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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교감 선생님 홍보 회의 들어가시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협의회실에 마주 앉은 교감과 박이경의 대화는 신입생 모집상황의 심각함 때문에 더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곧 회의 시작해야 하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

박이경은 지난 홍보 기간 내내 고민해 온 일이었지만 자기 생각을 막상 입 밖으로 내미는 순간 불러올 파장이 만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다. 

“모집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모르겠으나 상황이 녹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입시 마무리의 방향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이경은 예상한 결과지만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는 교감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상황이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인원을 확보할 방법을 구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네 물론 그 방법이 가장 최선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 부족 인원 수치가 너무 큰 두 학과를 다 채울 수 없다면 선택적 결단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에?”

박이경을 바라보는 교감의 눈빛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제가 너무 앞서 나간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학과 미달로 이번 입시가 최종적으로 끝난다면 그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한 복안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뭔 말이에요. 혹시 미달을 인정하고 홍보를 끝내자는 말인가요?”

교감의 목소리에 상당히 불쾌한 감정의 떨림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도 힘들지만 지금 각 학교 상황 보고를 보면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특성화 자체에 대한 지망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합니다. 많은 선생님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면 미달을 막기 위해 다 끌어모은다고 해도 10여 명 이상의 인원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이 되고 억지로 한두 명의 확보는 할 수 있다지만, 그 인원의 점수대가 그야말로 바닥이기에 억지로 확보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무슨 그런 말이 있어요. 도대체 누가 그런 말들하고 있나요? 학과 미달 나는 것을 보면서도 방치하겠다는 것이에요?”

교감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었다. 더구나 입시 업무 주무부장이 이 시기에 꺼낼 수 있는 말인지 고민이 많았다. 자기가 지금 제시하고 있는 안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나중에 두고두고 욕먹을 일이 될 수 있음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미달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닥 점수 아이들 다 끌어모은 채, 만에 하나 결국 미달이 난다면 그 상황은 학교가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에?”

“아시다시피 전년도에 학과 미달을 막느라 바닥 점수로 채운 올해 1학년에서 발생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그 문제 상황 자체를 겁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학생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득점 입학자가 학교를 떠나간 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꼭 짚고 가야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모집이 어려운 두 학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중학생 눈높이에 맞지 않은 우리 학교 학과들에 대한 학과 재구조화 사업을 내년에 해야 할 것인데 그럴 것이면 어떤 형태로 이번 입시를 마무리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 날 소지가 있으니 아예 미달시키고 말겠다는 것이에요? 교무부장님은 미달이 지역사회에서 우리 학교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박이경이 그것을 모를 일이 없었다. 지역에 존재하는 다른 특성화고가 다 모집 정원을 채움에 비해 미달이 되는 순간 학교가 입을 피해는 상상 이상일 수 있었다. 미달 학교라는 소문은 향후 몇 년의 홍보에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 학교가 거부를 한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이경은 목소리에 힘을 더 실어 표현하는 것으로 자기 의사 전달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제가 그 점을 모르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만일 대책 없이 이대로 끝난다면 내부적 상황과 외부적 상황 모두에서 힘든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문제 소지가 많은 학생을 상대하느라 선생님들도 더 힘들어지고 그 와중에 또 학과 개편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교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기도 힘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현재처럼 두 학과 모두 미달이 되는 것하고 특정 학과 하나가 미달되는 것은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 합니다. 학과 개편할 수밖에 없는 학과 하나를 미달로 마무리한다면 향후 교육청에도 학과 재구조화의 명분으로 요구할 수 있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교감은 박이경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선생님 말씀처럼 그렇게 인위적으로 조정된다고 보세요? 도대체 어떤 학과에서 그 안에 동의할까요? 학생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유도할 수 있다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에요. 또 미달을 확정하는 그 학과 선생님들이 순순히 동의하실 것이라 보세요? 어제 보셨잖아요? 고득점 지원자 한 명을 두고 보인 금융과의 반발을……. ”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인 것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교감 선생님께서 저보다 더 고민이 많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이 아니라면 최악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본 것입니다.” 

교감은 논의를 더 이어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눈치였다. 

“교무부장님이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제 생각에 이 문제는 여기서 결론 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지금 더 급한 것은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할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성화고 희망 자원이 없다면 인문계 진학하고자 하는 아이들 가운데 특성화고 대학 진학 이로운 점을 부각해서 데려오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박이경은 자기 말을 쉽게 받아들여 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또다시 대학 진학 문제를 꺼내는 교감의 해결책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특성화고가 앉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인 진학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학교가 취업으로 무게 중심을 바꿔 놓은 상태에서 신입생 입시 때만 내세우는 그 전략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간 교육청이 특성화고에 요구한 것은 취업 위주의 학과 운영이 분명했다. 대표적 사례가 교육과정 편제 시 전문 교과목의 시수 확대와 3학년에 인문 교과목 편제 제약이 그것이었다. 각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이 있다지만 큰 틀에서 이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교육과정 편제 승인이나 각종 사업 신청에 제약이 따랐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 시즌만 되면 학교 홍보 시, 마치 문제 해결의 비법인 것처럼 꺼내 사용하는 대학 진학의 장점이었다. 몇 년 전까지 우리 학교가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것이 그 부분인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물론 특성화고 진학에 대한 길이 열려 있기에 교감이 하고자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학교가 목표를 두고 주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내년에 교육과정까지 다 손 보실 생각이신가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대학 중심으로 홍보를 하려면, 우선 내부적으로 인문 교과목 선생님들의 협조를 얻어내야 하고 또, 다른 학교에 없는 교육과정의 특징을 설명해야 학부모님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교육청과 사회 여건이 어쩔 수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인문 교과목 시수를 줄이고 전문 교과목 시수를 늘리면서 바뀐 학교 시스템 속에 익숙해진 교사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도 교육과정 개편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부분은 항상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지금 그런 것까지 다 이야기하기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교장 선생님과도 의논해야 할 일이고 저도 생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주어진 상황의 긴급함에 대해 더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주말에 입시 설명회 더 진행하는 것도 준비해 주세요. 열심히 해오셨지만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하는 것이에요. 주무 부서의 헌신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인 것 같고…….”

교감은 박이경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교감의 마지막 말에 이 대화를 더 이어나갈 필요성도 못 느꼈다. 교감의 본래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 상황에 던진 그 말은 박이경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혔다. 홍보 초기부터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어려운 입시 상황을 만회해 보고자 동분서주한 일련의 활동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 이상 더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름대로 일을 추진해 보고자 꺼낸 말이 스스로에게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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