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화 김진사댁 목격자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이방이 송사의 내용을 다 밝히고 큰 목소리로 강조했다.


“동길이 도둑이라는 것을 하인 둘과 김진사 어르신, 박생원 어르신. 이참봉 어르신이 다 목격했습니다.”


윤진이 말했다.


“하인들과 그분들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먼저 하인 둘이 말하길, 안방에서 나온 도둑이 자기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답니다. 곧 사랑방 쪽으로 도망쳤답니다. 키가 무척 큰 사람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음, 알겠소.”


윤진이 동길의 키를 살폈다. 동길은 읍내에서 키가 크기로 유명했다. 윤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키가 큰 사람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보통 사람은 담벼락 앞에 서면 얼굴이 다 가렸다. 반면 동길은 옷고름이 보일 정도였다. 키가 대략 7척(190cm) 이상이었다.


이방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밤중에 난데없이 들리는 소리를 듣고 사랑방에서 나오신 집주인 김진사 어른신, 박생원 어르신. 이참봉 어르신 모두 똑같이 범인의 키가 무척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격자 모두 일관된 진술이었습니다.”


“아니야! 정말 아니야! 이건 모함이야.”


매를 맞고 엎드려 있던 동길이 그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그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아닙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어젯밤 저는 김진사 어른댁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주막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그만 길에서 쓰러져 길바닥에서 잤습니다. 해가 뜰 때 겨우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어머니가 증인입니다.”


이방이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동길에게 반박했다.


“동길아, 네 어머니 말은 증인이 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목격담이 필요해.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어.”


동길이 이를 악물었다. 두 눈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방이 말을 이었다.


“동길아, 네가 주막에서 밤늦게까지 술 먹은 건 본 사람이 있어. 그런데 네가 산길에서 쓰러져 길에서 잤다는 건 본 사람은 없어. 결국, 네 말은 신빙성이 없는 거야. 거짓인 거지.”


“아닙니다. 제 말은 진실입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동길이 울먹이며 항변했다. 무척 억울한 거 같았다.


윤진이 이방과 동길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둘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려면, 무엇보다 진위를 따지는 꼼꼼한 과정이 필요했다. 사건의 배경과 시간의 흐름, 증거 확보, 목격자의 진술 등이 중요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건 인간의 농간이 숨어있는 게 분명했다.


윤진이 생각을 이었다.


‘동길은 집안 형편이 나쁜 편이 아니야. 부부관계도 원만하다고 들었어.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열심히 일하는 농사꾼이야.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술을 과하게 좋아해. 그래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거야. 주사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 음!’


윤진이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계속 생각을 이었다.


‘이 사건은 술과 관련됐어. 술이 중요한 사건이야. 동길은 어젯밤 밤늦게까지 주막에서 술을 많이 마셨어. 동길도 이를 인정했어. 그걸 본 목격자도 있어.

동길은 술에 취한 채 주막에 나섰어. 그 이후의 행적이 중요해. 그게 바로 사건을 풀 열쇠야.

동길이 범인이 맞는다면 술을 먹고 술김에 김진사댁으로 몰래 들어가 패물을 훔친 거고 아니라면 억울한 누명을 쓴 거야.

동길이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 누가 동길이 흉내를 낸 거야.’


이방이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님, 동길은 키가 7척이 넘습니다. 그런 키를 가진 사람은 우리 읍내에서 동길이 빼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명백한 진술이 또 있습니다. 세 어르신이 범인의 얼굴을 목격했습니다. 동길의 두껍고 진한 눈썹을 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동길이 범인이 맞습니다. 이건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윤진이 그 말을 듣고 급히 이방에게 말했다.


“세 어르신이 동길의 얼굴을 봤다고요?”


이방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세 어르신의 진술이 일치한다면 동길이 범인의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음~!”


윤진이 신음을 흘렸다.


“아닙니다. 저는 김진사댁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산길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동길이 크게 소리쳤다. 동길 어머니는 아들이 도둑이 아니라며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동길 어머니가 윤진을 바라봤다. 아들의 억울함의 제발 풀어달라는 간절한 눈길이었다.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아침 일찍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동길 어머니가 그의 집을 찾아왔다. 동길 어머니와 윤진 어머니는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다. 둘은 신분이 달랐지만, 서로 친하게 지냈다.


동길 어머니가 윤진에게 사정했다. 아들이 누명을 쓰고 관아에 잡혀갔다고 하소연했다. 동길이 해 뜰 무렵에 집에 돌아왔는데 나졸들이 들이닥쳤고 범인이 분명하다며 끌고 갔다고 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전에 고문을 받다가 죽은 자가 있다며 한시가 급하다고 했다. 동길에게 어서 자백하라며 모진 매를 때릴 거라고 말했다.


동길 어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릴 때 윤진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녀가 친구의 핼쑥한 얼굴을 보다가 아들에게 말했다. ‘지금 뭐 하냐고? 어서 도와주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윤진이 급히 움직였다. 의관을 차려 입고 동헌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신임 사또 김두수가 부임한 후, 서산군에 소문이 나돌았다. 신임 군수가 사람을 잡아먹는 인왕산 호랑이처럼 무섭다는 소문이었다.


동길 어머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절도죄로 관아로 잡혀갔던 한 사람이 실제로 죽었다. 어서 이실직고하라며 모진 고문을 받다가 기절했고 며칠 뒤 옥중에서 사망했다. 장독이 그만큼 무서웠다.


윤진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서둘렀다. 그는 관아 정문에서 평소에 잘 아는 나졸과 만났다. 그 나졸한테 자초지종을 들었다. 나졸이 말하길, 오늘 사또가 진상을 다 밝히고 자백을 받는다고 했다.


어젯밤 김진사댁으로 출동한 나졸들이 목격자 진술을 받았고 그 목격자 진술대로 동길을 체포했다고 했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범인은 동길이 분명했다. 인상착의가 같았다.


나졸이 말을 더했다. 이방이 출근하면서 형방과 나눈 말도 전했다. 목격자 진술이 일치하고 분명한 만큼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할 거라는 말이었다.


“음~!”


윤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황상 동길이 범인 같았다. 그런데 동길이 범인이 분명하다고 아주 크게 소리치는 거 같았다. 그래서 뭔가가 이상했다.


‘사건이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이상한 점이 있어. 김진사댁을 털러 간 도둑이 자기 정체를 너무나 쉽게 드러냈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랬어.

먼저 안방을 털고 나오다가 하인에게 들켰고 이후 사랑채로 가서 담을 넘다가 김진사와 손님들에게 들켰어.

이게 우연한 일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가 짜고 일을 벌이는 거야. 일종의 덫 같아.’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생각을 마치고 이방에게 물었다.


“목격자들이 도둑의 얼굴을 정확하게 본 게 맞소? 당시는 새벽이었소. 범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려울 때요.”


이방이 그 말을 듣고 실실 웃었다. 그 질문을 예상했다는 거 같았다. 그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윤생원님, 물론 당시는 인시였습니다. 그래서 꽤 어두운 때였죠. 보통 때 같으면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겠지만, 어젯밤은 달랐습니다.

보름달이 떴습니다. 커다란 보름달이 휘영청 떠서 밤을 밝혔습니다. 달빛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세 어르신이 담 너머로 보이는 도둑의 눈썹을 봤습니다.”


도둑의 눈썹을 봤다는 말에 윤진이 급히 말했다.


“이방, 정확히 말 하시오. 세 어르신이 도둑의 면상을 본 것이요? 아니면 눈썹만 본 게요?”


이방이 대답 대신 침을 꿀컥 삼켰다. 그가 잠시 뜸을 들였다. 뭔가가 켕기는 거 같았다.


“어서 말 하시오. 이방!”


윤진이 재촉했다. 이방이 에험!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당시 … 도둑이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려서 눈하고 눈썹만 봤다고 세 어르신이 증언하셨습니다.”


윤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서둘러 말했다.


“뭐라고? 그게 어찌 면상을 봤다는 증언이 되오?”


이방이 답변했다.


“면상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 진하디진한 일자 눈썹을 봤으면 된 거 아닙니까?

동길은 진하디진한 숯 검댕이 눈썹에 미간이 아주 좁은 일자 눈썹입니다. 그런 눈썹과 미간을 가진 자는 동길 빼고는 없습니다.

이 정도면 사람의 인상을 구분하고 지목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했다.


“이방, 그건 무리한 생각이요.”


이방도 고개를 가로젓고 답했다.


“윤생원님, 무리한 생각이 아닙니다. 아주 타당한 생각입니다. 사또도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이방이 말을 마치고 사또 김두수를 쳐다봤다. 김두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방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윤진이 이를 악물었다. 관아 사람들이 확신하고 있었다. 동길이 범인이라는 확증이 9할이 넘어 10할이 다 된 거 같았다. 그래서 이방이 그 말을 한 거였다. 동길의 자백만 남았다고 이방이 말했었다.


윤진이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방, 당시 일을 숨김없이 말해주시오. 타당하면 내가 물러나리다.”


“알겠습니다. 어르신들의 진술을 말하지요. 숨김없이 ….”


이방이 말을 이었다.


“김진사댁으로 몰래 들어간 도둑은 안방에서 폐물을 훔치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뒷간으로 가던 하인 둘에게 들켰습니다.

도둑은 사랑채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당시 사랑방에는 세 어르신이 밤을 새우며 바둑을 두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바둑 삼매경에 빠졌을 때 도둑 잡아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세 어르신이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셨습니다.

세 어르신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봤을 때 후다닥! 담을 넘는 소리가 들렸고 담벼락 뒤에서 웬 거한이 불쑥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거한이 바로 도둑이었습니다. 도둑이 담을 넘고 몸을 일으킨 겁니다. 그때 세 어르신이 도둑의 얼굴을 봤습니다.

어르신들 진술에 따르면 도둑은 얼굴과 머리를 복면으로 가렸고 눈과 눈썹만 보였습니다. 그 눈썹이 아주 두꺼운 일자 눈썹이었다고 증언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동길이 바로 7척 장신에 검디검고 두꺼운 일자 눈썹의 소유자입니다.

동길은 까치고개 주막에서 술을 먹고 자시(子時, 밤 23시~24시) 이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주막에서 김진사 어르신 댁까지 멀지 않습니다. 반시진(1시간)이면 넉넉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김진사댁에 미리 도착해서 때를 기다렸다가 범행을 저지른 게 분명합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요? 윤생원님.”


이방이 조리 있는 말솜씨를 뽐냈다. 이방은 생김새와 달리 무척 영특한 자였다. 무척 말라서 어릴 적부터 멸치 대가리라고 불렸지만, 그 영민함만큼은 읍내에서 알아줬다.


“…….”


윤진이 입을 열지 못했다. 이방의 말에 즉각 맞대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사또 김두수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방의 현란한 언변이 마음에 드는 거 같았다. 이방의 말솜씨는 말 그대로 청산유수였다. 물 흐르는 듯했고 빙판길에서 썰매가 자유자재로 미끄러지는 거 같았다.


“하하하! 윤생원, 이만하면 된 거 같은데 ….”


사또 김두수가 윤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허튼짓은 그만하고 썩 물러나라는 소리였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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