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_탐정 유강인 18편_53화

by woodolee

53화_백두성 회장을 살해한 자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최민희 배우는 미스터김의 조직원이 분명해. 조직의 계획에 따라서 백두성 회장을 독살하고 유유히 현장에서 빠져나왔어.

이후 소지한 독병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야 했지만, 아마추어답게 실수하고 말았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여기로 올라왔어. 원수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원수라고요?”


“응, 원수는 길고양이야. 최민희 배우는 길고양이를 극도로 싫어한 게 분명해. 수중에 독이 있자, 이 독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거야.

백두성 회장이 죽는 걸 보고 쾌감을 느낀 거 같아. 그래서 평상시 꼴 보기 싫었던 길고양이들마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고 한 거야.”


“아이고, 정말 무서운 여자네요.”


“피를 봤으니 더 보고 싶었겠지. 집으로 가면서 즉흥적으로 행동한 거 같아.

여기 주민이니 이곳에 CCTV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거고.”


“길고양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짓을 하죠. 참!”


“사람이 악해지면 더 악해지기 마련이야. 악해질수록 자신이 악인이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 해. 더 대담해지고 악랄해지지. 후안무치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야.”


“그런 거 같네요. 이 일은 미스터김이 예측하지 못한 일 같아요.”


“응, 그렇지. 최민희 배우는 영화계 은퇴 후 조용히 살았어. TV에서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어. 그런 사람한테 임무를 맡기자, 돌발 행동을 한 거야.”


“그렇군요,”


“사료 그릇에 독을 뿌리고 내려갔으니 독병도 이 근처에 있을 수 있어. 그리고 죽은 고양이도 있을 거 같아. 그동안 사흘이나 지났어. 그 사이에 독을 먹고 죽은 길고양이가 있을 게 분명해.”


“빨리 물증을 잡아야겠네요.”


동료들이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의 추리에 일리가 있었다.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과학수사대가 와야 해. 사료에 독이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해, 그리고 독병과 죽은 고양이가 있는지도 찾아야 해!”


“정형사님, 우리가 먼저 조심스럽게 찾아보죠.”


백정현 형사의 말에 정찬우 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두 형사가 급식소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유강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과학수사대를 기다렸다.


백정현 형사가 산비탈을 계속 걸어갔다. 급식소에서 한참 떨어진, 수풀이 우거진 산비탈을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멈칫했다. 그가 급히 외쳤다.


“유탐정님, 여기로 오세요! 여기에 사체가 있습니다.”


“사체라고?”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다.


저 앞에 백형사가 보였다. 표정이 어두웠다. 그가 한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에 동물 사체가 있었다.


“있구나. 젠장!”


유강인이 서둘러 사체를 살폈다. 등 쪽에 푸른 털이 있는 고등어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 몸이 아주 뻣뻣했다. 입에서 피를 흘린 거 같았다. 입 주변 털이 붉었다.


“출혈독!”


유강인이 크게 외쳤다.


백두성 회장은 출혈독과 신경독을 합성한 맹독에 사망했다. 죽은 고양이도 입에서 피를 흘렸다. 출혈독에 중독된 게 분명해 보였다.


“미스터김!”


유강인이 분을 참지 못했다. 그가 검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미스터김! 기다려라! 네놈을 반드시 잡고 말겠다, 네놈의 입에서도 똑같이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릴 거다!!”


유강인의 두 눈에서 새파란 분노가 맹렬하게 끓어올랐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유강인과 동료들이 죽은 고양이 앞에서 참담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을 때


저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차 지붕에서 경광등이 번쩍였다.


과학수사대 차량이 동산에 도착했다. 경찰 버스 한 대도 뒤이어 도착했다.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고양이 사료를 채취하고 죽은 길고양이 사체도 증거물로 확보했다.


경찰 버스에서 내린 지구대대원 40명이 동산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대형 라이트가 동원되자, 동산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고 동네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경찰들이 동네 쉼터인 동산을 수색하기 시작하자,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



서울 경찰청 휴게실에 귀빈 여덟 명과 비서가 앉아있었다. 모두 좀이 쑤신 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유강인이 대강당에서 참고인 9인에게 말했었다. 용의자를 지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요청했다. 요청은 단지 요청일 뿐이었다. 자신이 원하면 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집에 가겠다고 나서면 용의자로 몰릴 거 같은지, 서로 눈치만 봤다. 마치 눈치 게임을 하는 거 같았다.


휴게실에 차수호 반장도 있었다. 차반장이 참고인 9명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맛있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유강인의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 올 때가 됐는데 … .”


차수호 반장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봤을 때


휴게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호식 팀장과 우동식 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팀장의 얼굴이 밝았다.


그 모습을 보고 차반장이 씩 웃었다. 유강인이 증거를 잡아서 용의자를 지목한 게 분명했다.


이호식 팀장이 우동식 형사를 바라봤다. 그러자 우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앞으로 나왔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렁찬 목소리였다.


“전나숙 배우님!”


자기 이름이 호명되자, 전나숙 배우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난 범인이 아니에요! 백회장님을 죽이지 않았어요!!”


우동식 형사가 씩 웃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전나숙 배우님,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 그런 거예요? 저는 혐의가 없는 거죠.”


“네, 혐의가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오랜 시간 여기에 계셔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유강인 탐정님은 대단한 탐정님이네요. 제가 오해할 뻔했어요. 호호호! 그럼, 먼저 갈게요.”


전나숙 배우가 말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참고인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홉 명에서 여덟 명으로 줄어들었다.


“김동인 과장님.”


김동인 과장이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저도 용의자가 아닌 거죠?”


“네, 그렇습니다.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김과장이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우동식 형사가 호명한 사람은 유력한 용의자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호명된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그동안의 긴장을 마음껏 풀었다.


“그럼, 유강인 탐정님이 나를 죄인으로 몰 리가 없지. 암! 괜히 유명한 탐정이겠어.”


“맞아요. 괜히 걱정했어요. 역시 명불허전이네요. 대단한 탐정임이 분명해요. 진짜 우리 중에 범인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네요. 그 사람이 대체 누굴까요?”


“그거야 유강인 탐정님이 알아서 잡을 겁니다. 대단한 탐정이잖아요. 우리랑 상관없으니 어서 집으로 갑시다. 아! 출출하니 저녁 먹고 갈까요?”


“아귀찜 먹으러 가죠. 근처에 잘하는 데를 알고 있어요.”


“좋습니다. 어서 갑시다. 아, 두 분만 남았네. 두 분 중에 한 분이 범인이겠네요. 참, 어이가 없네요. 그럼, 이만.”


“저 두 분이라면 … 아이고, 어쩌다가 … 설마 아니겠죠?”


호명된 일곱 명이 휴게실에서 떠났다. 이제 두 명만 남았다. 성진수 비서와 최민희 배우였다. 둘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난 범인이 아닌데 ….”


성진수 비서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태연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눈꺼풀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최민희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안절부절못했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계속 움찔거렸다.


휴게실에 긴장감이 더해갔을 때


우동식 형사가 말했다.


“최민희 배우님!”


최민희 배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다행이다! 저도 집에 가도 되죠?”


우동식 형사가 굳은 표정을 짓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했다.


“최민희 배우님은 남아서 2차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성진수 비서님은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성진수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이제 휴게실에 남은 참고인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최민희 배우였다. 고양이 사료에 독을 뿌린 자였다.


“세, 세상에!”


최민희 배우가 매우 놀란 나머지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이호식 팀장이 입을 열었다.


“최민희 배우님은 2차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조사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조사 후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피의자로 전환되면 긴급 체포 후 구속 영장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가 필요하면 부르세요.”


그 말을 듣고 최민희 배우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입이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일 수 없는 거 같았다.


그녀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어제 경찰의 연락을 받고 통상적인 참고인 조사로 생각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나섰다.


그런데 졸지에 유력자 용의자가 되고 말았다. 곧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할 위기에 처했다.



탐정단 밴이 서울청에 도착했다. 유강인이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이제 최미희 배우를 조사해야 했다. 정찬우 형사와 백정현 형사는 수색대와 함께 동산에 있었다.


유강인이 걸음을 서둘렀다. 강력범죄수사대 조사실로 곧장 향했다. 그 뒤를 조수 둘이 따랐다. 조수 둘의 표정의 어느 때 보다 밝았다.


드디어 백두성 회장을 죽인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거 같았다.


한편 최민희 배우는 조사실 안에서 벌벌 떨었다. 그녀 혼자 있었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폐를 덮쳤다. 점점 숨이 막혀 오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문이 열렸다. 유강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차수호 반장도 들어왔다. 차반장이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민희 배우님, 자리에 앉으세요. 2차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탐정님, 조사를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답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최민희 배우가 쓰러지듯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


유강인이 잠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과거 육체파 여배우로 유명세를 날렸던 대배우가 살인 용의자 신세로 전락해서 그 앞에 있었다.


“으으으~!”


최민희 배우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여기에서 무너질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심호흡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조사를 시작해야 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최민희 배우님, 사건 당일 행사장에서 조사를 받고 귀가했는데 도중에 한 곳에 들렀더군요. 바로 동네 동산입니다. 동네 동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습니다.”


“헉!”


그 소리를 듣고 최민희 배우가 깜짝 놀랐다.


“길고양이가 … 그렇게 싫었나요? 그래서 길고양이 급식소에 독을 뿌렸나요? 백두성 회장님뿐만 아니라 길고양이도 같이 죽였나요?”


최민희 배우가 허가 찔린 듯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사료와 죽은 고양이 사체를 분석하면 독 성분이 나올 겁니다. 백두성 회장님은 출혈독과 신경독을 합성한 맹독으로 사망하셨습니다.

이 독은 아주 특별한 성분입니다. 한국 최고의 독성분 분석 전문가가 이 독의 성분을 밝혀냈습니다. 조만간에 사료와 고양이 사체 분석이 끝날 겁니다.

그러면 최민희 배우님이 독을 소지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겁니다. 그 독은 일반인이 소지할 수 없는 독이고, 국내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독입니다.

그런 독이 백두성 회장인 시신과 고양이 사료, 사체에서 똑같이 나온다면 출간기념회 행사장과 동네 동산에 다 계셨던 최민희 배우님이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아니야!”


최민희 배우가 소리를 지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크게 외쳤다.


“정말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난 그냥 운동하려고 동산에 올라간 거야!”


“백두성 회장님을 죽인 그 특별한 독이 최민희 배우님이 올라간 동산에서 나온다면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독을 먹은 고양이가 삼 일 내에 죽었다면 이것도 역시 명백한 정황 증거입니다. 백회장님이 죽은 지 삼 일이 지났습니다. 시간상으로 딱 들어맞습니다.

지금 동산 일대를 철저하게 수색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수색 결과가 나올 겁니다. 다른 증거도 찾고 있습니다.”


“헉!”


최민희 배우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유강인이 전화 받았다. 백정현 형사의 전화였다.


“유탐정님, 동산에서 약병 같은 걸 발견했습니다. 표면에 지문이 있습니다. 지문을 감식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약병을 발견했는데 지문이 있다는군요. 약병 분석 결과와 지문 분석 결과가 곧 나올 겁니다.”


“악!”


최민희 배우가 비명을 질렀다.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자백하세요.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최민희 배우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명백한 증거가 그녀를 옥죄기 시작했다.


1분이 지났다.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최민희 배우가 뜨거운 눈물을 마구 흘렸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백두성 그자는 죽어도 싸! 그자는 위선자야! 수많은 여자를 농락한 플레이 보이, 호색한이야! 매우 나쁜 놈이야! 나를 갖고 놀았어!”


최민희 배우가 무척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 범죄를 시인하는 겁니까?”


최민희 배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다시 크게 외쳤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지금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겠어. 변호사를 불러 대응하겠어!”


“그렇군요. 그렇게 하세요. 원하시는 대로.”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비권은 이 사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었다.


천일수 감독 살인범인 오태환과 JS 그룹 경호팀을 시작으로 길고양이와 백두성을 살해한 최민희 배우도 똑같이 묵비권을 행사했다. 잡히면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지시받은 거 같았다.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피의자와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유강인이 출입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유강인의 발걸음에 자신감이 있었다. 백두성 회장 독살 사건은 쉽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결국, 해결했다.


백두성을 죽인 용의자는 9명이나 됐다. 9명을 일일이 조사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증거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었다.


유강인은 시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한 명의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고 수사 역량을 총집중해서 범인을 검거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3화추리 소설_탐정 유강인 18편_5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