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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01. 2023

건빵과의 이별

신혼 초 가장 황당한 사건은 치킨과 함께 배달된 콜라를 아내가 싱크대에 버리는 장면이었다. 톡 쏘는 탄산의 매력에 빠져 살던 나에게 그 장면은 너무 놀라 다음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콜라 없는 치킨을 무슨 맛으로 먹는다는 말인가? 생각이 뒤따랐지만 아내의 의지는 확고했다. 탄산에 찌든 나의 습관을 고쳐놓겠다는 그 몸짓에 달리 무어라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망가진 치아 건강의 원인이 탄산 중독이라는 아내의 주장에 항변할 수 없었던 것은 톡 쏘는 맛에 길들어 있었던 내 생활 습관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산과의 이별을 시작으로 결혼 생활을 지속해 오는 가운데 많은 것들과 이별해야 했다. 때로는 나 나름의 강경한 저항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다 나를 위하는 일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는 아내가 잔소리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줄여나가는 것들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다. 일명 ‘노랑이’에 중독되어 하루에 7잔도 더 마시기까지 했던 모습에 지금은 하루에 한 잔 그것도 디카페인을 찾아 마시려고 노력한다. 건강의 이상 증후들 때문에 억지로 받아들인 결과라지만 나쁜 습관과의 이별은 길들여지는 것의 쉬움에 비해 많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 시간 동안 수업 하고 나오면 입안의 텁텁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던 커피를 의식적으로 멀리하려고 1L 물병을 가져다 놓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강조해서 커피 마실 기회를 원천 차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유혹을 거부하느라 지금도 애쓰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내게 요즘 화두로 떠오른 것은 건빵이다. 군 생활 할 때 튀기거나 설탕을 뿌려도 즐겨 먹지도 않던 건빵의 매력에 빠진 나의 모습이 한 편 우습기도 하지만 내 오른쪽 서랍에 자리 잡은 건빵에 오늘도 손이 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맛도 없고 목 막히기 쉬운 건빵을 왜 먹느냐고 말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내가 건빵을 즐기고 있다. 특별히 가미되는 맛이 없기에 담백한 탄수화물 덩어리인 것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먹지 않아도 되는 간식을 즐기는 내 습관이 늘어진 뱃살만큼이나 건강의 적신호를 보낼 수 있기에, 또는 어린아이처럼 간식이나 즐기는 것은 나이에 맞지 않은 것 같은 이유에서 나는 건빵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남들이 볼 때, 지극히 사소해서 그게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단순화시킬 수 없는 것이 굳어진 습관을 떨쳐 내는 일임을 많은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건빵을 끊으면 뭐 또 다른 것에 집착하기 쉬운 탓이다. 말하자면 불필요한 습관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남이 생각하기에 별스럽지 않은 사소한 것에 휘말려서 큰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오른쪽 서랍에 든 건빵을 꺼내 휴지통에 버리면서 아까워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먹고 다음번에 안 사두면 되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잘라버려야 결심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휴지통에 던지는 것은 건빵이 아니라 내 작은 결심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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