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_탐정 유강인 18편_50화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by woodolee

탐정단 밴이 서울청을 향해 달렸다.


오후 2시 반이 다가오자, 귀빈 여덟 명이 서울청에 도착했다. 성진수 비서는 10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백정현 형사가 귀빈들을 안내했다. 서울청 본관 1층 휴게실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귀빈들이 서로 말을 나눴다.


“참고인 조사가 맞지요?”


“맞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사건 현장에 있어서 조사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각자 조사받겠죠?”


“그렇겠죠.”


“어디에서 조사받을까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사무실에서 조사받던데요.”


백형사가 한번 헛기침했다. 그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유강인 탐정님이 곧 오실 겁니다.”


“그렇군요.”


“여기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나요? 저기 자판기가 있네요.”


백정현 형사가 자판기를 보고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제가 캔 커피를 뽑아서 나눠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형사님.”


백정현 형사가 걸음을 옮겼다. 자판기에서 커피 캔 여덟 개를 뽑아서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가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신원 확인 절차였다.


“전나숙 배우님!”


“네, 제가 전나숙입니다.”


첫 번째로 호명된 귀빈은 감초 연기로 유명한 여배우 전나숙이었다.


수많은 영화에 출연한 전나숙은 78세 원로 배우였다. 통통한 몸에 키가 작았고 백발을 곱게 뒤로 넘겼다. 출간기념회에서 귀빈을 대표해 축하사를 했었다.


귀빈석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김동인 과장님.”


두 번째로 호명된 귀빈은 미라클 출판사 영업과장 김동인이었다.


김과장은 44세로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였다. 강한 턱의 소유자로 얼굴빛이 무척 검었다.


귀빈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신양선 감독님.”


세 번째 호명된 귀빈은 원로 영화감독 신양선이었다.


신양선은 멜로영화의 귀재로 불리던 인물로 70년 초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였다. 대표작은 ‘돌고 도는 강물’과 ‘첫날밤과 마지막 밤’이었다.


82세 나이에 키가 작고 몹시 마른 남자였다. 허리까지 굽어서 키가 더욱 작아 보였다.


귀빈석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정인숙 제작자님.”


네 번째 호명된 귀빈은 원로 영화제작자 정인숙이었다.


정인숙은 히트 영화 제조기로 불렸던 제작자로 60년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였다.


대표작은 ‘투사 이봉창’과 ‘하와이 연정’, ‘연산군과 장녹수’였다. 88세 나이에 키가 크고 살집이 많은 여성이었다.


귀빈석에서 네 번째 자리에 앉았다.


“이두철 전장관님.”


다섯 번째로 호명된 귀빈은 전 문화공보부 장관이자, 전 국회의원인 이두철이었다.


이두철은 영화 사업 전반을 관리한 공무원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장관과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85세의 나이에 보통 키였다. 많이 말라서 살이 하나도 없는 남자였다. 뼈밖에 없는 체형이었다.


귀빈석에서 일곱 번째 자리에 앉았다.


“최민희 배우님.”


여섯 번째로 호명된 귀빈은 원로 영화배우 최민희였다.


최민희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육감파 여배우였다. 유감적인 몸매와 함께 청순한 얼굴로 유명했다. 그래서 많은 남성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대표작은 ‘나를 버린 그대와’, ‘미움만큼 사랑하기’였다.


77세 나이에도 키가 크고 날씬했다. 피부도 고와서 70대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귀빈석에서 여덟 번째 자리에 앉았다.


“이순희 배우님.”


일곱 번째로 호명된 귀빈은 원로 영화배우 이순희였다.


이순희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였다. 슬픈 눈매로 눈물샘을 자극한 인간 최루탄이었다.


대표작은 ‘용석골 김부인’, ‘장난 편지’였다. 75세 나이에 키가 작고 왜소한 여성이었다.


귀빈석에서 아홉 번째 자리에 앉았다.


“전민 배우님.”


마지막 여덟 번째로 호명된 귀빈은 원로 영화배우 전민이었다.


전민은 60대 후반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연기파 배우였다. 대표작은 ‘권투 선수, 김찬’, ‘파리와 바게트’였다.


85세 나이에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성이었다.


귀빈석에서 열 번째 자리에 앉았다.


귀빈 여덟 명이 커피를 쭉 들이켰다. 모두 고령이었지만, 건강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경찰 조사를 앞둬서 그런지 분위기가 밝지 못했다. 서로 말없이 커피만 마셨다.


커피를 거의 다 마셨을 때 성진수 비서가 휴게실에 도착했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삐리릭!



백정현 형사의 전화였다. 발신자는 유강인이었다. 백형사가 전화 받았다.


“백형사님, 귀빈 여덟 명과 비서님이 다 모였나요?”


“네, 다 모였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에 이상이 없나요?”


“모두 건강하십니다.”


“좋습니다. 귀빈과 비서님을 3층 대강당으로 모시세요.”


“알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전화를 끊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참고인들에게 말했다.


“이제 대강당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대강당은 3층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유강인 탐정님이 계십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대강당이요? 조사실이 아니고?”


전나숙 배우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참고인 조사를 요청한 유강인이 대강당에 있었다.


“어서 가시죠. 거기에서 합동 조사가 있습니다.”


백형사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참고인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합동 조사를 한다는 말에 서로를 쳐다봤다.


전나숙 배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캔을 재활용 통에 버리고 말했다.


“어서 갑시다. 적극 협조해야 조사가 빨리 끝나죠.”


“맞습니다. 갑시다.”


참고인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캔을 재활용 통에 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



엘리베이터가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휴게실은 1층이었다. 2층만 올라가면 대강당이었다.



띵동!



신호음이 울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귀빈과 백정현 형사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복도를 걸었다. 복도 우측 끝에 대강당이 있었다.


끼익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강당 출입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대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대강당답게 수많은 의자가 있었다. 의자 앞에 높은 단이 있었다.


단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탐정 유강인이었다. 단 위에 서서 귀빈들과 비서를 기다렸다.


앞자리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황정수와 정찬우 형사였다. 황수지는 단 밑에 있었다.


참고인들이 대강당으로 들어오자,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앞자리에 차례대로 앉으세요. 자서전 출간기념회 때처럼 앉으면 됩니다.

여기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백두성 회장님과 김정태 배우님 대역입니다.”


“그렇군요.”


“아, 그때를 재현하는 거 군요.”


귀빈들과 비서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 모두 유강인의 의도를 알아챘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자리에 전나숙 배우님, 두 번째 자리엔 김동인 과장님, 세 번째 자리에 신양선 감독님, 네 번째 자리에 정인숙 제작자님이 앉으세요.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자리는 대역 자리입니다.

일곱 번째 자리에 이두철 전장관님, 여덟 번째 자리에 최민희 배우님, 아홉 번째 자리에 이순희 배우님, 마지막 열 번째 자리에 전민 배우님이 앉으세요.”


성진수 비서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저는 어떡하죠?”


유강인이 답했다.


“성진수 비서님은 그때처럼 단 옆에 서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귀빈들이 술렁거렸다.


“출간기념회를 왜 재현하는 거죠?”


“글쎄요. 무슨 의도가 있겠죠.”


“이거 단순한 참고인 조사가 아닌 거 같아요.”


귀빈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닥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귀빈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유강인이 매의 눈으로 귀빈들을 살폈다.


비서와 귀빈 아홉 중에 백두성 회장을 죽인 범인이 있었다. 아홉 명 모두 용의선상에 올랐다. 모두 범행이 가능했다.


매실차 독을 탄 자를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잡아야 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던 귀빈들이 입을 다물자,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조사를 시작해야 했다. 크게 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침착한 목소리였다.


“먼저, 모두 조사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천일수, 백두성, 김정태 살인 사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세 분 다 영화인이었습니다. 유명하신 배우였고 감독님이었습니다. 세 분의 죽음에 안타까운 심정을 표합니다.”


귀빈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죽은 셋은 동료였다. 곳곳에서 탄식 소리가 들렸다. 잠시나마 셋의 죽음을 애도했다.


유강인의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제 범인을 잡아야 했다. 백두성을 독살한 미스터김의 조직원이 누구인지 이 자리에서 가려야 했다.


유강인이 먼저 핸드폰을 살폈다. 사건 당일, 귀빈과 비서의 동선을 살피는 우동식 형사가 계속 문자를 보냈다.


“그렇군.”


문자를 확인한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윽고 눈을 가늘게 떴다. 눈에서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투시하는 거 같았다. 마음속 깊이 검은 마음을 품은 자를 잡으려는 거 같았다.


“아이고, 눈빛이 참 무섭네.”


전나숙 배우가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유강인을 만났다. 소문만으로 접했던 탐정이었다.


탐정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눈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소문과 달리 똑똑해 보이지 않았다. 멍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초점을 딱 맞추더니 귀빈들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매우 강렬한 눈빛이었다.


전나숙 배우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랜 기간 배우 생활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었다. 그런데 이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꿰뚫어 버리는 칼날 같은 눈빛이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대강당에 긴장감이 마구 흘렀다. 참고인들이 점점 타오르는 긴장감을 참지 못하고 입술에 침을 묻혔다.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자서전 출간기념회 CCTV를 면밀하게 살핀 결과, 애석하게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CCTV가 뒤에 있어서 백두성 회장님의 넓은 등판만 보였습니다. 문제의 매실차 잔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의 증언을 듣고자 합니다. 괜찮으시죠?”


“괜찮습니다.”


“네, 상관없습니다.”


귀빈들이 모두 동의하자,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백두성 회장님은 프레스 센터로 오기 전, 차 안에서 매실차 한 잔을 드셨습니다. 그게 첫 번째 잔입니다.

행사장에 오신 후에는 차를 두 번 드셨습니다. 그래서 총 세 번 매실차를 드셨습니다. 차를 따른 사람은 여기 계시는 성진수 비서님입니다.

백회장님은 첫 번째 잔을 드셨을 때 이상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잔에는 독이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그다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두 번째 잔이 비워지자, 단 옆에 서 있던 비서님이 움직였습니다. 백회장님 자리 앞으로 가서 매실차를 따랐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비서님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있었나요?”


귀빈들이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한 점이 없었다는 의사표시였다.


그 모습을 보고 성진수 비서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단 위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우측 끝으로 갔다가 왼쪽 끝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두 번 왕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귀빈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탐정이 뭘 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발소리가 멈췄다.


유강인이 걸음을 멈췄다. 첫 번째 자리인 전나숙 배우 앞이었다.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잔이 채워진 후 행사가 지연됐습니다. 그러자 귀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두성 회장님 자리 앞으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덕담을 나눴습니다. 제 말이 맞나요?”


“맞습니다. 그때 다들 모여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맞아요. 그게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오른손 검지를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잔에 독을 탔습니다. 범인은 여러분 중에 있습니다.”


유강인의 말에 아홉 용의자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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