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 악의 기록>
유강인이 봉투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잠시 내려다봤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말했다.
“여러분, 사진을 같이 봅시다.”
그러자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 김후식 교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어서 사진을 봅시다.”
“뭐가 찍혔는지 무척 궁금해요.”
넷이 유강인과 함께 사진을 둘러봤다. 눈동자 10개가 사진을 주시했다. A4 반절 크기 사진이었다.
20초가 흘렀다.
황정수가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가 급히 말했다.
“사람들 뒤에 현수막이 있어요. 현수막을 읽어보세요. 이 사진은 영화감독 천일수 기념관 핸드 프린팅 기념사진이에요.”
“핸드 프린팅이라고?”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모여 있는 사람들 뒤에 현수막이 있었다. 현수막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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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천일수 핸드 프린팅 기념물 개장식
2025년 10월 25일, 천일수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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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의 글자가 선명했다.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사진의 정체를 알아냈다.
유강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군. 핸드 프린팅 개장 행사 중에 찍은 사진이야. 대략 20일 전이군.”
사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를 찍은 장면이었다.
사진 한가운데에 핸드 프린팅 기념물이 있었다. 성인 허리 높이였다.
기념물 양옆으로 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대략 12명 정도였다.
유강인이 기념물 양옆을 살폈다. 기념물 양옆에는 행사의 주인공과 함께 중요한 인물이 있기 마련이었다.
유강인의 예상대로였다.
기념물 우측에 그날의 주인공인 천일수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바로 옆에 부인이 있었다.
기념물 좌측에는 백두성이 있었다. 그도 천일수처럼 활짝 웃었다.
유강인의 눈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행사 참가자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중에서 아는 사람은 천일수와 그의 부인인 우미희, 백두성 세 사람밖에 없었다.
“그렇군.”
유강인이 사람들을 다 살핀 후 핸드 프린팅 기념물을 주시했다. 맨 위에 천일수의 손도장과 사인을 새긴 동판이 있었다. 동판은 우아한 대리석 구조물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핸드 프린팅 행사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는 유명한 영화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사였다.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이 사진은 백두성 회장이 김후식 교장한테 맡긴 거야. 매우 중요한 물건임이 틀림없어.
그런데 이게 의미하는 게 뭐지? 핸드 프린팅 기념물 개장식이 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
유강인이 사진 앞면을 다 살피고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을 살폈지만,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백지였다.
유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새로운 난제가 그 앞에 던져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후식 교장이 목숨을 걸고 지킨 사진이었지만, 이 사진이 뭘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평범한 핸드 프린팅 기념물 개장식 사진일 뿐이었다.
“정신 차려야 해.”
유강인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 차렸다.
지금은 무척 중요한 순간이었다. 비밀의 문을 열고 그 안을 살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안에 특별한 게 없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방이었다.
예상외의 상황이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유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건을 처음부터 복기하기 시작했다.
추리력을 총동원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백두성은 90살이 되자,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폭로를 막으려는 자들이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두성은 의심을 피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을 택했다. 그건 바로 자서전 재출간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자서전 재출간도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백두성은 만약에 대비했다. 비밀은 자서전 2권과 3권에 실려 있었다. 자서전 2권과 3권에 문제가 생길 걸 대비해 비밀이 없는 자서전 1권에 부록을 실어서 비밀 코드를 은밀하게 심었다.
백두성은 독을 먹고 죽기 전, 유언을 통해 비밀 코드의 존재를 유강인에게 알렸다.
유강인과 그의 어머니가 해독한 비밀 코드는 ‘미스터김’, ‘구왕자’, ‘연풍 초등학교’, ‘교장’이었다.
유강인은 비밀 코드를 다 풀고 사진 한 장을 확보했다. 사진은 백두성이 남긴 마지막 단서였다. 비밀을 푸는 열쇠와 같았다.
그런데 사진에는 특별한 정보가 없었다. 올해 10월 25일 영화감독 천일수 핸드 프린팅 개장식 기념사진일 뿐이었다. 평범한 사진이었다.
‘기념사진이라 ….’
깊은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갑자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그렇구나! 교장이 마지막 코드가 아니었어. 이게 마지막 코드야. 이 사진에서 암시하는 게 있어. 그걸 찾아야 해. 그게 바로 다섯 번째 비밀 코드야!’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다시 사진을 뚫어지게 내려다봤다.
정찬우 형사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이 사진이 의미하는 게 뭐죠? 딱 봐도 중요한 사진 같은데 대체 뭘 의미하는 거죠? 사진 속 인물들이 중요하다는 말인가요? 이 사람들을 다 조사해야 하나요.”
황정수가 입을 열었다
“백두성 회장님하고 천일수 감독님이 같이 있으니 중요한 사진이 맞아요. 둘은 비밀을 공유했잖아요. 구왕자 멤버이기도 하고.”
황수지도 말했다.
“핸드 프린팅은 영화인들한테 중요한 행사에요. 역사적인 기념물을 만드는 거잖아요.”
“기념물!”
기념물이라는 말에 유강인의 두 눈이 번쩍였다. 입을 크게 벌렸다. 드디어 뭔가를 알아낸 듯했다. 그가 급히 말했다.
“그렇구나! 바로 핸드 프린팅이야. 손도장과 사인이 새겨져 있는 이 동판을 말하는 거야! 마지막 비밀 코드는 핸드 프린팅이었어.”
황정수가 이게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에? 핸드 프린팅 동판이라고요? 탐정님, 그게 왜 중요하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씩 웃었다. 유레카의 표정이었다.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핸드 프린팅 기념물 안에 뭔가가 들어있겠지. 이걸 깨야 해!”
“네에? 기념물을 깨야 한다고요?”
황정수, 황수지, 정찬우 형사, 김후식 교장이 모두 깜짝 놀랐다.
교장실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유강인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코드를 확보했다.
마지막 코드는 바로 천일수 핸드 프린팅 기념물이었다. 사진이 이를 증명했다.
이제 비밀의 봉인을 풀어야 했다.
유강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일수 기념관에 이 기념물이 있어. 어서 천일수 기념관 관장한테 연락해. 우리가 찾아간다고 알려.
모든 일은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해. 아주 은밀하게 움직여야 해.”
“은밀히요?”
황정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응! 스파이가 또 있을 수 있어. 항상 조심해야 해. 서울청에 들러서 다른 차로 갈아타자고. 그렇게 은밀하게 이동해야 해.”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서울청에 연락하겠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큰 목소리로 답했다.
황정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천일수 기념관이 어디에 있지?”
황정수가 천일수 기념관 위치를 찾았다. 그가 ‘아이고!’를 외치고 말했다.
“탐정님, 천일수 기념관이 전라북도에 있어요. 갈 길이 아주 멀어요.”
“그래? 전북이라면 … 아주 멀군. 어서 서두르자고.”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이 난 듯 걸음을 멈췄다. 그가 김후식 교장을 찾았다.
김교장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유강인이 김후식 교장한테 공손히 인사했다. 김교장은 백두성이 맡긴 물건을 잘 보관하고 지켰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아이고. 유강인 탐정님. 이럴 실 필요 없습니다.”
김후식 교장도 맞절했다. 그렇게 둘이 서로를 존중했다. 둘은 통하는 게 있었다.
둘 다 강력한 악 앞에서 결코, 굴하지 않았다. 유강인은 범인을 반드시 잡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수사팀을 이끌었고 김교장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작별 인사가 끝나자, 유강인과 조수 둘, 정찬우 형사가 교장실에서 나갔다.
“휴우~!”
김후식 교장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강인 탐정님! 반드시 범인을 잡을 겁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
영화감독 천일수 기념관은 전라북도 장진시에 있었다. 서울청에서 출발한 차 세 대가 급히 전라북도 장진시로 향했다.
장진시는 서해안과 가까운 곳으로 천일수 감독의 고향이었다. 신선한 해산물과 대나무 공예품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차 세 대가 장진시 시내로 들어갔다. 10분을 더 달리자, 큰 사거리가 나왔다. 사거리 우측에 천일수 기념관 간판이 보였다. 앞으로 300m였다.
차들이 속력을 더했다. 저 앞에 천일수 기념관이 보였다. 커다란 3층 건물이었다. 1리터 우유갑처럼 길쭉했다.
기념관 앞에 주차장이 있었다. 30대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들이 많았다.
차 세 대가 주차장에 주차했다.
앞에 검은색 밴이 있었다. 검은색 밴에서 차 문이 열리더니 네 명이 내렸다. 30대에서 40대 나이였다. 모두 키가 크고 건장했다. 딱 봐도 사복 경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전북경찰청 소속 정예 경찰이었다. 대한민국 경찰청의 지원 요청을 받고 신속하게 출동했다. 신분을 숨긴 채 천일수 기념관을 감시했다.
이제 늦은 오후였다. 햇살이 점차 약해지면 오후가 끝나갔다.
차에서 내린 유강인과 조수 둘이 걸음을 옮겼다. 강원도 연풍시에서 서울청을 들렀다가 전라북도 장진시까지 쉴새 없이 달려왔다.
“아이고!”
운전을 도맡은 황수지가 피곤한 듯 혀를 쭉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말했다.
“수지, 피곤하지? 수지는 차에서 쉬고 있어. 편의점에 가서 피로회복제를 사다가 마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말짱해요!”
황수지가 정색하고 말했다.
유강인이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고 말을 이었다.
“수지! 내 말 들어. 수지는 운전을 책임지잖아. 무척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수지는 피곤하면 안 돼. 어서 쉬어. 의욕도 좋지만, 안전이 제일 우선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황수지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좀 쉬고 기념관으로 들어갈게요.”
“편의점이 어디 있지?”
황정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편의점을 발견하고 황수지에게 말했다.
“조수님은 차에 들어가서 쉬어. 선임 조수가 피로회복제를 사 올 테니.”
“그럼, 고마운 일이죠.”
“흐흐흐! 사촌 오빠만 믿어.”
황정수가 말을 마치고 편의점을 향해 달려갔다.
“선배님, 어서 가시죠. 관장님이 선배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찬우 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저 앞에 기념관 정문이 있었다.
유강인과 형사들이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
정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 핸드 프린팅 기념물 안에 정말로 뭔가가 있는 건가요?”
유강인이 답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분명 뭔가가 있기는 있을 거야. 백회장님이 그 사진을 김교장님께 맡긴 건 다 이유가 있어. 핸드 프린팅 기념물이 바로 마지막 비밀 코드야.”
“그렇군요. 여기까지 왔으니 성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마, 어서 가자고. 지체할 틈이 없어.”
유강인이 걸음을 재촉했다. 출입문을 힘껏 열었다. 끼익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1층 로비에 사람들이 많았다. 한쪽 구석에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강인이 급히 핸드 프린팅 기념물을 찾았다. 두 눈에 기념물이 보였다.
로비 한가운데에 영화감독 천일수 핸드 프린팅 기념물이 그 위용을 뽐냈다. 기념물 대리석이 천장의 조명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기념물은 성인 허리 높이였다. 맨 위에 손도장 동판이 우아한 대리석 구조물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정육면체 돌들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렸다.
사복 경찰 다섯이 기념물 근처에 있었다. 기념물을 철통같이 지켰다.
유강인이 로비로 들어오자, 한쪽 구석에 모였던 사람들이 기념물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유강인이 기념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모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 사람이 유강인을 향해 걸어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노신사였다. 70대로 보였다.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가 유강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이시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습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영화감독 천일수, 영화배우 백두성, 영화배우 김정태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유강인이 고인이 된 셋의 이름을 말하자, 노신사가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아, 그렇군요. 벌써 세 사람이나 유명을 달리했군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천일수 기념관 관장 나찬성입니다.”
“반갑습니다. 나관장님.”
나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유강인 탐정님. 천일수 감독님 핸드 프린팅 기념물 안에 뭔가가 있다는 말인가요? 경찰한테 그렇게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기념물 안에 뭔가가 있는 거 같습니다.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저 기념물을 해체해야 합니다.”
“해, 해체라고요?”
“네,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게 ….”
나관장이 선뜩 답을 하지 못했다. 천일수 감독 핸드 프린팅은 기념관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아울러 거액을 들여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