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생원 윤진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과한 욕심은 억울함을 낳는다.

욕심은 그 억울함을 먹고 자란다.



4월이 되자, 꽃가루가 흩날렸다. 솜털 같은 꽃가루가 사방에 뿌려지자, 마치 눈발이 휘날리는 거 같았다.


사람들이 흩날리는 꽃가루를 보면서 하나둘씩 기도를 올렸다.


모두가 넉넉히 살 수 있는 풍년을 바랐다. 부모님과 자식들 모두 건강하게 잘 살기를 기원했다.


다행히 올해는 날씨가 좋았다. 비도 적당히 왔고 날도 포근했다. 땅도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시 기근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3년 전은 끔찍했었다. 엄청난 기근은 닥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파가 동장군처럼 마구 휘몰아쳤다. 그래서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봄에 뿌린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먹을 게 없었다.


먹을 게 없자, 동냥아치들이 길거리에 널렸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병에 걸렸다.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참담한 비극이 충청도 서쪽에 펼쳐졌다. 특히 서산에 그 피해가 심각했다.


이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 수가 점점 많아지더니 거대한 구름떼처럼 커졌다.


충청도 서산군 사람들이 읍내 관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아 앞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사또에게 하소연했다. 그 소리가 간절하고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먹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또!”


“연로하신 아버님이 굶어 죽었고 이제 우리 아이들도 다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구호미를 나눠주세요! 제발!!”


다급한 소리가 관아 앞에서 계속 울려 퍼졌다. 흡사 거대한 메아리가 치는 거 같았다.


“아이고 큰일이다!”


관아 나졸들이 황급히 움직였다. 지방 사무를 담당하는 향리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향리가 즉각 사또에게 이를 보고했다.


서산 군수는 이칙림이었다. 그는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이곳에 부임했다. 지방관으로서 맡은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이칙림은 40대 남자로 키가 크고 말랐다. 마른 얼굴에서 강직함이 돋보였다. 긴 눈매, 오뚝한 콧날, 가는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긴 수염이 명치까지 내려왔다.


백성의 소리를 들은 서산 군수 이칙림이 두 눈을 감았다. 그러다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무척 야윈 몸이었다. 영양실조에 걸린 거 같았다.


현재 서산 관아 사정도 말이 아니었다. 민가와 별 차이가 없었다. 광이 텅텅 비어갔다. 쥐새끼도 굶어 죽을 판이었다. 매일같이 곡식을 나눠주고 남은 게 없었다.


이제는 나눠줄 것도 없었다. 관아 사람 수십 명이 한 줌의 쌀로 죽을 끓어 먹어야 할 판이었다.


상황이 무척이나 다급했다.


이칙림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조정에 구호미를 다시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동안 모든 조치를 다 취했다. 이제 남은 건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그가 서둘러 붓을 들었다.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며칠 내로 식량이 와야 했다.


그는 붓끝에 모든 걸 걸었다. 모든 힘을 다했다. 칼이 아니라 붓이 중요한 때였다.


그렇게 이칙림은 백성이 살아야 나라도 살고 주상도 산다며 눈물 어린 장계를 보냈다. 3차 장계였다. 1차, 2차 장계를 연달아 보냈지만, 기다리라는 답변만 받았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여겼다. 실제로도 그랬다. 구휼미가 제때 오지 않으며 대규모의 아사 사태가 벌어질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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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군수 이칙림이 주상께 아룁니다.


갑자기 봄에 한파가 들이닥쳤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봄과 여름에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피해를 막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비하지 못한 소신의 불찰이 하늘처럼 큽니다. 그 죄를 주상께 청합니다.


하오나 먼저 다급한 건 굶주린 백성입니다. 연로한 부모가 급사하고 병약한 아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쓰러지고 있습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방에서 곡소리가 나고 전염병까지 돌고 있습니다.


이에 조정에 간곡히 요청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구휼미를 보내주신다면, 소신이 최선을 다해서 이 참담한 비극을 막겠습니다. 일하다 쓰러져 죽을지언정 백성들이 쓰러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몹쓸 병도 이길 수 있습니다.


주상은 하늘을 뜻을 받들어 백성을 이끄는 어버이와 같습니다. 자식 같은 백성들이 현재 굶주려 죽고 있습니다.


주상의 은덕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입니다. 그 자혜로운 은덕이 없다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지경입니다.


주상께서 하해와 같은 은덕을 베풀어 주신다면. 주상을 칭송하는 소리가 땅과 바다를 덮고 하늘을 가득 채울 겁니다.


신(臣) 서산 군수 이칙림은 목민관으로서 최선을 다해 백성을 구휼한 후, 관모를 벗고 제 불참을 책임지겠습니다.


서산 군수 이칙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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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를 본 주상은 그 절절한 문장에 감동받았다.


“과연 명문이로다. 이 문장은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고는 쓸 수 없다. 어서 서산군으로 구휼미를 보내라. 지체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주상 전하.”


곧 커다란 마차 수십 대에 구휼미가 잔뜩 실렸다. 마차가 전속력으로 서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백성들을 살릴 생명의 낱알이 서산 관아에 도착했다.


“왔다! 이제 살 수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임금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고 있어요!”


“이게 다 우리 사또 덕분이에요! 사또 정말 감사합니다!”


이 모습을 본 서산 군수 이칙림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밤을 새우며 공을 들여 쓴 장계가 효력을 발휘한 거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이칙림은 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구휼미에 일절 손대지 않았다. 모든 식량을 빈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서산 백성들도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 모두 사또의 공명정대함에 찬사를 보냈다.


3년 후. 이칙림이 임기를 마치고 서산군을 떠나야 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관아로 몰려들었다. 순백의 청백리가 떠나는 걸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했다.


이칙림은 단연 최고의 목민관이었다. 그의 재임 시 억울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송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했다. 그는 청백리의 표상이었다. 귀하디귀한 인물이었다.


“사또! 정녕 가셔야 합니까?”


“사또만한 인물이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제발 가지 마세요!”


백성들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환송회를 했다.


이칙림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관아를 나섰다. 수행원과 함께 읍내를 지나 한 고을로 들어갔다.


그곳은 제비마을이었다. 은혜 갚는 제비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었다.


마을 이름답게 제비 서너 마리 보였다. 제비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유려한 날개를 시원하게 뻗었다


한 남루한 집 앞에서 이칙림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사립문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윤생원 계시는가?”


큰 소리가 들리자,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방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그는 20대 후반 남자였다. 그의 시선이 작은 마당을 지나 사립문으로 향했다.


사립문 앞에 여러 사람이 서 있었다. 청년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청년이 서둘러 방에서 나왔다. 신발을 신고 사립문으로 달려갔다. 그가 급히 말했다.


“사또,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청년이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청년은 키가 크고 말랐다. 상투를 들었고 낡은 옷을 입었다. 낡고 누리끼리한 옷이 궁핍함을 알렸다. 딱 봐도 별 볼 일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옷이 볼품없다고 해서 사람마저 볼품없는 건 아니었다.



청년은 남다른 기백이 넘쳤다. 그건 그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내면의 힘이었다.


그 내면의 힘과 함께 얼굴이 반짝거렸다. 청년은 누구보다 미남이었다. 하얀 피부에 얼굴이 가느스름했다.


미남답게 이목구비가 무척 수려했다. 기다란 검은 눈썹, 서글서글한 눈매, 삼각산 같은 높은 코, 얇은 입술이 날카로웠고 예리했다.


매우 잘생긴 얼굴이라 동네 아낙네들이 그를 흠모했다.


이칙림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윤생원, 어머님이 아프시다고 들었네. 그래서 떠나기 전에 들른 거네.”


“아, 그러시군요.”


청년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생원, 윤진이었다. 생원이라 불렸지만, 사실 생원은 아니었다.


윤진은 과거의 시작인 소과 초시에 통과했다. 2차 시험인 소과 복시에 떨어져 생원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윤생원으로 불렸다. 많은 이들이 그의 총명함을 흠모했다. 그래서 윤생원이라 부르며 존중했다.


윤진은 그의 행색이 알려주듯 몰락 양반이었다. 서당에서 훈장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


윤진이 고개를 돌려 방문을 쳐다봤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또,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읍내에 들러 사또의 마지막 행차를 배웅하고 싶었지만, 어젯밤부터 어머니께서 몸져누우셔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은 이제 괜찮으신가?”


“좀 나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죽을 조금 드셨습니다.”


“천만다행이군. 내가 쌀 한 석을 보내 테니 그 쌀로 약을 지어 드시게나.”


“네?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허튼소리나 하는 사람인가? 그동안 윤생원은 나를 도와서 큰 공을 세웠어. 송사의 공명정대함은 바로 자네 덕이었어.

자네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나를 도와줬으니 이 정도 보답은 해야지. 암!”


“정말 감사합니다. 사또.”


“허허허! 세월이 참 빠르네그려. 윤생원을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구먼.”


“저도 그렇습니다. 훌륭하신 사또를 그동안 모셔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허허허! 이제는 안 하던 소리까지 하는군. 아부가 많이 늘었어.”


“아부가 아닙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소리입니다.”


“그래 좋아. 그건 그렇고 윤생원, 복시는 언제 볼 건가? 복시에 합격해야 정식으로 생원이 될 수 있어. 그래야 대과에 응시해 관직에 나아갈 수 있어.”


“그건 좀 ….”


“다시 생각해 보게. 자네는 훈장으로 머물기에 그 출중한 재능이 너무 아까워.”


“소생은 공부할 머리가 되지 않습니다. 한번 낙방한 거로 족합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하긴, 자네는 그렇지. 경전을 외우고 그 뜻을 헤아리는 것보다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는 걸 좋아하지. 그래서 내가 큰 덕을 봤지.

알았네. 자네 뜻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 내 아전들에게 잘 말해뒀네. 신임 군수가 오면 잘 협조하게나.”


“네, 알겠습니다.”


윤진이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했다.


“하하하!”


이칙림이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었다.


중천에 뜬 해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칙림이 윤진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가야 하네. 그럼 몸 건강히 잘 있겠나.”


“네, 사또도 항상 강녕하십시요.”


“그럼, 몸조심 잘하게.”


이칙림이 작별 인사를 고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서산에 처음 부임할 때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관리가 서산을 떠났다.


윤진이 저 멀리 사라지는 이칙림을 바라다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고 푸른 날이었다.


“그래, 더 좋은 날이 오겠지.”


윤진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이제 아픈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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