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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Sep 28. 2022

가구 업체 선정

어느 정도 계획설계가 완료될 즈음 건축사사무소로부터 허가 접수 전 가구업체와의 미팅을 통해 평면 계획의 피드백을 받아보길 권유하셨다. 이미 설계 과정에서 예상되는 위치에 가구를 배치하긴 했지만 가구 디자인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빌트인 가구는 사실상 건축물과 한 몸이라 할 수 있으므로 자재의 선정부터 심미적인 디자인까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이 때문에 열심히 인터넷을 누비며 3개의 후보 업체를 추렸다.


이케아의 한국 진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빌트인 가구 업체들은 다행히도 심재 등급 E0 이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 국내 가구 시장에서도 E1 등급의 사용은 법으로 제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E1 합성목재를 사용하며 친환경이라 홍보하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첫 번째 전화로 먼저 연락한 업체는 주방가구를 전문으로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일반 빌트인 가구로 사업 확장을 한다는 곳이었다. 영화에도 등장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해서 가격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가견적 결과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깔끔히 포기.


두 번째 업체는 가성비가 좋다고 알려진 업체였는데 전화로 예약을 하고 방문드렸다. 전시장 규모도 기대 이상으로 넓었고 그 품질 또한 만족스러웠다. 다만 이 업체도 주방 가구가 주력이었고 싱크볼이나 수전 같은 제품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없는 제한이 있었다. 요란한 요청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조명설계와 더불어 마음속으로 생각해둔 몇몇 요구들을 과연 이 업체와 잘 협력하여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상담 과정에서도 사장님이 너무 단정적이었고 본인들의 한정된 몇 가지 디자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 업체는 주방뿐만 아니라 일반 빌트인 가구 디자인까지 겸하는 회사였다. 사무실 건물 외관을 보자마자 이미 비싸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감각적이었는데 상담 과정도 매우 적극적이었고 우리의 예산에 최대한 맞춰 방법을 찾아가려는 의지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별도의 조명 설계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같이 협력하기 가장 편한 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까다로운 고객들을 많이 접했던 것인지 이런저런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여유가 느껴졌다랄까? 보여주셨던 포트폴리오도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의 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했지만 오히려 주택에서만 시도할 수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지향하였고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최종적으로 이 업체와 계약하게 되었다.


가장 핵심 공간인 주방, 드레스룸, 안방 욕실을 중점적으로 설계하고 신발장이나 팬트리, 세탁실 등은 무난한 무광 PET 소재로 적용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가구 디자인의 시작은 아마 착공하고 나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골조가 세워지고 실내 마감을 들어가야 정확한 치수를 재고 가구를 발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전기/설비 도면을 검토하여 예상되는 위치에 필요한 전기나 수도를 꼼꼼히 잘 챙겨야겠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 예산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보통 건축주는 본인이 가용 가능한 총비용을 기준으로 건축 예산을 계획하는데 시공 견적에는 많은 부분이 빠져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빌트인 가구의 비용도 시공 견적에서 제외된 별도 공사이다. 그리고 통상 시공 견적의 10%를 빌트인 가구 예산으로 책정하면 무난하다고 할 정도로 금액이 상대적으로 크다.


빌트인 가구 업체는 시공사와는 별도로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사전에 예산 계획을 잘 세워놔야 한다. 우리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아직 시공 계약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즉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공 견적을 미지수로 둔 채 가구 업체를 선정해야 했다는 점이다. 물론 가구 가견적을 통해 대략적인 금액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어서 더 좋은 자재와 마감을 원하게 된다더라.. 그래서 결국에는 빠듯한 예산안에서 포기를 하던가 대출을 더 받던가로 귀결된다고 한다. 왠지 우리도 후자가 될 것 같아 내심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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