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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3 목표는 잘 보이게

인샬라! 신의 뜻대로

by 이상한 나라의 폴

"인샬라~! 내일 2시에 봅시다"


중동에서 인샬라는 어떤 약속이나 선언을 할 때 문장 앞 뒤에 항상 따라온다. 그 의미는 신께서 원하신다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긍정적으로 보면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매우 강한 의미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이 원하지 않아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는 어이없는 변명의 뜻도 (주로) 있다.


2012년 처음 중동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 "인샬라 내일 2시에 봅시다"라고 해서 사람들 모아 놓고 기다리다가 낭패를 많이 보았다. 안 오겠다고 말한 것을 온다고 이해한 결과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 상황과 뉘앙스를 잘 살폈어야 한다. 마치 "우리말은 끝까지 잘 들어봐야 한다"는 얘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목표 일정에 맞게 끝낼 수 있는 걸까?”


프로젝트는 계약적 의무인 기계적 준공일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일정대로 일을 마치려면 계획서에 남은 일들이 하나씩 해결되어 가야 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이 계속 터져서 진도를 빼지 못해 다들 답답했다. 팀원들이 내 자리를 지나면서 프로젝트가 일정대로 끝낼 수 있는지 걱정하면 "인샬라~"라고 농담처럼 대답했었다.


프로젝트의 기계적 준공을 달성하면, 주요 인력들이 철수한다. 나는 기계적인 준공일 이후 현장에 남아서 프로젝트 매니저를 대신해서 잔여 업무를 마무리하고 문을 닫고 나오는 역할을 맡았다. 준공일이 다가오면서 복잡한 문제는 준공일 이후에 내가 남아서 해결한다는 조건부로 승인을 받아내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신의 뜻대로 현장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생길 참이었다. 발주처도내 사무실을 지날 때면 일부로 나를 찾아와서, 남은 문제들은 해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니 사우디로 귀화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농담을 하였다. 지금은 문제를 쉽게 뒤로 미루지만 나중에는 풀 수 없는 지경으로 꼬일 위험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 자리 뒤에는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제일 큰 화이트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화이트보드에 “출구전략”이라고 목표를 크게 써 놓았다. 그리고 세부항목을 그 아래 적어 가기 시작했다. 걱정 대신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는 무언의 독려였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도버 해협을 헤엄쳐서 양 방향을 차례로 건넜던 플로렌스 채드윅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이어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카탈리나 섬에서 본토의 롱비치까지 34km의 거리를 세계 최초로 수영으로 횡단하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미 도버 해협을 헤엄쳐서 왕복한 그녀였기에 모두들 성공을 믿었다. 하지만 목표를 단 800m도 남겨 두지 않은 지점에서 그녀는 포기했다. 그녀를 주저앉게 한 것은 다른 어떤 어려움이 아닌, 목표를 가려 버린 짙은 안개였다.


두 달 후, 그녀는 다시 도전했다. 이날 역시 짙은 안개로 해안선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땅이 저 건너편에 있다는 목표 의식을 잃지 않았다. 이날 그녀는 당시 남자 기록을 2시간이나 단축한 신기록을 세웠다.


프로젝트 인원들이 내 자리를 지나면서 화이트보드를 보며 우리의 출구전략을 다시 이야기했다. 운제에서 해결책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모든 것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2010 ~2014년 당시 사우디 지역 내 조 단위 프로젝트 14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중 일정지연이 거의 없었던 유일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는 이익을 기록했다. 준공일 이후 현장 정리까지 차근차근 단계별 승인 문서를 받아 내면서 준공일 이후 내가 계획한 일정대로 현장을 철수한다는 이메일을 본사에 보냈던 날이 기억난다. 눈에 보이게 적어 두었던 목표가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행동하고 성취하도록 이끌었다.


목표는 눈에 띄게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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