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화 윤진, 동길의 송사에 참여하다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늙은 아낙이고 한 명은 젊은 선비였다.


젊은 선비가 의관을 갖추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반면 아낙은 등을 구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젊은 선비는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강렬한 눈빛이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의관은 낡고 누리끼리했다. 한마디로 볼품없었다. 그 볼품없는 의관 속에서 반전이 있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넘쳐 흘렀다. 이는 타고난 성품이었다.


볼품없는 의관이 그의 기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거 같았다.


구겨진 검은 갓 아래로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어~?”


곤장을 높이 쳐든 나졸들이 선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뒷걸음질 쳤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윤생원님이 오셨네.”


“어떻게 오셨지?”


나졸 대장도 화들짝 놀랐다. 그가 서둘러 이방을 쳐다봤다.


이방도 마찬가지였다. 위풍당당한 선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또 김두수가 갑자기 등장한 선비를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선비는 대체 누구냐? 누구인데 연통도 없이 동헌 마당으로 들어온 게냐?”


이방이 서둘러 답했다.


“사또 저 선비는 제비 마을에 사는 윤진이라는 선비입니다. 윤생원이라고 불립니다.”


“생원이라고?”


생원이라는 말에 사또 김두수가 유진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방이 말을 이었다.


“사또, 그런데 정식 생원은 아닙니다. 소과 복시에서 떨어졌습니다.”


사또 김두수가 인상을 팍 쓰고 말했다.


“이방, 그러면 생원이 아니잖아. 소과 초과에 붙고 복시에도 붙어야 생원 진사지. 저자는 그냥 글공부하는 선비에 불과해!”


“맞습니다. 사또 말이 지당합니다.”


“그럼, 지금 뭐 하는 게냐? 본관이 송사를 처리하는데 저자가 방해했다. 어서 쫓아내라!”


“그, 그게 ….”


이방이 머뭇거렸다.


“엥?”


사또 김두수가 이방의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산군에서 군수는 막강한 실력자였다. 조정에서 내려온 목민관이었다. 그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몇몇 없었다. 지방의 쟁쟁한 양반들뿐이었다.


앞에 있는 자는 소과에 합격조차 못 한 일개 선비에 불과했다.


이방이 황급히 말했다.


“윤진, 아니 윤생원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전임 군수님과 함께 많은 송사를 해결해서 널리 인정받는 인재입니다.

읍내 쟁쟁한 양반들도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존경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생원시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존중의 뜻으로 다들 윤생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관아 사람들도 저자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막지 못한 거 같습니다.”


“뭐, 뭐라고? 저자가 그런 자라고? 그렇게 대단한 자라고?”


“네, 그렇습니다. 똑똑한 건 분명합니다.”


“이방,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서산군에 부임한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 왜 말하지 않았느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많아져서 … 정말 죄송합니다, 사또. 제 불찰입니다.”


“알았다.”


사또 김두수가 말을 마치고 곰곰이 생각했다. 앞에 서 있는 젊은 선비는 지방 양반들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자였다. 그래서 생원이 아니었지만, 생원으로 불렸다.


‘내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어. 굳이 여기 양반들과 척 질 필요가 없어. … 괜한 갈등이 생기면 나만 곤란해져.

그래, 지금은 여기 양반들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해. 존중을 받는 자라면 일단 존중을 해주지. 흐흐흐! 그다음에 구워삶거나 내팽개치면 돼.’


사또 김두수가 갑자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탐욕스러운 이리이자, 능글능글한 구렁이였다. 처세의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방한테 들었소. 이곳 인재인 윤생원이라고요?”


윤진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사또, 소과에 합격하지 못해 생원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들 저를 윤생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윤진입니다.”


“흐흐흐, 좋소.”


사또 김두수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윤생원, 소과에 급제하지 못해도 그만큼 실력이 있으면 생원이나 마찬가지요. 그래서 생원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소. 그런데 왜 여기 오셨소? 그것도 다짜고짜 ….”


윤진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마당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엎드려 있는 죄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뒤에 늙은 아낙이 있었다. 아낙이 치맛자락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윤진이 잠시 죄인을 내려다봤다


죄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윤진을 보고 살려달라는 듯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윤진이 고개를 들고 사또에게 말했다.


“저는 동길의 송사에 도움을 주고자 왔습니다.”


동길은 곤장을 받는 죄인의 이름이었다. 동길이 그 말을 듣고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늙은 아낙이 말했다. 무척 애타는 목소리였다.


“동길아!”


동길이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윤진 뒤에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아들이 모진 매를 맞고 반은 죽어 있었다.


“어머니!”


“동길아!”


동길과 어머니가 서로를 불렀다. 모자가 동헌 마당에서 상봉했다.


윤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엎드린 동길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고 참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사또에게 말했다.


“사또, 동길은 죄인이 아닙니다. 송사에 휘말린 당사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심한 매질을 하다니요? 이건 도의와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뭐라고?”


사또 김두수가 그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젊은 선비가 사또의 일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으으으~!”


김두수가 신음을 흘렸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윤진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아직 신임 군수였다. 그게 발목을 잡았다. 윤진은 지방 양반들의 지지를 받는 자였다.


‘젠장! 저자가 양반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니 … 함부로 대할 수가 없군. 아직은 때가 아니야.’


사또 김두수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윤생원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누구한테 그 말을 들었소?”


윤진이 고개를 돌려 동길의 어머니를 내려봤다. 송사를 말해 준 이는 동길의 어머니였다.


윤진은 동길 어머니의 측은한 모습에 가슴 아파하다가 사또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송사를 알려준 이는 동길 어머니입니다. 동길 어머니한테서 사정을 들었습니다.”


“오, 그렇군.”


사또 김두수가 동길 어머니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윤진이 힘을 주어 말했다.


“저도 송사에 참여하겠습니다.”


“송사에 참여하겠다고?”


사또 김두수가 그건 아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윤생원, 외지부(변호사)를 하겠다는 말이요? 외지부는 불법이요. 장형이나 유배에 처할 수 있소.”


윤생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했다.


“외지부가 불법이라는 건 저도 잘 압니다. 저는 3년 동안 전임 군수님을 보좌했습니다. 송사에 자문했습니다. 다시 자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자문이라?”


“네, 사또께서 원하시는 건 범인을 잡는 겁니다. 그걸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본관을 돕겠다?”


“네, 사또의 선정을 돕고 싶습니다. 사또께서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신다면 다들 사또를 칭송할 겁니다.”


“으흠!”


선정이라는 말에 사또 김두수가 헛기침했다. 그는 욕심이 많은 자였다. 지방관을 하며 큰돈을 벌고 싶었고 아울러 훌륭한 목민관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었다.


윤진이 동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송사를 철저히 처리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명백히 밝힐 수 있습니다.

여기 엎드려 있는 동길은 제가 잘 아는 자입니다. 성실한 농부이자 효자입니다. 나쁜 짓을 할 자가 아닙니다. 제가 사또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본관과 함께?”


“네, 그렇습니다.”


사또 김두수가 순간, 당황했다. 윤생원이라 불리는 청년이 그 기백이 넘쳤다. 당당함이 일품이었다. 이방의 말대로 머리가 좋아 보였다. 김두수가 침을 꿀컥 삼키고 말했다.


“윤생원, 사건의 진상은 본관이 이미 다 밝혔소. 농사꾼 동길은 김진사댁에 몰래 들어가 패물을 훔쳐서 달아났소. 그때 목격자가 있었소. 그들이 동길을 지목했소.”


윤생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목격담을 듣고 싶습니다.”


사또 김두수가 이방을 쳐다봤다. 그러자 이방이 대청마루에서 내려갔다. 그가 마당에 서서 윤진을 바라다봤다. 두 사람의 눈빛이 쨍! 마주쳤다.


이방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님, 사건의 진상은 다 밝혀졌습니다. 동길이 자백만 하면 끝납니다. 이제 돌아가시지요. 신임 사또께서 역정을 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큰 봉변을 당하실 수 있어요.”


윤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이방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방, 그대는 내 능력을 의심하는 게요? 나는 전임 사또와 함께 많은 사건을 해결했소. 그걸 옆에서 봤잖소.”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전임 사또 얘기고 이제 신임 사또께서 오셨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요. 윤생원께서는 글공부에나 전념하시지요.”


윤진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만약 오판한다면 다시는 송사에 관여하지 않겠소. 그러면 되겠소?”


그 말을 듣고 이방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살짝 웃으며 생각했다.


‘오호! 이번 기회에 이 시건방진 놈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겠군. 보아하니 동길의 무죄를 밝히려 하는군.

그동안 소과도 통과하지 못한 주제에 … 지가 사또인 양 설치는 꼴을 두 눈을 뜨고 도저히 볼 수 없었는데, 오히려 잘 됐어. 다 끝난 사건인데 이제와서 뭘 어쩌겠어. 흐흐흐!’


이방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사또에게 말했다.


“사또, 윤생원은 그 능력이 출중한 선비입니다. 중용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윤진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윤진의 능력이 명불허전인지 헛소문인지 알고 싶었다. 그가 말했다.


“윤생원, 좋소. 송사에 참여하시오.”


“감사합니다. 사또.”


윤진이 사또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방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가 송사 내용을 밝혔다.


송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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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5월 2일 인시(寅時, 새벽 3시)


읍내와 가까운 언덕인 까치고개에 변고가 있었다.

김진사댁에 도둑이 들었다. 김진사는 읍내에서 유명한 부호였다.

도둑은 한 명이었다. 부인이 곤히 잠들었을 때 안방을 털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측간으로 가던 하인에게 들켰다.

도둑은 재빨리 담을 넘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방에서 나온 김진사와 친구 둘이 도둑을 목격했다.

셋은 담 너머로 도둑을 봤다.

도둑의 인상착의는 남달랐다. 눈썹이 아주 진했고 키가 매우 큰 남자였다.

읍내에 그 인상착의에 딱 들어맞는 농사꾼이 있었다. 그는 눈썹이 아주 진하고 키가 매우 큰 동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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