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7천만 년 전

완벽하게 환경에 적응한 은행나무

by 이상한 나라의 폴

가을이 실종되었다. 어제는 에어컨을 틀고 있었는데 오늘은 Heater로 바꾸어 사용 중이다. 이른 아침 양주에서 출근하는 버스정류장에서 은행나무가 눈에 띄었다. 은행 잎 하나 주어서 책갈피로 사용했던 추억이 떠오르면서 바람에 날리는 노란 은행 낙엽을 운치 있게 바라보았다.


출근길은 서울 삼성동에서 멈췄다. 삼성 2호선 역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막 나서면 양주의 운치는 사라지고 높은 빌딩 숲과 화려한 동영상 광고가 나를 맞이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 높은 빌딩에 주눅 들어 깨닫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테헤란로의 가로수도 은행나무였다. 그런데 출근 전 양주에서 보았던 노란 잎이 아니라 파란 잎이었다. 테헤란로의 은행나무들은 아직 겨울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올해는 여름 다음 바로 겨울인데…이 넘들은 뭘 믿고 잎을 떨구지 않는 거지?


이런 오지랖….ㅋ


은행나무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생각났다.

서울시에서 가로수를 서울시의 상징인 은행나무로 교체하기로 결정한 적이 있었다. 은행나무는 서울시 가로수의 41%를 차지할 정도록 사랑받는 나무이다. 하지만 은행이 열리는 한 달 동안 암나무는 고약한 냄새를 풍겨서 도시 가로수로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래서 서울시는 처음엔 암나무만 골라 대학로 근처에 심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별되고 바람으로 꽃가루를 날려 수정하는데, 무려 2km 떨어진 암나무까지도 수정이 가능하다.


"수나무가 없다"라고 알았던 대학로 근처에 '암나무'만 심었는데... 웬일! 모든 나무에 은행이 주렁주렁 열린 것이다! 알고 보니, 인근 성균관대학교 안에 무려 600년 묵은 거대한 '수나무'가 있었고, 이 수나무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2km를 날아와 대학로의 암나무들을 모조리 '엄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서울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가로수를 다시 교체했다는 이야기다. (믿거나 말거나!)


세 번의 멸종위기를 견뎌낸 '궁극의 생존력'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로수, 은행나무! 혹시 이 평범해 보이는 나무가 무려 2억 7천만 년 전, 페름기부터 지구를 지켜온 '살아있는 화석'이란 별명이 있다. 세 차례의 대멸종을 꿋꿋이 견뎌내고 현재는 전 세계에 단 하나, 징코 빌로바(Ginkgo biloba)라는 이름으로 은행나무계, 강, 목, 과, 속, 종까지 단 한 줄로 분류된다.


2억 7천만 년 전에 완벽히 환경에 적응해서 지금까지 모습을 바꿀 필요가 없었던 식물이다. 은행나무는 서울시 뿐 아니라 우리나라 가로수 중 약 40%를 차지할 만큼 사랑받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강인한 내성' 때문이다.


잎과 껍질에는 플라보노이드, 테르페노이드 같은 살충 성분이 있어 병충해는 감히 접근하기 어렵고, 곰팡이와 세균성 질병에도 끄떡없는 면역력을 자랑한다. 이 성분들 중 특히 징코릭산(Ginkgolic Acid)과 같은 물질이 강한 살충 및 방충 효과를 낸다. 오래된 책 사이에 은행잎을 넣어두면 좀벌레나 해충이 생기지 않는 과학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는 중장년 세대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생활의 지혜인 것이다.


또한, 도시의 공해를 흡수하는 '필터' 역할도 탁월하다. 두꺼운 큐티클 층과 깊숙한 기공 덕분에 중금속과 황산가스가 막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한 그루가 매년 35kg가량의 먼지와 오염 물질을 싹 제거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도 끄떡없는 생존력을 보여준다. 겨울철 제설용 염화칼슘(내염성)에도 강하고, 깊게 뻗은 뿌리로 가뭄(내건성)에도 물을 잘 빨아들인다. 심지어 도시의 열섬 현상(내열성)과 방사능까지 견뎌내는 무시무시한 생존력을 가진 나무이다.


은행나무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도시를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들을 수행한다. 넓은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활발한 증산 작용을 통해 주변 온도를 2~3도까지 훅 낮춰 도시 열섬 현상 완화에 크게 기여한다. 천 년까지도 거뜬히 사는 긴 수명 덕분에 이산화탄소를 장기간 저장하는 '탄소 격리 창고' 역할도 톡톡히 수행한다.


생태계에도 기여하여, 울퉁불퉁한 나무껍질 틈은 곤충들의 안락한 서식지가 되어준다. 그리고 모두가 꺼리는 그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열매는 사실 까마귀나 청설모 같은 동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식량인 것이다.


수억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모습을 거의 바꾸지 않고 살아남은 비결은 '완벽한 적응'에 있다. 이 나무는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닌 '중간 단계'의 식물로 분류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수컷의 정자가 운동성을 가지고 헤엄쳐 수정하는 매우 원시적인 생식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 속도가 느리고 수명이 긴 덕분에 급격한 환경 변화에도 서서히 적응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은행나무' 그 자체로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은행나무의 유일한 '옥에 티'는 암컷 열매의 고약한 냄새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수컷 나무만 선별하여 심는 방식으로 도시의 쾌적함을 지키고 있다. 은행나무는 빙하기 이후 멸종위기가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 (산맥이 북쪽 찬 공기를 막아줌) 덕분에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중국 일부지역과 한반도가 유일한 자연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불교 사찰 등을 중심으로 인간이 의도적으로 심고 보호하며 지켜낸 거의 유일한 식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참고 자료

유튜브 영상: 은행나무: 2억 7천만 년의 생존자, 도시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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