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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Jun 23. 2021

골조 선택, 그리고 설계

건축 과정에서 도면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으므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초기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는 건축학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폭포수 개발 모델이다. 요즘의 추세는 짧은 주기로 개발과 회고를 반복하는 애자일 개발 방법론이 널리 사용되지만 소프트웨어와 달리 건축물의 경우 착공 이후에는 수정이 어려울뿐더러 철거 과정도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므로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상세도면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도면에는 공간 설계뿐만 아니라 자재에 대한 요구사항, 시공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야 한다.


앱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개발자를 수소문하는 것처럼 도면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건축사를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건축사 사무소마다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건축사 사무소와 허가방


우리나라 현행법상 건축 인허가에 필요한 허가도면은 반드시 건축사가 그려야 한다. 바꿔 말하면 허가도면 이외의 도면은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단지 인허가만 건축사를 통해 진행하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각종 인허가 및 서류 작업만 전담하는 건축사 사무소를 일명 "허가방"이라고 부른다.


설명이 길었는데 도면을 작성하고 인허가를 진행하는 방법은 크게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건축사사무소. 이곳에서 건축사에게 "나의 드림하우스"를 설명하면 건축사가 이를 반영하여 디자인 설계, 상세도면, 시방서 및 허가도면까지 작성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도면, 또는 내가 직접 도면을 그리고 "허가방"에서 허가 도면 작성 및 인허가 대행을 요청

시공사에게 도면 작성을 위임. 시공사가 도면을 작성하고 연계된 "허가방"을 통해 인허가 절차 대행


정석이라면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경량 목구조 골조를 선택했다면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골조에 대한 고민


이론적으로 도면 계약과 골조 선택은 별개의 사항이다. 물론 구조적으로 경량 목구조로 구현하기 어려운 디자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설계는 필요하며 시공 방법을 포함한 최종 도면에는 골조의 선택은 마무리되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원주택과 같은 경량 목구조 소규모 건축물에 경험이 많은 건축사는 시장에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경제적인 논리 때문일 것이다. 전체 건축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업공간의 대부분은 철근 콘크리트 골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건축사에게 경량 목구조에 대한 이해는 절실하지 않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국내의 목구조는 "빌더"라고 하는 목수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들이 미국, 일본 등 목구조가 널리 사용되는 나라의 건축 사례를 국내 기후와 환경에 맞추어 변형시킨 것이다. 하지만 발전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았고 시공 방법은 각자의 "노하우"로 포장되어 표준화되지 못한 까닭인지 부실시공 사례가 만연했고 결과적으로는 경량 목구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경량 목구조를 선택하게 된 이유


어떤 골조가 더 우수한지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었다면 이미 다른 골조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야 할 것이다. 골조에 대한 고민보다는 하자 발생 확률을 줄이는 올바른 시공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건물은 골조의 품질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그 나머지를 채워줄 회사가 필요하다.


전원주택을 경량 목구조로 많이 시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경제성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량 목구조의 건축물이 철근 콘크리트보다 저렴하다. (물론 글을 작성하는 현시점에는 목재 등의 자재비 상승 때문에 이 장점은 희석되고 있다!) 그 이외에 시공 기간, 건축물 감정가액 산정, 골조 수명 및 방습 대책, 가공 편의성, 차음성, 단열 등의 유불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경량 목구조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골조의 평활도를 맞추는데 훨씬 수월하다는 점이다. 물론 전제 조건은 시공 과정에서 최소한의 필수 항목은 지키고 시공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골조의 평활도가 좋지 않으면, 즉 면이 고르지 못하면 부착된 단열재가 탈락한다던지, 예상보다 큰 오차로 인해 발생한 틈이 열교를 만든다던지, 내부 페인트 공사를 위해 추가적인 목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골조에 대한 고민보다는 일단 선택한 골조에 대해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올바른 시공 방법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상호 소통을 통해 최대한 하자가 발생할 확률을 줄이는 것이 현명한 건축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이란 없다


내가 만드는 소프트웨어에도 버그는 있다. 지금 당장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잠재적인 문제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건축에 있어 구조적 안정성, 방수 대책, 단열, 심미적 디자인 등 각 요소의 중요성에 대해 접했다. 분명 우선순위는 있겠지만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만족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려 모든 영역에 대해 100점에 가까운 수준을 목표로 삼는다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90점에서 100점은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80점에서 90점은 쉽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편차를 줄이고 평균을 올리는 전략이다. 즉,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부터 챙기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자재에 대한 조사, 시공 방법에 대한 공부, 공간 디자인에 대한 고민, 심미적인 부분까지 두루두루 살펴본다.


(참고로 기술 자료는 (사)한국패시브건축협회에서 무료로 조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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