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_탐정 유강인 18편_48화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by woodolee

48화_백두성 비서와 가사도우미


시간이 흘러 늦은 오후가 되었다. 배가 출출해질 시간이 다가왔다.


“배 고프당!”


서류를 살피던 황정수가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허기짐을 느꼈다. 그가 이호식 팀장과 차수호 반장을 찾았다. 그도 배가 고팠다. 아침 겸 점심으로 김밥 세 줄을 먹은 게 전부였다.


“선배님들, 저녁 먹으러 갑시다.”


유강인의 말에 차반장이 호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강인이랑 같이 식사하네.”


“그래, 나도 출출해, 어서 가자고. 든든히 먹어야겠어.”


이호식 팀장이 말을 마치고 서류를 정리했다.


황정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갈까요? 서울청 근처에 맛집이 있을 텐데 … 거기가 어디죠? 이호식 팀장님이 잘 아실 거 같은데.”


“여기 맛집이라면 ….”


이팀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차수호 반장이 뭔가가 생각이 난 듯 급히 말했다.


“선배님, 거기 순댓국집 있잖아요. 사장님이 영화전문가였는데 …. 그게 기억이 납니다.”


영화전문가라는 말에 유강인의 눈이 번쩍였다. 그가 형사 시절을 떠올렸다.


‘… 아! 그 집을 말하는 건가? 대풍 순댓국집. 그 집에 영화 포스터가 많았어. 맞아, 사장님이 영화마니아였어. 선배님들과 여러 번 갔었는데, 그 집 순댓국이 참 맛있었어.’


유강인이 입맛을 다셨다. 고소한 순댓국을 생각하자, 입에 군침이 가득 고였다. 말랑말랑한 머리 고기와 찹쌀 순대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가 말했다.


“차반장님, 대풍 순댓국집을 말하는 건가요?”


차수호 반장이 맞는다는 듯 씩 웃고 답했다.


“흐흐흐! 유탐정도 대풍 순댓국집을 기억하는구나, 나랑 몇 번 갔었잖아. 강력반 단골 맛집이었지. 유탐정이 강력반에 오기 전부터 유명했던 집이야.

우리 이호식 팀장님이 자주 말했었지. 그 집 순댓국이 참 맛있다고 칭찬하셨어. 넘버원! 이라고 엄지척하셨지.”


이호식 팀장도 씩 웃었다. 그가 말했다.


“맞아, 맞아, 대풍 순댓국집은 진정한 맛집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그리고 사장님이 영화전문가야. 그중에서도 한국 영화마니아야,”


유강인이 참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에 대풍 순댓국집 사장이 떠올랐다. 그때도 연세가 꽤 많았다. 지금은 80살 훌쩍 넘었을 거 같았다,


이팀장이 재킷을 걸치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말했다.


“한 달 전쯤에 그 집에 갔었어. 사장님이 계셨는데 여전히 정정하셨어. 세월이 그분만 빗겨나간 거 같아.

어서 가자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영화계 마당발도 물어보자고.”


“좋습니다. 겸사겸사 아주 잘 됐습니다.”


유강인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는 순댓국도 먹고 영화계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일석이조였다.



**



대풍 순댓국집은 서울경찰청 일대에서 유명한 맛집이었다. 서울청에 근무하는 경찰뿐만 아니라 타 동네 주민도 자주 찾아왔다.


날이 어두워지자, 식당이 북적였다. 저녁 장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강인과 동료들이 대풍 순댓국집 앞에 걸음을 멈췄다. 고소한 냄새가 입구부터 휘몰아쳤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군침을 삼키던 유강인이 대풍 순댓국집 옆집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아니, 옆집에도 순댓국집이 있네요. 전에는 없었는데 ….”


이호식 팀장이 답했다.


“응, 1년 전에 배사장 순댓국집이 바로 옆에 생겼어. 원래 마트 자리였는데 마트가 나가자, 순댓국집이 생겼더라고.”


“그렇군요. 경쟁 업체가 바로 옆에 생겼네요. 배사장 순댓국집은 맛은 어떤가요?”


“뭐, 괜찮은 편이야. 대풍 순댓국집보다 양이 많은데 값은 같아. 두 가게 다 보통이 만 원이야.”


“옆집에 경쟁 업체가 생겼네요. 대풍 순댓국집 매출은 괜찮나요? 매출에 타격을 받았나요?”


“아니, 대풍 순댓국집은 까딱없어. 이 집은 말 그대로 전통의 맛집이야. 4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

함경도 출신이 만든 순댓국의 진수지. 그 고소한 맛을 따라올 가게는 없어. 배사장 순댓국집더 잘 하는 집이지만, 한 수 아래야,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어.”


“그렇군요.”


“어서 들어가자고.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겠어. 아니 벌써 딱 달라붙었어.”


이호식 팀장이 식당 출입문을 열었다. 진한 순댓국 냄새가 진동했다.


“흐흐흐! 이 고소한 냄새, 카야!”


황정수가 가게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환하게 웃었다. 그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100퍼센트 사골 국물입니다. 끝내주는 국물이죠. 잡내가 하나도 없는 순댓국이 분명합니다. 흐흐흐!”


그 말을 듣고 유강인이 급히 걸음을 옮겼다. 순댓국의 핵심은 냄새였다.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직원이 손님을 맞이했다. 일행을 끝자리로 안내했다. 직원이 말했다.


“총 여덟 명이죠?”


“맞습니다. 순댓국 특 여덟 개 주세요.”


이호식 팀장이 주문하자, 직원이 바삐 움직였다.


“아이고! 이호식 팀장님.”


그때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이 이호식 팀장을 알아보고 걸어왔다.


유강인이 노인을 자세히 살폈다. 예전에 봤던 대풍 순댓국집 주인이었다. 세월 탓인지, 머리카락이 완전히 백발이 되었다.


주인이 힘차게 걸었다. 고령이었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어? 유강인 탐정님!”


주인이 유강인을 알아보고 크게 외쳤다. 기쁜 나머지 손뼉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손님이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뻐했다. 마치 자식이 명문대에 합격한 듯했다.


“유강인 탐정님! 저 기억하세요. 형사 시절 때 우리 가게에 자주 왔었잖아요. 기억하시죠?”


“네, 기억합니다.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반갑습니다, 어르신.”


유강인이 씩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정말 영광입니다. 존경하는 유강인 탐정님이 오셨으니 서비스를 드리겠습니다. 모둠 순대 두 접시를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순대입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크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황정수가 실실 웃었다. 그가 생각했다.


‘역시 탐정님이랑 같이 다니니까 먹을 게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군. 우하하! 난 먹을 복을 타고났어. 굶어 죽을상이 아니야. 이참에 이 집도 맛집 리스트에 올려야겠어.’


뚝배기에서 팔팔 끓는 순댓국이 나왔다. 사골 국물에 머리 고기, 순대가 듬뿍 이었다. 국물 안에 양념장이 있었다.


양념장이 맵지 않게 느끼한 맛을 잡아줬다. 한마디로 일품 순댓국이었다. 전국 최고의 순댓국 맛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추가로 나온 부추가 참 맛있었다. 양념이 된 부추를 순댓국에 넣자, 국물의 느끼함을 섬세하게 잡아줬다.


“우와! 죽인다!”


황정수가 쾌재를 불렀다. 열심히 국물을 퍼먹고 고기와 순대를 먹었다.


유강인도 맛있게 순댓국을 비웠다. 명불허전이었다. 맛집은 역시 맛집이었다.


순댓국이 다 비워지자, 다음 차례가 되었다. 주인과 담소를 나눠야 했다.


“어르신!”


유강인이 주인을 불렀다. 주인이 쟁반에 종이컵 여덟 개를 담아서 걸어왔다. 주인이 말했다.


“식후 커피입니다. 제가 손수 뽑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종이컵을 받고 커피를 쭉 들이켰다. 달콤한 인스턴트커피였다. 사실 커피라기보다는 커피 맛 음료에 가까웠다.


커피를 맛있게 마신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 백두성 배우님을 잘 아시죠?”


“그럼요. 젊은 시절부터 팬이었습니다. 돌아가셔서 참 애석할 따름입니다.”


“백두성 배우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주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 탐정님 부탁이니만큼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하겠습니다.

백두성 배우님은 데뷔할 때부터 미남 스타였습니다. 특히 액션을 잘했습니다. 케이블카 위에서 싸우는 액션씬은 지금 봐도 명장면입니다.

케이블카 위로 올라가더니 옆 케이블카로 점프했습니다. 대역 없이 그 장면을 소화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군요. 액션 스타셨군요.”


유강인이 비밀 코드 중 하나인 구왕자를 떠올렸다. 그가 말했다.


“혹 백두성 배우님한테 구설수가 있었나요?”


“구설수라면 … 여자 문제죠. 유명 여배우와 염문설을 뿌리고 일반인 여성과도 많이 사귀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생아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거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 퍼트린 헛소문으로 드러났습니다.”


“헛소문이라!”


헛소문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미스터김을 떠올렸다. 미스터김은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는 전문가였다.


“유탐정님, 백두성 배우님은 나이가 들자, 배우를 그만뒀습니다. 그게 액션 배우의 한계죠. 나이를 먹으면 액션을 제대로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배우에서 은퇴했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은퇴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후에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고전했다고 들었습니다.

뭐 세상사가 다 그렇죠. 처음 하는 일을 항상 힘들고 어렵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파산 위기에 처했는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결국, 엔터계의 거물이 되었죠.

이 일도 참 대단한데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거액을 투자받아서 IT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업도 성공해서 위대한 배우이자, 사업가가 되었죠. 백두성 배우님은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백두성 회장님은 대단한 분이 맞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주인의 말에 수긍했다.


순댓국집 사장이 말하는 얘기는 자서전 2권, 3권 내용과 대동소이했다. 보통 자서전에 담긴 내용은 자기를 미화하는 등 과장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거 같았다. 자서전에 과장이 없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백두성의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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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 죄인입니다. 이 자리에 빌어서 그 죄를 사죄하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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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죄인이라고 그랬어. 백두성 스스로 죄인임을 시인했어. 죄인이라고 했어!’


유강인이 죄인이라는 말에 집중했다. 이 말은 백두성의 인생을 상징하는 말과 같았다.


“유탐정님, 제가 백두성 배우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때가 언제냐면 ….”


주인이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유강인이 주인의 말을 경청했다.



20분 후


유강인이 대풍 순댓국집에서 나왔다. 유강인 앞에 동료들이 있었다. 유강인이 말했다.


“내일 아침에 불에 탄 백두성 회장님 자택을 둘러보겠습니다. 그리고 백회장님 측근을 만나겠습니다. 측근이 누구죠?”


정찬우 형사가 입을 열었다.


“측근은 비서와 가사 도우미입니다. 백회장님한테 남은 가족은 없습니다. 마지막 가족이었던 딸과 손주는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군. 백회장님은 혼자였군.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한 거군. 가족이 있었다면 비밀을 폭로하지 않았겠지.”


유강인이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형사가 말했다.


“내일 오전 중으로 비서와 가사 도우미 조사 일정을 잡겠습니다.”


“좋았어. 오후에는 출간 기념회 귀빈들을 불러. 그 사람 중에 범인이 있어. 매실차에 독을 탄 자가 있어.”


“네, 알겠습니다. 모두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약조했습니다.”


“좋았어.”


유강인이 씩 웃었다. 일이 잘 진행됐다.


사람들이 순댓국집으로 계속 모여들었다. 순댓국의 진수가 이 집에서 펼쳐졌다. 바로 옆에 경쟁 업체가 생겨도 단골이 떠나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던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천인공노한 범인을 꼭 잡겠다고 맹세하며 씩씩하게 걸어갔다. 맛좋고 영양가 만점인 순댓국을 먹고 힘이 넘치는 거 같았다.



다음날

2023년 11월 19일 오전 09시 10분


탐정단 밴이 용산구 백두성 집 앞에 멈췄다. 4m 높이 담벼락이 그들을 맞이했다. 검게 그을린 담벼락이 흉물스러웠다.


백두성이 죽고 큰 화재가 발생했다. 집이 다 타들어서 갔다. 그래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정원과 담벼락은 검게 그을렸다.


유강인이 차에서 내렸다. 집 정문에 경찰 둘이 서 있었다. 둘 중 선임이 유강인에게 경례를 붙이고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집 근처 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이 나왔습니다. 집 안이 모조리 불에 타서 특별히 보실 건 없습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살피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정원이 보였다. 예전에는 초록이 깃든 정원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많은 나무가 불에 타다 검게 그을렸다. 마치 거대한 숯 더미가 서 있는 거 같았다.


집도 마찬가지였다. 호화 주택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유럽풍 푸른색 주택이 검은 숯으로 변하고 말았다. 지중해 바다 같은 푸른 빛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집은 거대한 석탄 같았다.


먼발치에서 잠시 집을 살피던 유강인이 발길을 돌렸다. 정문에서 나가자, 선임 경찰이 유강인에게 말했다.


“길 건너 더 블루 커피숍에서 정찬우 형사님이 계십니다. 백회장님 비서와 가사도우미도 함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유강인이 길 건너를 살폈다. 4차선 도로 맞은편에 더 블루라는 커피숍이 있었다.


“저기군.”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조수 둘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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