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밥국

남은 밥과 김치로 끓여낸 겨울의기억

by 굳데이

친하게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싱싱한 회가 차례로 나오고, 튀김요리까지 이어지는 코스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죽처럼 보이는 한 그릇이었다. 숟가락을 뜨는 순간, 모두가 알아봤다.

“이거 김치 밥국 아니가.”


어릴 적 이맘때쯤, 집에서 자주 먹던 바로 그 음식이었다.

그날은 술기운보다 추억이 먼저 올라왔다. 맛있게 먹는 동안, 오래된 장면들이 머릿속을 천천히 맴돌았다.


김치 밥국은 추운 겨울이면 집집마다 한 번쯤은 끓이던 음식이었다.

특히 경상도에서는 더 그랬다. 김치 콩나물국밥이라 불리기도 했고, 김치 콩나물죽, 갱시기죽이라고 부르는 집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 음식은 특별한 날에 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다.

물에 손질한 멸치와 잘 익은 신 김치, 먹다 남은 식은 밥, 콩나물을 넣고 끓이면 된다. 집에 떡국떡이 있으면 몇 개 넣어도 된다.

복잡한 손질도 없고, 남은 밥을 처리하기에도 좋다. 그래서 더 자주 먹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김치 밥국을 푹 끓인 뒤, 냄비째 밥상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우리 사 남매가 둘러앉으면, 국자로 큰 사발에 한 그릇씩 담아주셨다.

추운 날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우리는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콧물이 흐르면 훌쩍거리면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하지만 한 그릇으로는 늘 부족했다.


이 음식에는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김치와 밥, 국물만으로도 충분했다. 먹다 보면 떡국떡이 하나씩 걸리는데, 그 쫀득한 식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그 떡을 찾으며 숟가락을 바닥까지 긁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김치 밥국은 자연스럽게 식탁에 올랐다.

집사람도 나와 같은 동향이라, 겨울이 오면 이 음식을 종종 끓여주었다.

주말에 집에서 쉬는 날 아침, 혹은 입맛이 없거나 음식을 과하게 먹은 뒤 가볍게 끼니를 때워야 할 때, 김치 밥국은 늘 좋은 선택이었다.


집사람은 맏딸이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어머니를 도와서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많이 했다.

장인어른이 무척 좋아하시던 김치 밥국도 주로 집사람이 끓였는데, 장인어른은 꼭 불린 쌀을 넣으라고 하셨다.

식은 밥으로도 충분한 음식인데, 집사람은 왜 굳이 그래야 하느냐며 투덜거리면서도 밥국을 끓였다.

장인어른은 주위 사람들을 늘 편하게 해주시던 분이었지만, 이 음식 앞에서는 양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집사람은 지금도 김치 밥국을 끓일 때면 그 이야기를 꺼낸다. 아마도 그 푸념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 재료


콩나물 300g, 신 김치 250g, 식은밥 한 공기, 떡국떡 한 움큼, 멸치 한 움큼, 김치 국물 100ml. 물 1L, 멸치 액젓 2 Ts


# 요리 과정


콩나물을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신 김치를 먹기 좋게 잘라서 준비한다.


떡국 떡을 준비한다.


멸치를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여 준비한다.


식은 밥 1공기를 준비한다.


김치국물을 준비한다.


멸치 액젓을 준비한다.


물에 손질한 멸치를 넣는다.


멸치를 넣고 나서 바로 김치와 김치 국물을 넣는다.


뚜껑을 닫고 10분 끓인다.


떡국떡을 넣어 끓인다.


3분 후에 밥을 넣고 끓인다.


10분 후에 멸치 액젓을 넣고 간을 본다.


콩나물을 넣고 끓인다.


완성된 김치 밥국


김치 밥국 한 그릇






김치 밥국의 맛은 얼큰함보다는 부드러움에 가깝다. 밥알이 국물에 풀어지며 만들어내는 질감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고, 몇 그릇을 먹어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먹고 나서도 속이 편해, 다시 찾게 된다.


요즘도 한 끼는 먹어야 하는데 속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을 때, 비가 오거나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느껴질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김치 밥국이다. 나는 이걸 한 끼 대용으로 먹으면 보통 세 그릇은 먹는다. 그래도 소화는 금방 된다.


김치 밥국은 김치찌개보다 요리하기도 손쉽고, 국밥처럼 밖에서 사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이다.

집에서 늘 하듯 끓여 먹을 때 가장 맛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