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무대 감독 한창완을 생각했다.
한창완은 공범과 같이 도망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무대 지휘실에 있어야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조명 기기를 움직여야 했다. 조명 기기가 움직여야 추악한 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한창완이 임무를 완수하고 2층 무대 지휘실에서 내려왔을 때 공범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아주 치밀하네요. 나쁜 짓을 하려고 철저히 역할 분담을 했어요.”
“카르멘은 분명 대단한 자입니다.”
수사팀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카르멘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그때, 황정수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물었다.
“탐정님, 윤미래 배우는 왜 도망친 거죠? 그 사람은 조명 장치와 관련이 없잖아요? 그 사람은 배우예요.”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수사팀이 유강인을 기다렸다. 침 삼키는 소리가 여러 군데서 들렸다.
30초 후,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현재로서는 윤미래 배우가 왜 도망쳤는지 그걸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일단, 공범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식으로든 범행에 가담했을 수 있습니다. 혹 그것도 아니라면 …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이유가 뭐죠?”
황정수의 질문에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카르멘의 뜻이겠지.”
“카르멘이요?”
“응!”
유강인이 답을 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두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카르멘의 정체를 밝히려는 광명의 빛이었다.
삐리릭!
핸드폰 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신기훈 형사가 전화 받았다. 지구대 대장의 전화였다.
“신형사님, 정문에서 나간 남녀를 확인한 결과, 여배우 윤미래와 조명 스태프 최상일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신형사가 전화를 끊고 이 사실을 유강인에게 알렸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좋습니다. 이제 거리 CCTV를 확인해야 합니다. 둘을 찾아야 합니다. 정황상 둘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네에? 유탐정님,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용의자 둘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진환 형사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둘은 용의자였다. 화를 당할 자들이 아니었다.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장호일를 죽인 조인수는 모진 구타 끝에 죽었습니다. 카르멘이 조인수를 죽인 게 분명합니다.
카르멘은 조인수를 사주해서 장호일을 혼내주려고 했습니다. 장호일은 단장인 형을 믿고 천방지축으로 날뛰었습니다. 후배들을 인정사정없이 때리고 조롱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카르멘은 장호일을 따끔하게 혼내주려고 마음먹은 겁니다. 죽이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게 확실히 알겠습니다. 카르멘은 장호일한테 칼 두 자루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진검을 소품용 칼로 착각한 겁니다.
그래서 장호일 사망은 실수였습니다. 카르멘이 의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와 달리 장호일이 죽자, 카르멘은 그 대가를 하수인 조인수에게 전가했습니다. 조인수는 카르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지만, 그 책임을 떠안고 죽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도망친 둘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 장치는 매우 육중한 물체였습니다. 떨어지면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었습니다.
둘은 카르멘의 뜻에 따라 임무를 완수했지만, 카르멘은 둘을 토사구팽할 거 같습니다. 그 입을 영원히 틀어막기 위해 죽일 것만 같습니다.
어서 둘을 찾아야 합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서에 연락하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급히 답하고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의 손이 떨렸다.
이형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는 사건이 갈수록 배배 꼬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많이 꼬여서 터지기 일보 직전 같았다.
유강인이 목이 마른 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황정수가 황수지에게 말했다.
“수지! 음료!”
“네, 준비할게요.”
황수지가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렸다. 배낭에서 실론 티 캔 하나를 꺼냈다. 그 캔을 유강인에게 건넸다.
유강인이 캔을 받고 뚜껑을 땄다. 벌컥벌컥 실론티를 마셨다. 그렇게 목마름과 긴장감을 달랬다.
그렇게 JS 아트센터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을 때
서울 CCTV 통제 센터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유강인의 요청에 따라 강천구 JS 아트센터에서 도망친 윤미래 배우와 최상일 스태프를 찾기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했다.
상황실을 지휘하는 센터장이 마이크를 잡고 급히 말했다.
“윤미래 배우와 최상일 스태프의 행적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강천구 JS 아트센터 거리 CCTV에 집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모니터를 살피는 직원들이 큰 소리로 답했다.
센터장이 침을 꿀컥 삼켰다.
CCTV 통제센터에서도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많은 모니터에서 녹화 영상이 숨 가쁘게 흘러갔다. 직원들이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파악하고 둘을 쫓았다.
3분 후, 한 직원이 센터장에게 연락했다.
“윤미래 배우와 최상일 스태프로 보이는 남녀가 택시를 잡았습니다. 강천구 JS 아트센터 인근입니다. 택시가 강천 대로로 향했습니다.”
“좋습니다. 강천 대로 CCTV를 살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센터장의 지시에 직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강천 대로 CCTV 전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센터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택시를 따라가야 합니다!”
직원들이 택시에 집중했다.
강천 대로는 8차선 도로였다. 다행히 차도에 차들이 별로 없었다. 택시를 수월하게 추적할 수 있었다.
강천 대로를 신속하게 달리던 택시가 녹지로 접어들었다. 녹지는 진봉산과 가까웠다. 진봉산은 극단폭풍 근처에 있었다.
모니터를 살피던 직원이 급히 말했다.
“택시가 진봉산 입구에서 멈췄습니다. 차에서 남녀가 내렸습니다. 둘이 산으로 향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센터장이 답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가 사건 담당 이진환 형사에게 연락했다.
삐리릭!
핸드폰 벨 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로비에 수사팀과 장철수 단장이 있었다. 이진환 형사가 발신자를 확인하고 급히 전화 받았다.
“서울 CCTV 통제 센터 센터장입니다.”
이형사가 급히 말했다.
“센터장님, 용의자 둘을 찾았나요?”
“네, 찾았습니다. JS 아트센터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강천 대로를 달리다 진봉산 입구에서 내렸습니다. 진봉산은 극단폭풍과 가까운 곳입니다. 둘이 산을 올랐습니다.”
“네에? 진봉산으로 갔다고요? 극단폭풍 근처에 있는!”
이진환 형사가 깜짝 놀라서 ‘진봉산’을 크게 외쳤다.
유강인과 수사팀과 장철수 단장이 그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불길한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그건 바로 ‘진봉산’이었다.
센터장이 말을 이었다.
“형사님, CCTV 확인은 여기까지입니다. 더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진봉산 일대 CCTV를 계속 감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센터장님.”
이진환 형사가 감사를 표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로비에 침묵이 감돌았다.
용의자 둘이 다른 곳도 아닌 극단폭풍 근처로 갔다. 극단 건물 뒤편에 있는 진봉산을 올랐다.
진봉산이라는 말에 로비가 한층 어두워진 거 같았다.
30초가 흘렀다.
유강인이 그 침묵을 깼다.
“젠장!”
유강인이 거칠게 말을 내뱉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두 눈빛이 무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극단폭풍 뒷산 진봉산은 저주가 서린 산 같았다. 장호일을 죽인 조인수가 모진 구타를 당하고 낙엽 더미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곳이었다.
황정수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왜 하필 진봉산으로 올라갔을까요? 조인수가 거기에서 죽었잖아요.”
“맞아요. 이건 너무 불길해요. 왜 하필 거기로 …. 다른 곳도 많은데.”
황수지도 맞장구쳤다. 그녀의 얼굴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얼굴이 점점 하얘졌다.
이진환 형사와 신기훈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에서 핏기가 점점 사라져갔다. 불길함이 구렁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와 떨리는 마음을 감쌌다.
오늘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JS 아트센터 본관 옥상에서 일이 벌어졌다.
용의자 중 하나인 무대 감독 한창완이 높디높은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두 형사가 달려가 한창완을 겨우 막았다.
그 떨리는 순간이 가시자, 다른 일이 찾아왔다. 설상가상이었다.
남은 용의자 둘도 위험할 수 있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했다.
“여러분, 빨리 극단폭풍으로 갑시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네, 서둘러야 해요.”
수사팀이 너도나도 답했다. 상황이 다시 다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쉴 틈이 없었다.
카르멘이 숨 가쁘게 움직였다. 죽음의 거미줄을 사방에 마구 뿌렸다.
“으으으~!”
장철수 단장이 신음을 내뱉었다. 그가 몸을 마구 떨었다. 턱이 마구 떨렸다. 아래턱뼈가 쑥 하며 빠진 거 같았다.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장단장에게 말했다.
“장단장님, 진정하세요. 아직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일단 같이 극단으로 갑시다.”
유강인의 말에 장철수 단장이 겨우 진정했다. 그가 힘들게 침을 삼키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둘한테 … 별다른 일은 없겠죠?”
“아직은 괜찮을 겁니다.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유강인이 답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삐리릭!
그때, 이진환 형사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가 발신자를 확인하고 전화 받았다.
“이진환 형사입니다.”
“강천 다나음 병원입니다.”
“아, 네. 환자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다행히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지만, 최지나 배우님은 아직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며칠 뒤면 깨어나실 거 같습니다.”
“이유리 배우님은 어떤가요?”
“이유리 배우님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머리에 충격을 받았지만, 수술 경과가 아주 좋습니다. 내일이면 의사소통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아! 정말 잘됐네요.”
이진환 형사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커다란 조명 장치를 맞았던 여배우 둘 다 목숨을 건졌다.
최지나 배우는 의식불명 상태라 경과를 지켜봐야 했고 이유리는 금방 회복했다.
이형사가 이 사실을 수사팀과 장철수 단장에게 알렸다.
수사팀이 그 말을 듣고 모두 기뻐했다. 특히 장단장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을 살려주셔서!”
장철수 단장이 기쁨의 눈물을 계속 흘렸다.
다행히 나쁜 일만 계속되지는 않았다.
유강인이 미소를 지었다.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극단으로 갑시다. 서둘러야 해요.”
“네! 번개처럼 극단으로 날아가겠습니다!”
황정수가 크게 외쳤다.
곧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수사팀과 장철수 단장이 로비를 달렸다.
잠시 후 수사팀과 장철수 단장이 차에 올라탔다. 탐정단 밴과 강력반 밴이 극단폭풍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갔다.
폭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 폭풍은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강한 비바람을 동반했다. 사람이 날아가고 나무뿌리가 뽑히는 초대형 강풍이었다.
한마디로 A+급 태풍이었다.
탐정 유강인은 폭풍 한가운데 있었다. 그의 강인한 의지는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