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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Sep 20. 2022

하우징, 건축사사무소

다시 원점으로

마지막 글을 포스팅한지도 벌써 1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 건축 과정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 짤막하게 남겨보려 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직 첫 삽은 뜨지 못했다.


하우징 업체와 건축사사무소


작년 6월, 눈여겨보던 하우징 업체와 도면 계약을 체결하여 설계를 진행하였다. 대부분의 하우징 업체가 그렇듯이 이 회사도 경량 목구조를 주력으로 하는 시공사였고, 골조의 평활도와 조금이나마 저렴한 시공비(이젠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깔끔한 실내외 마감에 사로잡혀 선택한 회사였다.

약 4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계획 설계는 나의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비록 건축사라는 전문 자격 조건을 갖추진 못했어도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설계안이 나올 줄 알았지만 결과는 그러하지 못했다.


계획 설계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작년 6월 중순, 하우징 대표와 우리 대지에서 첫 미팅을 가졌다. 인입되어있는 각종 인프라, 도로현황, 주변 환경 등을 체크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대표는 우리에게 각 공간 별 요구사항을 물어왔다. 사전에 텍스트로 정리해두었으면 좋았을 걸 그러지 못한 우리는 두서없이 머릿속의 생각을 쏟아냈다. 으레 그러듯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넓은 욕실", "호텔 분위기의 침실", "아늑하고 따듯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산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앞으로도 우리의 "드림하우스"에 대해 설명할 기회는 많을 줄 알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약 2주 후에 첫 계획 설계 도면이 완성되었으니 사무실에서 미팅을 갖자는 연락이 왔다.


첫 도면을 본 우리 부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우리의 요구사항을 반영했다기 보단 하우징 업체가 지금까지 시공했던 집들을 절묘하게 섞어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가 복제가 꼭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우리가 꿈꾸어왔던 집이라기 보단 시공사의 새로운 포트폴리오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물론 명확한 요구사항을 전달하지 못한 우리가 문제일 수도 있다.


이후에는 온라인으로 계획도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는데 이 피드백을 수집하여 실제로 도면에 반영하는 건 대표가 아니라 우리에게 할당된 담당 디자이너(?)였다. 비전문가인 내가 전문성을 운운하며 언급하긴 그렇지만 추측컨대 학원에서 몇 개월간 캐드와 스케치업을 배워 현장에 투입된 새내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도면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그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불편하지 않은 동선과 건축 치수, 그리고 나아가 하자 없는 지속 가능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공학적인 디테일까지 겸비한 게 건축설계라고 들었건만 구색만 갖추고 실제로는 너무나도 비좁은 주차장, 2층 계단에 머리가 닿을 것만 같은 주방, 보일러와 환기장치를 설치할 공간이 없어 매번 그 위치는 바뀌고 심지어 좋은 제품 대신 비록 품질은 떨어지지만 이 비좁은 공간에 설치 가능한 제품을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촌극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사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도면에 우리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예시로 이것저것 제안을 전달하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복사-붙여 넣기를 했다는 것이다. 설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비전문가인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잘 풀어내는 게 아니라 그게 좋던 싫든 나중에 말 나오지 않게 도면에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에 적잖은 실망을 했다.


견적


여차저차 4개월간 7번의 수정이 이루어진 계획 설계가 끝나고 견적 미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이 하우징 업체는 본인들의 강점 중 하나로 꼼꼼한 설계와 물량산출에 의한 투명한 견적을 꼽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면은 평면도가 전부였다. 구체적인 시방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실시설계를 바탕으로 상세한 견적을 기대했건만 그런 건 없었다. 그럴싸해 보이는 치수와 면적은 표시되어 있었지만 산출 근거도 모호하고 무엇보다 각 공정별 금액의 합산이 합계 금액과 맞지 않았다. 내부 보안상 견적서는 엑셀 파일로 줄 수 없다고 하여 프린트된 견적서를 엑셀로 옮기느라고 시간도 적잖이 허비했다.


견적 금액도 당초 계획보다 너무 높아 쉽사리 수락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민이 컸다. 이렇게 큰 금액으로 건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불안한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설계하는 동안 한국패시브건축협회의 기술자료를 보며 건전한 건축 디테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견적 미팅에서 시공 디테일에 대해 대표와 설전을 했던 것도 한몫했다. "레인스크린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그냥 비드법 단열재를 화스너로 밀착 시공해도 아무 문제없었어요. OSB 썩은 사례 본 적은 있으세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내가 요구한 대로 시공 디테일을 바꾼다 해도 하자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법을 잘못되었다고 인지하지 못하고 정말 꼼꼼하고 열심히 잘못된 방법으로 시공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지난 포스팅(골조 선택, 그리고 설계)에서 언급했듯이 국내 경량 목구조의 발전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았고 시공 방법은 각자의 "노하우"로 포장되어 표준화되지 못한 까닭인지 부실시공 사례가 만연하다는 대목이 바로 이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내가 선택한 하우징 업체도 결국 여기에서 벗어나진 못했다는 걸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시공사와 시공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도면 계약과 시공계약이 분리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손해가 적었지 평단가로 시공 계약을 마친 상태였다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약 5개월간의 집짓기 여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우리는 속된 말로 멘붕에 빠졌다.




*건전한 건축물을 지으려는 건축주임에도 아직까지 한국패시브건축협회를 모른다면 공부를 덜 한 것이다. 당장 소규모 건축물 품질 향상 가이드라인부터 확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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