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아직 아침이라 날이 추웠다. 산속이라 영하 2도가 아니라 영하 5도 같았다.
다행히 찬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렇지만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코가 점점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시신과 유서를 확인한 유강인이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상황이 그의 추리와 다르게 흘러갔다.
유강인은 미카엘라역 윤미래를 카르멘의 하수인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윤미래가 남긴 유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윤미래는 자신을 극단의 실력자인 진짜 카르멘이라고 밝혔다.
“이게 대체!”
유강인이 힘들게 침을 삼켰다. 그가 다시 종이를 살폈다. 손으로 직접 쓴 글이 아니라 한글 파일을 프린트한 종이였다. 그래서 필적 감정을 할 수 없었다.
친필 유서가 아니었다. 진짜 유서인지 의심스러웠다.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죠?”
이진환 형사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강인이 대답 대신 이형사에게 종이를 건넸다. 이형사가 종이를 건네받았다. 그 내용을 살폈다. 이형사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헉!”
무척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이진환 형사가 종이를 다 읽고 깜짝 놀랐다.
“무슨 내용인데 그러세요?”
선배가 놀라자, 신기훈 형사도 종이를 살폈다.
“세, 세상에!”
유서를 읽은 신기훈 형사도 깜짝 놀랐다.
사건 담당 형사 둘이 서로 쳐다봤다.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윤미래가 자신을 카르멘이라고 밝히고 죽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고개를 돌렸다. 장철수 단장을 찾았다.
장단장은 수색 대원 옆에 있었다. 세 번째에 이어 네 번째마저 등장하자,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장단장님, 여기로 오세요.”
“아, 네.”
장철수 단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가 잠시 주저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 장단장에게 말했다.
“경찰이 윤미래 배우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윤미래 배우가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장철수 단장이 답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커다란 나무 앞에 섰다. 근처 바닥에 시신이 누워있었다.
시신의 얼굴은 아주 평온했다. 세파에 고통받던 영혼이 홀연히 육신에서 떠나자, 홀가분해 보였다.
잠시 시신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장단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고개를 들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시신은 윤미래 배우가 맞습니다. 저는 윤미래 배우와 10년 인연이 있습니다.
그 얼굴과 인상착의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윤미래 배우가 맞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기동대장에게 말했다.
“시신을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수사대를 부르세요. 이 일대를 정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과학수사대는 30분 내로 올 겁니다.”
기동대장이 답하고 무전기를 들었다. 그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신을 옮길 인원을 산으로 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상황이 종료됐다. 진봉산 수색 작전이 그 임무를 마쳤다. 유강인의 예상대로 시신 두 구를 발견했다.
“이건 아니야.”
이진환 형사가 고개를 흔들고 중얼거렸다. 그가 다시 유서를 읽었다. 유서를 세 번 반복해서 읽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신기훈 형사는 ‘아!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선배에게 말했다.
“극단폭풍의 실력자, 카르멘이 … 돈호세 약혼녀인 미카엘라 윤미래 배우였네요. 그걸 미처 몰랐네요.
연극에서 미카엘라는 팜므파탈이 아닌데, 실제로는 팜므파탈이었어요. 결국, 윤미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거네요.”
이진환 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거 같지 않아. 어떻게 윤미래가 카르멘이야? 윤미래는 카르멘과 어울리지 않아.”
선배의 말에 신기훈 형사가 ‘어?’ 하며 당황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선배님, 외모로 보면 그렇기는 하지만, 윤미래한테 우리가 모르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을 수 있어요. 예전 일본에서 유명한 사건이 있었어요.
경찰이 남자 여럿을 죽인 살인범을 잡았는데 그냥 외모가 평범한 여자였어요. 남자를 유혹해서 모두 죽여버린 대단한 살인마였어요.”
“그, 그래?”
“네,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럴 수도 있지만 ….”
이진환 형사가 말을 흐렸다. 후배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겉보기에 윤미래는 평범해 보였다. 무슨 큰일을 할 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었다.
이형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그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아닌 거 같아. 유서가 의심스러워. 직접 쓴 친필이 아니야. 진짜 카르멘이 윤미래를 죽이고 가짜 유서를 주머니에 넣을 수 있어.”
“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신기훈 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단정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러내렸다. 어색한 침묵이었다.
유강인과 형사 둘이 입을 다물자, 황정수가 입을 열었다.
“아니, 대체 왜 그러세요?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요?”
황수지도 말했다.
“탐정님, 어서 말해 주세요.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어요?”
조수 둘의 눈망울이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유강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당혹감이 있었다.
“종이는 유서야. 미카엘라 윤미래가 자기 정체를 밝히고 죽었어.”
“정체라고요? 그 정체가 대체 뭐죠?”
황정수의 말에 유강인이 답했다.
“자기가 바로 배후 조종자, 카르멘이라고 실토했어. 이 모든 일을 자기가 꾸몄고 그 책임을 지고 이승을 하직한다고 적혀 있어.”
“네에? 카, 카르멘이 윤미래 배우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유서상은 그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조수 둘이 깜짝 놀랐다. 두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래졌다. 상황이 예측 불가로 흘러갔다.
이진환 형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탐정님, 저 유서를 믿을 수 있을까요? 친필 유서가 아니라 프린트 물입니다. 윤미래가 자기 손으로 직접 쓴 글이 아닙니다.”
유강인이 미간을 모았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유서는 증거물로 보존하세요. 아직, 섣부른 판단은 할 수 없습니다.”
유서를 다시 꼼꼼히 살피던 신기훈 형사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저, 유탐정님. … 유탐정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저 유서에 적힌 대로 윤미래 배우가 카르멘인가요? 아니라면 대체 누구죠?”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그걸 감안하고 들어주세요.
제 생각으로는 … 저 유서는 조작된 겁니다. 진짜 카르멘이 하수인에 불과한 윤미래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운 겁니다.”
이진환 형사가 손뼉을 짝 쳤다. 그가 말했다.
“역시 유탐정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카르멘이 비겁하고 야비한 수를 쓰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제가 잘못 판단한 건가요?”
신기훈 형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가 보기에 유서는 진짜 같았다. 그런데 유강인과 선배는 유서를 가짜로 여겼다.
“맞아, 그런 거 같아요. 저 유서는 카르멘이 우리를 속이려고 쇼하는 거예요.”
황정수가 화난 얼굴로 외쳤다. 황수지도 마찬가지였다.
“맞아요. 카르멘이 우리 탐정님을 우습게 보고 농락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때 … 한번 찔러 보는 거 같아요. 속으면 그만이고 아니면 다른 수를 쓰려는 거 같아요.”
유강인이 황수지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 그가 말했다.
“그렇지! 수지의 말이 옳아. 카르멘이 우리를 갖고 노는 거야. 수사에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어서 그 방향에 혼선을 주려는 거야. 아주 교활한 수지.”
“아, 그렇군요. 제가 깜빡하고 넘어갈 뻔했네요.”
신기훈 형사가 이제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아직 신참 형사였다. 배울 게 참 많았다. 누구보다 의욕이 앞섰지만, 교활한 범인의 수를 내다보지 못했다. 아직 한 치 앞만 내다봤다.
유강인이 시신의 발을 내려다봤다. 흰 양말이 보였다. 그가 이진환 형사에게 말했다.
“시신의 신발을 찾아 주세요. 카르멘이 강제로 신발을 벗겼을 겁니다. 자살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렇게 했을 겁니다.
자살자들은 신발을 벗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염두 한 게 분명합니다. 신발을 주인에게 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신발을 주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말을 마치고 측은한 얼굴로 시신을 내려다봤다.
이형사가 보기에 윤미래 배우는 카르멘이 아니라 하수인 같았다.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하다가 배신당하고 죽은 거 같았다. 그 신세가 참 처량했다.
악의 하수인은 그 종말이 뻔했다. 처참한 토사구팽은 예정된 순서였다.
이진환 형사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탐정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산에서 내려가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이유리 배우가 깨어났다고 들었습니다. 병원으로 가서 조명 장치 추락 사고를 면밀하게 조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최지나 배우는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지만, 이유리 배우는 깨어나서 오늘 대화가 가능하답니다.”
유강인이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됐네요. 어서 산에서 내려 갑시다. 이곳은 과학수사대한테 맡깁시다.”
“네! 알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제와 오늘 시신 두 구를 발견했지만, 풀이 죽을 수는 없었다. 사건을 풀려면 어느 때보다 힘을 내야 했다. 그게 형사의 직분이었다.
유강인이 걸음을 걸으며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이유리가 별로 다치지 않았어. 반면 최지나는 크게 다쳤어. 이게 의미하는 게 있을까? … 혹 자작극? 자작극이라면 ….’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극단폭풍에서 카르멘 역은 두 명이었다. 베테랑 최지나와 신예 이유리였다. 둘은 무대에서 연기 연습 중 조명 장치 추락 사건으로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 사건은 베일에 싸인 극단폭풍의 실력자, 카르멘이 조종한 게 분명했다. 이 일의 하수인은 무대 감독 한창완, 조명 스태프 최상일, 미카엘라역 윤미래였다.
어젯밤, 최상일이 시신으로 발견됐고 오늘 아침에는 윤미래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윤미래는 유서를 통해 자기가 진짜 카르멘이라고 밝히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유강인은 유서에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윤미래를 진짜 카르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강인의 두 눈이 나일론 실처럼 가늘어졌다.
조명 장치 추락 사고 피해자는 최지나와 이유리 배우였다. 둘 다 목숨을 건졌지만, 최지나는 크게 다쳐서 여전히 의식불명이었다.
반면 이유리는 그렇지 않았다. 비교적 경상이었다.
윤미래가 남긴 유서에 최지나를 증오하는 내용이 있었다. 애인인 장호일을 빼앗았다고 최지나를 아주 못됐다고 비난했다.
최지나는 남자를 홀릴만한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장호일이 최지나에게 반해 오랫동안 사귄 애인을 버릴 수 있었다.
최지나의 증언과 장호일 통화 기록에 따르면 둘이 사귄 건 맞는 거 같았다.
“그렇군.”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네 글자를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고육지책!”
고육지책은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중 34계였다. 고육지계라고도 불렸다.
고육지책(苦肉之策)은 적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해치는 아주 교활한 수였다.
유강인의 두 눈이 횃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교활한 자에겐 두 배의 응징을 가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