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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집안을 채우는 구수한 향기

by 굳데이

가을이 깊어지면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진다. 아침 공기엔 서늘함이 배어 있고, 밖에서는 낙엽이 부스럭대며 천천히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그런 날이면 유독 어떤 음식이 떠오른다.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먼저 따뜻해지는 음식. 바로 청국장이다. 추운 계절이 올 때면 집 안을 가장 먼저 데워주는 음식이다.


요리학원에서 이것저것 배워오다 보면, 집에서 다시 해보고 싶은 요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 ‘이건 집사람이 좋아할까?’, ‘애들도 잘 먹어줄까?’ 하고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실제로 집에서 만들어 보면 집사람의 평을 귀담아 듣는다. “괜찮네”, “다음엔 조금 더 진하게 해도 좋겠다” 같은 말들이 나에게는 다음 요리를 향한 에너지가 된다. 그 중에서도 처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요리가 청국장이다.


요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가 아빠의 음식을 맛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딸아이 내외를 초대했다. 청국장을 비롯해서, 갈비찜, 무조림, 잡채등을 직접 만들어 식탁에 내 놓았다. 식탁 한가득 차린 요리들을 보면서 딸과 사위는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특히 청국장 맛을 보더니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는 지 계속 물었다.

“아빠가 끓인 청국장이 제일 맛있어요. 식당 차려도 되겠어요”

이 말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제일’이 되었다는 건 요리하는 사람에게 최고 이상의 칭찬이다.


얼마전에는 휴가 중인 아들이 점심을 먹으러 온다는 연락을 했다. 나는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냄비를 올렸다. 큰 냄비에 재료가 하나둘 들어가고, 그러다 청국장을 풀기 시작하면서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서서히 주방 안을 채웠다. 창밖의 찬 공기와 대비되는 이 따뜻한 냄새가 좋았다. 요리를 한다기보다 집 안에 따스함을 불어 넣는 일 같았다.


아들은 도착하자마자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숟가락 뜨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빠, 이거 정말 맛있다.”

그 말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한 그릇의 청국장이지만 그 속에는 계절, 대화,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모두 녹아 있으니 말이다. 그 날 아들은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별도로 덜어둔 청국장을 아들 내외가 먹을 수 있도록 그릇에 담아 보냈다. 가족에게 따뜻한 한 끼를 건네는 일.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분히 행복했다.




# 재료

. 청국장 300g, 된장 3Ts, 소고기 치맛살(취향따라 양조절가능), 무 500g, 두부 1모, 소금에 절인 알배추 1포

기(혹은 묵은 김치), 고추가루 3Ts, 다진마늘 2Ts, 양파 1개, 홍고추 1개, 국간장 소량

. 육수(5컵) : 다시마 10g, 보리 새우 10g, 물 6컵


# 요리 과정


냄비에 보리새우를 넣고 볶다가 물 과 다시마를 넣는다. 끓으면 중불로 낮춘 후 10분 더 끓인다.


5컵 분량의 육수를 준비한다.


묵은지가 없을 때는 알배추를 20여분 소금에 절여 준비한다.


청국장과 무를 크게 썰어 준비한다.


양파와 홍고추를 어슷 썰어 준비한다.


양념(고춧가루, 양파)을 준비한다


된장을 준비한다.


소고기를 키친타올로 핏물을 제거한 후 크게 썰어 준비한다(양과 크기는취향껏)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절인 알배추, 소고기, 무를 넣고 볶는다.


뭉근하게 익으면 된장을 넣고 볶다가 양파와 육수를 넣고 끓이고, 채소가 익으면 청국장, 홍고추, 양념을 넣고 중불에서 끓인다. 마지막으로 두부를 넣고, 소량의 국간장이나 액젓으로 간을 하여 5분 더 끓여 완성한다.


완성된 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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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국장은 계절을 담는 음식이구나. 날씨가 서늘해지고 집이 생각나는 때면 더 찾게 되는 맛이다. 그래서인지 가을의 구수함과 겨울의 쓸쓸함이 함께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들이 떠난 뒤 식탁에 앉아 한동안 가만히 냄비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웃음과 대화로 가득했던 공간이 이제 조용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그 한 냄비안 속에는 내가 사는 이유가 조금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계절이 또 바뀌어 찬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다시 청국장을 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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