서 도망쳤다.”
이정길이 화들짝 놀랐다. 그가 임무혁을 아는 거 같았다. 그가 급히 말했다.
“뭐, 뭐라고? 그러면 … 너는 그때 꼬마!”
“그렇지. 콜라 먹고 바닥에 뻗었던 아이다. 나를 아는구나.”
“이. 이런!”
이정길이 급히 과거 일을 떠올렸다.
22년 전 이장댁 근처에서 콜라를 먹고 바닥에 쓰러졌던 어린 남매가 있었다. 그 남매는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이는 예상외의 일이었다. 이에 조직에서 남매를 죽이려 했다.
“헉!”
이정길이 죽다가 살아난 임무혁을 보고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22년 전 그는 쓰러진 아이를 비웃었다. 아니 매향 북도에서 사망한 주민 32명 모두 그의 조롱 대상이었다.
그렇게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22년이 지난 후, 그 아이가 성인이 돼서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을 납치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정길이 커다란 위기를 깨닫고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도망칠 곳을 서둘러 찾았지만,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10평 창고에 문은 하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철통같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