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이번에는 사진을 살폈다.
아주 오래된 사진들이었다. 흑백 사진들이 많았고 컬러 사진은 소수였다.
사진의 내용은 다 똑같았다. 둘이 거액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는 장면이었다.
의뢰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오른쪽에 있었다. 의뢰인의 얼굴은 아주 잘 보였다.
반면 왼쪽에 있는 미스터김은 악수하는 손만 보였다.
유강인이 사진을 보고 중얼거렸다.
“미스터김이 일부러 정체를 감췄군.”
유강인이 여러 사진 중에서 한 사진을 주목했다.
자서전 출간 기념회에 참석했다가 사망한 김정태 배우의 사진이었다.
김정태 배우도 의뢰인이었다. 김정태 옆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화장을 진하게 한 화려한 외모의 여인이었다.
김정태는 차연자와 함께 미스터김에게 의뢰했다. 리허설을 이용해 하연미 배우의 눈을 공격하라고 의뢰했다. 하연미 캐스팅 탈락이 목적이었다.
“김정태! 차연자!”
유강인이 둘을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었다.
유강인이 한 사진을 뚫어지게 보자, 차수호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진을 슬쩍 보고 말했다.
“유탐정, 김정태 배우 옆에 있는 사람이 차연자 배우야. 둘이 당시 사귀는 사이였어. 약혼까지 했더군.
차연자 배우하고 하연미 배우는 당대에 라이벌 관계였어. 둘이 대작 ‘전설의 여걸, 흑나비’ 캐스팅을 다퉜는데 승자는 하연미 배우였어.
흑나비 역을 맡은 하연미 배우는 액션 연기 리허설 중 사고를 당하고 말았어. 눈을 심하게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어.
상대역 단역 배우가 몽둥이로 눈을 내려쳤다는군. 그때 실수라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실수가 아니었던 거야. 큰 부상이어서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대.
이후 하연미 배우는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했어. 시각 장애인으로 살다가 1992년에 사망하고 말았어.”
“그렇군요.”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검은 욕심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졌다. 어둠 속에 살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차반장이 말을 이었다.
“의뢰인 차연자 배우는 2010년에 사망했어. 소원대로 ‘전설의 여걸, 흑나비’에 캐스팅됐지만, 영화가 대폭망하고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어.
여러 영화에 출연했지만, 다 별 볼 일 없었고 혼자 살다가 중병에 걸려서 결국, 요양병원에서 사망했어.”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다 같이 망하고 말았다. 시기와 질투가 참극을 부르고 말았다.
그 사이에서 미스터김만 커다란 이득을 챙겼다. 아주 가증스러웠다.
다른 사진에 김찬수 영화감독이 있었다. 추창선 감독을 살해하라고 의뢰한 인물이었다.
유강인이 차수호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김찬수 감독은 살아있나요?”
차반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응, 살아있어. 이젠 고령이지. 김찬수 감독은 1980년대부터 영화계를 호령했던 인물이야. 그러다 추창선 감독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어.
대세가 김찬수 감독에서 추창선 감독으로 넘어간 시기에 벌어진 일이야. 추창선 감독이 돌연사했을 때 말들이 많았는데 진상을 밝히지 못했어. 나도 그때 일이 기억나. 뉴스에서 떠들썩했었어.”
“저도 기억이 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라고 앵커가 말했습니다. 의문사라고 ….”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사진을 다시 살폈다. 김찬수 감독이 악수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책상에 현찰이 듬뿍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과거에 벌어졌었다.
유강인과 조수 둘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아니라 금수들이 벌인 짓 같았다. 아니, 금수도 이렇게 교활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결국, 욕심과 시기, 질투에 사로잡힌 인간의 막장 행동이었다.
유강인이 학다리 배우 김정태를 생각했다. 노년에 접어든 김정태는 드라마에 자주 출연했다. 그때마다 선한 웃음을 짓고 했다.
“김정태 배우는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이에요. 동료 배우를 해코지하라고 시키다니 …. 그러니까 백두성 회장님을 죽였겠죠.”
황정수가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는 김정태 배우 팬이었다.
황수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말했다.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요. … 다들 아주 몹쓸 위선자들이에요.”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이 사진은 미스터김이 의뢰인들한테 돈을 받고 찍은 겁니다. 의뢰인들의 모습은 다 드러나지만, 미스터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감췄습니다.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맞아요!”
황정수가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천일수 살인 사건, 박재영 납치 사건이 어설펐던 건 미스터김이 기획만 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실제 범죄를 주도한 건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입니다. 송부회장이 범죄 기획서만 보고 어설프게 진두지휘하다가 꼬리가 잡힌 겁니다. 송부회장은 사업가이지 어둠의 보스가 아닙니다.
그 이후 사건은 전혀 어설프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아! 그렇군요.”
조수 둘과 형사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녹취록이 남았다. 유강인이 녹취록을 살폈다.
영화배우 김정태, 영화배우 차연자가 의뢰한 녹취록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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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감쪽같이 일을 처리해야 해요. 거액을 들이는 만큼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팀은 실수가 없습니다. 여태까지 작은 꼬투리도 잡힌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프로입니다.
사실 돈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받으면 우리 말을 잘 따르게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테니.”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다른 곳이 아닌 하연미의 눈을 공격해주세요. 눈이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캐스팅이 목적이라고 하셨죠?”
“네, 맞아요. 하연미가 병원에 가야, 제가 캐스팅되죠. 우리 정태씨가 소개한 만큼 믿고 맡기는 거예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정확하게 공격해서 몇 달 동안 눈을 못 뜨게 하겠습니다.”
“설마 맹인이 되는 건 아니겠죠?”
“적당히 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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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김미려가 의뢰한 녹취록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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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주 그X이 재벌가 며느리 되는 꼴을 절대로 볼 수 없어요. 본처를 쫓아내고 자기가 본처가 될 X이에요! 장희빈이 따로 없어요.”
“알겠습니다. 아이를 낳으며 그 아이를 빼돌려서 고아원에다 버리라는 말이죠?”
“네, 맞아요. 그X이 XX병원 산부인과에 다녀요. 거기에서 출산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병원 측을 매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 아는 보육원이 있습니다. XX 보육원이죠. 그곳 원장님과 친분이 있습니다. 원장님과 여러 번 같이 일해서 호흡이 아주 잘 맞습니다.”
“아주 좋아요. 믿겠습니다. 송해성이 날 버리고 성은주를 택했습니다.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감쪽같이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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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박재영 납치 사건의 전모가 명백히 드러났다.
박재영이 고아가 된 건 바로 영화배우 김미려의 만행이었다. 김미려가 성은주를 시기 질투해서 갓 태어난 박재영을 고아원에다 버렸다.
수첩과 녹취록을 통해 박재영의 어머니 이름이 드러났다. 어머니의 이름은 성은주 영화배우였다. 그가 급히 정찬우 형사를 찾았다.
“정형사! 어서 박재영씨에게 연락해. 어머니를 찾았다고 전해. 어머니 성함이 성은주씨야.”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성은주씨는 살아있습니다. 이제 모자가 상봉해야 할 차례입니다.”
“참 다행이야. 박재영씨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만나게 됐어. 어머니가 50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만나게 됐어.”
유강인이 환하게 웃었다. 미스터김의 무도한 만행 속에서 소중한 진실 하나를 찾았다.
그 진실은 박재영 어머니 이름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성은주였다.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니 참 다행이에요.”
황수지가 말을 마치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황정수도 같이 웃었다.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큰 보람을 느낀 듯했다. 어둠 속에 가라앉은 진실을 밝히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는 일만큼 값진 일은 없었다.
유강인이 수사 의욕을 불태웠다. 그가 이호식 팀장에게 말했다.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알겠어. 녹음 파일을 재생할게.”
이팀장이 핸드폰을 들었다. 어제 아날로그 녹음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했다.
녹음 파일을 재생하자 목소리가 들렸다. 옛날에 녹음한 음향이라 잡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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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김을 믿어주세요. 우리만큼 일을 잘하는 곳은 없습니다. 돈의 액수가 높을수록 더 깔끔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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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유강인이 크게 외쳤다. 그의 두 눈이 커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여자 목소리죠?”
“응, 잡음이 심하지만, 여자 목소리 같아.”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미스터김인데? 여자라고?’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계속 이 여자가 의뢰를 받나요?”
“응, 이 사람이 의뢰인과 계속 대화를 나눴어. 그런데 여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남자 중에 여자처럼 목소리가 가는 사람도 있어.”
유강인이 그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남자가 여자 목소리를 내더라도 중성적인 목소리에 불과합니다. 이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가 맞습니다.
미스터김은 여자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아니 미스터김인데, 어떻게 여자야? 미스김이면 모를까?”
유강인이 급히 답했다.
“미스터김의 정체는 바로 해결사입니다. 어떤 의뢰이든 거액을 주면 해결하는 놈들입니다. 미스터김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조직명입니다.”
“뭐? 조직명이라고? 순창동 가스통처럼 조직명이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조직의 두목은 남자가 아닙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자가 분명합니다. 이 여자를 찾아야 합니다.”
잠시 둘의 대화를 듣던 차수호 반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입을 열었다.
“그럼, 연예계의 마당발 같은데 ….”
유강인이 손뼉을 짝 쳤다. 좋은 추론이었다.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미스터김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봉투를 살피던 이호식 팀장이 말했다.
“유탐정, 봉투에 종이 한 장이 남아있어. 그것도 꺼내서 봐.”
“아, 그래요?”
유강인이 봉투를 살폈다. 종이 귀퉁이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 종이를 미처 꺼내지 못했다.
유강인이 종이를 꺼내서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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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2일 밤 9시 10분
의뢰인: JS 그룹 부회장 송상하
1차 수고비: 사십억 원(4,000,000,000원)
목표: 신인 배우 장수진
의뢰 내용: 장수진 배우를 스타로 만들 것. 각계 계층에 로비할 것. 장수진 배우는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의 혼외자식임. CF와 영화, 드라마 출연으로 인지도를 올리고 JS 모터 전속 모델로 유명세를 떨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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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라고?”
유강인이 연도를 읽고 깜짝 놀랐다. 다른 의뢰와 달리 최근에 의뢰한 일이었다.
이호식 팀장이 말했다.
“특이하게 이 의뢰는 글씨가 선명했어. 다른 의뢰는 세월이 많이 지나서 글씨가 많이 흐렸는데 이건 최근에 쓴 거 같아.”
“맞습니다. 누가 최근에 수첩에다 적은 게 분명합니다. 종이 뒷면에 볼펜 자국도 뚜렷했어요.”
차수호 반장이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이걸 누가 쓴 거지? 최근에 쓴 거라면 … 이 수첩은 백두성 회장이 갖고 있었어. 그러면 백회장이 직접 쓴 거야. 새로운 정보를 얻고 그걸 수첩에 적은 거야.
그렇군. 라이징 스타로 알려진 장수진이 그냥 뜬 게 아니었어. 그녀는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의 혼외자식이었어. NEW & FRESH 행사장에 장수진도 왔었어. 축하 인사를 했어.
송부회장은 혼외자식으로 태어난 동생 박재영을 죽이려 했지만, 자기 자식은 알뜰하게 챙겼군. 아주 가증스러운 인간이야.’
유강인이 모든 물증을 다 살폈다.
이제 미스터김을 잡아야 했다. 미스터김은 해결사 조직의 이름이었다. 두목은 여성이었다. 연예계의 마당발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