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음!”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밀 해결사 조직인 미스터김을 일망타진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물증을 살핀 결과, 의뢰인들은 분명히 알겠어. 그런데 의뢰를 받는 해결사는 알 수가 없어. 미스터김의 두목과 조직원들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어.
아주 철두철미한 놈들이야.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어.
유일한 단서는 두목으로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뿐이야. 문제는 녹음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무슨 말인지만 알 수 있을 정도야.
이 목소리만으로 두목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 분명해.’
유강인이 쉽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호식 팀장에게 말했다.
“녹음된 목소리로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까요?”
이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불가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유탐정이 오기 전, 음향 전문가한테 소견이 왔어. 음향에 잡음이 많고 녹음 상태가 썩 좋지 못해서 목소리의 주인을 특정하기 어렵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군.”
불가능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을 이었다.
“녹음에서 잡음을 제거하면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나도 그 생각을 했지. 그래서 문의했는데 워낙 심한 잡음이라, 별 소용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어.
잡음을 제거하면 목소리도 같이 변형돼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더 특정할 수가 없대.”
“그렇군요.”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비밀은 밝혔지만,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호식 팀장이 말을 이었다.
“유탐정,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있어. 목소리마다 고유 주파수가 있어서 그걸 이용하면 돼.
용의자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범인의 목소리와 대조하면 동일인인지 알 수가 있어. 주파수를 분석하면 지문처럼 신원 확인이 가능해.”
“아! 그렇군요. 그럼, 용의자의 목소리를 확보하면 되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은 아니야. 영화계 종사자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옛날 일이라 기록도 부실할 테고. 범인이 영화계 인물이 아니라면 말 그대로 낭패야. 헛다리 짚은 거지.”
“그렇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이는 그가 답답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녹취록에 언급된 고아원을 찾으세요. 박재영씨가 자랐던 고아원입니다. 원장하고 미스터김 사이에 커넥션이 있습니다. 원장이 살아있는지 조사하세요.”
“알았어. 그리하지.”
이호식 팀장이 답을 하고 정찬우 형사를 찾았다. 정형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정찬우 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강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세월이 벌써 50년이나 흘렀어. 원장이 살아있을 거 같지가 않아.”
그 소리를 듣고 황수지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증을 잡아서 비밀을 밝혔지만, 다른 난관이 유강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범인의 체포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무척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황수지가 가방을 열고 실론티를 꺼냈다. 실론티를 들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실론티 드릴까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마침 목이 말랐다.
실론티를 받은 유강인이 따개를 따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찬 실론티가 식도로 들어가자, 정신이 맑아지며 답답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강인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현재 난관에 봉착했다. 어떻게든 난관을 뚫고 나가야 했다.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 추리의 시간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수 둘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호식 팀장, 차수호 반장, 백정현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유강인이 추리를 시작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나갔다. 회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 혼자 회의실에 남았다. 환한 불빛 속에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테이블에 실론티와 초콜릿 과자가 있었다.
유강인이 눈을 천천히 떴다. 초콜릿 과자 봉지를 들더니 포장을 북 찢었다.
과자 하나를 꺼내서 와그작와그작 소리를 내며 씹었다. 소리에 경쾌한 리듬이 있었다. 과자를 다 먹고 실론티 캔을 들더니 한 번에 다 들이켰다.
그가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추리에 집중했다.
‘6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을 지금 와서 해결하는 건 무리야. 증거와 증인이 있을 리 없어. 설령 있더라고 딱 잡아떼면 그만이야.
과거의 사건에 집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공소시효도 다 지났어.
그래! 최근에 벌어진 천일수, 백두성 살인 사건에 집중하자! 이 사건들을 철저히 분석해서 놈들을 잡는 게 중요해. 두 사건은 놈들의 수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야.
25년 전, 놈들은 추창선 감독을 독살했어. 이는 백회장 살인 사건과 양상이 같아. 놈들의 범행 수법이 일치해.’
유강인이 갑자기 움찔했다. 그가 급히 생각을 이었다.
‘잠깐! 반복되는 범행 수법은 범인의 캐릭터와 같아. 범인의 독특한 특징이야.
그러면 백두성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천일수 살인 사건에도 그 캐릭터가 있을 거야. 같은 범행 수법을 사용했을 거야.
천일수 살인 사건의 핵심은 아들과 아버지의 반목이었다. 놈들이 그걸 이용했어. 그렇게 완전범죄를 노렸어.
아버지한테 핍박받는 아들이 아버지를 미워한 거 사실이야. 놈들이 그걸 이용했어.’
“아!”
유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손뼉을 짝 쳤다.
‘백두성 살인 사건에서 유력한 용의자는 김정태 배우야. 김정태 배우는 백두성 회장한테 많은 돈을 빌렸어. 김정태 배우는 충분한 살해 동기가 있었어.
공교롭게 두 사건 다 동기가 완벽해.
그렇구나! 김정태 배우가 범인이 아닐 수 있어. 이 사건도 놈들이 짠 함정이야. 김정태 배우를 범인으로 몬 거야. 그걸 이용해서 싹 빠져나가려는 거야.
그래, 놈들이 수법을 재탕하고 있어. 그렇다면 매실차에 접근한 사람 중에 범인이 있어. 그러면 귀빈석! 귀빈석에 앉은 자들이 유력해. 진짜 범인은 그들 중에 있어.’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회의실에서 나갔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유강인을 기다리던 동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강인이 예상보다 일찍 회의실에서 나왔다. 1시간 이상 추리할 줄 알았는데 30분 채 안 돼서 밖으로 나왔다.
동료들이 유강인의 안색을 살폈다. 탐정이 단서를 잡았는지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 유강인의 표정이 밝았다.
“다행이다.”
“탐정님이 단서를 잡았겠죠.”
“그렇겠지.”
동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잠시 동료를 바라보던 유강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 사건은 과거 사건이 아니라 현재 사건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범인을 잡을 수 있습니다. 과거 사건은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지났습니다.
증거가 사라졌거나, 있더라고 그 증거를 확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현재 사건을 바탕으로 증거를 찾겠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입을 열었다.
“맞는 말입니다. 보육원 원장을 수소문했는데 1997년에 죽었습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이호식 팀장이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탐정 어떻게 증거를 잡으려고?”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최근에 벌어진 천일수 감독 살인 사건, 백두성 회장 살인 사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두 사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용의자의 범행 동기가 완벽하다는 겁니다.
천감독 막내아들 천지호와 김정태 배우의 범행 동기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뭐라고? 천지호씨는 범인이 아니잖아?”
“맞아요. 천지호씨 함정에 빠진 거잖아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맞습니다. 따라서 김정태 배우도 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뭐, 뭐라고?”
“김정태 배우가 범인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게 말이 되나?”
동료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모두 김정태 배우가 백두성 회장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수사 책임자인 유강인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유강인이 이걸 부정했다.
유강인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매실차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겁니다.”
황정수가 그건 아니라는 표정을 말했다.
“탐정님, 그 사건은 김정태 배우가 한 짓이잖아요. 그 사람이 매실차에 독을 넣어 백두성 회장님을 죽였잖아요.”
“맞습니다. 그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답했다.
“아니야! 김정태 배우는 용의자일 뿐이야. 진짜 범인이 아닐 수 있어. 천일수 살인 사건처럼 놈들이 수작을 부린 거야.
살해 동기가 있는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거야!”
“네? 뭐라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동료들이 깜짝 놀랐다.
유강인이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일수 살인 사건을 잘 생각해보세요. 놈들은 죄 없는 막내아들을 범인으로 몰았습니다.
백두성 살인 사건에서도 같은 수법을 사용한 겁니다. 그래서 김정태 배우를 죽인 겁니다. 그 입을 영원히 틀어막으려고!”
“세상에!”
“그러면 범인이 누구죠?”
유강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말했다.
“범인은 매실차 잔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용의자는 좁혀졌습니다.
백회장님은 행사장에서 매실차를 두 번 마셨습니다. 첫 번째 잔을 마셨을 때는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잔을 마셨을 때 곧바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실차가 든 보온통은 이상이 없었습니다. 결국, 행사장 안에 있는 누군가가 매실차에 독을 넣은 겁니다.
행사장 CCTV를 살피며 유력 인물들이 나올 겁니다. 그 사람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맨 앞자리인 귀빈석에 앉은 자들이 유력합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김정태 배우는 왜 밖으로 나간 거죠? 백두성 회장님이 쓰러지자, 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강인이 좋은 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답했다.
“맞습니다. 백두성 회장님이 쓰러졌을 때 김정태 배우가 황급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는 미스터김 조직원이 지시한 일이 분명합니다. 행사장 안에 미스터김 조직원이 있었습니다.
그자가 김정태 배우한테 속삭였겠죠. 어서 밖으로 나가서 화장실로 가라고! 그 조직원이 바로 독을 탄 범인일 겁니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 건가요?”
“무슨 미드를 보는 거 같아!”
동료들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유강인의 추리에 스릴을 느낀 듯했다.
유강인이 계속 말했다.
“김정태 배우는 분명 놈들한테 약점이 잡혔습니다. 부검 결과, 김정태 배우는 심각한 마약 중독 상태였습니다. 놈들한테 약을 공급받은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놈들의 개가 된 겁니다.
김정태 배우가 행사장 밖으로 나가서 화장실로 가자, 복도에서 그를 기다리던 킬러가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실로 들어간 킬러는 김정태 배우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렇게 노배우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써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놀라운 말이었다.
동료들이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서 미동조차 못 했다.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도 모두 수첩과 녹취록을 봤잖아요. 미스터김은 사람을 탈 쓴 악마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인정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중에서도 누명 씌우기 전문가입니다. 그쪽 방면 초절정 고수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스터김을 잡겠습니다. 어서 움직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크게 외쳤다. 그가 급히 자리로 돌아가 자서전 출간 기념회 CCTV를 살폈다.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를 찾았다. 그리고 말했다.
“백형사님은 우동식 형사님과 함께 연예계 마당발을 찾으세요. 1960년대부터 활동한 자를 수소문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급히 답하고 우동식 형사를 찾았다. 우형사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형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유강인이 손을 비볐다.
천일수 살인 사건과 박재영 납치 사건은 몸풀기에 불과했다. 비밀 코드로 비밀을 밝히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유강인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후반 라운드 종이 울렸다.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 적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야 했다.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 했다.
무승부는 의미가 없었다. 무승부는 미스터김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