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불러드리면 좋을까요?

우리를 정의하는 것들 중에

by 이상한 나라의 폴

무엇이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이끄는 걸까?


열 살 무렵,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으며 ‘Paul(폴)’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성경 속 사도 바오로에서 따온 이름으로, 바오로의 영어식 발음이다.


사도 바오로는 초기 교회를 세우기 위해 로마 제국 전역을 누비며 선교에 힘썼던 인물.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수많은 도시를 오가며 끝없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던 그의 여정은, 지금 돌아봐도 놀라운 거리를 여행했다.


직장 생활을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시작했다. 1997년 발생한 국가부도사태가 마무리되어 가던 2001년 나는 외국계 회사의 영업직으로 이직했다. 그때부터 Paul이라 불리던 시절, 자연스럽게 전국을,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는 삶이 시작되었다.


30대 후반, 외국계 기업의 지사장 자리에 도전했다. 경력은 충분했지만, 나이가 문제였다. 40대 중반을 원하던 그 자리에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당시 헤드헌터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40대 중반까지 더 많은 리더십 경험을 쌓는다면 다른 어떤 회사의 지사장 자리로 이직이 가능하니 실망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경험을 차근차근 쌓으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때마침 예전 회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젝트의 팀장급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렇게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이방인으로서 다양한 문화 속을 돌아다니며, 다른 시선과 사고를 배웠다. 계획한 일정보다 훨씬 오랜 기간인 1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후 미국에 본사를 둔 한 회사의 제안으로 한국과 일본을 총괄하는 영업이사로 한국에 돌아왔다. Paul이라 불리던 시절, 구글 타임라인엔 17개국 163개 도시, 총 1,461일간의 이동 경로가 흔적으로 남았다. 주말을 빼면, 거의 6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출장길 위에서 살아온 셈이다.


지금은 스타트업 CEO들을 코칭하며 그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이제는 아무도 Paul이라 부르지 않는다. 한국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한국 이름은 한자로 ‘부를 잇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Paul이라 불리던 시절엔 이방인으로 수많은 도시와 국가를 여행하였고, 한국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여행을 멈추고 한 곳에 정착하게 됐었다.


이름은 남이 나를 정의하는 용도로 쓰인다.

남들이 정의해 준 이름값대로 삶이 이끌리는 건 아닐까?


우리를 정의하는 그 이름이, 생각보다 매우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불러드리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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