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행운 빌라 사건 재조사 27일 차, 오전
날이 밝아왔다.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이지만, 한 사람에게는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휴우~!”
강선애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눈 아래로 축 내려왔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강선애가 한 손으로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피부가 거칠었고 눈도 충혈됐다.
그녀는 안가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서울에서 떨어진 외딴곳이었다. 인적이 드문 전원주택이었다.
울창한 산림이라 공기가 맑고 시원했다. 그렇게 상쾌한 곳이지만, 무거운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분 후 강선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장 위에 있는 핸드폰을 들었다. 문자를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유강인이 보낸 문자에 집중했다.
재조사 책임자, 유강인은 아침마다 문자를 보냈다. 강선애가 알아야 할 사항을 자세히 알려줬다.
잠깐 문자를 살피던 강선애가 뭔가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천천히 창가로 향했다.
창문은 하늘색 커튼으로 닫혀있었다.
강선애가 커튼을 꼭 잡고 활짝 열었다. 순간, 밝은 햇살이 창문 안으로 쏟아졌다.
따뜻한 햇볕에 강선애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에 해가 보였다. 해 밑으로 푸른 녹지가 펼쳐졌다.
강선애가 해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해가 오늘도 변함없이 떠올랐다. 활기찬 하루를 보내라고 웃는 거 같았다.
잠시 강선애가 서 있었다.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눈빛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사지에 몰린 고양이가 반격을 준비하는 듯 눈에서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래! 확인해 돼. 반드시!”
강선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온몸이 심하게 떨렸다. 윗니로 입술을 꼭 깨물었다,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거 같았다.
그녀가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가냘픈 손으로 1번을 꾹 눌렀다.
삐리릭!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총, 총무! 아니 성녀 어떻게 된 거야?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어?”
전화를 받은 사람은 황보술이었다. 강선애가 갑자기 전화하자, 무척 놀란 거 같았다.
“왜 말이 없어? 무슨 일이야? 그동안 걱정을 많이 했어!”
“…….”
“성녀!”
황보술이 애타게 강선애의 이름을 불렀다. 한동안 말이 없던 강선애가 괴로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성주님.”
“그래, 무슨 일이야? 경찰들이 괴롭히는 거야? 그런 거야? 어서 말해!”
황보술이 급히 말했다. 그는 별말이 없는 강선애를 보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에 그녀를 다그쳤다.
“무슨 일이야? 말만 해! 내가 도와줄 테니!”
강선애가 눈을 꼭 감았다. 몇 초 동안 생각하다가 눈을 천천히 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주님, 한 가지만 답해 주세요. 10억 원을 아버지께 주셨다는데 사실이에요?”
“뭐, 뭐라고?”
“각서를 봤어요. 각서에 분명 10억 원을 아버지께 준다고 쓰여있었어요”
“그거! 뭐 … 주기는 줬지. 그동안 네 아버지가 재단이랑 교단 일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잖아. 그래서 수고비로 … 그때 네 아버지 자금 사정이 별로였어. 투자 실패로 돈을 많이 잃었다기에 내가 그냥 준 거야.”
“지금 하신 말씀이 다 사실인가요?”
“그럼,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건 성녀도 잘 알잖아. 각서에 쓰여 있는 건, 좀 오해가 있었어. 절대 횡령은 아니야. 그냥 돈을 이리저리 굴리 건 데, 네 아버지가 감사다 보니까 그렇게 대충 적은 거야. 절대 큰일이 아니야. 그냥 장난삼아 재미있게 쓴 거야. 내가 돈을 그냥 주기 뭐해서 장난 좀 친 거야.”
“네에? 장, 장난이라고요?”
순간! 강선애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었다. 당장 황보술에게 달려가 요절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더 확인할 게 있었다.
“성녀! 경찰들이 이상한 소리를 할 거야. 세상에는 나를 모함하는 사람이 많아. 나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발악하고 있어. 경찰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돼. 다 나를 모함하는 거야. 그때 교단과 재단에서 알력이 있었어. 내가 잘 중재했어야 했는데 그게 참 후회가 돼. 결국, 다 내 책임이긴 해. 성녀 부모님이 죽은 건 장로들 사이에 생긴 시기, 질투 때문이었어. 당시에 성녀 부모님이 아주 잘 나갔잖아. 그래서 장로들이 시기해서 죽인 거야. 그놈들이 정말 죽일 놈들이지.”
“…….”
강선애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황보술의 거짓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고 참았다.
“그때 사실대로 말 못 한 건 … 성녀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런 거야. 내 말이 뭔 말인지 알겠지?”
“…….”
“왜 말이 없어? 성녀!”
“… 그러면 사건 직후, 돈 10억이 왜 사라진 거죠?”
“뭐?”
강선애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건이 있기 전, 이상했던 아버지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버지가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 가방이 꽤 무거운지 끙끙거리면 안방으로 들어갔다.
사건 이후에 그 가방은 텅 비어있었다. 아버지가 받았다는 10억 원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난 몰라! 뭐, 장로들이 챙겼겠지. 나는 모르는 일이야!”
“분명히 모르는 일이죠?”
“그럼, 하늘에 맹세해! 내가 성녀 아버지께 수고비로 준 건데, 내가 다시 회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절대, 절대! 그런 일은 없어!”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 끊을게요.”
“그래, 그럼 푹 쉬어. 나중에 보자고. 마음이 정리되면 사무실로 돌아와. 알았지, 꼭!”
전화가 갑자기 끊어졌다.
황보술은 핸드폰을 들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인상을 마구 찌푸렸다.
“이런 젠장!”
황보술이 벽을 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XXX! XXXX!”
한동안 욕설이 서재에 울려 퍼졌다.
삑!
그때 서재 인터폰이 울렸다.
황보술이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다잡았다. 인터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성주님!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래, 알았어. 박변호사는 미리 출발했나?”
“네, 30분 전에 경찰청으로 출발했습니다.”
“알았어, 차에 시동 걸어.”
황보술이 인터폰을 끊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래, 잘 될 거야. 암! 그동안 뿌린 돈이 얼만데.”
황보술이 중얼거리다 고개를 내리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책상 위에 있는 껌 통을 집어 들었다. 통에서 껌 대여섯 개를 꺼내서 입에 쑤셔 넣었다.
황보술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강선애는 핸드폰을 들고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몸이 세찬 한파에 얼어붙은 듯 꼼작도 하지 않았다. 충혈된 눈이 더욱 빨개지기 시작했다. 이젠 눈물이 아니라 눈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녀가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끄, 끝까지 거짓말을! 끝까지 나를 기만하려고 했어, 네놈을 그렇게 믿고 의지했는데 … 이 악마!”
강선애가 이를 악물고 크게 소리쳤다. 피맺힌 한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참았던 한이었다. 그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뭐, 10억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고? 네놈의 계좌에 떡하니 10억이 있었어!”
강선애가 넘쳐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지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을 두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그렇게 10년간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강선애는 성동연합모임 사무장, 총무였다. 그녀는 회계 파일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안가에서 황보술 비밀 계좌 내용을 분석했다.
사건 전 10억 원이 인출됐다. 사건 직후에 여러 경로를 통해 10억 원이 다시 돌아왔다. 자금 추적을 피하려는 자금세탁이었다.
“반드시 네놈을 끝장내겠어. 하늘에 맹세코!”
강선애가 두 주먹으로 바닥을 계속 내리치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서울지방경찰청 강력반 조사실
박영기 변호사가 이호식 형사와 얘기를 나눴다. 이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박변호사는 이형사의 완강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뭔가를 주장했다.
삐리릭
박영기 변호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박변호사가 경찰청 건물에서 나왔다. 주차장을 급히 둘러봤다. 그의 눈에 고급 외제 세단이 보였다.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박영기 변호사가 급히 고급 세단을 향해 달려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황보술이었다.
“성주님!”
“아! 박변호사.”
황보술이 반가운 표정으로 박영기 변호사를 말했다. 박변호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황보술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휴~! 성주님. 이제 들어가시죠.”
“얘기가 잘 됐어?”
“그게, 이것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구속 영장을 신청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뭐라고, 나를 집어넣겠다고?”
“네! 그래서 신원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도주 증거 인멸 위험이 없고 거주지가 분명하니 불구속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황보술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여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그놈들이 아무리 설쳐대도 날 구속하지는 못해.”
“정말입니까?”
“그놈들이 각서를 이용해서 날 법정 구속하려는 모양인데, 벌써 손을 다 써놨지.”
“아! 그렇군요. 그럼, 다행이네요.”
“어서 가자고.”
“네.”
둘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강력반 사무실에 들어갔다.
“저를 따라오세요.”
우동식 형사가 둘을 조사실까지 안내했다.
조사실 문이 활짝 열렸다. 황보술과 박영기 변호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조사실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유강인과 차수호 형사였다. 두 형사가 매서운 눈초리로 둘을 바라봤다.
“자, 자리에 앉으시죠.”
박영기 변호사의 말에 황보술이 자리에 앉았다. 황보술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유강인과 차수호 형사를 바라봤다. 형사들은 맞은편에 앉았다.
황보술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응?”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당당한 황보술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유강인은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입을 꾹 다물고 황보술을 살폈다.
황보술은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남달라 보였다. 그건 카리스마였다. 몸에서 강렬한 기가 뿜어나왔다.
그 카리스마가 만만치 않았다. 사무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황보술은 백옥같은 순백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하얀색 정장과 하얀 넥타이, 백구두는 그가 무고한다는 걸 입증하는 거 같았다.
“으으으~!”
차수호 형사가 그만 고개를 숙였다. 황보술의 카리스마에 기가 죽은 거 같았다.
황보술의 흰자가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몸을 떨었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사이비 종교 교주답게 황보술은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카리스마에 굴복할 수 없었다.
유강인은 사건의 수사하는 형사였다. 형사로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휴우~!”
유강인이 숨을 크게 내쉬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번 헛기침을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보술씨, 경찰에서 부른 이유를 잘 알고 계시죠?”
“하하하! 그럼 잘 알고 있소. 다 내 잘못이요. 내가 아랫사람을 잘 못 관리해서 생긴 일이요. 내 마음이 무겁소.”
“그 말인즉, 황보술씨는 10년 전 행운 빌라 살인사건과 경찰 테러 사건, 강선애씨 폭력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뜻입니까?”
“참 가슴 아픈 일들이요. 내가 부리는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소. 그자들이 그렇게 흉악무도한 자인 걸 이제야 알았소. 나도 속았소.”
순간!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우리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그럼, 믿어야지 어떡하겠소? 다 진실이고 사실인데 …. 난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요. 진실하고 아주 깨끗한 사람이오.”
유강인이 혀를 내둘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고 속에서 분노가 팔팔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화를 참고 말했다.
“각서가 있습니다. 이건 분명한 증거입니다. 황보술씨가 직접 찍은 지장입니다. 이걸 부정하시나요?”
“아! 그거요. 내가 찍은 게 맞소. 협박당해서 어쩔 수 없이 찍었소. 그래서 돈도 주고 책도 줬소.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자요. 난 믿고 의지했던 고향 동생에게 배신당해서 술에 취해 있었소. 그때 내 옆에 있던 김철수가 내 하소연을 듣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이요. 김철수가 그런 천인공노한 짓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
유강인이 터무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김철수씨가 황보술씨를 위해 그렇게 흉악한 짓을 저질렀다고요?”
“그렇소. 김철수가 강후식 가족을 죽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들었소. 내가 범행을 사주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소? 요즘 경찰은 심증으로만 수사하는 모양이군요. 세상에 그런 엉터리 수사가 어디에 있소?”
“뭐, 뭐라고요?”
유강인이 소리쳤다. 흥분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젊은 사람이 무례하군요! 전에도 그러더니.”
박영기 변호사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유강인과 박변호사의 눈싸움이 벌어졌다.
“자! 진정하세요. 유형사 자리에 앉아. 박변호사님도 자리에 앉으세요.”
차수호 형사가 둘을 말렸다. 이에 서로 노려보던 유강인과 박영기 변호사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소강상태가 지속됐다.
유강인이 서류를 마구 뒤적이다가 날카로운 눈매로 말을 이었다.
“그럼, 비밀 경호를 하던 경찰을 강선애씨 스토커로 오인하고 테러를 가한 사건도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소. 난 강선애를 잘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쓴 밖에 없소. 예전에 강선애가 요청한 게 있었고. 남자들이 자기를 따라다닌다고 도움을 요청했었소. 그래서 그녀의 청을 들어준 거요. 귀찮게 하는 남자들을 잘 타일러서 돌려보냈소. 그런데 독고승, 김만호가 그렇게 폭력을 사용할 줄은 전혀 몰랐소.”
“좋습니다. … 그럼, 정일권이 강선애씨 집에 침입해 폭행 감금하고 집을 뒤진 사건도 관련이 없나요?”
“물론이요. 빵집 주인 정일권은 우리 교단 신도요. 그래서 불쌍한 강선애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소. 그런데 그놈이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소. 아주 배은망덕한 놈이요.”
유강인은 황보술의 말을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현재 증거가 없었다.
독고승, 김만호, 정일권, 라미경 모두 대포폰을 사용했다. 이 폰들은 추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황보술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유강인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박영기 변호사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형사 양반! 각서 빼고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게 드러났습니다. 행운 빌라 사건은 법정에서 다툴 사인입니다.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나머지 사건은 우리 의뢰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괜히 엄한 사건으로 우리 의뢰인을 엮지 마세요!”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 일단 행운 빌라 사건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핵심 증거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각서에 관해 물어보겠습니다.”
“좋소! 뭐든지 물어보시오.”
황보술이 여유를 부리며 답했다.
“각서에 따르면 비리를 덮어주는 조건으로 궁극지상 12계 책을 넘기고 30억을 준다고 적혀있습니다. 사실입니까?”
“맞소. 그렇게 썼소. 분명히 기억하오.”
“그리고 그 이후에 은행 계좌를 보니 큰돈을 현금으로 인출 하셨더군요.”
“각서대로 이행했을 뿐이오.”
“나머지 20억을 주기 싫어서 김철수에게 범행을 사주한 거 아닙니까?”
“뭐라고? 나를 뭐로 보고 어떻게 그딴 말을!”
황보술이 순간 분을 참을 수 없는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부릅뜬 두 눈에서 레이저가 쏘는 거 같았다. 그가 성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소! 어떻게 사람을 죽이라고 사주하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오. 난 평생을 종교인으로 봉사하며 살아온 사람이오. 나를 모욕하지 마시오. 내 결백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음양의 현묘한 도도 이를 잘 알고 있소.”
유강인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가 빠르게 말했다.
“정황상 딱 들어맞습니다. 황보술씨가 위기에 몰리자 김철수가 움직였고 가장 큰 덕을 본 사람은 황보술씨 당신입니다. 사건 현장에 있던 10억은 종적을 감췄습니다. 10억과 책, 각서를 회수하기 위해 김철수를 사주한 거 아닙니까!”
박영기 변호사가 뱀의 눈으로 황보술을 옹호했다.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형사님은 단지 불분명한 정황만으로 수사합니까? 수사에 기본도 안된 사람이군. 쯧쯧쯧”
박변호사가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를 꾹 참았다. 분을 삭이고 말을 이었다.
“성동연합모임 총무인 강선애씨가 계좌 조사 내용을 보냈습니다. 사건 전 황보술씨 비밀 계좌로 10억 원이 인출됐고 사건 직후 10억 원이 여러 경로를 통해 다시 비밀 계좌로 들어왔다는 정황을 확보했습니다.”
“뭐, 뭐라고?”
황보술과 박영기 변호사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박영기 변호사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김철수가 돈을 의뢰인께 돌려 드린 겁니다. 원래 주인이 의뢰인이니까요.”
“맞, 맞아. 김철수가 나를 위한답시고 일을 벌인 거야. 돈도 그냥 입금한 거야. 나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황보술이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자료를 살피다가 파일을 덮었다.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황보술을 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조사를 마칩니다. 조사한 내용과 증거, 증언을 바탕으로 황보술씨를 행운 빌라 살인사건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하겠습니다.”
황보술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마음대로 해봐! 너희 뜻대로 되는지 …. 한번 붙어보자고, 그래, 도전에 응해주지.”
“네에?”
유강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보술의 태도가 너무나도 당당했다.
황보술이 박영기 변호사를 보고 씩 웃었다. 박변호사도 걱정하지 말란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박영기 변호사가 유강인을 보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던 거 같은데 …. 형사 양반은 젊어서 세상 물정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