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이제 말씀을 좀 해주세요~~
아빠의 주재원 파견을 이용해서 짧은 2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중 2로 돌아온 둘째는 또래 친구가 없어 학교 생활을 힘들어했다. 정 붙일 곳 없어 강아지라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고 둘째가 원했다. 유기견 보호 센터 서너 곳을 찾아 회원 가입하고 주말에 강아지들 곁을 지키며 인연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였다.
첫째 친구 중 하나가 집안 사정으로 키우던 강아지를 대신 돌봐줄 사람을 급히 찾는다는 정보를 접한 바로 다음 날 설이는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느닷없이 준비도 없이.
설이는 예민하고 사나웠다. 승질이 지랄 같고 드러웠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었고, 낯선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했다. 당시 우리 가족들도 낮 동안은 집에 사람이 없었다. 다들 직장과 학교로 흩어졌다가 해지고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왔으니까.
아이들만 보면 물려고 달려들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오는 손을 정확히 물어 버렸다. 개통령의 비디오와 각종 정보를 온 식구가 서로 찾아가며 어르고 달래기를 수년… 가족이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약이었다.
이제 14살이 된 설이는 시력을 잃었다. 그래서 이제는 냄새를 맡게 하고 만지는 손길은 상당히 너그럽게 허락한다. 대신 갑작스럽게 손을 대면 정확히 문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무는 건지 정말 불가사의하다.
14살 치고는 아직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특히 잘 잔다.
산책도 좋아하는데 스스로 걷는 거리 반 캐리어에 실려 다니는 거리 반이다. 3.5kg인데 캐리어에 넣고 짊어지고 걸으면 무겁다.
요즘 온순해진 듯하나 사실은 시력을 잃고 체력이 약해지면서 그냥 만사가 귀찮은 듯하다. 어릴 때 조그만 더 승질을 죽였다면 여러 군데 좋은 곳도 더 많이 다녔으련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옛날이야기
어떤 시골 마을에 외로운 노인이 살고 있었다. 자식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던 그 노인에게 어느 날 밤, 낯선 강아지 한 마리가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그냥 떠돌이겠거니 했지만, 강아지는 유독 그 집에만 머물며 노인을 따랐고, 묘하게 익숙한 눈빛을 보냈다. 노인은 점점 그 강아지를 자식처럼 아끼게 되었고, 함께 밥을 먹고 마루에 나란히 앉아 해를 보내곤 했다.
그러다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조상님이 팔도 구경 다니시다가, 네가 외로운 걸 보고 머무르시기로 한 것 같구나."
이 말을 들은 노인은 괜히 눈물이 났고, 그 뒤로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다.
그리고 몇 해 뒤, 노인이 세상을 떠나자 강아지도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말했다.
"이젠 둘이 만나, 함께 팔도 구경을 나섰구나."
이 이야기는 동아시아, 특히 불교와 도교, 샤머니즘이 섞인 문화권의 환생관(輪回觀)을 잘 보여준다.
사람은 죽고 나면 업(業)에 따라 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동물이나 곤충 등으로도 환생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낯선 동물이 나타나면 “혹시 저 사람이 저 동물로 온 건 아닐까?” 하고 여길 수 있다.
개는 집을 지키고, 인간 곁에서 오래 살아온 동물이다. 충성심과 영적인 감각, 낯선 존재를 먼저 감지하는 능력 때문에 조상이나 신령이 ‘개’를 빌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한국 고유의 무속 신앙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넋(혼백)이 일정 기간 세상을 떠돌다 조상신이 되거나, *해원(解寃)을 위해 환생한다고 여긴다. 이 해원이나 다시 태어남의 방식이 동물에 빙의되거나 깃드는 형태로 표현된다. [*혜원(解寃)" : 원을 푼다, 원통함을 해소한다는 뜻]
"팔도 구경"은 단순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생전 못 누린 자유나 남겨진 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순례이다. 즉, "이승에서의 인연을 완성하려 돌아다니는 조상"이라는 상징이다.
우리 집에 어느 날 느닷없이 오신 조상님, 어떤 인연을 돌봐주시려고 오셨나요?
이제는 그만 물고 말씀을 좀 하세요!!
이름 : 설 (수컷)
나이 : 14살
품종 : 몰티즈 + 푸들 + 포메리온 + 기타 등등
특징 : 문다, 손대지 말 것, 개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