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더 블루 커피숍 문이 열렸다. 유강인과 조수 둘이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커피향이 나는 아담한 커피숍이었다.
커피숍은 한적했다.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손님 세 명이었다.
유강인이 커피숍 안으로 들어오자, 손님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찬우 형사였다. 정형사 옆에 둘이 있었다. 백두성 비서인 성진수와 가사도우미 윤미연이었다.
정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선배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옆에 참고인이 계십니다. 비서님과 가사도우미, 여사님입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비서와 가사도우미를 향해 걸어갔다.
발소리가 들리자,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서와 가사도우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유강인 탐정님, 백두성 회장님 비서 성진수입니다. 자서전 출간기념회에서 만났는데 … 제 얼굴을 기억하시죠?”
“네, 똑똑히 기억합니다.”
유강인이 성진수 비서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며 답했다.
성비서는 40대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코와 얼굴이 길쭉했다. 한마디로 말상이었다. 눈과 입은 작았다.
윤미연 가사도우미도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 처음 뵙겠습니다. 백두성 회장님 가사도우미 윤미연입니다. 10년 동안 가사도우미를 했습니다.”
유강인이 이번에는 윤여사를 살폈다. 50대 중반 여성이었다. 150대 초반 키에 아담한 체격이었다. 머리숱이 많았고 피부가 도자기처럼 고왔다. 보름달 같은 둥근 얼굴이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주문을 받자, 황정수가 초코 라떼, 에스프레소, 홍차를 시키고 커피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음료가 도착하자, 유강인이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건조한 목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두 분께 질문하겠습니다. 근래에 들어 백회장님한테 이상한 점이 있었나요?”
성진수 비서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회장님한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평상시와 똑같이 행동하셨습니다.”
“맞아요.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윤미연 여사도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윤여사님께 질문하겠습니다. 근무 시간이 어떻게 되죠?”
윤여사가 답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했습니다. 출근해서 아침과 저녁거리를 준비했습니다. 집을 청소하고 오후 3시에 퇴근했습니다.”
“그럼, 점심이 비는데 백회장은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셨죠?”
“점심은 밖에서 항상 드셨습니다. 계약 조건에 점심 식사 준비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끼만 준비했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홍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해야 했다. 그가 말했다.
“윤여사님, 백회장님이 매실차를 즐겨 드셨다고 들었습니다. 매실차를 직접 준비하셨나요?”
매실차라는 말에 윤미연 여사가 움찔했다. 그녀도 백두성이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소문이 파다했다. 백회장이 매실차를 마시고 죽었다고 너도나도 입소문을 냈다.
매실차 안에 독이 있었다. 그것도 맹독이었다. 출혈독과 신경독을 합성한 물질이었다.
윤여사가 가슴이 마구 떨리는지 한 손을 가슴에 살포시 댔다. 그렇게 진정하고 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항상 준비했습니다.”
“매실차를 어떻게 준비하셨죠? 직접 만드셨나요? 아니면 시중에서 파는 것을 사셨나요?”
“직접 만들었습니다. 좋은 매실을 비싼 값에 사서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차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만들었다고요?”
“네, 맞아요. 저는 매실차를 만드는 전문가입니다.”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유강인이 슬며시 성진수 비서의 안색을 살폈다. 성비서는 윤미연 여사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성진수 비서는 마음에 동요가 없는 듯했다. 침착한 표정이었다.
유강인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계속 질문을 이었다.
“윤여사님, 백회장님이 즐겨 드시는 매실차에 맹독이 있었습니다. 백회장님은 자서전 출간기념회 행사장에서 독이 든 매실차를 마시고 급사했습니다.
매실차를 준비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윤여사님입니다. 윤여사님, 매실차를 혼자 만든 게 맞습니까?”
“맞습니다. 저 혼자 준비했습니다.”
“그렇군요.”
윤미연 여사가 급히 말을 이었다.
“유강인 탐정님, 제가 매실차를 만들고 준비했지만, 차에다 독을 넣지 않았습니다.
여기 오기 전 성비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백회장님이 그날 매실차를 세 번 드셨는데, 두 번까지는 이상이 없었고 마지막 잔을 드시고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인즉,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매실차 잔에다 독을 넣었다는 말이잖아요. 제가 독을 넣었다면 첫 번째 잔을 드시고 돌아가셨겠죠. 그때 백회장님은 차 안에 계셨습니다. 행사장에 가기 전입니다.
저는 매실차에 독을 넣지 않았어요, 이는 명백한 사실이에요. 믿어주세요!”
윤미연 여사가 정색하고 항변했다.
“일리있는 말이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성진수 비서를 보고 말했다.
“비서님, 윤여사님이 매실차를 보온통에 담아서 건넸나요?”
성비서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여사님한테 보온통을 받았습니다. 보온통은 제가 항상 들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백회장님이 외출하실 때마다 보온통을 들고 다녔습니다.”
“백회장님이 그날 매실차를 세 번 마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분명합니까?”
성진수 비서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제 기억으로 세 번이 맞습니다. 차 안에서 첫 번째 잔을 드셨고 프레스 센터 행사장에 도착한 후 두 번째 잔을 드셨습니다.
이후 행사장에서 연설하실 때 목이 마르시다며 매실차를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잔을 드렸는데 그게 마지막 잔이었습니다. 그 잔에 담긴 매실차를 드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비서님이 보온통을 들고 있었으니, 매실차를 직접 잔에다 따랐나요?”
“네, 제가 직접 따랐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의심이 가득 찬 눈초리로 성비서를 바라봤다. 그러자 성진수 비서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가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저는 아닙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윤여사님한테 보온통을 받아서 잔에다가 매실차를 따른 거밖에 없습니다.
제가 매실차를 따를 때 귀빈들이 제 모습을 다 지켜봤습니다.
그분들이 다 증명할 겁니다. 제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백회장님 옆자리에 앉은 김정태 배우님이 몹쓸 마음을 품은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백회장님이 쓰러지자, 황급히 행사장 밖으로 몰래 빠져나간 거잖아요.”
유강인이 차분히 성비서의 말을 들었다. 조리 있는 말솜씨였다. 타당한 말이었다.
“음!”
유강인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에 있는 두 명의 태도가 당당했고 혐의점도 없어 보였다. 그가 홍차를 쭉 들이켜고 질문을 이었다.
“백회장님 집에 가보니 화마로 말이 아니더군요. 집에 특별한 곳이 있었나요? 비밀 장소나 금고 같은 게 있었나요?”
성진수 비서와 윤미연 여사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둘이 눈빛으로 대화하는 거 같았다. 10초 후, 성비서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 비밀 장소나 금고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조사하면 다 밝혀질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별한 거라면 하나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CCTV입니다. 백회장님이 집안 곳곳에 CCTV를 설치했습니다.”
유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CCTV가 집안 곳곳에 있었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각 방과 거실, 화장실까지 CCTV가 있었습니다.”
“집 외부에도 CCTV가 많았나요?”
“네, 많았습니다. 집 안과 밖으로 CCTV가 많았습니다.”
“그렇군요.”
집 안과 밖으로 CCTV가 많다는 말에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집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는 말은 백두성 회장이 무척 불안했다는 뜻이야. 화장실까지 CCTV가 있었다니 … 보통 일이 아니군.
뭔가를 굉장히 두려워한 거 같아. 두려움의 존재가 누굴까? 미스터김을 두려워한 건가? 미스터김이라면 충분히 두려워할 만하지. 무시무시한 해결사니.’
유강인이 생각을 정리했다.
백두성 회장의 측근인 성진수 비서와 윤미연 여사한테 특별한 혐의점은 없었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백회장이 평상시에 두려움을 많이 느꼈다는 점만 알 수 있었다.
5분 후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윤여사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말했다.
“윤여사님,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말을 잘 들어주셔서.”
유강인이 성비서를 보며 말했다.
“비서님은 오후 참고인 조사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오후에 출간기념회 귀빈 참고인 조사가 있습니다. 비서님은 귀빈이 아니지만, 현장에서 문제의 매실차를 잔에 따랐으니 참고인 조사 대상자입니다.”
성비서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에 맞춰서 서울경찰청으로 가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유강인과 조수 둘, 정찬우 형사가 더 블루 커피숍에서 나왔다. 넷이 잠시 길을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정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일단 가사도우미는 혐의점이 없는 거 같습니다. 백회장님은 매실차를 세 번이나 드셨습니다. 두 번째까지는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 점으로 보아 보온통에 들어있는 매실차는 이상이 없는 게 확실합니다.
행사장에 있는 누군가가 잔에다 몰래 독을 넣은 게 분명합니다.”
황정수가 급히 말했다.
“그러면 비서라는 사람이 의심스러운데 … 다른 사람도 아닌 비서가 직접 잔에다 매실차를 따랐잖아요. 그 사람이 몰래 독을 넣은 거 같아요.”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했다.
“그건 단정할 수 없는 일이야. 잔에다 매실차를 따랐다고 범인으로 몰 수는 없어.”
“그렇지만, 저는 비서가 의심스럽습니다. 너무 태연한 표정도 이상하고.”
황수지가 선임 조수에게 말했다.
“비서가 매실차를 따를 때 자리에 앉은 귀빈들이 그걸 다 지켜봤잖아요. 비서가 만약 이상한 행동을 했다면 벌써 신고를 했겠죠.”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황정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행사장 CCTV를 면밀하게 분석한 정찬우 형사가 말했다.
“행사장에 도착한 백회장님이 매실차 잔을 비우자, 단 옆에 서 있던 비서가 바로 걸어와 매실차를 잔에 따랐습니다.
이후 귀빈들이 백회장님 앞으로 모여와 서로 덕담을 나눴습니다.
카메라가 백회장님 등을 비추고 있어 영상만으로는 누가 독을 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CCTV 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다. 그 역시 누가 잔에다 독을 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백두성의 넓은 등이 잔을 완벽히 가리고 있었다.
“음~!”
유강인이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나 비가 오려는 듯 날이 꽤 흐렸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 백두성 회장님을 죽인 범인을 반드시 잡겠어. 놈은 내 손아귀에 있어.”
유강인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내리고 정형사에게 말했다.
“비서와 귀빈들 CCTV는 잘 분석하고 있지?”
“네, 우동식 선배님이 철저히 분석하고 계십니다. 행사장 CCTV와 도로 CCTV, 인도 CCTV를 모두 확보하고 분석 중입니다.”
“그래, 좋았어. 이제 돌아가자고. 가서 교활한 범인을 잡자고. 여우를 잡아야 해. 거리 CCTV가 큰 역할을 할 거야.”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차로 향했다.
이제 비서와 귀빈 여덟 명을 조사해야 했다. 귀빈은 총 열 명이었지만, 그중에서 백두성과 김정태는 이미 죽고 없었다. 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백두성이 두 번째 매실차를 쭉 들이켜 잔을 비우자, 단 옆에 서 있던 비서가 귀빈석으로 걸어와 세 번째 매실차를 잔에다 따랐다.
운명의 세 번째 잔이었다. 그때와 그 이후가 매우 중요했다.
가능성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가능성은 잔에다 매실차를 따른 비서가 범인일 수 있었다. 매실차를 따를 때 몰래 독을 넣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가능성은 귀빈 중에 범인이 있을 수 있었다. 비서가 세 번째 매실차를 따른 후, 귀빈들이 백두성 자리로 몰려와 서로 덕담을 나눴다. 그때 누군가가 몰래 독을 넣을 수 있었다.
CCTV 확인 결과, 잔에 접근한 사람은 비서와 귀빈들밖에 없었다. 용의자는 비서와 여덟 명으로 좁혀졌다. 그중에 범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