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리가 말했다.
“주형사는 … 백궁의 조직원이었어. 그자는 일부러 정보를 흘려서 오빠를 유인했어. 대형 창고에서 오빠를 잡으려 했어.
나를 사랑한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백궁은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어. 내 마음에 주형사는 이제 없어. 그자도 원수일 뿐이야.”
“알겠다.”
임무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동생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남매가 한 방향을 향했다. 그건 백궁의 처단이었다.
임무혁이 걸음을 옮겼다. 악인들 앞으로 걸어갔다. 이민우, 최운성, 윤진희, 임주리는 뒤로 물러섰다.
“제발! 살려줘!!”
신재순 시장이 애걸복걸했다. 그가 펑펑 울면서 말했다. 두 눈이 눈물범벅이었다.
“임무혁 선생님!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절 살려주세요. 모든 걸 다 줄게요. 돈이라면 필요한 만큼 다 줄게요. 백궁 조직도 다 넘길게요.
대통령 자리도 필요 없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절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도 가족이 있는 가장입니다.”
임무혁이 냉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신재순! 22년 전에는 왜 그랬지? 그때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불쌍하지 않았나?”
“그, 그건 …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 그 일을 시켰습니다. 예전 인천 시장이 시킨 일입니다. 저는 그때 부시장이었습니다.
시장이 시키면 부시장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게 조직의 생리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명령을 어기며,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무혁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크게 외쳤다.
“시장의 지시라고? 그래서 부시장이 어쩔 수 없이 따랐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치졸한 핑계에 불과하다.
너는 사람을 마구 죽이는 놈이다. 사람을 개돼지, 아니 벌레보다 우습게 보는 놈이다. 인정이 없는 금수 같은 놈이다!
네 말은 다 거짓이다. 내 앞에서 세 치 혀를 놀리지 마라! 너는 그 지시를 즐겼다.”
임무혁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리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이를 악물고 호통쳤다.
“네놈들한테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었다. 우리 남매도 죽을 뻔했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너희는 그 대가로 물고기 밥이 되어야 한다. 그게 너희한테 딱 맞는 일이다!”
“헉!”
사로잡힌 넷이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임무혁이 위에 새파란 하늘이 있었다. 무정한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새파랬다.
복수가 이제 끝에 달했다. 시퍼런 복수의 칼날이 임무혁의 가슴을 데웠다.
드디어 22년 전 일을 갚을 때가 다가왔다.
“휴우~!”
임무혁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하고 오른발을 높이 쳐들었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일갈했다!
“가라, 너희가 갈 곳으로! 그곳이 정녕 너희가 갈 곳이다!!”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고 땅이 쩍 꺼지는 소리였다. 한 남자의 분노가 궁극에 도달했다.
“안돼!!”
악인 넷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게 외쳤다.
“야아!!”
커다란 고함과 함께 임무혁이 오른발을 날렸다. 넷을 밀어서 차버렸다. 그러자 넷이 절벽 아래로 속절없이 떨어졌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락이었다.
“아악~!!”
커다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넷이 동시에 비명을 질러댔다. 그 비명이 높디높은 절벽을 따라서 들렸다.
“하하하! 보기 좋군.”
이민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가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악인 넷이 아래로 떨어졌다. 넷의 옷이 깃발처럼 펄럭였다.
3초 후
풍덩! 물소리가 들렸다. 잠시 물보라가 일었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악인들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칠흑처럼 어두운 바다였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복수가 끝났다. 22년간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무혁아!”
“오빠!”
“형!”
임무혁, 이민우, 최운성, 윤진희, 임주리가 서로 껴안다. 누구라 할 거 없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품었던 쓰라린 고통과 사무친 서러움을 모조리 털어냈다.
파도 소리가 철썩! 철썩! 계속 들렸다. 끼룩! 끼룩! 갈매기 소리도 울려 퍼졌다.
바다는 평안했다.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복수의 화신 임무혁의 마음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
매향 북도 앞바다에서 모터 소리가 크게 들렸다.
타 타 타 타!
쾌속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물살을 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렇게 침몰한 유람선으로 향했다.
쾌속정에는 임무혁과 이민우가 타고 있었다. 이민우가 배를 몰았다.
유람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부유물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그 부유물을 붙잡고 몇몇이 바다 위에 떠있었다.
그중에 임무혁의 아내 차미진도 있었다.
차미진을 확인한 임무혁이 이민우에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밧줄을 던져.”
“알았어, 형.”
이민우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가 배를 멈추고 밧줄을 던졌다. 그러자 바다에 떠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밧줄을 잡으려 애썼다.
차미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밧줄을 붙잡았다.
임무혁이 차미진에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너는 봐 준다고.”
남편의 말에 차미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서 가자!”
임무혁이 크게 외쳤다.
“알았어. 시원하게 내달려보자고!”
이민우가 시동을 걸었다. 그가 속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고 속도로 달릴게! 가슴이 뻥 뚫리게!”
“좋지!”
쾌속정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얀 물보라가 다시 일었다. 물보라 뒤로 넷이 배를 따라갔다. 그들은 줄을 꽉 잡고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늦은 오후였다. 화창한 날이 만개했다.
임무혁이 시원한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 좋은 날이군.”
“맞아! 좋은 날이야.”
이민우가 답했다.
쾌속정이 아주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매향 남도로 향했다.
*
10분 후 유튜브에서 라이브 방송 하나가 시작됐다.
충격적인 사건 사고만 방송하는 ‘100% 리얼 사건, 김기자’ 채널이었다. 10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채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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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시작하자, 유튜버 김기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100% 실제 사건만 방송하는 김형기 기자입니다. 오늘 폭로할 사건은 22년 전 매향 북도 참사의 진상입니다.
당시 경찰이 밝힌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민 중 하나가 이웃에 앙심을 품고 술과 음료에 독을 타서 32명을 죽고 두 명이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허위 사실이었습니다. 22년이 지난 후, 한 제보자에 의해 그 진상이 명백히 밝혀졌습니다.
확인 결과, 당시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진상을 감추기 위해 거짓 정보를 진실인 양 퍼트렸습니다.
오늘 22년 매향 북도 참사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겠습니다. 먼저 제보자가 보낸 영상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김기자가 제보자 영상을 플레이했다.
영상이 시작하자, 매향 북도 풍어 절벽이 보였다. 절벽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절벽 근처 나무들이 정신없이 휘날렸다.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높디높은 절벽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입을 열었다.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였다. 미남이기도 했다.
“저는 22년 매향 북도 참사의 생존자 임무혁입니다. 참사의 진상을 오늘 이 자리에서 밝히겠습니다.
27년 전, 백색 궁전이라는 마약 카르텔이 섬마을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순진한 섬사람들을 철저히 속여서 양귀비를 재배하고 마약을 제조했습니다. 당시 섬사람들은 이 일을 화초 재배라 여겼습니다.
백색 궁전 조직원인 이장의 말에 깜박 속아서 그들한테 이용당했습니다.
그렇게 매향 북도는 화초 재배를 빙자한 마약 제조와 거래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5년 후, 마약 거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정부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코너에 몰린 백색 궁전은 국내 마약 사업을 급하게 접어야 했습니다.
매향 북도 섬사람들을 모두 죽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원히 그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교활한 계획을 짰습니다. 이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과 짜고 동네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섬사람들은 흥겨운 마을 잔치에서 술과 음료를 마시고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32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저도 독약을 먹었지만, 백색 궁전에 대항한 한 분의 용기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후 백색 궁전은 외국과의 마약 거래를 통해 승승장구했습니다.
저는 목숨을 건진 후,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맹세했습니다. 백색 궁전의 만행에 종지부를 찍기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22년이 지난 오늘, 백색 궁전을 일망타진했습니다. 그렇게 놈들을 저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가공할 마약 카르텔, 백색 궁전의 조직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시장이자 대통령 후보인 신재순
매향 북도 이장이었던 인천시 국회의원 전해식
인천 남부경찰서 형사과장 김덕기
인천 제1 조폭 물뱀파 보스 남궁철
서울 부시장 ………”
임무혁이 조직원 명단을 모두 공개하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22년 전 참사 영상이 시작됐다. 증거의 공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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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백색 궁전의 실체가 세상에 폭로됐다. 뒤이어 놀라운 소식도 전해졌다.
백색 궁전 조직원들이 매향 북도와 앞바다에서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그러게나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다니 ….”
진상을 파악한 사람들이 모두 경악했다. 백색 궁전이라는 거대 비밀 조직과 그들을 섬멸한 임무혁한테 모두 깜짝 놀랐다.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임무혁은 복수를 마쳤다. 인천항에 도착한 후 증거인 6mm 테이프를 들고 경찰에 출두했다.
당당한 걸음으로 인천경찰청 계단을 올랐다. 그는 검은색 양복을 입었다.
와이셔츠, 넥타이, 구두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매향 북도에서 억울하게 죽은 32명의 기리는 그의 뜻이었다.
이민우, 최운성, 윤진희, 임주리는 그의 자수를 말렸지만, 임무혁은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며 홀로 경찰청으로 향했다.
그는 복수를 완수하고 진상도 세상에 밝혔지만, 백생 궁전의 실체를 모두 파헤쳐야 했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의 도움이 필요했다. 양심 있는 수사관과 검사라며 그를 도와줄 거로 굳게 믿었다.
한 남자의 뜨거운 용기에 감복한 여러 수사관과 검사가 그의 뜻에 따랐다. 그렇게 백색 궁전의 모든 실체가 밝혀졌다.
백색 궁전은 그 역사가 깊었다. 50년간 지속한 조직이었다.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서울경찰청이 경찰의 사활을 걸고 수사를 전담했다.
그렇게 전현직 조직원들을 모두 체포했다. 일부 조직원은 체포되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출두한 임무혁은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됐다. 손목에 은빛 수갑이 채워졌다.
임무혁은 손목을 감싸는 은빛 수갑을 보면서 두 눈을 감았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행법상 당연한 일이었다.
임무혁이 체포되어 구속됐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이 들고일어났다. 그를 구명하려고 각계각층에 탄원서를 보냈다.
죽어야 할 자가 마땅히 죽였는데 정의를 구현한 임무혁을 왜 가두냐며 많은 시민이 구치소 앞에서 시위했다.
임무혁은 묵묵히 감옥 안에 있었다. 그는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차가운 1인 독방이었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여유로웠다.
***
임무혁이 체포된 후 1년이 지났다. 만 1년이 되었을 때 대통령 특사가 발표되었다. 사면령이었다.
그 명단에 임무혁이 있었다. 임무혁은 곧바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비가 몹시 내리는 날이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임무혁이 구치소에서 나왔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경찰청에 출두할 때 입었던 그 옷이었다.
임무혁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검은색 세단이 있었다. 차 문이 덜컹 열렸다.
검은색 정장과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남자 둘이 내렸다. 둘 다 외국인이었다. 그들이 임무혁에게 말했다.
“Congratulations, Mr. Im mu hyeok. (축하합니다. 미스터 임무혁.)”
임무혁이 축하 인사를 받고 빙긋 웃었다. 그렇게 감사를 표하고 검은색 세단에 올라탔다.
임무혁이 차에 타자, 차가 출발했다. 장대비를 헤치며 도로를 달렸다.
임무혁은 구치소에서 나온 후 종적을 감췄다.
구치소 앞에서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국제 마약 수사단이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최정예 요원들이었다.
임무혁은 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국제 마약 수사단에 스카웃 됐다.
그는 수사단에서 최정예 비밀 수사관이 되었다. 이후 아주 비밀스럽게 활동하며 글로벌 마약 조직을 소탕했다.
그의 암호명은 '화이트 아이즈(White eyes), 새하얀 눈동자'였다.
새하얀 눈동자 1편 – 백색 궁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