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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2 하루의 값어치

프로젝트 관리의 주요 대상은?

by 이상한 나라의 폴

사우디에서 조 단위의 초대형 프로젝트 막바지에 있었다.


현장에 집채만 한 대형 모터 하나가 설치된 뒤 시운전 중에 과열로 모터 내부 권선이 타버렸다. 대형 모터는 운전하다가 정지하면 일정한 시간 열을 식힌 다음 다시 운전을 해야 하는데 일정이 급하다고 거실의 TV 켜듯이 운전 버튼을 반복해서 눌러대었던 것이다.


운전 기록을 보면서 원인 제공자를 결정하는 데 1주일이 걸렸다. 누가 왜 버튼을 그렇게 눌렀는지 규명이 되어야 수리의 책임 소재가 정해지기 때문에 제조사와 시공사가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운전기록상 제조사가 현장에 있지 않는 시간에 10여 번 정도 연속적으로 운전을 시도한 기록이 있었다.


시공사는 안전 문제를 거론하며, 모터를 정지했다 재 운전 시 운전 버튼이 곧바로 작동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사람이 실수할 수 있는 개연성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은 제조사의 설계 실수로 주장했다. 제조사는 설계 승인하에 제작되었고 매뉴얼에 충분한 경고를 하였으며, 현장에서 설명도 했으니 지침을 따르지 않은 시공사의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집채만 한 모터를 미국으로 보내고 수리하고 다시 받으려면, 해상운송 시는 최소 3개월이 걸린다. 비행기로 운송하면 최대 1.5개월 안에 해결가능하나 비용이 2~3억 더 필요했다. 주요 의사 결정권자 중 하나였던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수리에 필요한 소요시간과 비용을 보고했고,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로젝트 스케쥴러와 코스트 관리자를 불러서 계약적인 부분을 검토시켰다.


제조사와의 싸움은 뒤로 미루고 일단 수리비와 운송비 모두를 시공사가 부담해서 진행키로 결정하였다. 제조사와는 모터가 수리되어 돌아오면 재 협상하면서, 금액적으로 또는 다른 지원 서비스를 받아내는 쪽 협상을 하자는 쪽으로 내부 결정이 내려졌다.


프로젝트가 지연될 경우 지체상금(liquidated damages) 조항이 있고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일반적으로 지체된 하루당 계약금의 2/10,000 정도이다. 프로젝트 계약금액이 1조 원이면 시공사가 발주처에게 하루 지연될 때마다 약 2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


프로젝트 막바지인 시운전 단계에서 3개월은 대체 불가능한 시간으로 판단되었다. 비행기로 운송 시 추가 비용은 지체상금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싼 금액으로 평가되었다. 신속한 판단과 실행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지연되었다.


프로젝트 완료 후 전체 지연일 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발주처와 시공사가 50 대 50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시공사는 다시 컨소시엄 파트너사와 50 대 50으로 책임을 합의하여 최종 금액을 최소화했다.


만약 모터 고장의 책임소재를 결정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눈앞에 보이는 비용 때문에 해상운송을 선택했다면, 프로젝트 종료 후 지체상금의 규모는 몇 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프로젝트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지체상금은 프로젝트 진행 중 발주처가 요구한 추가 업무와 예비비 예산 내에서 처리되었다. 당시 해외 프로젝트 대부분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두 자릿수 이익률을 기록하며 주요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진급과 보너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행운을 누렸다.


1조 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하루의 값어치는 지체상금을 기준으로 최소 2억 원 이상이다. 이는 1초당 약 14만 원에 해당한다. 남의 일을 해주는 값어치가 이 정도라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내 시간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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