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홍장군 소문과 물 먹은 곤장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시간이 흐르자, 차차 밝아졌다. 저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으으으~!”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집주인, 경상 대행수가 두 눈을 힘들게 떴다.


그는 까무러쳤다가 닭 우는 소리에 겨우 정신 차렸다. 그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듯 잘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고!”


경상 대행수가 숨을 헐떡거렸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가 침을 힘들게 삼키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어젯밤에 참담한 일이 있었다. 그건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다.


경상 대행수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몸이 꿈틀거렸다. 이제 정신을 차리라는 몸의 신호 같았다.


“아, 아침이네.”


경상 대행수가 두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그러다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이곳은 따뜻한 방이 아니었다. 차디찬 마당이었다. 얼음장에 앉은 듯 엉덩이가 시려왔다. 그가 황급히 고개를 내렸다.


비단옷이 온통 흙투성이였다.


“헉!”


경상 대행수가 두 눈을 꽹과리처럼 크게 떴다.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거 같았다. 그가 서둘러 고개를 들고 사방을 살폈다.


마당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한 몰골로 …. 전쟁터를 방불게 했다.


“아, 아니!”


경상 대행수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하인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미동조차 없었다. 친구인 만상 대행수도 마찬가지였다.


“여, 여보게!!”


경상 대행수가 급히 외쳤다. 만상 대행수를 불렀다.


만상 대행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 가만히 있었다. 오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만상 대행수는 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가슴에 칼이 꽂혀 있었다.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얀 옷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흰옷이 붉은 옷이 되고 말았다.


“아, 안돼!!”


경상 대행수가 황급히 달려갔다. 친구인 만상 대행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이건!”


경상 대행수가 뭔가를 발견하고 오른손을 들었다. 오른손 검지가 이마를 가리켰다. 검지가 마구 떨렸다.


만상 대행수 망건 아래, 이마에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피로 쓴 글씨였다.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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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將軍(홍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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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홍장군!!”


경상 대행수가 세 글자를 읽고 기겁했다.


홍장군은 과거 유명한 자였다. 20여 년 전 평안도에서 난을 일으킨 핵심 주동자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홍장군으로 불렸다. 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홍장군이라고 불렀다. 물론 앞에 두 글자가 붙었다. 바로 ‘역적 홍장군’이었다.


홍장군은 난을 일으키고 구호를 외쳤다. 조정을 차지하는 간신 무리 척결과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 타도를 내세웠다.


그 뜻에 호응하는 많은 이들이 홍장군과 같이했다. 양반, 평민, 천인을 가리지 않았다.


홍장군은 3천의 반군을 모아 관군과 대치했다. 그는 1년 동안 항전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수적 열세와 군량미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관군에 체포되어 참수되고 말았다.


그렇게 홍장군의 난이 진압되었다.


“으악!”


경상 대행수가 커다란 비명을 내지르고 대문을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하인 셋과 만상 대행수가 그의 집에서 죽었다. 이 사실을 어서 관아에 알려야 했다. 한시가 급했다.



그렇게 죽었던 홍장군 20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경상 대행수가 참담한 비극을 관아에 알린 후, 한성부에 비상이 걸렸다.


곧 한성에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 소문은 남산골 사람들이 퍼트렸다. 시초는 경상 대행수 하인들이었다. 그들은 동료가 죽자,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아내들은 동네 빨래터에서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대.”


“홍장군이 누구야?”


“홍길동이를 말하는 거예요? 홍길동은 그냥 이야기잖아요.”


“아이고, 김천댁은 어려서 잘 모르는구나. 20년 전에 홍장군이라고 북방에서 난을 일으킨 자가 있었어. 그때 관군에 잡혀서 죽었는데 다시 나타났대.”


“네에? 그게 말이 되나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고요?”


“그렇데. 마을 어귀에 경상 대행수 집이 있잖아.”


“아, 거기.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요.”


“그 집에 홍장군이 나타나서 하인들을 죽였고 또 누굴 죽였더라. 아! 만상 대행수를 죽였대. 만상 대행수는 손님이었는데 그날 그냥 비명횡사했대.”


“네에? 정말이에요?”


입소문이 점점 퍼져갔다. 마치 발이 달리고 날개가 달린 듯했다. 남산골에서 과거를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소문 전파에 한몫했다.


그들은 집에 연통을 붙이며 이 참담한 소문을 알렸다. 그렇게 홍장군 소문이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말했다.



억울하게 죽은 홍장군이 20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고 … 그것도 임금이 사는 한성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조정에서 입단속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만 갔다.


그렇게 팔도에 긴장감이 조성됐다. 조정에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왕과 신하는 20년 전에 죽은 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경상 대행수 집에서 만상 대행수와 하인 셋이 칼에 찔려 죽은 거 사실이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갔다. 활시위에서 날아간 활처럼 쏜살같이 흘러갔다.




5월 3일 사시(巳時, 오전 9시 30분)


서산군에 신임 군수 김두수가 부임했다. 그가 부임한 후 한 달이 지났다.


신임 군수는 전임 군수와 자못 달랐다. 전임 군수 이칙림은 깐깐한 청백리였다면 신임 군수 김두수는 탐욕스러운 이리이자, 능글능글한 구렁이였다.


김두수는 50대 중반 남자였다. 사납고 심술궂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는 키가 작고 통통했다. 얼굴에는 심술보가 가득했다. 미간은 항상 모여 있었고 코가 코끼리처럼 큰 코주부였다. 두 눈이 실처럼 가늘었고 입술은 뱀처럼 꿈틀거렸다. 수염은 덥수룩했다.


행동도 생김새를 따라갔다. 겉으로는 정도에 맞게 행동했지만, 알게 모르게 안하무인이었다. 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돈을 주고 관직을 샀다는 소문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사또 김두수가 일찍 출근했다. 그는 아침부터 할 일이 있었다.


“아이고!”


동헌 대청마루 앞마당에서 곡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철썩! 철썩!



곤장이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벼락처럼 떨어졌다.



철썩! 철썩!



“아이고! 나 죽네!”


쓰라린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관아에서 계속해서 들렸다.


대청마루 위에 의자가 있었다. 그 의자에 한 사람이 걸터앉았다. 바로 서산 군수 김두수였다.


그는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옆에 서 있는 육방관속(아전)들의 보좌를 받았다. 그 옆에 이방이 있었다. 이방은 아전들의 우두머리였다.


이방은 정호림이었다. 키가 크고 멸치처럼 삐쩍 말랐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별명이 멸치 대가리였다. 쥐처럼 턱이 뾰족했고 수염이 양 입꼬리에만 났다. 턱수염은 거의 없었다.


이방 정호림이 매우 간사한 목소리로 사또에게 아뢨다.


“사또, 저자가 매를 아직 덜 맞은 거 같습니다. 더욱 모질게 매질해야 이실직고할 거 같습니다.”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렇지. 이방이 말을 참 잘했다. 본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매는 아끼면 소용이 없다. 때릴 때는 가혹하게 때려야 한다. 그래야 효과가 있어. 거짓말하는 죄인은 매가 즉효 약이야.”


사또 김두수가 말을 마치고 곤장을 들고 서 있는 나졸들에게 외쳤다.


“지금 너희들 뭐 하는 게냐? 쉬는 게냐? 더욱 세게 때려라!”


“예이!”


곤장이 다시 높이 올라갔을 때, 사또 김두수가 오른쪽 손바닥으로 오른 무릎을 탁! 때렸다. 그가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당장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갖고 와라! 곤장을 물에 푹 담가라. 그런 다음 인정사정없이 때려라! 그래야 더욱 찰지게 때릴 수 있다.”


“예이! 알겠습니다, 사또.”


나졸 중 덩치 큰 나졸이 답했다. 그는 나졸 중 대장이었다. 그가 부하들에게 외쳤다.


“너희 둘! 어서 부뚜막으로 가서 큰 물통을 갖고 와라.”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나졸 둘이 커다란 물통을 들고 마당으로 돌아왔다. 물통은 그 크기가 컸다. 곤장의 반을 푹 담을 수 있었다. 곤장의 길이는 성인 남자 키만 했다.


“흐흐흐!”


나졸들이 곤장을 물통에 담그고 실실 웃기 시작했다. 무척 즐거운 거 같았다.


한 나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료에게 말했다.


“어제 마누라가 바가지를 박박 긁어서 지금 속이 말이 아니야. 저놈한테 화풀이해야겠어.”


“그래, 그래. 좋은 생각이다. 나도 그래야겠다. 사또가 새로 오신 후, 우리가 바빠졌어. 흐흐흐!”


동료가 맞장구쳤다.


물속에 담긴 곤장이 차츰 불기 시작했다.


나졸 하나가 신이 난 표정으로 물통에서 곤장을 꺼냈다. 곤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이 기겁했다. 그는 마당에 엎드린 죄인이었다. 그의 두 눈이 참외처럼 커졌다. 눈동자에 커다란 두려움이 서렸다. 매를 더 맞다간 장독에 걸려 죽을 거 같았다.


신임 군수가 부임한 후, 매 맞다가 죽은 자가 벌써 있었다.


“매우 쳐라!”


인정사정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또 김두수가 말을 마치고 오른손 검지로 죄인의 미간을 가리켰다. 칼로 미간을 찌르는 거 같았다. 딱 봐도 오늘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어, 어머니!”


죄인의 입에서 어머니가 흘러나왔다. 그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섰다. 물먹은 곤장을 맞으면 살 수 없을 거 같았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예이!”


곤장을 든 나졸들이 크게 답하고 곤장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곤장을 적셨던 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지는 물보라가 보기에 참 좋았다. 반면 곤장을 든 마음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의 생사를 경시하는, 사람을 벌레처럼 취급하는 사악함이 깃들었다.


힘없는 백성은 매 맞다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 같았다.


곤장이 푸른 하늘 아래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제 쏜살같이 내려갈 일만 남았다.


그때! 동헌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큰 소리가 들렸다.


“사또!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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