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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Sep 26. 2022

패시브하우스

반년 동안 작업했던 설계 도면을 버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는 이내 불안에 휩싸였다. 그동안 한국패시브건축협회의 기술 자료와 유튜브 영상, 다양한 하자 사례를 접하며 건축에 대해 예전보다는 더 깊은 소양을 쌓았음에도 역설적으로 과연 하자 없는 건전한 건축물을 짓는다는 게 가능할까? 하자 없는 집이 존재할까? 열악한 국내 소규모 건축 시장에서 과연 제대로 시공하는 업체가 존재하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불현듯 이 정도 예산이면 차라리 패시브하우스를 지어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협회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지만 정작 엄두를 못 냈던 이유는 막연히 비싸지 않을까 라는 선입견과 감히 건축 설계 의뢰를 시도해 볼 수 도 없을 만큼 동경의 대상이라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여차저차 협회에 소속된 건축사사무소에 연락이 닿았고 방문하여 미팅을 진행하였다. 그간 우리의 사정을 설명드리고 설계 의뢰를 부탁하는데 오히려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천천히 더 알아보라는 주문과 여기 또한 완벽할 수 없고 이론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다소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셨다.


사실 이쯤에서 패시브하우스가 도대체 뭔지 궁금할 것이다. 혹자는 패시브하우스에 대해 "과도하게" 두꺼운 단열재를 적용한 건축물 정도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일단 한국패시브건축협회에서는 모든 건축물이 패시브하우스일 필요가 없으며, 패시브하우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자 없는 집이라 말하고 있다. 즉, 정량화된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전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접근이 우선이며 계산에 의한 적절한 단열, 높은 기밀 성능, 열교 없는 설계 디테일, 고성능 창호 및 외부 차양 적용, 열교환 환기장치를 적용하여 실내 주거 쾌적성을 향상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실내 쾌적성 덕분에 덤으로 건축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도 절감되고 하자의 확률도 줄어들며 지속 가능한 건축물로서의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규모 건축시장이 "무조건 싸게" 또는 "고급져 보이게" 정도로 양분되어 있는 현실에서 결코 싸지도 않고 겉멋도 들지 않은 투박한 디자인의 패시브하우스가 어느 정도 선전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의 실패 경험 덕분에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우리에게 이러한 부분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건축물의 디자인은 결코 최우선 사항이 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을 잘 반영한 "쾌적한 공간"일 것이다. 보이는 것에 현혹될 수는 있다. 나 또한 처음 집을 짓겠다고 결심했을 때 어떻게 예쁘게 지을 것인가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젠 단언할 수 있다. 디자인에 취해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을 거라고...


결론적으로 우리는 협회 소속 건축사사무소를 통해 패시브하우스로 다시 설계를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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