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_탐정 유강인 18편_44화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by woodolee

44화_드디어 물증을 확보하다


유강인이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나관장이 말했다.


“먼저 안에 뭔가 있나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으면 좋겠습니다. 기념물을 깼다가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 낭패입니다. 투시 같은 걸 할 수 없을까요?”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젓고 답했다.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벌써 세 명이나 죽고 네 명이 납치됐습니다. 납치된 사람 중 한 명만 죽기 직전에 겨우 구출했습니다. 세 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시간을 계속 지체하다간 추가 피해자가 더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더 죽을 수 있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


잠시 시간이 흘렀다.


나관장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한 직원이 헐레벌떡 로비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관장에게 달려오더니 서둘러 입을 열었다.


“관장님, 기념물 제작 업체에 의뢰한 결과, 비밀 특약이 있었답니다.”


“뭐? 비밀 특약이라고?”


나관장이 깜짝 놀랐다. 직원이 말을 이었다.


“천일수 감독님이 기념물 안에 철제 상제를 넣어달라고 비밀리에 부탁했답니다. 그래서 동판이 붙어있는 대리석 안에 상자를 넣었답니다.”


“뭐라고? 그건 금시초문인데?”


“제작 업체에서 비밀 계약서도 보냈습니다. 이걸 보세요.”


나관장이 비밀 계약서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천일수가 관장 몰래 일을 처리한 게 분명했다.


천일수 기념관의 주인은 다름 아닌 천일수였다. 관장은 기념관을 관리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아하! 일이 잘 풀리는군.”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예상이 딱 들어맞았다. 비밀을 밝힐 수 있는 뭔가가 기념물 안에 있었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이제 비밀을 밝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바로 앞에 비밀을 품고 있는 커다란 상자가 있었다. 이 상자를 깨면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비밀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로비에 침묵이 감돌았다. 나관장이 별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념물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성껏 만든 고가의 기념물이었다. 만든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 기념물을 깨부수는 건 누구라도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기념물을 결국, 깨야 하네.”


“아이고, 그렇게 됐구나.”


“뭐 다시 만들어야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느끼고 망설이고 있을 때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황정수가 네 사람과 함께 로비로 들어왔다.


“탐정님!”


황정수의 목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고개를 돌렸다. 황정수와 함께 네 사람이 보였다.


황정수가 서둘러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천일수 감독님 유가족이 왔습니다.”


“뭐? 유가족이라고?”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앞에 있는 네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고 천일수 감독의 유가족이 맞았다. 부인과 아들 둘, 딸 하나가 무척 슬픈 표정으로 기념관을 찾았다.


그들은 서울청의 연락을 받고 급히 천일수 기념관으로 달려왔다.


유강인이 기념물과 유가족을 번갈아 바라봤다. 유가족 앞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의 기념물을 깨야 했다.


이는 동의를 구해야 할 상황이었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유가족한테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했다.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려면 핸드 프린팅 기념물을 해체해야 합니다. 해체 과정에서 동판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 점 양해 바랍니다.

안에서 물증을 찾으면 천일수 감독님을 죽인 범인을 반드시 잡겠습니다.”


“하아~!”


부인이 크게 한탄하고 눈을 꼭 감았다. 자칫하면 남편의 유산인 핸드 프린팅 동판이 훼손될 수 있었다.


그녀는 차마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은 거 같았다. 마치 무덤을 파헤치는 것처럼 괴로워했다.


1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로비에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공기도 무거웠다.


생각에 잠겼던 부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잠시 가족회의를 하겠습니다. 의견을 모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자, 유가족이 모여서 말을 나눴다.


5분의 시간이 또 흘러갔다.


이제 의견이 모아진 듯했다. 유가족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50대 초반 남자였다.


그는 아버지 살해 용의자로 몰려 체포됐던 막내아들 천지호였다. 억울한 누명을 씌고 피를 토했던 불쌍한 남자였다.


유강인이 천지호를 바라봤다.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참 많이 닮았다고 ….


천지호도 유강인을 바라봤다.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둘은 오늘 처음 만났다.


천지호한테 유강인은 무척 고마운 존재였다. 천지호가 아버지 살해범으로 내몰렸을 때 유강인이 그 누명을 풀어줬다.


유강인은 천지호의 은인이었다.


유강인을 잠시 바라보던 천지호가 씩 웃었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더니 공손히 인사했다. 감사의 표시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 저는 아버지 살해범으로 몰렸던 막내아들 천지호입니다. 제 누명을 벗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유강인이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그 억울함을 풀어야죠.”


천지호가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3초 정도 생각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그가 말을 이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유강인 탐정님, 가족회의 결과, 아버지 핸드 프린팅 동판이 훼손돼도 상관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념물 안에서 나온 단서로 아버지를 죽이고 저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백번이라고 깨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천지호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범인 때문에 아버지와 화해할 마지막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범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어서 일을 시작하세요. 그래서 단서를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핸드 프린팅 동판을 훼손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


천지호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러다 결심을 한 듯 입을 뗐다.


“저 안에서 뭐가 나오든, 우리 가족은 이를 감추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설명 아버지의 치부가 드러나도 이를 감추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치부가 드러난다면 아버지 대신 우리 유가족이 세상에 사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불륜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저를 볼 때마다 괴로워하셨습니다. 저도 그걸 매번 느꼈습니다.

아버지한테 저는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자기 잘못을 일깨우는 껄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저도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똑같이 괴로웠습니다. 아버지가 괴로워하는 만큼 저도 괴로웠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사과할 건 반드시 사과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훌륭하신 선택입니다.”


유강인이 감복한 목소리로 답했다.


천지호가 흐느꼈다. 그러자 어머니와 형, 누나가 그에게 다가와 아픔을 달랬다. 아버지가 죽은 후 가족이 단단히 뭉쳤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안타까웠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제 기념물을 깨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유강인이 관장을 찾았다. 나관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직원들에게 작업을 지시했다.


잠시 후 건장한 체격의 직원 둘이 연장을 들고 로비로 들어왔다. 기념물 근처에 두꺼운 장판을 깔았다.


작업을 시작하자, 안전 조치가 취해졌다. 사람들이 기념물에서 멀찍이 물러났다.


핸드 프린팅 동판은 정육면체 대리석 앞면에 붙어있었다. 돌끼리 단단하게 붙어있어서 동판을 뗄 수 없었다. 동판 훼손은 피할 수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연장을 든 직원 둘이 관장을 쳐다봤다. 나관장이 유강인을 바라봤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 손을 들었다. 작업을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시작하세요!”


나관장이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크게 울렸다. 직원 둘이 연장을 높이 쳐들었다.



찌이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망치로 내리치는 소리도 들렸다. 대리석이 갈라지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조심해!”


“아이고, 이런!”


직원 둘이 울상을 지었다. 동판 귀퉁이가 속절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들은 동판을 어떻게든 지키려 했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닥으로 나가떨어진 동판 조각이 데굴데굴 굴렀다.



쾅! 쾅!



한동안 망치 소리가 울렸다. 그러다 망치 소리가 딱 멈췄다.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직원 둘이 대리석 상자를 깨고 안을 살폈다. 그중에 하나가 소리쳤다.


“안에 구멍이 있어요. 작은 철제 상자가 들어있어요.”


“아!”


유강인이 탄성을 지르고 손뼉을 짝 쳤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가 크게 외쳤다.


“그 상자를 갖고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유강인 탐정님.”


직원이 아주 조심스럽게 철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를 들고 유강인을 향해 걸어갔다.


유강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이제 상자를 확인해야 했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 품에서 흰 장갑을 꺼냈다.


가로 10cm, 세로 15cm 크기 철제 상자였다. 딱 봐도 오래된 상자였다. 곳곳에 녹이 슬었다.


“여기 있습니다.”


직원이 철제 상자를 건넸다. 유강인이 철제 상자를 받고 침을 꿀컥 삼켰다. 잠시 말없이 상자를 내려다보다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상자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자가 열리자, 사람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참담한 비극이 연달아 일어났는지 무척 궁금한 표정이었다.


유강인이 상자 안을 살피다 한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물건이 잡혔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물건을 하나둘씩 꺼내자, 그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물건을 살피던 유강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녹음테이프, 수첩, 사진이야. 아주 오래된 물건이군.”


“그, 그럼, 물증!”


옆에 있던 정찬우 형사가 급히 외쳤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얀 천장에서 백두성 얼굴이 보이는 거 같았다. 옆에 천일수도 있는 거 같았다. 두 노인이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유강인이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이제 물증을 잡았다.


수십 년간 철저히 숨겼던 비밀이 유강인 수중에 떨어졌다.


유강인이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찾았어.”


“하하하!”


“정말 잘 됐어요. 고생한 보람이 있어요.”


황정수, 황수지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박물관 관장을 비롯한 직원들도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고 천일수 유가족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손뼉을 쳤다.


그 박수 소리가 우레 같았다. 로비에서 크게 울렸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현기증을 느낀 듯 휘청였다.


황수지만 피곤한 게 아니라 유강인도 피곤했다. 그는 밤을 새우며 자서전 원고를 읽고 또 읽었다.


“탐정님!”


황수지가 깜짝 놀라서 크게 외쳤다.


유강인이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번 헛기침하더니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힘을 내야 했다.


힘찬 발소리가 들렸다.


탐정 유강인이 철제 상자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가 따랐다. 모두 씩씩하게 걸어갔다.


유강인이 해냈다.


백두성의 마지막 말과 자서전 1권에 담긴 4개의 비밀 코드를 해독해 비밀을 풀 열쇠인 사진을 확보하고


그 사진 속에 담긴 마지막 비밀 코드마저 해독해 수십 년간 잠들었던 물증을 확보했다. 참 힘든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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