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_탐정 유강인 18편_51화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by woodolee

51화_거짓말 탐지와 범인의 정체


유강인이 바로 앞에 앉아있는 전나숙 배우를 내려다봤다.


전나숙 배우가 움찔했다. 순간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 탐정이 무서운 눈빛으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떨었다.


이윽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영하 30도 한파 같은 소리였다. 심장이 단박에 얼 거 같았다.


“첫 번째 자리에 앉았던 전나숙 배우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전나숙 배우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급히 답했다.


“네에? 아,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하세요? 생사람 잡지 마세요!”


전나숙 배우가 극구 부인했다. 얼굴이 순식간에 뻘게졌다. 몸을 파르르 마구 떨었다.


“알겠습니다. 무례한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다음 자리인 김동인 과장 앞에서 걸음을 딱 멈추더니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자리에 앉았던 김동인 과장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회장님은 우리 회사 고객인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김동인 과장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귀빈들을 상대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세 번째 자리에 앉았던 신양선 감독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아닙니다! 억측하지 마세요.”


“네 번째 자리에 앉았던 정인숙 제작자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일곱 번째 자리에 앉았던 이두철 전장관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무례한 질문은 하지 마세요!”


“여덟 번째 자리에 앉았던 최민희 배우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유강인 탐정님, 이거 왜 이러세요? 유명한 탐정이라고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가요? 억울한 누명 씌우지 마세요.”


“아홉 번째 자리에 앉았던 이순희 배우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그런 건 생각조차 한 일이 없어요!”


“마지막 열 번째 자리에 앉았던 전민 배우님, 백두성 회장님을 죽이려고 잔에 독을 탔나요?”


“하하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항상 백두성 회장님을 존경했습니다. 항상 백회장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 제가 그런 짓을 하다니요?”


모든 질문이 끝났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빈들의 얼굴이 모두 붉어졌다. 몹시 화가 난 듯했다. 유강인의 행동이 무례하다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강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그때 단 근처에 서 있던 황수지가 손뼉을 짝 쳤다. 뭔가를 깨달을 듯 고개를 끄떡이더니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 거짓말을 간파하려고 저렇게 하시는 거구나. 거짓말 탐지기야. 인간 거짓말 탐지기.”


황수지의 생각대로 유강인은 거짓말 탐지기처럼 상대방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일 대 일로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의 반응을 포착했다. 눈꺼풀과 목소리, 손, 발의 미세한 떨림을 관찰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몸에서 반응이 있기 마련이었다. 보통 거짓말 탐지기 기계를 이용하지만, 유강인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의 감각은 기계보다 훨씬 정밀했다.


게다가 기계가 감지 못하는 특유의 분위기인 뉘앙스까지 포착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아날로그였다. 그 연속성은 구분할 수 없었다.


하나, 둘처럼 세상을 구분하는 디지털은 인간이 만든 도구에 불과했다. 아날로그 세상을 편의적으로 나눈 것에 불과했다.


거짓말 탐지기는 인간이 만든 디지털 기계였다. 그래서 정확성에 문제가 있었다.


진실은 아날로그에 있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아날로그를 정확하게 감지할 수 없었다. 그건 촉이 발달한 인간만이 가능했다.


유강인은 끊임없는 흐르는 아날로그 속에서 상대방의 기운을 포착했다.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직관과 통찰력이었다.


직관과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적의 허점을 노렸다. 통상적인 참고인 조사인 척하며 프레스 센터 출간기념회와 유사한 대강당을 골랐다. 앉는 자리도 그때처럼 앉게 했다.


아무리 간이 큰 적이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허둥대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백전노장이라는 점이었다. 귀빈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사들이었다.


의외의 상황에 다소 당황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황하는 찰나를 노려야 했다.


유강인이 씩 웃었다. 소득이 있는 거 같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무척 친절한 목소리로 귀빈들과 비서에게 말했다.


“무례한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1차 조사를 마칩니다. 다시 휴게실로 가셔서 대기하세요. 추가 조사를 마친 후 유력한 용의자를 호명하겠습니다. 호명한 사람은 2차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네? 유력한 용의자라고요?”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는 말이에요?”


“범인은 김정태 배우잖아! 왜 우리를 의심하는 거지?”


“김정태 배우가 백회장님을 독살하고 화장실에서 살해당했잖아요!”


“맞아요. 이건 억측이에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해요.”


귀빈들이 몸을 떨었다. 상황이 예상과 달리 흘러갔다.


유강인이 매의 눈으로 귀빈들을 살폈다. 백두성을 살해했냐는 질문에 이어 유력한 용의자를 호명하겠다는 말로 귀빈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백전노장을 당황하게 만들어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진실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귀빈들이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참고인 조사였다. 참고인은 용의자가 아니었다. 사건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막상 경찰청에 와보니 참고인 조사가 아니었다. 뜬금없이 대강당에 모여서 범죄 현장을 재현하더니 그것도 부족한지, 범인까지 지목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과거 육체파 여배우였던 최민희 배우가 목청을 높였다.


“만약 유강인이 나를 지목한다면 유강인 저 작자는 완전히 엉터리, 사이비 탐정이야. 가만두지 않겠어! 무례하기 짝이 없어.”


전나숙 배우가 맞장구쳤다.


“맞아요. 나는 죄가 없어요. 나를 지목한다면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하겠어요. 그리고 유강인 저 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어요.”


다른 참고인들이 말을 받았다.


“보아하니, 유강인 저 양반, 그냥 허접한 무당이네. 대충 사람의 마음을 떠보고 범인이라고 우기는 거였어.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우기면 그게 통할 줄 알고 있어. 정말 실망이야.

실력이 좋은 탐정이라고? 최고의 탐정이라고? 막상 접해보니 이런 막무가내가 없네. 질문 하나 던져놓고 범인을 잡겠다고?”


“맞습니다. 우리 중에 범인이 있을 리 없지만, 만약 있다면 … 저는 아닙니다.”


귀빈들이 유강인을 성토했다. 성진수 비서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일단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그가 수상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한 사람은 없었다.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유강인 귀에도 들렸다.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한다며 화를 마구 냈다.


겉으로는 성난 목소리였지만, 혹 범인으로 지목될까 봐 두려워하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에게 손짓했다. 어서 참고인들을 모시고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었다.


백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귀빈과 비서에게 말했다.


“이제 나가시죠. 휴게실에서 대기하셔야 합니다.”


귀빈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너도나도 유강인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밖으로 나갔다.


귀빈과 비서가 대강당에서 나가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이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선임 조수 황정수가 울상을 지었다. 참고인들이 탐정 욕을 한바탕하고 밖으로 나가자, 자기도 욕을 먹은 거 같았다.


황수지가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했다.


정찬우 형사와 조수 둘이 모여서 얘기를 나눴다.


“탐정님이 대체 왜 이러시지?”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 거 같아요. 탐정님이 무리수를 두는 거 같아요.”


“딱히 방법이 없어서 그러셨겠죠. 사실 범인을 밝힐 마땅한 방법이 없잖아요. 물증이 있더라고 벌써 없앴겠죠.”


동료들이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돌렸다. 단 위에서 생각에 잠긴 유강인을 빤히 쳐다봤다.


그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강인이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CCTV 영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영상을 아무리 돌려봐도 잔에 독을 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백두성 회장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범인이나 수상한 자를 지목하는 증언도 없었다.


한마디로 사건 해결이 난관에 봉착했다. 그런데 사건 책임자인 유강인이 여유를 부렸다. 마치 잘 됐다는 듯 미소를 짓기도 했다.


1분이 흘렀다.


유강인이 생각을 정리하고 동료를 불러모았다.


정찬우 형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의심 가는 사람이 있나요?”


백정현 형사도 말했다.


“제가 볼 때 다 결백해 보입니다. 대체 누가 범인이죠?”


황정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귀빈 중에 범인이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다 유명하신 분들이던데 … 진짜 범인이 있기는 있는 거예요?”


“저는 누가 범인인지 도통 모르겠어요. 다들 결백하다고 했어요.”


황수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유강인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동료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야 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명이 수상해.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왼쪽 발을 많이 떨었어. 떨리는 발을 오른쪽 발 뒤로 숨기더군.

다른 사람은 태연하거나 아니면 긴장감에 몸을 떨었어. 그런데 한 사람만 몸이 보내는 사인이 일치하지 않았어.

그걸 보고 깨달았지. 그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야. 물론 이건 어림짐작인 심증에 불과해. 하지만 수사는 심증, 즉 직관에서 출발하는 거야.”


“태연한 척을 하면서 왼쪽 발을 떨었다고요? 그것도 몰래!”


황정수가 깜짝 놀랐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체 그 사람이 누구죠?”


유강인이 대답 대신 핸드폰을 들었다. 우동식 형사한테 전화 걸었다. 우형사가 전화 받았다.


“대장!”


“우선배님, 최민희 배우님 CCTV에 이상한 점이 있나요?”


최민희 배우라는 말에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가 깜짝 놀랐다.


유강인이 의심하는 자는 과거 육체파 배우로 유명했던 최민희였다. 최민희는 전성기 시절 한국의 ‘마릴린 먼로’로 불렸다. 지금은 살이 빠져 날씬하지만, 과거는 풍만한 몸이었다.


우동식 형사가 답했다.


“행사장 CCTV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 경찰 조사를 마치고 바로 귀가했더군. 택시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려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들어갔어.”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면, 혹 CCTV 사각 지역에 들어갔나요?”


“응, 마을 공원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동산이 있는 곳이야. 거기에 CCTV가 없었어. 잠깐 동산에 들어갔다고 다시 나왔어.”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고요?”


“응! 1분 30초 정도 걸린 거 같아.”


“동산 말고 다른 곳에 들어갔다고 나온 적은 없나요?”


“없어.”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동산으로 출동하겠습니다. 거기가 어디죠?”


“서울 송파구 제천동이야. 프리미어 아파트 근처야.”


“제천동 프리미어 아파트! 알겠습니다. 다행히 멀지 않네요.”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급히 동료들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송파구 제천동 프리미어 아파트로 가야 합니다. 어서 서둘러요! 가서 증거를 잡아야 합니다.”


황정수가 급히 말했다.


“탐정님, 최민희 배우님이 범인이라는 말이에요?”


“선임 조수님, 그런 거 같아요. 탐정님이 최민희 배우님을 꼭 집어서 말씀하셨어요.”


황수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찬우 형사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유강인이 드디어 범인을 지목했다. 그리고 출동 지시도 떨어졌다.


“어서 가자고! 시간이 없어!!”


유강인이 크게 외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가 따랐다. 뒤이어 백정현 형사도 달려왔다.


귀빈과 비서는 이호식 팀장과 차수호 반장이 맡기로 했다.


유강인이 급히 서둘렀다.


백두성은 11월 16일에 죽었다. 오늘은 11월 19일이었다. 그 사이에 증거가 훼손되거나 없어질 수 있었다.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한시도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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