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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01. 2023

오지랖과의 이별

삼십 대와 사십 대를 거치면서 나름 속한 직장에서 몸부림쳐왔다. 그래서일까? 최근 맞이하는 많은 부분에서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해당 분야에서 나름 기준이라 생각하고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일에서 상급자의 변심을 만나기도 하고 이 정도는 해주어야 하는 일에서 후배들의 무관심과 냉소적인 태도를 만나기도 한다.          

교사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야?, 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야? 등등 내 생각과 다른 상황과 그 상황을 대하는 동료들 속에서 작아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니, 어느 정도 숙달되었기에 의례적인 일들이라 생각한 것들에 메인 감정을 과감히 이별하지 않으면 내 안에 쌓이는 것은 화뿐이다.          

특히 머리에서 ‘나 때는~’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한다면 달라진 환경에 뒤처져 가는 나 스스로에게 채찍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와 접한 그 후배들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상황을 현재의 후배들에게 대입하거나 내가 지레짐작하며 해왔던 일이 꼭 옳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수 없이 드러냈던 불평들, 선배들의 전횡과 적폐다운 행동들을 내가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만 던져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가 건강할 수 있다.          

내가 아는 것이라는 것은 나의 경험에서 쌓은 작은 지식의 울타리일 수밖에 없다. 다른 관점에서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일인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오지랖의 범위와 교만의 차이를 분별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도움을 주고자 한 행동이라지만 내 생각에 함몰되어 상대가 원하지 않는 지나친 친절은 오히려 ‘바라지 않는 일거리’의 제공인 경우도 많다. 내게 유용한 방법이라고 해서 상대도 유용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이 불러오는 문제다.          

 얼마 전 생활기록부 작성과 관련해서 벌어진 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다. 교사가 학교에서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 중 가장 부담스럽고 힘든 일 중 하나가 생활기록부 작성이라는 생각에 많은 교사들은 정해진 매뉴얼을 넘어 자기만의 작성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러 가지 심리 검사를 통한 성격과 진로 지도 작성법이 있다.           

나는 학기 초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 파악과 생활기록부 작성에 도움을 받고자 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물을 생활기록부에 적절하게 응용해 사용하고 있다. 나름 의미 있는 자료이자 내게 많은 도움을 준 자료이기에 마치 자랑하듯이 권하는 이 검사 활용법이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간섭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많은 검사와 활동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검사와 활동지 작성에 들여야 하는 시간이 원하지 않았던 일거리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굳이 그것을 안 해도 작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안 하고 있는 문제아 취급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지 신중히 따져 봐야 하는 것이다. 도움을 주기 위한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본인 나름의 방법으로 부딪혀 해결해 나가는 것을 무시한 채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행태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련의 활동이 진정 상대를 위한 배려인가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때 손잡아 이끌어 주는 것과 나의 잘남을 떠벌리기 위한 자기 과시의 오지랖의 차이를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소리 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찾아 하면서 도움을 요구할 때, 소리 소문 없이 도와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면 과감히 이별해야 하는 어설픈 행동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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