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학교로 나갔던 선생들이 하나, 둘 복귀하고 있었지만, 마이너스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특히 이미 정원을 확보한 학과에 비해 아직 70%와 80%밖에 채우지 못한 두 과가 문제였다. 그것도 이미 원서 접수가 시작된 첫날에 받아 든 결과라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입시 관련 주무를 맡은 홍보부장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회의의 시작을 알리며 마이크를 잡은 교감의 목소리에도 떨림이 묻어나고 있었다.
“선생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직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어제 반도 못 채웠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난 인원을 확보하셨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에 학과별 현황을 점검하고 나아가 각 선생님께서 현재 담당하시는 학교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도 할까 합니다.”
홍보부장이 띄운 프로젝트 화면에 학과별 지원 현황이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아쉬움과 걱정, 염려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먼저 인원이 확보된 학과부터 점검하겠습니다. 보건간호과 모집 정원 48에 소신 4명 있네요. 혹시 4명 다른 과로 전환될 소지는 없나요?”
“K 중 지원자 보건과 이외에 다른 과 관심 없습니다.”
“R 중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각 학교에 현재 상황 전달해 주시고, 혹시 학과 변경 가능한 자원은 최대한 부족한 과로 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해 지원자들의 성향이 쉽게 학과 변경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정원 부족만 아니라면 전공에 대한 확실한 소신이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미달 학과가 있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다음으로 호텔과 현재 모집 인원과 지원자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호텔과 지원자 중 이탈자 없도록 해주시고 혹시 중간에 추가되는 인원 발생하면 끝부분의 학교 지원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관계로 꼭 교무와 상의해서 지원 여부 확인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모집 정원을 채운 학과 부장은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아직 모집 정원에 못 미치는 학과의 경우, 늘어나는 한숨이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콘텐츠과 할까요? 모집 정원 48에 세모 7이네요. 어제 세모 17이었는데, 빠져나간 것인가요? 아니면 다 금융으로 돌리신 건가요?”
“각 조에서 금융으로 많이 돌려주셨습니다.”
인원 집계를 하는 교무부장의 첨언이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세모 7의 가능성 어떨까요? 50%로 들어온다고 하면 마지막 점수대 아이들 변동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커트에 있는 아이들 관리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 아직 모자라는 금융 쪽으로 유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는 예년에 진행되는 평소 입시 상황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초유의 마이너스 숫자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안미연은 금융과 상황에 눈을 돌렸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많이 줄어든 숫자인 것은 분명했다. 오늘 아침 96 모집에 44로 시작했었다.
“다음으로 경찰과 보겠습니다. 현재 마이너스 14에 세모 6이네요. 교무부장님 회의 직전에 들어온 것 하나 반영된 것인가요?”
“아 V 중 금융 세모로 잡힌 186 아이 부모님 통화 후 8시에 연락을 준다고 해서 아직 경찰행정과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 경찰행정과로 들어온다고 해도 아직 마이너스 13인 것이네요. 보시는 바와 같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큰일입니다. 며칠째 경찰행정과 변동이 거의 없네요.”
회의에 참석한 많은 이들의 머리에 마이너스 13은 크게 다가왔다. 홍보할 수 있는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그 숫자는 컸다.
더구나 전년도에 가장 입학 성적이 높았던 학과의 고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교감님 건의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직 금융 인원이 확보되지도 않았는데 금융 아이를 경찰행정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인원이 없어서 점수 바닥인 아이들 다 금융으로 모으고 있는데, 상위권에 속하는 저런 아이를 경찰행정으로 돌리시는 것은 옳지 못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갑자기 나선 금융과 부장의 말에 회의장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맞습니다. 전년에도 점수 낮은 아이들이 많아서 수업하기 힘들었는데, 인원 없다고 아래 점수 아이들만 다 금융으로 보내시면 수업이 너무 힘들어집니다.”
금융 비즈니스과 선임에 속하는 박형진이 부장의 말을 받아 나서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금융에서 경찰행정으로 돌리시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여 건의드리는 것입니다.”
금융 비즈니스과 부장인 김태진이 억울하다는 감정을 실어 발언했다. 하지만 인원 확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득점자 확보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에 많은 수의 교사들은 나서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생뚱맞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거부감을 표현했다.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상황에 약간 당황한 교감은 장내의 소란스러움을 정리하고자 마이크를 잡았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좀 전에 언급한 아이는 금융 비즈니스과에서 인위적으로 경찰행정과로 돌린 것 아니에요.”
교감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있었다.
“V 중 3학년 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학교에 관심 있는 아이가 있다는 전화를 받아 연락처를 전해 들었기에 인원이 부족한 금융 비즈니스과 세모로 먼저 잡았을 뿐이고, 회의 직전에 아이와 연락이 되었는데, 아이가 경찰행정과 희망한다고 해서 경찰행정과로 말씀드린 것이에요. 더구나 부모님 의사의 확인이 되지 않아 확정 명단에 넣지도 않았던 아이입니다. 맞죠? 교무부장님”
교무부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동의를 표현했다.
“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제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면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 부분입니다. 아이와 연락하신 선생님께서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과는 얼마든지 유도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저희 과에도 고득점자가 와야 그 아이를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누가 그것을 모르나요? 하지만 오늘 이 부분은 그런 것을 고려해서 접근할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학생이라도 더 유치해서 미달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교감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고 있음을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이들은 눈치채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각자 생각들이 있으시겠지만, 그것은 조금 내려놓고 현저히 부족한 현재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감은 애써 회의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지만, 사람들의 금융과에 대한 묘한 감정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답답한 감정에 앞서 한 발언이겠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발언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박이경은 화가 났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감정을 꾹꾹 눌러 놓고 있었다. 입시 총괄부장이라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입시 결과는 개별 학과 미달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이름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학과의 상황을 놓고 입시 홍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함께 뛰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보다는 돌아서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각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부족한 금융과를 채우기 위해 우선으로 홍보하고 설득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노력했기에 아침보다 현저히 줄어든 마이너스 숫자를 만들 수 있었다. 대상 학생 중에는 다른 과를 먼저 희망했다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학과 변경을 한 경우가 많았을 텐데, 그런 노력의 결과를 싸잡아 헛수고처럼 느끼게 몰아가고 있었다.
분위기가 한번 이상한 쪽으로 흐른 탓인지 회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지만 확실한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만 우리 학교에 협조적인 시내 몇몇 학교에 집중 전담팀을 구성해 보자는 안, 거리가 있어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한 시외를 공략하자는 안, 다른 학교 지망자 중 탈락 예정자를 우리 학교로 모으자는 안 등 몇몇 제안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다 시도한 방법이라 색다른 안은 나오지 않았다.
“간절함이 기적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들 힘드시겠지만 한 번 더 담당학교를 돌아보시고 한 개 팀에서 한 명 이상의 인원 확보를 목표로 내일 활동을 하기 바랍니다.”
교장 선생님이 마무리 발언을 뒤로 회의는 끝났다.
회의 장소 정리를 하는 박이경에게 다가온 경석은 눈빛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학과 개편 작업 때 그렇게 부탁할 때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저러는 것 이해가 되세요?”
박이경은 현 상황이 괴로워 솔직히 싸잡아 욕할 힘도 없었다.
“재작년 교장실에서 하셨던 말씀 기억나세요?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이런 학과 개편으로는 홍보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니 제발 학과 이름만이라도 아이들이 관심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던 말”
그랬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기존 선생님이 생각하는 교육과 학생들의 눈높이가 맞을 수 없으니 학생들이 선호하는 분야로 교사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었다. 한번 학과가 개편되고 나면 최소한 3년간 변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세워 호소했지만 먹혀들지 않았었다.
김태진이 내세웠던 학교의 정체성과 교과목의 필요성, 그리고 회계금융 분야의 요구 등등의 이유도 많았지만 결국 박이경의 눈에는 대세의 흐름을 무시한 채 옛것만 고집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선생님과 제가 더 크게 싸웠다면 이런 모습은 아닐까요?”
그때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터지는 박이경이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에요. 일은 벌어졌고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도록 하죠.”
박이경의 태도에 더 속상했는지 경석이 언성을 높였다.
“선생님은 화도 안 나세요? 자기들 주장대로 학과 개편이 되었으면 그 책임을 지고서라도 어떻게든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니에요. 죽기 살기로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못 줄망정 힘 빠지는 소리만 해대고 있으니…….”
학과 개편은 특성화고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기회 한 번을 학교가 스스로 놓친 꼴이라 생각했다. 은행 증권업무뿐만 아니라 회계나 일반 행정 사무원의 수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문제였다. 아무리 역사와 전통을 지켜야 한다거나 실무 현장에서 여전히 수효가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교사의 눈높이가 아닌 학생의 시각에서 매력이 있는 학과의 모습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학과 존속의 필요성을 주장하더라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학과 이름 찾기는 하자고 주장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물론 사학의 특성상 학과 개편 시 기존 선생님의 구성을 신경 안 쓸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바로 이 문제가 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학과 개편은 곧 특정 교과의 입장에서는 수업 과목의 증감에 영향이 미치고 심지어는 수업 시수 감소로 인해 신분 유지가 어려운 경우도 발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학과 개편은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몇 분만 생각하면 학과 미달이 나서 정신 차려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답답하고 화나요.”
“나나 선생님이나 똑같은 마음이죠. 하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 지키는 더 많은 동료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니, 그 힘을 믿고 버텨보죠.”
박이경은 정리를 마친 회의실의 불을 끄면서 아마도 내일 회의는 더 힘들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