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조사실에서 나오자, 이호식 반장이 함빡 웃었다. 그가 유강인에게 걸어와 말했다. 희망에 찬 목소리였다.
“유탐정, 이제 성분 분석 결과만 나오면 돼. 사료에 뿌린 독이 백회장님을 살해한 독과 같다면 최민희 배우를 바로 기소할 수 있어.
매우 희귀한 독이라 이건 우연한 일치일 리 없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반장이 말을 이었다.
“국과수에서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조만간에 결과가 나올 거야. 이거 어려운 일이 아니래.”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최민희 배우 목소리를 미스터김 두목 목소리와 대조해 보세요.”
“두 사람이 동일인인지 살펴보라고? 최민희 배우는 조직원이라 했잖아?”
“나이로 볼 때 아닌 거 같지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은 해야 합니다.”
“유탐정, 수첩 최초 기록이 60년 전 일야. 최민희 배우가 지금 77세니, 그때 17이나 18살 때잖아. 그 나이에 범죄 조직 두목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여.”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일입니다. 타고난 범죄 영재라며 어린 나이에도 두목을 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지만, 확인은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알았어. 목소리 확인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리하지. 지금 전문가한테 의뢰할게.”
이호식 팀장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유강인의 요청에 따라 두 사람의 목소리를 대조해야 했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긴장감을 내뱉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회의실로 향했다. 그러자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유강인을 기다리던 조수 둘도 발걸음을 옮겼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안에 들어간 유강인이 자리에 앉았다. 그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현재 미스터김이 저지른 세 개의 살인 사건 중 두 개의 사건을 해결했어. 천일수 살인 사건과 백두성 살인 사건이야.
천일수 살인 사건은 오태환과 JS 그룹 경호팀이 범행을 실행했고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이 이 일을 사주한 게 분명해. 범죄 기획은 미스터김이 담당했고.
백두성 회장이 비밀을 폭로하려고 두 번째 자서전 출간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미스터김이 눈치를 챘어. 미라클 북스 출판사에 놈들의 스파이가 둘이나 있었어.’
유강인이 자세를 고쳐잡고 생각을 이었다.
‘백회장은 비밀을 폭로하기에 앞서 같은 구왕자 멤버이자, 오랜 친구인 송해성 회장한테 잃어버린 아들이 있다고 알렸어. 그 일을 맡은 사람은 같은 구왕자 멤버인 천일수였어.
그러자 놈들이 재빨리 움직여서 천일수를 죽여버리고 혼외자식인 박재영마저 죽이려 했어. 그렇게 비극이 시작된 거야.
놈들이 다음 타깃은 백회장이었어. 살해 장소를 자서전 출간기념회로 잡고 실행에 옮겼어.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개의치 않았어.
한마디로 아주 간이 큰 놈들이야. 무척 교활하기도 하고 … 그렇게 백회장을 저승으로 보내버렸어.
살인 사건의 범인은 귀빈석에 앉았던 원로 배우인 최민희야. 그녀가 백회장을 독살했어. 나이상 조직의 두목이라기보다는 조직원으로 보여.’
유강인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살인 사건은 김정태 배우 살인 사건이야. 백두성 회장을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고 말았어.
아직 살인범을 잡지 못했어. 범인은 분명 전문 킬러야. 그래서 행방이 묘연해. 역시 전문 킬러다워.’
유강인이 왼손으로 턱을 만졌다.
‘미스터김 두목은 고령이 분명해. 60년 전에 의뢰를 받았으니 그때가 20살이어도 지금은 80살이야. 80살이 훌쩍 넘은 게 분명해. 100살 가까이 될 수도 있어.
그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이런 치밀한 범죄를 기획하고 벌인다고 … 이건 힘든 일이야.
나이가 아주 많으면 지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그러면 실세가 따로 있거나, 젊은 두목이 있는 건가?’
유강인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뭔가를 깨달을 듯했다.
‘백두성 회장 집에 CCTV가 많았다는 것도 중요해. 백회장은 미스터김과 대립 관계였어. 그러니 CCTV를 집안 곳곳에 달았겠지. 혹시 모를 화를 경계한 거야.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어. 백회장이 비밀을 폭로하려는 걸 미스터김이 어떻게 알았냐는 거야.
자서전 출간은 은밀히 추진한 일인데 미스터김이 이 사실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어.
그렇다면 백회장님 주변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인데 … 주변 사람이라면 가사도우미와 비서야. 그렇다면 둘도 매우 의심스러워.’
“가사도우미와 비서라!”
유강인이 둘을 떠올렸다. 둘은 겉보기에 매우 성실해 보였다. 하지만 정황상 둘 중에 스파이가 있는 거 같았다. 아니 둘 다 스파이일 수도 있었다.
미스터김은 무서운 조직이었다. 치밀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경우의 수라도 소홀히 다룰 수 없었다.
회의실에 조수 둘이 들어왔다. 벌써 퇴근할 준비를 마쳤다. 둘이 여전히 희희낙락했다. 황정수가 말했다.
“오늘 일찍 퇴근하죠. 백두성 회장님 살해범을 잡았잖아요. 곧 긴급 체포될 거랍니다.”
황수지가 방긋 웃으며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이제 퇴근해요.”
유강인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아직 미스터김 두목을 잡지 못했어. 두목을 반드시 잡아야 해. 그자가 모든 일을 꾸몄어. 모든 일의 원흉을 아직 잡지 못했어.”
황정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일 생각해요. 오늘은 그만 일하고 쉬어요. 벌써 밤이 됐어요. 아주 캄캄해요.”
유강인이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통해 밖을 살폈다.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가로등 불, 빌딩의 조명이 서울의 밤을 밝혔다.
잠시 야경을 감상하던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밤이 늦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집에 가자. 내일은 오전 11시에 모이자고. 좀 쉬면서 생각을 정리할게.”
황수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오전 11시에 집에서 나오세요.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알았어.”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수들과 함께 회의실에서 나갔다.
**
탐정단 밴이 서울의 밤을 헤치고 유강인의 집 앞으로 달려갔다. 늦은 시간이라 차들이 붐비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하자, 뒷좌석 문이 열렸다. 유강인이 차에서 내렸다.
“그럼, 잘 주무세요!”
황수지가 차창을 내리고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한 손을 흔들었다.
탐정단 밴이 후진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밤바람이 무척 찼다. 벌써 한겨울이 된 거 같았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밤바람이 차가웠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범인을 잡겠다는 열기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시간이 흘러 새벽 2시가 되었다. 늦은 밤이라 거리에 인기척이 없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길고양이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밤이었다.
칼바람이 쌩쌩 불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나무 벤치에 앉아있었다.
여기는 동네 공원이다. 벤치와 어린이 놀이터, 철봉 등의 운동 시설이 있었다.
벤치에 앉은 사람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눈빛이 스탠드 조명처럼 번쩍였다. 유강인이었다.
그는 잠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났다. 곤히 잠든 어머니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유강인은 사건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에 몸을 일으켜 동네 공원을 찾았다.
고심하기에는 동네 뒷산이 좋았지만, 지금은 너무 어두워 산을 탈 수 없었다.
세상이 아주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만이 세상을 은은하게 비출 뿐이었다. 빌라를 비롯한 상가 건물들은 진작에 어둠에 잠겼다.
오랫동안 고심하던 유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크게 내쉬고 벤치 주변을 서성였다. 그러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렇지.”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벤치 위에 있는 책과 서류 뭉치를 들었다. 백두성 자서전 1권과 교정 교열용 원고였다.
핸드폰 라이트를 켜더니 자서전 1권을 살피기 시작했다. 깊은 어둠 속에서 작은 라이트 하나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어둠의 힘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해가 뜨기 시작했다. 미약하지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하!”
유강인이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백두성 회장이 죽기 전 분명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했어. 그게 중요해. 죄인은 자신을 상징하는 말이야. 죄인이 중요해!”
유강인이 죄인이라는 말을 곰곰이 새겼다. 백두성의 일생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죄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젊은 시절, 많은 여자를 만나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지만, 그것만으로 90년 인생을 죄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결혼한 후에는 여자 문제가 전혀 없었다.
“왜 죄인인 거지?”
유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을 때
백두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인기 스타, 백두성은 배우에서 은퇴한 후 엔터 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다가 성공했고 그 이후에는 IT 사업까지 확장해서 대성공했다.
그 대단한 성공으로 그는 한국이 사랑하는 10인에 선정됐다.
유강인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너무 극적이야. 한 편의 영화 같아. 인생 자체가 영화야. 잠깐! 영화라고? 영화는 시나리오가 있잖아!”
한 편의 영화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먼저 시나리오가 있어야 했다. 아무리 엉터리 시나리오라도 시나리오가 있기는 있어야 했다.
“아!”
유강인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급히 생각했다.
‘백두성 회장이 배우에서 은퇴하고 극적으로 성공한 건 다 이유가 있어.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게 아니야. 뒷배가 있었던 거야.
그래! 백회장이 미스터김의 수첩, 녹음테이프, 사진을 그냥 얻은 게 아니야. 그도 미스터김의 일원이었어. 그래서 미스터김한테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거야.
미스터김은 의뢰금으로 엄청난 현금을 요구했어. 미스터김은 사채업자처럼 자금력이 풍부했을 거야.
그래서 자기를 죄인이라고 말한 거야. 불법 해결사 집단의 일원이었으니 … 죄인이 맞아.
죽기 전 모든 진실을 밝히고 죽으려고 했던 거야. 미스터김이 이 사실을 알고 그가 비밀을 폭로하기 전에 죽여버린 거고.’
유강인이 급히 자서전 3권에 해당하는 원고를 들었다. 그가 페이지를 넘겼다. IT 사업 성공기를 찾았다.
“여기다!”
백두성은 2004년 하반기부터 IT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사업 준비는 그 이전부터 했을 게 분명했다. 사업 전에 거액을 이미 투자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유강인이 미스터의 김의 수첩을 떠올렸다. 마지막 의뢰 기록은 2000년이었다. 추창선 감독 살해 의뢰였다.
“시기가 묘하게 일치해. 수첩의 마지막 의뢰 후 백두성 회장이 IT 사업을 시작했어. 거액을 투자받았다고 했는데 ….
미스터김한테 사업 자금을 받은 건가? IT 사업의 자금 출처가 바로 미스터김인가? 그렇구나!”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백두성 회장과 미스터김이 사업적으로 얽혀 있는 거 같았다.
수첩의 마지막 의뢰 후 IT 사업이 시작했다는 점에서 뭔가가 있었다. 20년이 지난 후, 미스터김과 백두성 회장은 비밀을 사이에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수첩의 주인은 미스터김 두목이었다. 그런데 그 수첩을 백두성 회장이 갖고 있었다. 이점도 매우 수상했다.
이 모든 것을 분석한 유강인의 머릿속에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백두성 회장은 구왕자 중 하나였어. 미스터김 두목도 구왕자의 멤버였으니 백회장도 미스터김의 조직원이 맞아.
그러다 사업 욕심에 배신한 거야. 엔터 사업으로 사업에 맛을 알았고 더 큰물에서 놀고 싶었던 거야.
조직의 수첩, 녹음테이프, 사진을 몰래 훔쳐서 미스터김 두목을 협박한 거야. 그렇게 해서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낸 거야.
그렇게 승승장구한 거야. 그때부터 미스터김 두목은 백회장을 증오했을 거야.
백회장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인물이야. 자서전 제목 그대로야. 그는 호인이자, 악인이야!’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20년이 지난 후, 가족을 다 잃은 백회장이 죽기 전에 양심을 가책을 느끼고 모든 비밀을 폭로하려고 한 거야.
아니, 양심의 가책보다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는 모든 걸 가졌지만, 한편으로 모든 걸 잃었어. 그래서 명성이 추락해도 미련이 없었던 거야.
이 사실을 안 미스터김 두목이 더는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백회장을 죽인 거야. 그렇게 비밀을 영원히 묻으려고 했어.
그 과정에서 천일수 감독과 김정태 배우가 죽었고 박재영도 죽을 뻔했어.’
유강인의 머릿속에 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돈을 노리고 추악한 일을 하는 해결사 집단과 이를 이용하려는 자가 반목하면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유강인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 단서는 돈의 흐름이야.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돈의 흐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IT 사업 투자금의 행방을 쫓아야 해.
투자금의 출처는 바로 미스터김이야!”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