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영 Oct 01. 2023

분노와 이별

“병원 예약해 두었으니 꼭 가 봐. 대학병원 예약 잘 안 되는 것 알지.”          

아내의 통보가 서운하게 다가왔다. 아니 날 어떻게 생각하기에 이런 일을 하지? 분명 아내는 날 염려해서 한 일인 것을 알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신 건강의학과 진료!          

분노조절 장애가 온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던 터라 더더욱 내키지 않았다.           

안 좋은 일은 몰려온다고, 고혈압에 신장 이상 증후와 잠복 결핵 판정으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시점에 이제 정신질환까지....           

몇 주 사이에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나타나는 일련의 신체징후 앞에서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었다. 갑작스럽게 올라간 혈압 수치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진행한 피검사 결과는 내게 1차 충격이었다. 신장 기능이 정상인의 40% 밖에 남아 있지 않을 수 있기에 정밀 검사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정밀 검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마음 조리며 기다린 결과는 다행히 일시적으로 안 좋게 나온 수치로 판정되었다. 하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나의 일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즐긴 커피도, 주말마다 가진 시원한 맥주 한 캔의 여유와도 작별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 둘 잃어가며 복용해야 하는 약만 늘어나는 처지에 놓였다.           

새로 시행되는 법 때문에 알게 된 잠복결핵 역시 5~60대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잠복결핵을 지니고 있다는 의사의 소견도 쉽게 수용할 수 없었다. 잠복이라지만 언제든 발병할 수 있으니……. 그런데 이번에는 정신질환이라니…….          

정신 질환도 신체적 장애와 다름없는 질병이라는 이성적 판단에 앞서 질환에 대한 거부감이 밀려왔다.           

유명 연예인의 공황장애나 동료들의 심심치 않은 진료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럴 수 있다거나 진료 받아보라고 먼저 권하기도 했었지만, 막상 나의 일로 다가왔을 때 상황은 달랐다. 마치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을 때, 병에 대한 실체보다는 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렸던 것처럼 질환명이 갖는 편견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은 비이성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해 온 내 생각이 부정확한 정보와 잘못된 예단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질환에 대한 맹목적 반감이 먼저 일어났다. 더구나 나 자신을 그런 대상으로 수용할 수 없었다.           

아내는 최근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나의 태도, 아이들에게 보이는 잦은 화, 얼굴에 나타난 틱 현상, 나아가 수면 장애 등을 근거로 진료받기를 권했지만 그러한 이유를 치료받고자 병원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한편으로 진짜 질환으로 판정받으면 어떡해? 이 두려움도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았다. 더 큰일이 생기기 전에 가 보라는 아내의 염려, 결국 매를 먼저 맞는 심정이었다.            

의사는 나의 이야기에 공감의 눈길을 보냈다. 내 생각에는 아직 깊은 속내를 꺼내지도 못한 상담 시간? 혹은 진료 시간이었지만 그는 내가 처한 상황들에 대한 긍정적이고 충분한 이해의 표시를 보였다. 아울러 나 스스로 심리적 쉼을 찾아보도록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약 처방이 따랐다.           

사실 별 기대도 없었던 첫 방문과 1개월 단위로 진행된 몇 번의 만남은 큰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간을 겪으며 나 스스로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의사에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취한 행동을 인정을 받고 나니 내가 최근 보인 일련의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죄책감이 한결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또한 나보다는 타인에 초점 맞추어 살아오며 늘 나를 몰아 부친 일에서 잠시 떨어지는 관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이 듦이나 사회생활의 경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무엇이 새롭게 보이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성숙의 첫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울러 규칙적인 약의 복용에 따른 일상의 변화가 강제되었다. 약을 먹기에 음식 섭취 습관도 조절되었고 자세한 효과를 내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호르몬 조절에 따른 감정 조절도 작용하고 있었다.          

약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은 수면 시간의 확보였다. 잠이 늘어나면서 피로의 강도가 약해진 탓인지 날카로웠던 신경도 다소 무뎌지는 기분이었다. 상황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라지만 그것을 보는 내 태도가 가장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주변 사람을 대하는 법도 달라졌다. 질환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통 속에서 약을 먹고 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 심리 속에 떠오른 보상심리일 수 있지만 내가 약까지 먹어가며 버티고 있으니 주위에 있는 당신들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투였다.          

참으로 이상스러운 것이 안으로 쌓아 놓기만 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아가 뭘 위해 내가 달리고 있나 하는 원초적인 질문 앞에 마주 서기 시작했다.           

나를 화나게 했던 대상은 늘 변화 없으나 그 대상에 대한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하는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도 아니지만 문제의 초점을 계속해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노력했다.           

삶의 의미를 다른 일상의 소소함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그러기 시작하자 그동안 놓치고 지나친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같이 하지 못했던 아이들과의 대화도 하게 되고 아내와 공원 산책도 해보게 되었다. 어릴 적 이후 처음으로 아이와 야구장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무슨 농담을 하는지도 귀 기울여 보면서 일상이 주는 위안에 집중하고자 했다. 크고 거창한 목표도 아니지만 작은 행동의 결과로 바로 얻을 수 있는 미소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 18화 건빵과의 이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