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끓인 된장국
요즘 마트의 채소 코너를 천천히 돌다 보면, 한창 추운 겨울인데도 ‘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채소가 괜히 마음을 붙잡을 때가 있다. 바로 봄동이다. 집사람은 봄동을 집어 들며 말했다.
“ oo 아빠, 이건 요리 과정도 간단해. 된장국 끓여보자.”
나는 식재료를 살 때 웬만하면 집사람과 함께 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까지는 혼자 결정하기엔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어떤 채소가 지금 맛있는지, 이건 무쳐야 하는지 끓여야 하는지, 사도 되는지 더 두고 봐야 하는지. 집사람의 말은 대부분 맞았고, 그 덕분에 실패는 적었다. 봄동도 그중 하나였다.
봄동은 쓰임새가 많다. 된장국에 넣어 끓여도 좋고, 겉절이로 무치면 산뜻하고 아삭하다. 쌈으로 먹으면 배추보다 단단한 잎이 씹는 맛을 더해준다. 특히 겉절이는 입 안에서 물기와 풋내가 동시에 살아나, 겨울에 먹는 채소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상큼하다. 그럼에도 가장 잘 어울리고, 가장 많이 해 먹는 음식은 역시 된장국이다.
어릴 적을 떠올리면, 집에서는 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자주 먹었다. 정확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봄동을 넣은 된장국도 먹어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봄동’인지, 아니면 그저 배추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국이 있었고 밥이 있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봄동은 원래 의도적으로 키운 채소가 아니었다고 한다. 가을에 심어 두고 수확하지 못한 배추가 서리를 몇 번 맞고, 눈을 견디며 겨울을 난다. 잎은 땅에 바짝 붙어 납작해지고, 그렇게 버티다 봄에 수확된다. 그래서 이름도 ‘봄에 캐는 겨울 배추’, 봄동(冬)이다. 지금은 별미 취급을 받지만, 예전의 봄동은 ‘잘 자란 채소’가 아니라 ‘버티다 남은 채소’였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로 밥상에 올랐던 채소이다.
요즘 한겨울에 만나는 봄동은 노지에서 월동한 그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봄을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계절을 조금 앞당겨 온 채소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겨울딸기처럼, 봄동은 계절의 틈을 메우는 존재다. 그래서 마트에서 봄동을 보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문턱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얼마 전 신년 모임에서 지인 한 분이 다가오는 구정을 앞두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명절이 되면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한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고 했다. 요리가 서툰 편이라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실패 없이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주저 없이 봄동 된장국을 떠올렸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재료도 복잡하지 않다. 무엇보다 애쓰지 않아도 제 몫을 해내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요리는 점점 손이 많이 간다. 만드는 과정도, 설명도 길어졌다. 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건 늘 대단하지 않은 음식들이다. 봄동 된장국은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날 밥상에 오른다.
# 재료
봄동 2 포기, 꽈리고추 5개, 홍고추 1개. 대파 1단, 집된장 3Ts, 다진마늘 1Ts, 육수 1.5L ( 다시마 10g, 디포리 5개 혹은 멸치 적당량, 물 1.5L )
# 요리 과정
봄동을 준비한다.
밑동을 손으로 움켜잡고 칼로 잘라서 잎들을 분리한다
봄동을 3차례 흐르는 물에 씻어 깨끗하게 준비한다.
육수용으로 다시마 1장과 디포리 5마리(내장, 머리 제거)를 준비한다.
냄비에 다시마와 디포리를 넣고 10분 끓여 육수를 만든다.
봄동을 손으로 찢어 육수가 있는 냄비에 넣는다.
고추를 쏭쏭 썰어 준비한다
집된장과 고추, 마늘을 냄비에 넣고 끓인다.
대파를 굵게 썰어 준비한다.
끓으면 대파를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필요하면 소금으로 간을 본다.
완성된 봄동 된장국
봄동 된장국 한 그릇
된장국은 늘 집에 있는 음식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밥상 한 끼를 책임진다. 된장국에는 정확한 레시피가 없다. 집집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 된장을 얼마나 풀지, 국물을 얼마나 끓일지, 무엇을 넣을지는 늘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된장국은 특별한 요리법보다 각자 하던 대로 끓이게 되는 음식이다.
우리가 끓이는 된장국에는 봉선사에서 사 온 된장이 들어간다. 몇 해 전부터 시간이 나면 집사람과 함께 수도권의 사찰을 찾았다. 남양주에 있는 봉선사에 갔을 때, 신도들이 직접 담갔다는 된장을 몇 통 사 왔는데 그 맛이 유독 좋았다. 그 이후로 된장국을 끓일 때면 늘 그 된장을 쓴다. 국이 끓는 동안, 사찰 마당의 고요한 공기와 그날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른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봄동 된장국을 끓이는 날만큼은 마음이 먼저 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