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참수 장군의 등장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윤진이 어머니 옆에 앉았다. 그가 몸져누운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제 괜찮으세요?”


어머니가 답이 없었다. 이불을 덮고 곤히 자고 있었다.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병마가 물러난 거 같았다.


“괜찮으신 거 같아, 참 다행이다.”


윤진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렇게 윤진이 어머니 병간호에 전념하고 있을 때



날이 점점 어두워 깊은 밤이 되었다.



충청도 서산군 뿐만 아니라 임금이 사는 한성에도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먹물 같은 어둠이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한성의 밤이 깊었지만, 다른 동네보다 밝은 곳이 있었다. 바로 남산골이었다. 남산골은 한성에서 유명한 동네였다. 무엇보다 과거 시험을 보러 온 수험생들이 많았다.


남산골은 시험장과 가까운 거리였고 조용했다.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기에 딱 좋았다. 이에 많은 수험생이 이곳에 숙소를 잡고 시험을 준비했다.


과거는 한 사람의 운명과 가문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이었다. 수험생들에게 있어 과거 급제는 커다란 도약과 같았다.


수험생들은 급제라는 목표를 위해 밤을 새우며 시험을 준비했다. 그래서 남산골은 밤늦게까지 불이 밝았다.



*



수험생이 그득한 남산골 마을 어귀 근처에 큰 기와집이 있었다. 그 집은 경상 대행수(한양에서 활동하는 상단 고위관리직)가 사는 집이었다.


경상 대행수가 늦은 밤 잔치를 벌였다. 손님은 만상(의주에서 활동하는 상인) 대행수였다.


두 대행수 모두 40대 남자로 풍채가 아주 좋았다. 중간 키에 비대한 체격이었다. 항상 잘 먹는 듯 얼굴에서 기름기가 흘러내렸다.


커다란 상에 산해진미가 그득했다.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서 진동했다. 담백하고 정갈한 서울 음식이었다.


만상 대행수가 기분이 좋은 듯 크게 웃었다. 주인인 경상 대행수가 극진하게 대접하자, 기분이 좋은 거 같았다.


“하하하!”


“오늘 술맛이 참 좋네요.”


“봄에는 두견주가 최고입니다. 진달래꽃이 참 좋아요.”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 하지요. 그래서 두견주군요. 황갈색이 참 곱습니다. 그려.”


“그렇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사 온 술입니다. 지금 만상 덕분에 큰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흐흐흐, 감사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요. 제때 대금을 정산해 주시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또 건수가 있습니다.

지금 청나라에서 좋은 비단과 도자기가 들어왔습니다. 이때 구입하시죠? 싸게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좋지만, 지금 한성에서 종이가 귀해졌습니다. 값이 배나 올랐어요. 종이를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적기입니다. 먼저 종이를 부탁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종이도 대량으로 들여오겠습니다. 흐흐흐!”


“하하하!”


경상 대행수와 만상 대행수가 크게 웃었다. 술잔을 쨍! 부딪히며 음주를 즐겼다. 두견주 잔이 쉬지 않고 오갔다.


그렇게 둘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아, 아이고!”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하인이 마당에서 부르짖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집주인 경상 대행수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방문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소란스럽구나! 밖에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어르신! 대행수 어르신!!”


더 큰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다급했다.


경상 대행수가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행랑아범 목소리입니다. 지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만상 대행수가 그 소리를 듣고 술잔을 내려놨다. 그가 술맛이 떨어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님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경상 대행수가 살살 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요즘 아랫것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주인이 물으면 재깍 대답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이것들이 상전보고 오라 가라고 하네요.”


“뭐, 사정이 있겠지만, 행랑아범이 버르장머리가 없는 건 분명합니다. 내일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만상 대행수가 말을 마치고 젓가락을 들었다. 고소한 향이 물씬 풍기는 녹두빈대떡을 척 들었다.


“그럼, 밖에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러시지요.”


만상 대행수가 빈대떡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에험!”


경상 대행수가 헛기침했다. 사랑채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대청마루에서 서서 밖을 살폈다.


깊은 밤이었지만, 그리 어둡지 않았다. 휘영청 보름달이 떴고 은하수가 빛났다. 그래서 앞을 똑똑이 분간할 수 있었다.


경상 대행수가 두 눈을 크게 떴을 때


“헉!”


순간, 화들짝 놀란 소리가 들렸다.


경상 대행수가 놀란 나머지 입을 크게 벌렸다. 그가 버선발로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 앞에 하인 셋이 쓰러져 있었다.


하인들 입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가슴팍에서도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가슴에 칼은 맞은 거 같았다.


“세.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경상 대행수가 크게 외쳤다. 그 소리가 사랑방에 들렸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녹두빈대떡을 맛있게 즐기던 만상 대행수가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젓가락을 상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 큰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이번에는 하인이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친구이자 동업자인 경상 대행수가 내지르는 소리 같았다.


“혹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만상 대행수가 궁금함을 참을 수 없는 듯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서둘러 움직였다. 사랑방에서 나왔다. 대청마루에 서서 상황을 살폈다.


“뭐. 뭐야?”


순간, 만상 대행수의 두 눈이 무쇠 가마솥 뚜껑처럼 커졌다. 매우 놀란 나머지 몸이 불상처럼 굳어버렸다.


마당에 하인 셋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은은한 달빛이 하인들의 옷을 비췄다. 허연 옷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동업자이자, 친구인 경상 대행수도 보였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몸을 벌벌 떨었다. 아주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여, 여보게!”


만상 대행수가 크게 소리치고 급히 움직였다. 변고가 일어났다는 걸 직감했다. 그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친구를 향해 달려갔을 때 갑자기 휙! 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윽!”


쓰디쓴 비명이 들렸다. 마당으로 내려간 만상 대행수가 휘청거렸다. 오만상을 찌푸리다가 오른손을 들었다.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꽉 부여잡았다. 그러다 그 자리에서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으으으~!”


주저앉은 만상 대행수가 연신 비명을 흘렸다. 그의 어깨에 단검 하나가 꽂혀 있었다. 시퍼런 칼날이 달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다, 단검!”


만상 대행수가 왼쪽 어깨에 꽂힌 단검을 확인하고 입을 벌벌 떨었다. 쓰라린 고통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바로 그때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무척 둔탁한 소리였다. 누군가가 무거운 철신을 신고 걷는 거 같았다.


그 소리가 저 앞에서 들렸다.


발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그 정체가 드러났다.


어둠 속에서 다섯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림자 다섯 개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두 행수를 덮치는 거 같았다. 마치 악귀처럼!


갑자기 등장한 다섯의 행색은 심상치 않았다.


모두 검은 복면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렸다. 복면 사이로 눈만 보일 뿐이었다. 옷도 온통 검은색이었다. 허리춤에는 긴 칼을 차고 있었다. 단 한 번에 커다란 대나무를 벨 수 있을 거 같았다.


“흐흐흐!”


곧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복면인들이 모두 한 손을 들었다.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더니 번쩍이는 칼을 높이 쳐들었다.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하하하!”


“하하하!!”


“이, 이게 대체!”


바닥에 주저앉은 경상 대행수와 만상 대행수가 어쩔 줄 몰라했다. 둘이 서로 쳐다보다가 겨우 일어났다.


그때 쿵! 쿵!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절굿공이로 절구를 힘껏 내리치는 거 같았다.


큰 소리가 들리자, 복면인 다섯이 길을 비켰다.



쿵! 쿵!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키가 무척 큰 사람이었다.


“헉!”


만상 대행수와 경상 대행수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둘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곧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에 키 큰 장정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는 장수가 입는 갑옷을 입었다. 갑옷은 붉은 두정갑(두루마기 안에 갑옷미늘 장착)이었다. 커다란 못 머리가 두루마기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머리가 없었다. 분명 걸어 다니는 사람인데 있어야 할 머리가 없었다. 머리가 없는 사람이 뚜벅뚜벅 잘도 걸어 다녔다.


“아, 아니!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대행수 둘이 기겁했다. 머리가 없는 사람이 등장하더니 누구보다 잘 걸어 다녔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귀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당에 엄청난 긴장감이 흘러내렸다.


머리가 없는 장수가 등장했다.


“흐흐흐!:


웃음소리가 들렸다. 머리 없는 장수가 웃는 거 같았다.


이윽고 큰 소리가 들렸다. 천둥 같은 소리였다.


“나는 … 참수된 홍장군이다! 네 머리를 내놔라! 어서!!”


“으악!”


대행수 둘이 커다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다 비명을 잇지 못했다. 둘 다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누가 미숫가루 포대를 목구멍에다 퍼부은 거 같았다.


머리 없는 장수, 홍장군이 성큼성큼 대행수 둘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오른손을 들었다. 오른손 검지로 만상 대행수를 가리키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의 목이 아주 좋구나. 저자의 목을 냉큼 갖고 와라!”


“예이!”


복면인들이 크게 답했다. 곧 누구라 할 거 없이 만상 대행수를 향해 달려갔다. 긴 칼이 어둠 속에서 광채를 뿜어냈다. 광채 다섯 개가 만상 대행수를 향해 돌진했다.


“악!”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질린 만상 대행수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다 까무러치고 말았다. 경상 대행수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과 손님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하하하!”


곧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가 계속됐다. 섬뜩하면서도 호쾌한 웃음소리였다. 목표한 바를 이룬 거 같았다.


일각 후(15분), 홍장군과 복면인 다섯이 기와집에서 나왔다. 그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성에서 힘깨나 쓴다는 경상 대행수 집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홀연 머리 없는 장군 홍장군이 복면인과 함께 등장하더니 손님인 만상 대행수의 목을 요구했다.


커다란 기와집에 정적이 감돌았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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